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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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는 볼 수 없었던 세상을,

그들의 시선과 역사를 빌려 완성합니다.

그렇게 그들의 마스터피스를 이해합니다.

 

 

 

올 라운드 북 바인더 '경민'을 소개합니다.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그래픽 디자인과 일러스트, 그리고 북 바인딩을 위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경민입니다.

 

저는 평소 저 스스로를 소개할 때 ‘올라운드 북 바인더’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북 바인더는 북 바인딩을 하는 사람, 즉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분들께서 저를 바라봐 주실 때 저의 다양한 활동 중에서도 북 바인딩을 하는 저의 자아가 우선시되었으면 해서 이렇게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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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먼저 여쭤봅니다.

 

많은 분들이 그렇듯 저 또한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그림 그리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교를 가는 과정에서 만화창작과나 애니메이션 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그때 시각디자인 학과에서도 그림을 그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때 디자인에 대해서는 크게 모르는 상태로 시각 디자인과로 진학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막상 디자인과에 오고 나니 제 생각보다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분들께서 많이 안 계시더라고요. 학과의 수업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요. 그래서 저는 시각 디자인과에서 수업을 들으며 스스로가 동떨어진 사람처럼 느꼈던 적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 당시에는 ‘디자인을 해야 하는데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한다’는 마음이 너무 컸고, 디자인과 그림,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큰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아요. 사실상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것은 디자인뿐이었고, 제가 하는 것은 그림이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일러스트레이터나 화가분들처럼 그림에 스토리나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이도 저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죠. 그런데 제가 그렇게 방황할 때, 많은 분들께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션이 분명히 있고, 실제로 너는 그런 작업들을 잘 하고 있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그러다 SNS도 시작하고 작년 7월에 처음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에 참가하게 되었어요. SNS에 그림을 올리며 다른 분들과 소통 하고, 그 과정에서 저의 작품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을 만나게 되고,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에서 직접 저의 그림을 긍정적으로 바라봐 주시는 분들을 마주하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른 사람들은 더 내 그림을 많이 좋아해 주는구나’ 깨달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그래픽 디자인과 일러스트 사이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잡는 법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 디자인과 일러스트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소개에서는 ‘북 바인더’의 자아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큰 것 같아요. 디자인과 일러스트 사이에 북 바인딩이 함께 했던 것은 언제부터였을까요?

 

제가 맨 처음 북 바인딩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제가 소심하기 때문이었어요. 하하. 그래픽 디자인 책 작업을 진행하며 처음 북 바인딩의 존재를 알게 되었어요. 책을 만들려면 인쇄소에 가서 사장님께 ‘이런 바인딩을 원해요, 이렇게 작업을 진행해 주세요.’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제가 그 말을 못 할 정도로 너무 소심했던 거예요. 그래서 ‘어차피 내 책이기도 하고, 상황도 이러니까 내가 직접 북 바인딩을 해봐야겠다’ 생각하여 그때 처음으로 400 페이지의 노출 사철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바인딩은 디자인과도, 일러스트와도 전혀 다른 분야잖아요. 사실상 공예에 가까운 영역이죠. 그런데, 그렇게 제가 평소에 하는 영역과는 전혀 다른 분야의 작업을 하면서 오히려 그 작업을 일종의 도피로 여기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더라고요. 지금까지 저는 오직 일러스트 혹은 디자인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바인딩이라는 제3의 무언가를 통해 순식간에 저의 영역을 확장하게 된 거죠. 그래서 바인딩에 대한 애정이 무척 커요. 저 스스로를 ‘올라운드 북 바인더’라고 말씀드리는 이유도 그림과 디자인의 경계에서 바인딩을 하는 사람이라고 저 스스로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경민의 책을 엮는 순간들을 살펴봅니다.



- 실제로 직접 하신 바인딩 작업물도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제 작업 중 하나였던 [밀고 당기기]라는 그래픽 동화책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이 작업을 위해 여러 책을 읽고, 그 내용들을 조합해 만들었어요. 저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연결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밀고 당기기]는 사회와 개인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그래픽적으로 표현한 작품이에요. 책의 흐름을 궤도처럼 이어지게 구성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직접 만들고 다듬은 작업이에요. 특히, 우주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내지에는 ‘스타드림’이라는 펄지를 사용했고, 커버 역시 직접 제작했어요. 제본의 경우에는 사이버틱한 느낌을 내기 위해 나사 제본을 활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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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님께서 북 바인딩에서 느꼈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일까요?

 

북 바인딩 작업 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업은 ‘노출 사철 작업’이에요. 노출 사철 작업이란 실을 사용해서 종이를 엮는 작업인데, 그 작업을 할 때 무척이나 즐거웠어요. 바인딩은 디자인 혹은 일러스트와는 다르게 물성을 가진 작업이잖아요. 제가 작업하면 그 순간 손 위에 바로바로 결과물이 나오죠. 저는 디자인이나 일러스트를 인쇄할 때도 물성을 무척 중요시하는데 제가 만드는 것이 즉각적으로 저에게 만져진다는 게 무척 좋았어요.

 


- 북 바인딩을 좋아하시는 만큼, ‘어떤 책을 만들고 싶다’ 혹은 ‘어떤 바인딩을 하고 싶다’ 등의 추구 방향성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여기에 대해서는 제가 평소에도 많이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 저는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뿐이지 내지를 만드는 것 자체에는 크게 애정을 가지지 않는 편이에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책의 형태와 그것이 엮여지는 과정이거든요.

 

일반적으로 책이 세상에 나오면 자연스럽게 그 내용과 내지에 더 집중하게 되잖아요. 독립 출판물도 다를 것 없죠. 책이라는 것 자체가 어떠한 종류에 국한되지 않아도 모두 내용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어떤 디자인이 적용되었는지가 주목받기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러니까 바인딩 자체에 더 집중하고 싶어요.

 

그래서 책을 만들 때, 저는 바인딩을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을 열었을 때, 그 안의 내용보다도 ‘이 책이 어떻게 엮였는가’라는 부분이 더 중요해지는, 그런 책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물론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하.

 

 

- 너무 멋있네요. 이렇게나 북 바인딩에 관심이 많으시면 ‘북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 같은데.

 

맞아요. 저도 저 스스로를 북 아티스트라고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하지만 아직은 그래픽 작업과 디자인 작업이 제 작업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저를 ‘북 아티스트’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애매하다고 느껴지기도 해요. 제가 스스로를 온라운드 북 바인더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제가 저 스스로를 그렇게 소개하기 위해서는 많은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지난 1년 동안 정말 많은 책 작업을 해왔거든요. 그래서 드디어 스스로를 '북 바운더'로 소개할 수 있게 되었죠. 여기서 더 나아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작업을 쌓아간다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저를 ‘북 아티스트’라고 소개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 북 바인딩에는 다른 많은 아티스트님들께서도 관심을 가져주실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 직접 북 바인딩에 대한 세미나를 여실 의향도 있으신가요?

 

사실 개인적으로 저에게 지인분께서 세미나를 여쭤봐 주신 적이 있는데, 이후에 다른 작가님들께서 저에게 세미나를 열어달라고 요청해 주셔서 올해 6월쯤에 여러 작가님들과 함께 세미나를 열기로 결정됐어요. 기대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하네요.

 


 

그래픽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의 조화, '그래픽적 일러스트레이션'



- 작가님의 일러스트에서의 메인 작품을 하나 소개해 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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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의 언어를 전달하는가]라는 작업이에요.

 

해당 작품은 바인딩을 하는 제 자신을 그린 작업을 연작으로, 저를 나타내는 정체성이자 저의 메인 일러스트예요. 제가 바인딩이라는 것을 시작한 다음 거의 처음으로 그린 일러스트였는데, 그림에 담긴 모든 것들이 저와 저의 바인딩을 상징해요. 예를 들어 일러스트를 보면 하얀 뱀 같은 존재를 확인하실 수 있는데, 이 뱀은 저를 상징하는 존재인 동시에 실을 생명체로 형상화한 존재예요. 한 쪽에는 바늘이 그려져 있고, 바인딩을 하며 제가 많이 활용하는 붉은 실이 함께 표현되어 있죠. 바인딩 하는 과정에서 구멍을 뚫는 과정도 작품 속에 구멍을 그려 표현했어요.

 

제목이 [무엇이 우리의 언어를 전달하는가]인 이유는, 제가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무엇을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을 하며 내린 결론이 바로 저의 북바인딩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에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디자인이나 그림에 이야기, 혹은 의미를 담는 편이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제가 전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결국 바늘, 실, 바인딩,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존재 그 자체였어요. 정말 저의 정체성 그 자체인 작품입니다.

 

 

- 작가님의 작품 중 [춤추는 비늘의 집]에도 이, 흰 뱀과 같은 실이 등장해요. 같은 의미로 그린 그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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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흰 뱀과 더불어 뒤에 표현된 선 모두가 실을 의미해요.

 

이 작품은 위의 [무엇이 우리의 언어를 전달하는가] 외에도 또다른 저의 대표작품이에요. 일러스트의 아래에 제가 추구하는 그래픽적인 작업을 함께 접목시켰거든요.

 

해당 그림은 다른 예술업 종사자분들이나 저의 그림을 봐주시는 분들께서 ‘시각 디자인적 일러스트레이션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다’는 평을 내려주신 작업이에요. 해당 작업을 그리고,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저 스스로가 무엇을 추구하는지 처음으로 알 수 있었던 작품이었죠. ‘내가 추구하는 것은 일러스트도, 그래픽 디자인도 아니구나, 그래픽적 일러스트구나’ 생각할 수 있게 되었던 작품이에요. 그 이후 저의 작품 스타일이 확립되어서, 저의 현재 작업의 뼈대가 되는 작업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 그렇다면 아티스트님께서 생각하시는 ‘그래픽적 일러스트’란 어떤 것인가요?

 

'그래픽적 일러스트레이션'을 명확히 정의하기란 어려운 것 같아요. 하하. 그래픽과 일러스트레이션이 완전히 분리된 분야라고 보지는 않거든요. 다만 그 사이의 균형과 비율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저는 스스로 그 모호한 경계를 오가며, 그 땅을 확장해 나가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다만 저는 작업을 할 때 어떤 부분에 어떻게 그래픽 요소를 넣을지, 일러스트레이션은 어떻게 강조하며 그릴지 꼼꼼하게 계획 세운 뒤 작업을 시작하는 편이에요.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할 때도 단순히 ‘그래픽 디자인을 하겠다’는 마음만 갖는 게 아니라, 일러스트적인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공간 배치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타이포그래피는 어떻게 배치하는 것이 좋을지 하나부터 열까지 신중하게 고려하고 작업을 시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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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종로에 위치한 갤러리에서 전시한 작품 [심근] 또한 이러한 접근 방식을 반영한 작업이에요. 일부에서는 격자를 구성하고 이를 채워가는 그래픽적인 기법을 활용한 반면, 다른 부분에서는 보다 회화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을 시도했죠. 이처럼 저는 그래픽과 일러스트의 경계를 넘나들며 각 요소의 조화를 탐구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어요.

 

 

[크기변환]심근_Origins.png

 


- 작가님의 작품을 보다 보면 강렬한 색감도 무척이나 눈에 띄어요. 작가님께서 유독 신경을 쓰시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색상이 아닐까 싶은데.

 

맞아요. 색감을 정말 많이 신경 쓰는 편이에요.

 

저의 메인 작업들은 천으로 인쇄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저는 큰 작업을 선호하는 편이다 보니 종이에 인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거든요. 아무래도 천 인쇄가 종이 인쇄보다 색감이 잘 나올 수밖에 없기도 하고요. 그래서 평소 ‘승화 전사’라는, 인쇄기술과 염색기술을 복합시킨 디지털 인쇄를 전문적으로 하는 인쇄 업체에 주로 맡기는 편인데 해당 인쇄소에서 워낙 색상을 잘 표현해 주다 보니 저의 작업이 인쇄가 되어 세상에 보일 때 어떤 느낌을 내고 싶은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색을 써야 할지에 대해 더욱 많이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고민을 했을 때 천 인쇄의 장점을 잘 살리면서, 동시에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그림 스타일도 확실하게 표현하려면 채도를 높이고 대비감을 강하게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서 지금과 같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 작가님의 그림을 보다 보면 또한 눈에 띌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인물인 것 같아요. 소녀로 추측되는 인물들이 항상 함께 들어가 있는 것 같은데, 앞서 작가님께서 일러스트의 구도나 배치에 항상 세밀하게 신경을 쓰고 계획을 한다고 말씀해 주셨던 만큼 해당 소녀는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저는 수작업이 아닌 디지털 일러스트 작업을 선택해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간다면 ‘어째서 디지털 일러스트 작업이어야 할까’에 대한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렇게 제가 생각했던 저 스스로가 생각해낸 저의 ‘디지털 일러스트 작업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대칭’이라는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었어요.

 

제 작업을 보면 완벽한 대칭이 이루어지는 부분과, 일부러 대칭을 깨는 부분이 공존하는데, 이는 제가 그래픽적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특징 중 하나예요. 주요 오브젝트는 대칭을 유지하면서도, 부분적으로 변형을 주어 균형과 불균형의 조화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두 명의 인물이 좌우로 나뉘는 것은 대칭적인 구도를 반영한 것이지만, 양쪽이 서로 다른 이유는 지나치게 완벽한 대칭보다는 적절한 변주가 그래픽적인 표현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또한, 저는 인물을 그릴 때 현실적인 형태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신경 쓰는 편이에요. 그래서 저의 그림을 보면, 한쪽 손이 두 개이거나 여러 개의 손이 등장하는 작업이 있기도 하죠. 이는 ‘실’과 함께, 연결성을 강조하려는 저의 표현 방식 중 하나예요. 손을 서로 연결되어 대칭되는 존재에게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시키는 거죠. 색감 또한 마찬가지예요. 좌우의 색감을 달리 배치하면서 인쇄했을 때 조화로운 느낌이 들도록 고려하며 작업하고 있어요.

 

참고로 저는 해당 인물이 특정한 성별을 갖고 있기보다는 무성의 존재라고 생각하고 그림에 그려요. 하지만 머리가 길기 때문인지 소녀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하하. 

 

저는 인물을 그릴 때 머리카락을 그리는 것을 좋아해요. 머리카락은 다른 그래픽적 요소와 달리 철저한 계산 없이 한 올 한 올 직접 그릴 수 있잖아요. 머리카락의 움직임은 자유로우니까요. 그렇게 보다 자유로운 흐름을 그리며 그 불확실성을 지켜보는 것이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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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님께서는 ‘수작업이 아닌 디지털 일러스트 작업을 할 때는 그 이유가 필요하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무척 흥미로운 생각인데, 조금 더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원래 일러스트나 그림 작업은 반드시 수작업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게 좀 구시대적인 사고일 수도 있지만, 예전에 다니던 미술 학원과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게 컸죠.

 

특히, 디지털 작업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강했어요. 디지털에서는 쉽게 지우고 다시 그릴 수 있지만, 수작업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만큼 작업의 무게감이 다르다고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디지털 작업을 한다면, 반드시 디지털에서만 가능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강박을 저도 모르게 갖게 된 것 같아요.

 

이런 강박은 제 작업 방식에도 영향을 많이 줬어요. 예를 들면, 저는 일러스트와 그래픽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디지털 그림을 그릴 거면 수작업으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작업해야 한다는 기준을 스스로 만들었죠. 색감도 마찬가지예요. 종이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표현을 하거나, 천에서만 가능한 작업을 시도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결국, 이런 사소한 강박과 성향들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방식은 어쩌면 수작업 없이 디지털로만 작업을 한다는 것에 대한 저 나름의 변명이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제는 그 강박을 긍정적인 원칙으로 삼고, 디지털 작업만이 가진 가능성을 탐구하면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 재미있는 시선이네요. 사실 디지털 일러스트의 편리함을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죠. 그중에서도 대칭에 집중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작업할 때 제가 직접 그리지 않은 다른 요소들이 제 그림에 섞이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에셋처럼 클립 스튜디오 같은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자원도 사용하지 않고, 3D 모델링 같은 것들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 편이에요. 아마 이것도 제가 자라온 환경과 미술학원 선생님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결과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대칭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맞닿아 있어요. 대칭은 어떠한 다른 외부적인 요소가 저의 그림에 섞이지 않으면서도 디지털 일러스트로 할 수 있는 기술적인 면 중 하나잖아요.

 

그리고, 사실 무엇보다 제 작업물이 바로 눈앞에서 두 개로 나뉘는 그 과정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요. 저는 대칭을 활용한 일러스트는 완벽한 대칭이 되면 너무 딱딱해지고, 반대로 비대칭이 너무 강하면 균형이 깨지기 때문에 저는 이 둘 사이에서 미묘한 밸런스를 잡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제가 앞서 그래픽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의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대칭에서도 저만의 ‘균형’을 찾아 나가는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보았을 때, 제가 이뤄내는 균형의 결과물을 가장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 또한 바로 ‘대칭자’였던 것 같아요.

 

 

- 하지만 수작업으로도 대칭은 분명 가능한 부분이 아닐까 싶은데.

 

맞아요. 실제로 수작업으로 구역을 나눠서 완전한 대칭이 되는 작업도 몇 번 해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생각만큼 재미가 없더라고요.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제가 그래픽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요소들을 굳이 수작업으로 그대로 가져올 이유가 없더라고요. 단순히 제 특징을 살리기 위해서 그것을 수작업으로 그대로 옮겨놓는 것은 사실상 기계적인 작업처럼 느껴졌죠. 수작업을 할 때는 그 방식의 특성을 살리는 작업을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고 막상 수작업을 할 때면 작업하는 재미가 느껴지지 않네요. 그래서 대칭이 있는 디지털 일러스트를 고수하게 되었습니다.

 

 

 

그 외, 경민의 일러스트 이모저모


 

- 사실 작가님의 그림에는 소개해 주신 두 그림 외에도, 작가님께서 최근 제작하신 스티커에도 뱀이 등장해요. 흰 뱀은 아니지만 이 뱀도 실을 표현한 것일까요?

 

뱀을 그리다 보면, ‘왜 뱀을 그리나요’ 여쭤보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어떤 분들은 저에게 ‘뱀띠인가요’ 물어보시기도 하죠. 생각도 못 했던 부분인데, 실제로 제가 뱀띠이긴 하거든요. 하하. 그렇다면 오히려 이러한 점을 활용해서 저의 그림을 확장해나가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제가 ‘뱀띠’라는 점과 ‘양자리’라는 점에서 착안하여 뱀과 양의 스티커를 만들게 된 것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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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티프를 얻는 곳도 여쭤보고 싶어요.

 

가끔 ‘어디서 모티프를 얻나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 스스로도 생각해 보곤 하는데, 의외로 자연물이나 생물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 것 같더라고요. 예를 들면, 나비나 뱀 같은 동물들뿐만 아니라 심장 같은 신체 기관에서도 모티프를 찾곤 해요. 다만,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은 제게 별로 재미가 없어서, 항상 제 방식으로 다시 해석하고 재구성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예를 들어, 특정 나비를 모티프로 삼았다고 해도 단순히 따라 그리지는 않아요. 끝부분에 분홍색을 더하거나, 중간에 반짝이는 요소를 추가하는 식으로 변형하죠. 또, 수박에서 영감을 받아 나방 형태의 날개를 디자인하거나, 조명과 꽃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자연물을 재해석하기도 해요. 결국 저는 자연물을 참고하되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제 방식으로 다시 만들어내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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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장'을 잠깐 언급해 주셨는데. 작가님의 작업에서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심장’인 것 같아요.

 

맞아요. 올해 설에 제작했던 달력에도 뿌리가 조금씩 자라나는 심장이 그려져 있고, 키링으로도 제작해서 많은 분들께 사랑을 받은 적이 있어요. 사실 심장의 경우에는 특별한 이유를 갖지 않고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그저 그릴 때 즐겁더라고요. 하하. 그래도 많은 분들께서 좋아해 주셔서 기뻐요.

 

 

[크기변환]심장_둘다.png

 

 

- 이건 조금 사담이지만, 작가님께서 ‘새’를 좋아하신다는 것은 알 분들은 다 알고 계세요. 하하. 그림에도 새가 표현될 때는 없을까요?

 

요즘 안 그래도 ‘새’에 대해서 고민이 많아요. 저는 새를 보는 건 정말 좋아해요. 창작물 속의 새를 감상하는 것도, 직접 자연에서 새를 관찰하는 것도 좋아해요. 그래서 어제는 카메라도 하나 샀어요.

 

하지만 새를 그림으로 그리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새를 그림으로 그릴 때는 전혀 즐겁지가 않았거든요. 제가 가진 ‘새’라는 관심사를 어떻게 하면 새롭게 작업에 녹여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최근에는 [난파선], [새집], [파편]이라는 세 가지 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그 작업을 하면서도 고민이 많아지더라고요. 기존의 그림들과는 다르게 더 서정적인 분위기, 낮은 채도를 가진 작업물들이 그려졌거든요. 평소와는 다른 스타일까지 시도해 보며 ‘내가 새에 대한 애정을 어떻게 하면 자연스러우면서도 즐겁게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크기변환]파편과 난파선, 새집 - 난파선.png

 

 

어쩌면 이건 제 안에 있는 강박일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작업을 할 때 반드시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이 길이 나에게 맞지 않는 건가?’라는 고민을 너무 깊이 하게 되죠. 어쩌면 좀 심각한 수준으로 그 강박을 갖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제 작업에서 가장 이상적인 방식은 자연에서 모티브를 가져오되, 그것을 제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단순히 새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새지만 새가 아닌 것 같은, 더 그래픽적인 곡선을 가진 형상으로 표현하려고 해요. 하지만 그런 작업을 하면서도 ‘내가 이걸 왜 그리고 있지?’라는 고민이 계속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새에 대해서는 아직 저의 길을 찾아나가는 중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 앞서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에서 오프라인으로 다른 분들을 만나는 것이 작가님의 작품 활동에 큰 힘이 되었다고 해주셨어요.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에 참가했을 때의 기분도 함께 공유해 주신다면.

 

서일페에 처음 참가했을 때는 정말 너무 무서웠어요. ‘내가 여기 있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거든요. 하지만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아는 척도 해 주시고, 심지어 팬분들께 선물을 받기도 했죠. 저는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어서 정말 놀랐어요.

 

물론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큼은 정말 행복했던 순간이었어요.

 

 

- 오프라인에서 팬들을 만나며 유독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을까요?

 

제가 지금까지 들었던 모든 서일페에서의 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어요. 어떤 분께서 저를 알게 된 후 독립 출판에 관심이 생겨서 직접 준비해 보겠다고 말씀해 주신 거예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마치 제가 지금까지 해온 바인딩 작업과 정보를 공유했던 모든 순간들이 이걸 위해 존재했던 것처럼 느껴졌어요. 예전에는 SNS에 바인딩 관련 정보도 정말 많이 올렸거든요. 어디서 재료를 사야 하는지, 어떤 제본 법이 어떤 책에 어울리는지, 종이는 어떻게 숨을 죽이는지 등등… 그렇게 제가 나눈 정보들이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새로운 길을 열어 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정말 기뻤어요. 그 순간이 아마 제일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아트와 바인딩, 그 사이 경민의 균형잡기


 

- 작가님은 아트와 바인딩, 두 분야로 본다면 어떤 분야를 더욱 추구하고 선호하시나요?

 

바인딩 작업을 할 때, 톱질을 하고 실로 엮는 과정이 매끄럽게 잘 되면 정말 행복해요. 그래서 제 프로필에도 바인딩을 주로 한다는 점을 강조해서 ‘대장장이’라고 적어놨죠. 그래도 저를 한 문장으로 소개하면, “아트와 그래픽의 경계에서 제 땅을 넓혀가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사실 바인딩에서 직업적으로 자리 잡는 건 쉽지 않아요. 인쇄소에서 작업을 할 수도 없고, 국내에서는 북 아트나 그래픽 일러스트레이션을 아트로 인정받는 환경도 아직 열려 있지 않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방향성 자체는 그래픽적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방향을 잡게 된 것 같아요. 판화학과에 ‘아티스트 북’ 관련 수업이 있어서 교수님과 상담도 해봤고, 결론적으로는 ‘내 작업을 보여주되, 나를 규정할 수 있는 다른 것들도 함께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 사실 예술을 하는 분인 만큼 창작 활동을 가장 우선시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작가님께서는 ‘바인딩’의 과정 그 자체를 즐기시는 것 같아요. 

 

맞아요. 저는 굳이 제 책이 아니어도 바인딩을 하는 행위 그 자체에서 큰 즐거움과 기쁨을 느껴요. 바인딩 작업을 하는 과정, 지인들과 바인딩과 관련된 이야기할 때 모두 무척 행복해요. 지인들과 바인딩 관련 이야기를 나눌 때면 어떤 바인딩 방식이 어울릴지, 어떤 제본 법을 사용해야 할지, 그리고 어떤 종이를 쓰면 좋을지에 관한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는데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정말 즐거워요.

 

작년에는 졸업 전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의 아트 디렉팅 팀에서 인쇄 자문을 해달라는 요청도 받았어요. 그때 정말 기뻤어요. 바인딩 작업으로 인정받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고, 사실 제가 학생 신분이라 그런 인정을 받는 게 더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바인딩’ 그 자체가 저에게는 큰 즐거움이자 기쁨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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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저는 사실 판화와는 다른 수업들이나 작업을 많이 해야 비로소 제가 하는 행위, 그리고 제가 만드는 작품들을 ‘아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시각 디자인과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아트를 한다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아요. 시각 디자인은 상업적 성격이 강하다 보니, 그 상업성과 아트적 표현을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할지에 대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이런 고민을 해결하려고 블로그나 다양한 자료들을 찾아봤는데, 그중에서 성경을 뜯어서 복원하고 금칠을 하는 작업을 하시는 분들을 발견했어요. 그분들은 성경을 예술적으로 다듬으면서 개인적인 성격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시더라고요. 저도 언젠가 그런 작업을 취미로라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마무리 지으며


 

- 사람들에게 작가님의 작품이 어떻게 다가갔으면 좋겠나요?

 

지인들이 제 작업을 보고 "경미니아스럽다"라고 말해 줄 때, 사실 좀 부끄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기쁘기도 해요. 제가 추구하는 방향이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경미니아는 요즘 많이 불리고 있는 제 별명이기도 한 이름인데, 앞으로의 작업에 있어서 "경미니아"라는 이름을 점점 더 넓혀나갈 생각이거든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아트와 그래픽의 경계에서 제 땅을 넓혀가고 싶어요. 그래서인지 제 작업을 보시는 분들이 "이건 되게 그래픽적인 그림이다"라고 느끼고, 나아가 "아, 이건 경미니아의 작업이구나"라고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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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님만의 꿈도 있을까요?

 

꿈에 대해서는 사실 저도 아직 모르겠어요. 제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계속 고민하는 중이니까요. 다만 확실한 건, 제 작업을 통해 저를 기억해 주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한다는 점이에요. 예전에 작업을 시작했을 때, "팔로워가 천 명만 넘었으면 좋겠다"라는 작은 바람을 가졌었는데, 지금은 벌써 2천 명이 넘었어요. 다른 분들에 비하면 많은 숫자는 아닐지 몰라도, 저에게는 너무나도 과분한 숫자예요.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작업을 이어가면서, 제 작업이 더 많은 분들에게 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이를 통해 "이런 식의 작업을 해도 괜찮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는 시각디자인과에 있으면서 일러스트레이션과 그래픽 디자인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해왔어요. 그리고 제 구독자분들이나 주변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그런데 그런 고민을 하던 중 제 작업을 보고 "저렇게 해도 괜찮구나." "이런 작업도 가능하구나."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제가 좋은 이정표가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돼요.

 

디자인과에 들어와서도 꼭 정형화된 디자인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풀어나가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결국, 저는 그런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 작은 용기가 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개척자’의 모습이 작가님께 보이는 것 같아요.

 

요즘따라 ‘소멸’이라는 단어가 자주 떠올라요. 사실 예전부터 작업 고민을 공개적으로 나눌 때마다 ‘소멸’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던 것 같아요. 개인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저는 늘 ‘이런 작업을 하면서 먹고살 수 있을까?’ 생각고 있거든요. 그리고 졸업이 다가오면서 더 현실적인 고민들이 생기고 있어요. 주변 친구들은 UX/UI나 브랜딩 쪽으로 넘어가고 있는데, 저는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내가 너무 허황된 꿈을 좇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아요. ‘UX/UI도, 브랜딩도, 그저 그래픽을 다루는 디자이너도,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걸 끝까지 해보자. 만약 정말 안 되면, 그때 가서 소멸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작업이 어느새 세 번째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를 앞두고 있어요. 그리고 제 작업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직은 괜찮은가? 조금 더 해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용기를 얻어요.

 

언제나 불안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조금 더 가보려고 합니다.

 

 

- 너무도 즐거운 대화였습니다. 마무리 인사 부탁드립니다.

 

저를 통해 바인딩에 관심을 갖게 된 분들이 ‘책의 형태’ 자체에 더 깊이 흥미를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바인딩이라는 작업이 단순한 제본을 넘어, 책이라는 오브젝트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이라는 걸 더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어요.

 

언제나 과분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좋아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만큼, 앞으로도 더 멋진 작업으로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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