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책 너머의 작가들을 만나며 - 2024년 북토크 결산 [도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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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 2025
2024년이 갔다. 결국 갔다. 하지만 연말에 벌어진 내란 사건과 애경 제주항공 참사로 인해 우리의 마음은 2025년으로 건너가기 힘든 듯하다. 그렇지만 정말로 2025년이 왔고 앞으로 2025년의 시간 속에 살아야 한다. 그리고 벌써, 2025년의 하루를 살았다.
2025년으로 건너간다고 해서 그 모든 일들을 2024년에 두고 온다는 건 아니다.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가지만, 우리는-기억이라는 초능력으로-시간을 거슬러 그때의 일들을 데려올 수 있다. 그렇게 현재의 문제로 되새겨야, 무력하고 슬프고 화가 난 상태로 맞이했던 끝을 지나 새롭게 시작할 수가 있다. 무력감과 공허에서 벗어나 더 깊이 애도하고 더 거세게 분노할 수가 있다.
2024년을 되돌아보면 그런 일들이 벌어졌을 때 나는 책을 붙잡았던 것 같다. 마음이 혼란스러워 읽히지 않을 때가 허다했지만, 뉴스를 계속 새로고침하면서 일이 더 커지지 않기를 바라며 활자를 들여다보려고 했다. 책 속 세상에서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마구마구 일어났다. 그냥 일어난 일들이 아니라, 생각하게 하고 비판하게 하고 되돌아보게 하며 결국 기억하게 하는 일들이.
책에 등장하는 그런 일들은 질문으로 남았고, 그 질문은 답할 수 없다는 '침묵'이 아닌, 두고두고 풀어나가야 한다는 열린 결말처럼 머리에 스며들었고, 시야를 열리게 했으며, 나는 그런 시야로 세상을 응시하며 얼음장 같은 내일을 디뎠다. 질문 하나 없는 세상은 가혹한 질문만 남은 세상보다 훨씬 잔인하다고 생각하면서. 책은 세상을 실제로 살기 위한 훈련이라고 생각하면서.
읽는 사람은 그런 식으로 내면의 목소리를 만들어가고 실제를 대비한다. 하지만 나만의 목소리로 부족할 때가, 아쉬울 때가 있다. 어떤 질문은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싶기도 하고, 좀 더 파헤치고 싶기도, 음미하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누군가는 독서 감상을 나누고 누군가는 독서 모임에 나간다.
2024년의 나는 책을 쓴 작가들을 보러 다녔다. 북토크를 정말 많이 갔다. 일일이 세어보니 25개다. 북토크는 단순히 작가가 참석하는 행사가 아니다. 책이 실제를 대비하는 '훈련'이라면, 북토크는 실제에 관한 '증언'을 나누는 행사다. 나는 북토크로 책에서 알게 된 것보다 더 많은 걸 배웠다. 그래서 이번에 2024년에 참여한 북토크들을 짧게 정리해 보려고 한다.
상반기 북토크
01.31 <목소리들> - 이승우 소설가, 이소 문학평론가(사회) (문학과지성사 사옥): 평소에 존경하던 이승우 소설가의 신작 단편집에 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책을 선물 받아 역조공을 받은 기분이었다.
03.24 글쓰기 작업장 특강: ‘천재는 아니지만 좋은 글은 쓰고 싶어’ - 안담 작가 (하자글방): 기성 작가들의 작품에서 혐오, 차별적인 문장을 마주했을 때 그 문장을 지우고 읽는다는 안담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05.10 2024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백년동안의 낭독(강신재, 손동인, 신동집, 박화목, 차범석)’ - 권민경, 박참새, 이종민 시인, 최민지 그림책 작가, 김수온 소설가, 전유동 가수, 서광일, 박소아, 오현우, 김남희 배우, 송지현 소설가(연출), 이소연 시인(사회) (진부책방): 탄생 백주년이 된 작가들의 작품을 젊은 작가들의 낭독으로 듣는 좋은 기획의 행사였다. 평소에 좋아하던 차범석의 희곡 <성난 기계>를 배우들의 실감 나는 낭독으로 들을 수 있어 좋았다.
하반기 북토크
08.22 ‘한여름 밤의 북토크’ <사랑과 결함> - 예소연 소설가, 이다혜 기자(사회) (KT&G 상상마당 시네마): 소설집에 실린 소설 <우리 철봉하자>를 영화화한 작품 <철봉하자 우리>를 상영한 뒤 북토크가 진행되어 새로웠다. '성장'이란 게 정말 가능한 건지 생각해 보게 했다.
09.07 ~ 09.11 2024 서울국제작가축제 (혜화): 한국을 비롯해 세계의 작가들까지, 정말 많은 작가를 만났다. 각각의 테마로 묶인 작가들을 한 번에 볼 수 있어 좋았다. 작가마다 천착하는 주제가 다르다는 걸, 그런데 그 모든 주제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죽도록 사랑해’ - 이희주, 우사미 린 소설가, 오은교 문학평론가(사회)
‘농담의 온도’ - 정영수, 김기태, 프레드릭 배크만 소설가, 남승원 문학평론가(사회)
‘어두운 밤들의 세계’ - 이장욱, 손보미, 천쓰홍 소설가, 한소범 기자(사회)
‘사랑의 다른 얼굴’ - 김이설, 이미상, 필라르 킨타나 소설가, 오은교 문학평론가(사회)
‘보이지 않는 끈’ - 백수린 소설가, 미셸 자우너 작가, 소유정 문학평론가(사회)
‘별개의 질서’ - 최은미, 엘레나 메델 소설가, 인아영 문학평론가(사회)
09.08 ‘소설이 사랑한 장소들’ - 김금희 소설가 (인천 가재울꿈어린이도서관): 인천에서 나고 자란 김금희 소설가의 인천에 대한 기억과 소설로 구현한 인천의 장소들을 들을 수 있었다.
09.21 <고요한 읽기> - 이승우 소설가, 이동진 평론가(사회) (광화문 교보빌딩 대산홀): 소설가는 무엇을, 어떻게 읽는가를 알 수 있었다. 이동진 평론가와 이승우 소설가의 케미를 느낄 수 있었다.
09.28 <여기서 울지 마세요> - 김홍 소설가 (책방서로): 책에 적힌 카피대로, 이야기가 안드로메다로 가는 소설을 쓰는 김홍 소설가의 북토크. 책에 능청스럽게 살포해 놓은 사실 같은 허구들을 알게 되어 재미있었다.
10.02 앤솔로지 <녹을 때까지 기다려> 출간 기념 북토크 – 오한기, 한유주, 박소희, 장희원, 이지 소설가 (책방연희 광화문점): '디저트'라는 어찌 보면 가볍게 보일 수 있는 테마를 가지고 깊은 이야기를 썼던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10.11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4> 수상작가 북토크 – 손보미, 문지혁, 서장원, 성해나, 안 윤, 예소연 소설가, 박인성, 최가은 문학평론가(사회) (포니정홀): 좋아하는 작가들을 다시 보아 좋았고, 잘 모르는 작가들의 작품 매력도 느낄 수 있었다.
10.13 한-캐나다 앤솔로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억해> 프로젝트 ‘혼자가 아니에요’ - 김애란 소설가, 리사 버드-윌슨 소설가, 김화진 소설가(사회) (마음산책빌딩): 리사 버드-윌슨 소설가를 통해 '선주민'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재개발지역 거주민이 아닌가, 하는 김애란 소설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10.19 <미래의 자리> - 문진영 소설가 (책방서로): 위로가 되는 책이어서 이 자리도 많은 위로가 되었다.
10.29 교보인문학석강: 세계작가와의 대화 - 실비 제르맹 소설가, 류재화 교수(사회) (광화문 교보빌딩 대산홀): 세계적인 작가의 관찰력과 작품세계를 알 수 있었다. 세계적인 작가는 보는 시야도 다르다고 생각했다.
11.01 ‘시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황인찬 시인 (경희대학교 중앙도서관): 시인의 북토크는 처음이었는데, 정말 듣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문학이 무용해지는 듯한 세상에서, 문학만이, 시만이 가질 수 있는 의미를 배울 수 있었다.
11.22 <빛과 멜로디> - 조해진 소설가 (책방서로): 시작 전 찐빵과 귤을 나눠주셔서 따뜻해진 마음으로 북토크를 들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먼 지역의,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를 지금 여기 우리의 이야기로 끌고 오는 이야기라서 좋았다고 직접 감상을 전했다.
12.06 ‘화양극장 : 빛을 걷으면 빛 낭독극 & 북토크’ - 성해나 소설가, 방시우, 김보나, 박요한 성우 (서교스퀘어): 읽으면서도 영화 같다고 느꼈던 소설을 낭독극으로 보게 되어 좋았다. 작품을 극으로 복습하며 새롭게 느낀 부분이 많았다. 재독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12.07 <사랑과 결함> - 예소연 소설가 (책방서로): 인상 깊게 읽은 단편집을 다른 계절에 복습하여 기분이 새로웠고 작품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12.11 ‘무엇을 기억하고 전승할 것인가’ - 김현아 작가(어딘글방 대표) (노무현 시민센터): 우리나라에 일어났던 혁명들을 다시 짚어볼 수 있었던 강의. 역사의식의 중요성을 알았다.
12.14 <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 - 안보윤 소설가 (무아레 서점): 폭력과 악,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북토크. 작가님이 자기 작품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12.18 <낮은 해상도로부터> - 서이제 소설가, 정영수 소설가(사회) (말과활아카데미):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 양식에 대해서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총평
하반기는 독서의 계절 '가을'이 있어서 북토크 행사가 유독 많았다. 때마침 생긴 여유 덕에 많이 참여할 수 있었다. 책을 못 읽고 북토크에 간 경우도 있었는데 그래도 꼭 무언갈 배우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황인찬 시인의 강연에서 이 얘기가 기억난다. 지금의 북토크 형식은 작가들이 시위 현장에 함께하며 낭독하던 모임에서 연유한 거라고. 결국 북토크는 책을 통해 작가들과 함께 소통하며 '현재'를 견디고 인식하는 모임인 것 같다.
이런 모임이 더욱 많아져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세상을 고민하고 토론하게 되기를 바란다.
[안태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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