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평소 아트인사이트 플랫폼을 통해 꾸준히 작가분들의 작업물을 보고 있었다. 디지털 화면 너머로도 작품들은 감각적이고 아름다웠고, 종종 인터뷰를 읽으며 그 안의 이야기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졌다. 그런 작품들을 실제 전시에서 마주할 수 있다는 건, 쉽게 얻기 힘든 소중한 기회라고 느껴져 자연스레 전시장을 찾게 되었다.


삶을 살아갈수록 내 안에서 알아채지 못한 채 흘러가는 찰나의 감각들이 점점 늘어난다. 성수 맷멀에서 개최된 아트인사이트 제1회 기획전 <틔움>은 내게 그런 감각들을 찾아 꺼낼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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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전시 설명 문구와 함께 왼쪽과 오른쪽 공간으로 나뉜다. 공간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레 시선이 머무는 곳엔,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첫 장면이 펼쳐진다.


은유 작가 ‘은유’의 그림은 사막이나 깊은 심연과 같이 자연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다. 내면의 감정과 감각을 자연과 인간의 모습으로 투영하여 그린 듯한 인상을 받았다.


작품을 실제로 보니 자연이라는 배경이 주는 압도감이나 경외감이 더 짙게 느껴졌다. ‘선인장’에서는 가시가 많은 커다란 선인장이 작은 개인을 내려다보는 구도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에서는 깊은 심연으로 침잠하는 개인의 상황이 더 강렬하게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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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유, '선인장'

 

 

사막은 가시투성이의 선인장이 주로 자라는 곳이다. 나를 지키기 위해 자라난 뾰족한 가시는 가끔 걷잡을 수 없이 자라고 만다. 그러나 사막은 다른 한편으로 오아시스도, 꽃도 품을 수 있는 공간이다. 작품을 보다 문득 삭막한 사막의 한가운데에서도 오아시스를 찾고 꽃을 움트게 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른 같은 공간에는 작가 ‘나른’의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작가 ‘나른’은 여러 점의 작품을 통해 그 누구보다도 사랑의 순간과 감정을 진솔하고 솔직하게 꺼내어 보인다.


작품들은 모든 게 영원할 것만 같은 사랑의 시작점부터 격동의 순간을 지나 결국 홀로 남는 일련의 과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처음엔 두 연인의 모습만이 강렬하게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상보다 상황을 표현한 그림임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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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 '무기력'

 

 

‘물음’부터 ‘겹쳐짐’, 그리고 '무기력이 주는 평온함' 까지 그 일련의 그림을 보면 흘러간 시간과 과거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이 떠밀려온다. 사랑에 대한 정의에 끊임없이 집착했던 순간들. 다정과 따뜻함의 이면에 몸을 숨기고 있던 미움, 분노, 증오와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 결말에 치달을수록 진하게 느껴지는 씁쓸함. 그림을 보며 이별이 괴로운 이유는 대상뿐 아니라 과거의 나마저 지워내야 한다는 점 때문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대성 오른편의 공간으로 이동하면 작가 ‘대성’의 재치 있는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재치있는 그림체는 전시의 분위기를 살짝 바꾸며 새로운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전시된 작품 중 가장 밝고 통통 튀는 색감과 분위기가 특징적인 작가 ‘대성’의 그림은, 그 제목과 연관 지어 보면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귀엽고 개성 넘치는 형상을 통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바라보고 고민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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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성, '존재의 근원'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된 작가 ‘대성’의 인터뷰 전문을 읽고 실제 작품을 마주하면 그 유쾌함과 풍자적인 뉘앙스가 더 진하게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주제와 대비되는 표현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가 ‘대성’의 방식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Mia 작가 'Mia'의 작품은 독자가 직접 이야기를 조합하게 함으로써, 이야기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한다. ‘The bench’는 가운데를 기준으로 양 면의 페이지를 넘기며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다. 왼쪽과 오른쪽에는 각기 다른 문장이 적혀있고, 페이지에 따라 벤치에 머물다 가는 대상이 변화한다. 짙은 파란색의 내지와 벤치 주위의 대상들, 페이지를 넘김에 따라 완성되는 문장들은 그 속에서 은은한 그리움과 슬픔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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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a, 'The bench'

 

 

‘나는, 이제’의 몽환적인 기운이 감도는 표지를 한 장씩 넘기면 네온 색상으로 가득한 한 인물의 일상이 펼쳐진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실내 풍경과 그녀를 감싼 바깥 풍경도 각각 변화할 수 있다. 책 가운데에 접힌 편지는 ‘잘 지내?’라는 문구로 시작해 솔직하고 담담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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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a, '나는, 이제'

 

 

표지의 ‘Ça va(잘 지내?) - 나는’은 마지막 표지에서 ‘이제 - Ça va(잘 지내)’로 이어진다. 해가 뜨고 달이 지는 영겁의 시간을 지나 비로소 ‘잘 지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화자처럼, 나 역시 왜인지 나만의 편지 수신인에게 잘 지낸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사사 마지막으로 작가 ‘유사사’의 섬세한 펜화 작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실제로 보면 얇은 펜촉의 느낌이 더욱 경이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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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사사, '습기'

 

 

아기자기하면서도 몽환적인 오브제들의 조합은 은은한 따스함이 느껴지며 매력적이다. 누군가의 세계인 동시에 어떠한 단어들의 정의 그 자체인 그림들은 불안과 우울을 바라보는 다정한 감각을 깨웠다.


특히 ‘수풀’은 나의 내면을 떠올리게 했다. 극도의 압박감과 불안, 우울 속에 잠식된 시기에 나의 내면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내면의 공간엔 아주 반듯하다 못해 뾰족한 직육면체 기둥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 것 같았다. 우울이라는 상태 속에서 나는 그렇게 검열하듯 나를 다듬고 깎아냈으니 말이다. 작가 ‘유사사’의 그림은 그런 과거의 나를 있는 그대로 꺼내놓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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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 순간 인식하고 판단하고 정의한다. 무수한 정보를 처리하고 선택하는 과정이 반복되는 일상은, 소중한 무엇을 낚아채 간직하기 어렵게 한다.


‘틔움’에서 만난 다섯 작가의 작품과 이야기들은 그런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있던 무언가를 붙잡고 꺼내도록 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시간을 내어 잊고 있던 감정과 감각, 찰나의 순간과 기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도록 도왔다. 이름을 붙이기도, 정의 내리기도 어려운 이 무엇들을 그저 ‘틔워내는’ 순간을 선사했다.


4월 14일까지 진행되는 기획전 ‘틔움’에서는 실제 작품 및 굿즈를 직접 구매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일상 속에서 잠깐의 여유를 갖고 내면의 감각들을 틔워내는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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