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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토요일, 더줌아트센터에서 창작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를 관람했다.

 

공연이 끝나고 나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공연을 한두 번 관람한 것도 아닌데, 가족들과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공연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관객석에는 정말로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이 있었고, 특히 중년층들의 관람객 수가 눈에 띄었다. 타 뮤지컬 공연을 관람하러 가면 대체로 청년층의 비율이 높은 편인데, 이곳에는 꽤나 많은 중년층의 관객들이 있었다. 그만큼 이 공연,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가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이라는 의미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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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의 대략적인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다. 70살 생일을 맞게 된 기념으로 가족 외식을 나온 춘자씨. 하지만 춘자씨는 치매에 걸렸기에 정신이 느슨한 상태였고, 외식을 시작하기도 전에 ‘불이야’를 외치며 홀연히 사라져 버리게 된다. 춘자씨의 두 아들과 며느리는 사라진 춘자씨를 찾으러 이곳저곳을 애타게 돌아다닌다. 춘자씨는 홀로 어디로 모험을 떠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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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의 주체인 춘자씨는 70살 생일을 맞은 치매 노인이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치매 노인’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다. 주변에 피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고, 많은 가족들이 집에서 부양하기를 포기하고 요양원에 보내거나 센터에 맡기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치매 노인’은 언젠가 내가 될 수도 있는, 피할 수 없는 단어다. 그렇게 우리 모두의 고민은 이어진다. 내가 만약 치매에 걸리게 된다면 내 가족들은 나를 어디로 보낼까. 내가 자리할 공간을 내어 줄까. 치매에 걸렸다고 요양원에 나를 보낸다면, 나는 서운해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는 무대 위로 그러한 고민들의 흔적을 끌어온다. 치매 노인인 춘자 씨의 모습과 내면을 보여주며 ‘치매’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든다. 공연에서 보여주는 춘자씨의 내면은 우리가 상상해 본 적 있는 영역이기도 하고, 상상하지 못했던 영역이기도 하다. 어린아이가 되었다가 깊은 노인이 되었다가 그리운 이들을 찾았다가.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이 없는, 동화 같은 이상한 춘자씨의 마음속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미래에 마주할 수 있는 현실이다. 모든 세대가 한 번쯤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그렇기에 이 공연이야말로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이다.

 

 

 

누구에게나 영혼의 물고기가 있어요


 

혹자는 치매 노인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수없이 한 이야기라고, 이 공연만의 특색을 찾지 못하겠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치매 노인과 치매에 관한 딜레마는 많은 작품에서 이미 다뤄진 이야기다. 춘자씨 또한 어느 곳에서 봤을 법한 서사를 가진 인물인 것도 맞다.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는 그러한 답습을 피하기 위해서 한 가지의 차별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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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을 짚으라 한다면, 단연 ‘영혼의 물고기’가 등장하는 부분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관객의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치매에 걸려 정신이 느슨해진 춘자씨의 몸에서는, 돌연 영혼의 물고기가 튀어나온다. 이 생동감 넘치고 매력 있는 물고기는 우리 모두의 몸에 태어났을 때부터 영혼의 물고기가 살고 있다고 말해준다. 자라면서 물고기의 수는 점점 많아지지만, 너무 자라 춘자씨와 같은 노년층이 되면 물고기의 수는 다시 점점 줄어든다. 느슨해진 정신의 틈을 따라 물고기들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영혼의 물고기는 이런 말을 던진다.

 

“어린아이의 물고기 수와 노인의 물고기 수는 같아요”

 

실제로 춘자씨는, 영혼의 물고기가 준 것을 먹고 잠시 어린아이의 정신으로 돌아가게 된다. 세상을 잘 모르고 배워가는 시기인 어린아이와, 세상을 너무 많이 배워버려 잘 모르게 된 노인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영혼의 물고기’라는 상징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어린아이에게는 관대하고 치매 노인에게는 엄격한 세상에, 둘이 다를 바 없지 않냐며 너무 그러지 말라고 타이르는 듯하다. 공연에 등장했던 대사처럼, “7 뒤에 0을 붙였을 뿐인데” 말이다.

 

 

 

무대가 변하지 않아도 변하는 공간


 

공연의 스토리적인 측면에 관해 이야기를 해 봤으니, 덧붙여서 연출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 공연을 보기 전에 관객들이 볼 수 있는 것은, 기상천외한 이름들이 붙은 가게의 간판들이다. ‘달리자 카 센타’, ‘부자부동산’, ‘마지막 회 센타’. 이런 공간을 과연 공연 안에서 어떻게 사용할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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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안에서 공간은 계속해서 변한다. 춘자 씨는 고깃집에서 사라진 후로 여기저기 다양한 곳을 돌아다니고, 가족들은 그런 춘자씨를 찾으러 또 여기저기 다양한 곳들을 돌아다니는 것이 이 공연의 줄거리다. 때문에 무대 위의 세트장과 소품들은 계속해서 달라져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세트장은 처음 공연장에 들어왔을 때에서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아도 공간이 변했다는 느낌을 준다. 분명 같은 무대인데 여기는 고깃집 같고, 여기는 또 어린이집 앞 같고, 여기는 또 춘자 씨가 도착한 ‘은빛 가루 나라’ 같다. 참 재치 있게 지어진 세트장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무대였다.

 

가족들과 함께 즐기고, 감상을 공유하기에 이만큼 좋은 공연이 또 있을까 싶다. 트롯과 같은 흥겨운 음악들을 이용하는 등 전 연령층이 함께 즐기기 좋은 조건을 많이 갖춘 공연이다. 가족이 함께 관람할 수 있는 공연으로 추천하고 싶다. 특히, 중장년층이라면 더욱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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