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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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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나가노 작가의 작품 ‘먼작귀(먼가 작고 귀여운 녀석 - 치이카와)’는 귀엽고 다양한 캐릭터 뒤에 숨겨진 어딘가 어둡고 부조리한 세계관으로 유명하다. 주인공인 ‘치이카와’는 하얀 햄스터의 모습을 가진 먼작귀다. 여기서 ‘먼작귀’란 마치 인간과 같은 종족의 이름이다.

 

 

ちょっぴり泣き虫だけど優しい性格。

草むしりや討伐などをして生活している。

조금 울보지만 다정한 성격.

제초나 토벌 등을 하며 생활하고 있다.

 

- 공식 애니메이션 홈페이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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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카와 주변에는 개성 넘치는 친구들이 존재한다. 가장 친한 친구인 ‘하치와레(가르마)’는 가르마 헤어스타일을 가진 고양이의 모습을 한, 강해지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는 캐릭터다. 노란 토끼의 모습을 한 정체불명의 ‘우사기(토끼)’는 뛰어난 몬스터 토벌 능력과 제초 기술을 겸비한 일종의 ‘능력자’다. 이들의 실력 격차는 세계관 내 제초 검정 자격시험을 통해 드러나는데, 우사기는 제초 검정 2급을 취득한 것으로 묘사된다.

 

주로 몬스터 토벌과 제초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이 세계에서 능력은 생존과 직결된다. 토벌 성과에 따라 랭크가 매겨지고, 제초 급수에 따라 보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이카와는 오랫동안 가장 기초적인 5급 시험조차 통과하지 못했고 토벌 능력 역시 부진한, 소위 ‘부족한’ 캐릭터로 분류되었다.

 

 

 

작고 무능한 존재가 주는 불편함


  

먼작귀의 애독자이자 애청자로서, 나는 치이카와를 마주할 때마다 형용하기 어려운 짜증과 분노를 느꼈다. 하치와레와 같은 조건에서 공부했음에도 홀로 시험에 낙방하고, 작은 몬스터 하나 수월하게 제압하지 못하는 모습이 답답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친구들을 대신해 나섰다가 오히려 짐이 되기도 하며, 모든 분야에서 발전 속도가 더딘 그의 모습은 무능함 그 자체로 보였다. 소심하기까지 한 치이카와를 보며, 나는 왜 그가 1인분을 해내지 못하는지에 대해 화를 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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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치이카와 역시 부단히 노력하는 캐릭터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기에 누구보다 진지하게 준비한다. 다만 결과가 따라주지 않아 문제 덩어리로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가 가려버린 그의 과정에만 집중해 본다면, 치이카와는 사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느 날 우연히 접한 글이 내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치이카와에게 극도로 짜증을 내거나 분노를 느끼는 사람은, 우리 사회의 부족함 혹은 무능함을 용인하지 못하는 시선을 가진 사람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순간, 내가 치이카와를 얼마나 이기적이고 편협한 시선으로 가둬두고 있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부족함’은 상대적인 개념일 수 있음에도 나는 그것을 절대적인 잣대로 삼아 그를 비난해 왔다. 만화 속 캐릭터를 향한 이 부정적인 감정은, 어쩌면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그만큼 경직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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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카와를 인간 사회에 투영한다면, 그는 시스템이 요구하는 기능적 1인분을 수행하지 못하는 존재다. 논리를 담아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는 그의 소통 방식은 효율 중심 사회에서 답답함으로 여겨진다. 민첩한 대응으로 성과를 내는 우사기와 비교했을 때, 겁에 질려 무기조차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는 치이카와의 모습은 경쟁 사회가 요구하는 기민함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위기마다 친구들의 도움을 받는 치이카와에게 앞서 언급한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다면, 내가 이 사회에서 온전하게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치이카와의 부족해 보이는 결과물에만 집중하는 나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결핍을 배제하는 이기적이고 암울한 곳으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능함이라고 오해했던 따뜻함에 대하여


  

치이카와를 향한 나의 시선은 결국 타인의 부족함뿐만 아니라, 내 안의 결핍조차 수용하지 못하는 강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볼 때마다 못마땅했던 치이카와의 모습은, 실은 내가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나 자신을 향할 엄격함의 다른 이름이었다. 노력보다 결과를 우선하는 태도에 빠져, 나는 치이카와의 진면목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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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카와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다정한 존재다. 비록 울보일지언정 언제나 친구들을 먼저 챙기고, 제초 검정 5급을 따려는 이유도 보수를 높여 친구들에게 보답하고 싶다는 선한 의지에서 출발한 것이다. 하치와레와 함께 응시한 시험에서 홀로 떨어졌을 때, 그는 자신의 슬픔을 뒤로한 채 합격한 친구를 진심으로 축하하며 쿠키를 건넨다. 타자의 성공을 시기 없이 응원하는 그 마음은 결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귀한 가치다.

 

또한, 그의 느린 동작은 사실 매사를 신중하게 결정하고 타자를 배려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확신이 설 때까지 고민하고 이행하는 그의 태도는 결함이 아닌, 그만의 사려 깊은 방식이었다.

 

 

 

서툰 결과물 뒤에 숨겨진 것들


 

치이카와의 결과물을 내 멋대로 해석하느라 그의 다정함과 깊은 속내를 눈치채지 못했다. 공식 홈페이지의 소개글조차 무시한 채, 오직 시험 낙방과 토벌 실패, 음식 주문조차 버거워하는 소심함과 눈물에만 집중했다. 내가 ‘결함’이라 단정 지었던 그의 모든 모습은 사실 따뜻함과 신중함이라는 아름다운 본질에서 뻗어 나온 것이었다.

 

우리는 사회적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가치를 ‘못난 존재’로 규정하는 비정함에 대해 고찰해야 한다. 언젠가 내가 자격증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취업의 문턱에서 좌절하거나, 타인을 위해 나섰다가 낭패를 보게 될 때, 나는 치이카와를 바라봤던 그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비난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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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함이라 여겼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한 순간이다. 타자를 넘어 내 안의 결핍마저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태도는 타인에게 상처를 입힐 뿐만 아니라, 결국 나라는 존재마저 무너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결핍을 민폐로 규정하고 미숙함을 제거해야 할 결함으로 간주하는 사회에서 다정함은 설 자리를 잃는다. 결과에만 매몰되어 과정에 숨은 노력을 무시한다면, 진정한 따뜻함과 열정은 영영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제 치이카와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또 다른 부정을 낳지 않기 위해, 그의 서툰 결과물 이면의 가치를 먼저 들여다보려 한다.

 

 

* 이미지 출처: 먼작귀 공식 'X'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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