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미터.〉는 우오토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영화다.
달리기로는 지는 법이 없던 토가시는 전학생 코미야에게 달리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코미야가 달리는 이유는 현실을 잊기 위한 ‘도피’. 그런 코미야와 100m 경주를 끝으로, 토가시는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중학교를 넘어 고등학교, 학생을 넘어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달리는 토가시지만, 점점 자신이 뛰는 이유를 찾기 어려워진다. 10대 시절 겪었던 슬럼프의 여파인지, 부진한 성적으로 계약 갱신에 어려움을 겪는 토가시. 나는 이기기 위해 뛰는 것일까? 그에게는 명확한 이유가 필요하다.
불안은 대처할 대상이 아니다
불안은 대처할 대상이 아니다.
인생은 패배할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그곳에 삶의 묘미가 있다.
공포는 불쾌한 게 아니다.
안전은 유쾌한 게 아니다.
불안은 너 자신이 널 시험할 때의 감정이다.
영광 앞에서 대가를 치러야 할 때
보잘것없는 세포 집합체인 인생 따위를 내던지면 된다.
언제나 기록을 갈아치워야 한다는 압박감, 자신의 부상이 결과에 영향을 줄지 두려운 마음. 코미야의 질문에 대한 자이츠의 대답은 슬럼프에 대처하는 방법치고는 너무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핏 보면 무책임해 보이기까지 하는 저 답변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불안은 항상 인간이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안정을 추구하기에 불안만큼 방해되는 요소는 없고, 육상 선수라면 불안감이 기록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고작 10초간 진행되는 경기에 불안이 끼어들 시간 따위는 없다. 그런데 만약 그 불안이 시간 그 자체라면 말이 달라진다.
인생은 승리할 가능성보다 패배할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람은 보통 자신이 무언가를 이겨낸 기억을 오래 품고 살아가지만, 그 이외의 시간은 모두 패배한 기억으로 채워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에 고통스러워하기엔 10초도, 인간의 삶도 너무 짧으니 차라리 불안을 묘미라고 여기는 것이 좋겠다. 안전은 유쾌한 것이 아니라지만, 사실 내겐 안전이 가장 추구하는 목적지다. 안정적인 상태, 그 무엇도 변화할 가능성이 없는 상태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큰 편안함을 가져다주니 말이다.
나 자신을 시험할 때 드는 불안. 이것을 이겨내고 영광을 얻기 위해 인생까지 내던지고 싶지 않은 것이 인간 아닐까?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뛰기 시작했던 코미야에게 저 답변이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 궁금해지는 장면이었다.
눈을 감으면 도망칠 수 없다
내 승리가 비현실적이면 그 현실에서 전력으로 도망쳐.
현실 도피는 자신에 대한 기대야.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자세다.
설령 주변이 어떤 정론, 통찰, 진리, 계몽을 내세워도, 난 나를 인정해.
그게 바로 내 사명, 일
살아가는 의미, 달리는 이유야.
(......)
달리는 이유를 알면 현실은 얼마든지 도피할 수 있어.
카이도는 자이츠에 밀려 만년 2등이라 불리는 선수다. 그에게 조언을 구하는 토가시는 뜻밖의 답을 듣는다. 현실 도피를 위한 달리기. 이것은 옛 친구인 코미야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카이도의 관점은 조금 다르다. 제대로 현실 도피를 하려면 인정부터 해야 하는 것. 눈앞의 현실을 직시해야만 비로소 제대로 도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이 뭔지 모르면 현실에서 도망칠 수 없어.
현실에 눈감고 멈춰 서 있는 것과 눈 뜨고 도망치는 건 완전히 달라.
현실을 직시하는 건 엄청나게 무섭다.
인정하기 싫은 걸 인정해야 하니까.
현실을 바꾸고 싶든, 부정하든
마주 봐야 가능하잖아.
눈을 감으면 도망칠 수도 없고
계속 그 자리에 멈춰 있게 돼.
눈을 감으면 방향을 알 수 없어 이동이 어렵다. 그동안 현실 도피란 극복을 피해 달아나는 부끄러운 일이라 여겼었다. 내 앞에 놓인 현실이 두려우니 등을 돌려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잠시 생각해 보니 등을 돌리는 것도 현실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파악해야 가능한 것이다.
잊고 싶은 현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무작정 뛰는 것과, 도피하고 싶은 현실을 직시하고 반대로 뛰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제대로 도망치려면 방향을 알아야 하는 법이다. 뭣도 모르고 뛴다면 피하고 싶은 현실을 다시 마주할지 누가 알겠는가?
달리는 이유만 안다면 현실은 얼마든지 도피할 수 있다던 카이도는 준결승 경기에서 자이츠와 코미야를 만난다. 모두가 자이츠 아니면 코미야가 1등을 할 거라고 떠들어대는 경기장 한가운데에서, 카이도는 확실한 도피를 준비한다. 이를 위해선 언제나 그랬듯 현실 파악부터 해야 한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자신을 앞질러 가는 자이츠와 코미야. 둘을 바라보며 카이도는 생각한다.
이게 현실이라는 놈인가?
그럼 지금부터 현실에서 도망쳐 보자.
달리는 이유
누군가는 달리기 따위에 인생을 거는 것이 한심하다고 여길지 모른다. 그저 10초를 전력으로 뛰는 것뿐인 단거리 종목. 기록 이후엔 무엇이 있는가.
무엇을 위해 뛰는가? 토가시뿐만 아니라 여러 선수는 자신의 속도에 대한 목표를 잘 알지 못한 채 뛰었다. 옆에서 달리는 상대 선수를 이기는 것만이 단거리 종목의 목적일까? 그렇다면 자신에 견줄 만한 선수가 없다면, 그저 혼자 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달리기의 이유가 사라지는 것일까.
오직 나만이 빠르며 옆에서 달릴 수 있는 선수가 아무도 없다는 만족감이 나를 더 뛰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내 옆에서 아무도 뛰고 있지 않으며 내 속도가 더 빨라질수록 주위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 달리기를 멈추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현실에서 도피하겠다던 예전의 목표가 현재의 내게 슬럼프를 가져올 수도 있고, 제대로 도피해 보겠다는 나의 결심이 오히려 추진력을 제공하기도 한다.
달리기란 참 묘한 존재 같다. 무작정 달리다 보면 주위가 보이기도, 라이벌 선수가 눈에 띄기도, 다리를 삐끗해 한동안 못 달리기도, 다른 선수가 실수해 운 좋게 좋은 등수를 얻어내기도 한다. 내가 트랙 위 10초 동안 얼마나 전력을 다해 뛸지는 오로지 나에게 달렸다. 같이 뛰는 선수의 존재를 쉽게 잊기도 하고, 크게 의식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시작하자마자 다가오는 경기 종료까지의 10초. 시작보다 종료가 더 가깝게 느껴지는 이 종목은 우리가 끝 너머를 바라보게 한다. 기록 이후엔 무엇이 있을까. 내가 기록을 갈아치운다면 그 뒤에 허무함이 찾아오지 않을까? 오로지 기록에만 집중하는 내 모습은 현재가 아닌 미래만을 바라보게 만들어 달리기를 온전히 즐길 수 없게 한다.
학창 시절 담임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떠오른다. 인생은 마치 마라톤 같은 것이니,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지금의 나는 문득 다른 생각이 든다. 나중을 생각해서 정도껏 뛰는 것은 지금의 벽을 넘지 못하게 한다. 나는 이 순간의 나를 이겨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금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을 생각하기엔 내게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바로 지금이다. 매 순간 단거리 선수처럼, 10초 만에 모든 것이 결판나는 종목의 선수처럼 뛰어야만 역설적으로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문제는 100M를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면 다 해결돼.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지 못한다면? 그건 지금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100m 달리기는 과거도, 미래도 잊고 오직 지금의 10초만을 위해 뛰는 종목이니까. 마지막에 남을 기록과 후회는 접어둔 채, 내가 달리는 이유를 알고 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자, 트랙 위에 선 자신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