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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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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여름이다. 오늘 최고 기온이 30도까지 올랐다. 일기 예보를 보니 내일과 내일모레도 마찬가지다. 며칠 전부터는 나시를 입기 시작했다. 겨울과 봄을 지나는 동안 구제 옷 가게에서 귀여운 민소매 옷을 발견할 때마다 하나둘 사들였는데, 드디어 입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제는 짙은 나뭇잎 색의 나시를 입었고, 오늘은 동네 도서관에 가기 위해 간단히 검은색 무지 민소매를 입었다. 내일은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으니 어두운 빨강 노랑 초록 파랑 천이 색동처럼 이어진 나시 원피스를 입을 생각이다.


날이 아주 덥지는 않아서 물통을 들고 도서관 옥상에 머물렀다. 저번에 왔을 때보다 풀이 더 무성했다. 중간중간 하얀 토끼풀이 자라 있었고, 한편에는 장미가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작은 옥상일 뿐인데도 계절에 따라 풍경이 조금씩 달라졌다. 곧장 캐노피 밑으로 들어가 산을 보고 앉았다. 양옆으로 길게 뻗은 북한산의 능선이 시야에 가득 찼다. 북한산과 그 앞의 소나무 숲에 온통 짙은 녹음이 우거졌다. 바람이 불면 나무 냄새가 은은하게 났다. 여름에 시골이나 산속에 들어가면 나는 냄새. 건너편 솔밭공원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떠드는 소리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을 만큼 들려왔다. 그 외에는 조용했다. 옥상에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서울 내에서 이만큼 커다란 자연 전경을 이만큼 고요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은 아마 없을 것이다. 샌들도 벗고 발에도 바람을 쐬어주면서 나른해진 기분으로 산을 바라봤다. 5년 전 여름 시골에 갔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뒤에는 산, 낮은 집들은 듬성듬성 들어서 있고, 앞으로는 모가 심어진 넓은 논밭들이 있는 널따란 곳이었다. 간간이, 그것도 정말 아주 간간이 지나가는 자동차나 일하러 가시는 노인들을 빼면 사방이 고요했다. 그 넓은 곳에 나 혼자서 볕을 쬐고 푸른 벼를 구경했다. 서울에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느낌이었는데, 오랜만에 그때 기억이 떠올랐다. 시골에 가고 싶다는 생각과 앞으로 이곳을 자주 와야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근처에 사는 친구랑 매주 주말마다 와서 도시락 까먹고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올여름을 어떻게 날지 고민했다. 매주 도서관 와서 책 읽고 햇볕 쬐기. 시골에서 며칠 묵다 오기. 그 외에도 여러 개를 다이어리에 적어봤다. 그중 몇 개를 공유해야겠다. 내가 다른 사람의 여름 에세이나 브이로그를 참고해서 지난여름을 더 즐겁게 지냈던 것처럼, 내 여름 계획을 읽은 누군가도 올여름을 더 진하게 음미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1. 태닝


 

간단하지만 첫 번째는 태닝이다. 몇 년 전부터 여름엔 자고로 살이 그을려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야만 여름이라는 계절을 야무지게 즐긴 것 같다. 나는 사실 원래도 좀 까무잡잡한 편인데, 어렸을 때는 내 피부톤을 싫어했다. 그 시절 소녀들은 죄다 흰 피부가 되길 바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한국에서도 구릿빛 피부가 건강하고 활기차 보이는 이미지를 얻었다. 나야 유행과 여론에 쉽게 편승하는 편이고, 내 피부는 절대 하얘질 수 없다는 걸 인정한 후였으므로 나의 까무잡잡한 피부를 좋아하기로 했다. 그리고 구릿빛 피부를 뜻하는 영어 표현을 알게 된 뒤에는 강경한 여름태닝론자가 되었다. 영어에서는 햇볕을 받아 그을린 것을 ‘sunkissed’라고 표현한다. 햇볕이 키스한 피부. 이런 낭만적이고 앙증맞은 표현이라니. 여름의 해가 입 맞춘 자국은 오래 지속된다. 심하면 겨울까지 남아있는다. 여름이 지나도 피부에 기입된 여름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재작년부터는 태닝 로션을 사서 열심히 살을 태우고 있다. 올여름에도 맥반석 계란마냥 나를 구워낼 예정이다.

 

 

 

2. 한강공원 수영장


 

그런데 경험상 피부는 야외 수영할 때 제일 잘 탄다. 어느 때보다 넓은 면적의 맨살이 노출되는 데다 선크림도 물에 쉽게 지워지기 때문일 테다. 재작년엔 내 피부가 그을리다 못해 작은 화상까지 입은 적이 있는데, 바로 뚝섬 한강공원 수영장을 갔을 때였다. 당장 당일 집으로 돌아갈 때부터 가방을 메는 것이 고통스러웠을 정도로 어깨가 심하게 타긴 했지만, 그 점을 제외하면 온몸이 내가 원하는 정도로 충분히 탔기에 나로서는 나름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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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경험담은 이쯤하고 본론을 말하자면, 한강공원 수영장도 여름에 가볼 만한 곳 중 하나다. 어디 멀리 갈 필요 없이 도시에서 수영하고 물놀이하기에 딱이다. 내가 갔던 곳은 뚝섬유원지 쪽인데, 이외에도 여의도, 잠원에도 수영장이 있고 난지, 잠실에도 물놀이장이 있다고 한다. 5000원을 내고 들어가면 파라솔이 즐비하다. 그중 하나를 잡고 돗자리를 깔면 된다. 특성상 가족 단위로 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디 한편을 잘 찾아보면 거의 반라로 누운 채 태닝을 즐기는 분들이 모여있다. 조금 더 자유로운 기분을 느끼고 싶으면 그곳으로 가면 된다.


나라에서 운영되는 곳이라 그런지, 45분 수영 시간 후에는 15분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 볼캡 정도만 써도 괜찮은 워터파크와 달리 수영모도 필수다. 그러니까 멋을 내기에는 알맞지 않다. 친한 친구들과 해맑고 유치하게 놀고 열심히 수영하고 싶은 사람이 가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의 재미가 있다. 사실 나는 이런 류의 재미를 더 좋아한다. 수영을 하고 난 뒤에는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몸으로 돗자리로 돌아와 떡볶이와 라면 같은 간식을 먹고. 뜨끈한 바닥에 누워서 졸다가 다시 찬물로 수영하러 들어가는. 여름방학을 보내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올해는 6월 20일부터 개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친구들을 미리 꼬셔놔야겠다.

 

 

 

3. 정동진독립영화제


 

8월 첫째 주에는 정동진으로 가야 한다. 나와 나이가 같은 정동진독립영화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나는 씨네필은 아니지만 영화에 작은 동경을 품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만큼 의지가 대단하지는 않아 유명한 영화제가 열릴 무렵이면 늘 다른 일정이 있거나 예매를 잊어버리는 바람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러다 재작년에 반드시 영화제 하나는 가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떤 영화제를 갈지 고민하던 중 정동진독립영화제를 알게 됐다. 한여름에 정동진에서 열리는 독립영화제. 무려 무료. 밤이 되면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다고. 완벽하다. 작고 사소한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나에게 특히 제격이었다. 정동진이니만큼 바다 수영도 하고 일출도 볼 수 있을 것이었다. 몇 달간 마음에 품어두다가 8월에 곧장 정동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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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 아래 새파란 바닷물에 들어가 둥둥 떠다니다가, 저녁에는 돗자리를 둘러메고 영화제가 열리는 정동초등학교로 향했다. 논밭을 옆에 끼고 얼마간 걸아가다 보면 모기향 냄새가 강렬하게 풍기는데, 야외에서 열리는 만큼 영화제 측에서 피운 거였다. 자리를 잡고 누워서 영화를 보다가 고개를 들면 밤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가끔 대형 스크린 뒤로 기차가 지나가기도 했다. 그야말로 낭만이 가득했다. 다음 날 새벽에는 그 유명한 정동진 일출을 봤는데, 왜 그렇게 명성이 높은지 단박에 알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완벽한 1박 2일 여행이었다. 작년에는 숙소와 기차 편 예약을 놓치는 바람에 아쉽게도 가지 못했는데, 올해 다시 가봐야겠다. 이번에는 까먹지 말고 미리 예매해둬야지.

 

 

 

4. 대흥사 템플스테이


 

내 시골은 전라남도 해남에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5년 전 여름에 시골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렀었다. 보통은 마루에 앉아서 멍을 때리다가 해가 질 무렵에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았는데, 하루는 아빠가 대흥사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당시만 해도 산사나 불교에 전혀 관심이 없던 터라 심드렁하게 따라나섰다. 그런데 대흥사에 도착하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절을 감싸듯 뒤편으로 펼쳐진 커다란 두륜산의 풍경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거대한 녹음은 처음이었다. 그 풍경을 본 순간 기분이 급격히 좋아졌다. 절의 삼면이 녹음에 둘러싸여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빙글빙글 돌면서 내내 감탄했다.


그 이후로 어쩌다 보니 한번도 해남에 가지 않았다. 매년 여름마다 시골 갈래, 대흥사 갈래 말만 하다가 여름이 지나고 말았다. 올해는 반드시 가야지. 얼마 전부터는 템플 스테이와 사찰 음식에도 관심이 생겼으니 아예 거기서 며칠을 묵어도 좋을 것 같다. 이것도 비슷한 취향을 가진 친구들을 데려가서 템플스테이도 하고, 시골집에서도 며칠 머무르다 와야겠다.

 

이외에도 몇 개를 더 적어봤는데, 쓰고 보니 다 재작년이나 작년에 해봤던 것들이었다. 물론 이미 보장된 재미를 실천하는 것도 나름 공을 들여야 되고 충분히 즐겁지만, 사실 가장 짜릿한 것은 기대 반 의심 반을 안고 시도해보는 새로운 것들이었으므로 올해도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재미를 한번 탐색할 생각이다. 참신하고 즐거운 여름 나기 방법을 찾으면 그것도 한번 공유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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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지방2
와아 sunkissed라니 정말 낭만적인 상상력이네요>< 글을 읽는데 신이 난 친구의 조잘거림을 듣는 것 같았어요ㅎㅎ 즐거운 여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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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0 15:38:55 1
seonshine
이번 여름은 저도 꽉 채워서 끝내주게 즐기려고요. 이번 여름은 뭔가 많이 즐기고 경험하고 싶어요.
바다도 보고, 여행도 가고, 못했던 운동도 다시 시작하려고요.
여름에 할 것들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7월이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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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4 21:40:2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