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피스] 우리가 사랑한 지브리 스토리텔링의 힘, 이누해의 세계

도서 [창작자를 위한 지브리 스토리텔링]의 작가 이누해의 세계를 들여다봅니다.
글 입력 2024.12.11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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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는 볼 수 없었던 세상을,

그들의 시선과 역사를 빌려 완성합니다.

그렇게 그들의 마스터피스를 이해합니다.

 

 

 

이야기의 힘을 기록합니다, 스토리텔러 이누해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누해라고 합니다. 영화 업계에서 일을 하며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동시에 IP 개발자이자 스토리 컨설턴트로도 일을 하고 있습니다. 넓게는 프리랜서 작가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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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영화과를 나오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영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에 대해 먼저 공유해 주신다면.

 

어릴 적부터 영화를 정말 좋아했어요. 특히 부모님께서 영화를 좋아하셔서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았죠. 부모님께서 시네필은 아니셨지만, 일상 속에서 영화는 자주 접했어요. 여유 시간이 생기면 대부분 영화를 보셨거든요. 영화 감독이나 줄거리, 제목 등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으시고, 그저 영화라면 좋아하셨던 거죠. 그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저도 자연스럽게 영화를 많이 접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영화를 업으로 삼겠다고 결심한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 저학년 때쯤이었어요. 그때 ‘영화 감독은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거든요. 그 당시의 저에게 있어서 영화는 그저 ‘이야기’였어요. 이야기를 주고, 배우가 그것을 연기하고, 그것응 영상으로 담아내면 영화가 완성되는 줄 알았던 거죠.

 

그런데 영화를 보면 각본가가 따로 있고, 감독이 따로 있는 경우가 있잖아요. 어릴 적부터 헐리우드 영화를 좋아했는데 헐리우드 영화는 감독과 각본가가 따로 있는 경우가 많아요. 어릴 적의 저는 그 사실에 의아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우리는 영화 속 이야기에 몰입하는데, 그렇다면 이야기를 적는 각본가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닐까? 영화 감독은 왜 따로 존재하는 것일까?’ 그 궁금증에서 시작해서, 영화 산업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시나리오 작가를 꿈꿨어요.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어 진로에 대해 다시 깊이 생각해보니, 그 당시 대한민국 영화계에는 시나리오 작가라는 전문 직업인이 거의 없다시피 하더라고요. 시나리오의 역량을 인정받으면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는 구조라는 것을 깨달았죠. ‘우리나라에는 시나리오 작가가 따로 없이 그저 영화 감독만 있는 거구나’ 생각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영화 연출까지 고려하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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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시나리오를 쓰는 것보다 영화를 연출하는 것이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하하. 농담 삼아 ‘이야기는 다른 사람이 써주고 나는 연출만 계속 하고 싶다’고 자주 말하기도 해요. 물론 앞으로도 시나리오나 소설 등 스토리텔링을 멈추는 일은 없겠지만요. 연출을 할 때도 최소한의 각색 작업은 제 손을 거치고 싶어요.

 

 

- 코로나 때 영화 분석을 시작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특히 지브리 영화를 분석하며 굉장히 큰 호응을 얻으셨는데, 시작 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저는 제가 영화 분석을 시작하게 될 줄 몰랐어요. 이 분석을 크게 키울 생각도, 이를 통해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얻을 생각도 없었죠.

 

말씀해주신 것처럼 처음 제가 '인레'라는 이름으로 영화 분석을 SNS에 올리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 때였는데, 그 당시 저희 대학원은 사실상 폐쇄 상태였어요. 모든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었죠. 그런데 저는 대학원에서 편집 조교라 해서 편집실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장비 관리 등으로 왕복 2시간의 거리를 오가며 학교를 다녀야 했어요. 사실상 학교에 출근하면 한두 명 정도 만나게 되고, 그렇게 외롭게 시간을 보냈죠.


그 와중에 저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있었는데, 그때 저는 대학원생으로서 영화를 찍어야 했어요. 기조 영화, 고급 영화, 졸업 영화를 찍은 후 그 중 하나의 영화를 제작 보고서를 작성해야 석사 학위를 취득하는 시스템이었거든요. 그런데 두 번째 고급 영화를 찍을 시기가 되니 개인적인 사정도 있고, 코로나로 인해 로케이션 대여도 어려워 영화를 찍기가 매우 힘든 상황이었죠. 원치 않게 저에게 여유 시간이 생긴 거예요.

 

그렇게 무료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귀가 중 대중교통에서 SNS를 보니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대한 오해가 떠오르고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치히로는 정말 기억을 잃은 것이 맞는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자체가 성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논란들이었죠.

 

2020년대에 이런 오해들이 SNS 상에서 떠돌고, 그것을 실제로 믿는 분들이 생기는 걸 보며 그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짧은 글을 쓰게 되었는데 그것이 예상 외로 큰 호응을 얻게 되었어요. 어떤 분들은 저의 글을 매우 즐겁게 읽었다며 소감을 남겨주셨고, 동시에 영화에 대한 질문도 함께 해주셨죠. 저도 그에 대한 답변을 하나씩 남기다 보니 점차 규모가 커지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가 처음에 작성했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대한 글을 보면 질의응답의 뉘앙스가 남아있을 거예요.

점차 비중이 커지자 ‘시간도 많아졌으니 데이터베이스를 쌓을 겸 본격적으로 글을 적어보자’고 생각했고, 그렇게 작성하게 된 것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대한 글이었어요. 이 또한 많은 호응을 받으며 SNS ‘실시간 트렌드’에 오르기까지 했습니다. 지브리에 대한 글을 하나씩 차곡차곡 쌓으며 계정을 운영하다 보니 저에 대한 이미지가 ‘지브리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하는 사람’으로 굳혀지게 되었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하하.

 

 

 

마침내 출간된 이누해 작가의 도서, [창작자를 위한 지브리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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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브리 영화의 해석으로 워낙 큰 인기를 얻어오신 만큼 기존에도 몇 번 책 출간 제안을 받으셨을 것 같다고 짐작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브리에 대한 해석글을 책으로 출간하지 않으셨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이전에도 제가 작성한 SNS 글들을 엮어 책으로 출간하자는 제안을 몇 번 받았어요. 하지만 그때마다 저는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제 커리어적인 측면이 컸어요. 저는 평론가가 아니고, 영화를 분석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향후 스토리텔러로서의 길을 방해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되었습니다.

 

둘째, 제가 작성한 글들이 너무 자의적이었다는 점도 이유였습니다. SNS에서 쓴 글은 전문적으로 자료를 찾아서 진지하게 작성한 글이 아니었어요. 대부분 제 개인적인 의견이 담긴 글이었죠.


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도서 중에서 [책으로 가는 문]을 정말 좋아해요. 어린이를 위한 동화 50편을 소개한 짧은 책인데, 저는 그 책을 너무 좋아해서 항상 책상 옆에 두고 자주 읽습니다. 그래서 핸드폰으로 글을 쓰다가 그 책을 읽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말을 인용하는 정도로 글을 작성한 경우가 많았어요.


평소에 저는 인터뷰나 메이킹 오브 영상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작품 자체도 물론 좋아하지만, 그 뒤에 숨은 이야기들이 더 흥미로워서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넷플릭스의 [우리가 사랑한 영화들]과 같은 영화 제작 과정에서의 비하인드가 담긴 메이킹 오브 영상을 즐겨 보고, 여가 시간에는 ‘쇼 바이블’이라 해서 시리즈 기획서를 찾아 읽기도 하면서 기획 초기와 실제 결과물의 차이를 비교해 보는 걸 즐깁니다. 작품이 어떻게 제작되었는지, 그 과정을 알게 된 후 다시 작품을 보면 경이로움이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또한, 제작자의 의도를 찾아본 후에는 보던 장면이 다르게 보이기도 하죠. 그래서 제 취미가 제작 과정에 대해 깊이 파고드는 것이고, 때로는 그게 집착적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얻은 지식들이 자연스럽게 제 글에 녹아들었을 뿐이에요.


이렇게 쌓여온 정보들을 바탕으로 제 주관적인 관점에서 글을 작성한 것이고, 사실 영화의 해석 자체는 개인의 몫이 크잖아요. 그런데 이것을 책으로 엮으면, 제 사적인 시선이 마치 지브리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공식적인 의도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커지더라고요. SNS에 글을 쓸 때도 그런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았기에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했습니다.


셋째, 저는 창작자로서 제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명성에 기대어 콘텐츠를 제작하기보다는, 제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이 모든 이유가 결합돼서, 결국에는 '내 SNS 글을 묶어 도서로 출간하는 것이 과연 금액을 지불하고 구매할 만큼 가치 있는 콘텐츠일지'에 대한 염려로 이어졌습니다.

 

 

- 그렇다면 그렇게 심사숙고하는 과정에서 이번 [창작자를 위한 지브리 스토리텔링]을 출판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결정적으로 제안을 받았을 당시의 저는 커리어적인 확장을 원하던 때였어요.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다 보니 저의 바운더리를 최대한 넓힐 필요가 있거든요. 그래야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프리랜서는 계속 자기 증명을 해야 하는 일인데, 마침 열심히 활동을 해서 쌓아올린 것이 있으니 그것을 바탕으로 저의 바운더리를 더 확장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좋은 제안이 들어왔던 거예요.

 

그리고 저는 SNS 계정을 운영하며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의 괴리를 조금씩 느끼고 있었어요. 저의 오프라인 친구들이 온라인의 글을 읽기도 하고, 온라인 친구들과 오프라인 친구들의 경계가 애매해지면서 저 스스로의 자아를 한 번 통합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번 도서가 SNS에서의 활동과 오프라인에서의 이력을 아울러 정비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그렇다면 이번 도서 [창작자를 위한 지브리 스토리텔링]은 기존에 적었던 SNS 글과는 어떤 차이점을 갖고 있을까요?

 

접근 방식 자체를 다르게 했어요. 사실 저는 처음 [창작자를 위한 지브리 스토리텔링]을 제안받았을 때 거절하려고 했어요. ‘이렇게 스토리텔링을 하면 미야자키 하야오와 같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도서를 만드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거절 메일을 보내려고 마음먹었죠.

 

 

거절 메일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문득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따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레퍼런스로 삼아 창작과 스토리텔링의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책이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생각이 돌파구가 되어, 《창작자를 위한 지브리 스토리텔링》을 집필하기로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미팅을 해보니 출판사에서도 이 책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분석하는 글이 될까 봐 우려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출판사도, 그리고 저도 일반 작법 원리에 적용할 수 있는 객관적인 내용을 위주로 작성하고자 했고, 그 덕분에 처음부터 ‘우리는 결국 미야자키 하야오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고 시작했습니다.

 

 

- 앞서 해당 도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염려하셨던 부분이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될 수 있다' 혹은 '이것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의도다'로 글이 읽힐 수도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읽히지 않도록 책을 제작하며 가장 공들인 부분이 있다면.

 

목차 구성에 굉장히 공을 들였어요. 첫 미팅 때부터 정말 많이 이야기를 했던 부분이에요. SNS에서 제가 지금까지 작성했던 글은 대부분 자유롭게 쓴 느낌이었잖아요. 그에 반해, [창작자를 위한 지브리 스토리텔링]은 체계적으로 글을 써내려가려고 노력했어요.

 

이 도서는 초고를 두세 번 정도 작성하고 폐기했어요. 처음에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특수성을 먼저 이야기한 뒤, 일반적인 작법 원리로 넘어가고자 했었죠. 저는 스토리텔러기도 한 만큼 일반 스토리텔링 원리를 책에도 적용하고자 노력했어요. 초반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그다음에 작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흐름을 잡고 나니, 후속 부분에서 작법에 대한 이야기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분석하는 느낌으로만 흘러가더라고요. 결국 제가 하고자 하는 것은 일종의 연금술이에요. 분석을 했다면, 그 다음에는 그 분석을 해체하고 다시 재조립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그런데 해체와 재조립의 과정 없이 오직 분석만으로 끝날까봐 여러번 그 흐름을 수정하면서 주의를 기울이며 작성했어요.

 

그리고 앞서 기획했던 흐름대로 글을 적다 보니 '순서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현재의 도서 목차를 보면 마법과 저주에 대한 이야기를 후반으로 미뤄두었는데, 사실 이 부분은 처음에는 초반에 위치했었어요. 그런데 적다 보니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마법과 저주에 대한 내용이 작법의 일반 원리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 지식이 밑바탕이 되어야 하더라고요. 이 모든 것이 결합되어 목차가 완전히 뒤집히고, 지금의 책이 완성되었습니다.

 

 

- '요약과 실전' 페이지도 참 인상 깊어요. 도서 자체가 굉장히 친절하다고 느껴진 부분이기도 한데.

 

사실, 요약과 실전 연습은 제가 먼저 떠올렸던 아이디어가 아니라, 출판사에서 제안해 주신 아이디어였어요. 이 도서는 세 권의 시리즈로 진행되고 있고, 그 중 첫 번째 도서가 [창작자를 위한 픽사 스토리텔링]이었거든요. 그 도서의 포맷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고자 했고, 그래서 그 책에 포함되어 있었던 '요약과 실전' 페이지도 함께 차용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저는 이 제안에 대해 처음에는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어요. 저는 작법서의 글을 읽으면 스스로 요약을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가 먼저 요약을 제시하는 것이 과연 효과적일지 의문이 있었죠. 그래서 오히려 요약과 실전 연습을 넣는 과정은 제가 그것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찾아가는 과정에 더욱 가깝기도 했어요.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는 숏폼에 대한 연구를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에요. 작가로서 잠시 숏폼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이를 위해 숏폼을 연구하다 보니 현대인의 소비 패턴에는 요약 및 정리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요약본이 있다면 책을 읽고 난 후 그것을 복기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한 실제로 [창작자를 위한 픽사 스토리텔링]이 출간된 후 많은 독자분들이 요약과 실전 연습 페이지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시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후기에 ‘요약과 실전 페이지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남겨주신 것을 보고 해당 페이지가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중요한 페이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편집자님이 옳으셨던 것이구나, 납득하고 해당 페이지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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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책을 만들면서 작가님만의 목표가 있었을 것 같은데.

 

첫 번째 목표는 서너 시간 안에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밀도가 높은 책을 만드는 것이었고, 두 번째 목표는 창작자들이 작업 중 휴식 시간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저는 이 책을 제작하며 앞서 말씀드렸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도서 [책으로 가는 문]을 롤모델로 생각했거든요.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내용을 발견할 수 있는 책이요. 두 가지 목표 모두 만족스럽게 달성한 것 같습니다.

 

 

 

이누해 작가와 함께 [창작자를 위한 지브리 스토리텔링]을 세밀하게 살펴봅니다.



- 작가님께서 직접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대상이 있으시다면.

 

첫 번째는 현재 어떤 작품을 만들고 있지만,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과 매뉴얼이 없어 답답함을 느끼는 창작자들입니다. ‘내가 창작하는 것이 맞을까?’라는 의문을 품고 있다면, 이 도서가 기준점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작 중인 작품과 함께 이 도서를 참고하면 '이렇게 제작을 하는 것이 좋겠구나'라는 일종의 방향표가 생기며 작업이 좀 더 수월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현재 창작을 하고 있지 않지만, 창작에 대한 이론과 지식의 필요성을 느끼는 분들이에요. 의외로 창작을 하지 않는 분들도 작법서를 많이 찾으시는데,. 그 이유는 창작의 이론을 적용할 수 있는 분야가 정말 무궁무진하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픽사에서 스토리 제작자로 활동한 분이 스토리 원리를 경영에 적용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 경영서가 있는데, 한국에서는 작법서로 포지셔닝 되어 출간된 적도 있어요. 저는 이것이 매우 흥미롭고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연설이나 경영에서도 스토리텔링의 원리는 적용되잖아요. 감정적 몰입을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의도를 전달하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같은 흐름을 가지니까요. 이와 같이 스토리텔링 원리에 흥미를 느끼고, 이를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하고자 하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창작과 스토리텔링에 대한 흥미는 없지만, 지브리 자체를 사랑한 분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합니다. 지브리가 어떻게 작품을 만드는지 궁금하거나, 지브리 영화를 좀 더 깊이 있게 즐기고 싶다면 이 도서가 도움이 될 거예요. 처음에는 도서 제목이 [우리가 사랑한 지브리 스토리텔링]이었어요. 이후 제목이 변경되었고, 그 제목은 프롤로그에 들어갔는데, 저는 이 도서를 작성하면서 가졌던 마음과 의도가 [우리가 사랑한 지브리 스토리텔링]에 더 부합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브리를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이 도서를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 대상 독자의 폭이 굉장히 넓지만, 마지막으로 소개해주셨던 독자층이 굉장히 인상 깊어요. '지브리를 깊게 사랑하는 모두'라는, 굉장히 즐겁고도 명확한 독자층이 있네요.

 

저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업 방식 중에서 굉장히 감명 깊었던 부분이, 영화를 제작하기 전에 제1대상을 설정한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마녀배달부 키키]는 사회 초년생 20대 여성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10대 소녀들을, [벼랑 위의 포뇨]는 6살 아이들을 대상으로 설정했다고 해요. 저도 [우리가 사랑한 지브리 스토리텔링]이라는 이름으로 ‘지브리를 사랑하는 모두’를 확실하게 타겟층으로 잡고 들어가고 싶었고, 그래서 가장 첫 목차의 이름을 그렇게 정해두었어요.

 

 

- 그래도 조금 세밀하게 독자층을 나눈다면 창작자와 지브리 스튜디오의 팬, 두 바운더리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창작자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목차, 혹은 책의 범위가 있다면.

 

창작자를 위한 목차라면 역시 구조 파트를 가장 추천 드리고 싶어요. 제가 이 부분에 굉장히 많은 공을 들였거든요.

 

저는 스토리텔링을 가르치거나 스토리 컨설팅 관련된 일을 꾸준히 해왔는데, 그 과정에서 초보 작가들이 자주 범하는 실수들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90년대부터 포스트모더니즘의 광풍이 불면서, 서사의 흐름을 붕괴하는 영화들이 많이 나왔고, 그 영향으로 지금의 창작자들은 그 흐름을 자연스럽게 체득한 세대예요.

 

즉, 표준적인 흐름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개성을 이야기 속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창작자들이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나는 삼막 구조를 무너뜨리고 나의 주관을 관철할 것이다’라고 확신을 가지고 시작하는 분들도 많아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이야기가 어수선해지고, 관객의 이해 범위가 좁아질 가능성이 높아요. 실제로 저 또한 그랬었고요.

 

그래서 저는 구조 파트에서 이 점을 강조해서 작성했어요. 우리가 거장이라고 부르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조차도 이야기의 흐름을 중시하고 그 규칙을 지키며 나아간다는 사실을 적었습니다.

 

구조 파트를 읽다 보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얼마나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인지도 알 수 있으실 거예요. 미야자키 감독은 종종 ‘여기서 끝내도 좋다’고 생각하는 지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결말에 대해 조금이라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으면 새로운 이야기를 뒤에 덧붙였거든요. 그래서 영화 제작 중에 결말이 바뀐 경우도 많아요.

 

예를 들어,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는 케이크를 받는 장면이 본래 결말이었어요. 실제로 일부 비평가들은 그 지점에서 영화가 끝났다면 깔끔하게 마무리됐을 거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 뒤에 주인공 키키의 활약을 덧붙였어요.

 

저는 이 선택이 《마녀 배달부 키키》의 대중적인 성공을 이끌었다고 확신해요.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한 번쯤은 끓어오르는 순간을 경험하고 싶어 하거든요. 내적인 성장이 아무리 감동적이라도, 모든 관객이 이를 공감하는 것은 어려워요. 그래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키키의 영화에 대중적인 장면을 추가하여 영화가 예술 영화에 그치지 않고 상업 영화로서 성공할 수 있도록 한 거예요. 

 

이 선택은 결국 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구조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가능한 선택이에요. 관객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주는 것이 옳은지를 고민한 덕분에 이러한 선택이 가능했던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기본적인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이야기를 잘 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제안하는 의미에서 구조 파트를 추천 드립니다.

 

 

- 그렇다면 지브리 팬 독자들에게 가장 추천하는 목차는 어느 부분일까요?

 

지브리 팬들에게는 후반부 챕터를 추천드립니다. 특히 7장 이후의 8장부터 10장까지를 말씀 드리고 싶어요. 7장까지는 구조와 작법에 대한 이야기가 많거든요. 그래서 기대하시는 '조금 더 알면 즐거울 지브리의 숨겨진 이야기'는 8장부터 자세하게 적혀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 책을 쓸 때, 전문 용어를 최대한 배제하고, 창작을 업으로 삼지 않는 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작성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말씀드려요. 시중에는 두껍고 깊이가 있는 작법서들이 많이 있지만, 일반인이나 전공자 모두에게 어려운 경우가 많거든요. 저도 과거 그런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있고, 그때마다 ‘이렇게 어려운 내용보다는 차라리 직설적으로 ‘이렇게 하세요’라고 써 있는 책이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이 책은 일반인과 전문가 모두 3시간 이내에 완독할 수 있도록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구성했습니다.

 

 

- 장편의 글을 작성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작성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가장 즐겁게 작성한 것 같아요. 이 책은 프롤로그에서 ‘우리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될 수 없다.’고 확실히 말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잖아요. 저는 평소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을 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데, 해당 핵심을 바탕으로 이후의 도서 전반적인 내용이 연결될 수 있도록 구성할 수 있어서 매우 기뻤어요.

 

그래서인지 실제로 서평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많은 분들이 주목해 주셨어요. 어떤 분께서는 서평에 ‘이 책의 초반에서부터 우리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해 주니, 책을 읽으며 오히려 굉장히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적어주셨더라고요. 그 부분을 읽고 나니, 제 의도가 온전히 전달된 것 같아 정말 기쁘고 감명 깊었습니다.

 

그리고 에필로그의 경우, 현재 창작자들 사이에서 큰 이슈로 떠오르는 ‘생성형 AI 시대의 스토리텔링’에 대해 다뤘어요. 사실 영화 업계뿐만 아니라 모든 창작 업계에서 AI에 대한 공포와 경의가 감돌기 시작했던 초반에 이 책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창작자들에게 AI에 대한 두려움이 지금보다 훨씬 컸던 시기였어요. 실제로 책을 쓰던 중, 창작자 친구에게 연락을 받았고, 그 친구가 AI에 대해 절망적인 감정을 털어놓는 걸 듣고 그 감정을 깊이 느꼈던 적도 있었죠.

 

그래서 에필로그에서 저는 ‘AI에 대해 크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안심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만약 최악의 경우가 다가와서 모든 창작 활동을 AI가 대체할 수 있게 된다 해도, 예술가가 갖고 있는 노력의 가치는 절대 퇴색되지 않을 거예요.

 

사실 예술 창작의 의미가 사라진 지는 카메라가 발명된 이후로 이미 한 세기 이상 지나갔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예술을 향유하는 이유는, 인간의 고통과 노력이 녹아 있는 작품을 보고 싶기 때문이죠. 이 책에서 전반적으로 ‘주관과 경험, 관찰’을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에필로그를 제 개인적인 편지이자, 창작자 분들께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로 남기고 싶습니다.

 

 

- 저는 [창작자를 위한 지브리 스토리텔링]을 소개하는 카드뉴스도 굉장히 흥미롭게 봤어요. 지브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지나치지 못할 정도로, 소비자를 강렬하게 사로잡을 수 있는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더라고요. 작가님께서도 해당 카드뉴스에 적힌 문구들 중에서 흥미롭고 재미있었던 부분이 있었을 것 같아요.

 

사실 이 질문들은 책에서 많이 강조되지 않아서 오히려 아쉬운 부분들이었어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카드뉴스에 적혀있는 공간 배경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클라이맥스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 드려도 참 좋을 것 같아요. 해당 부분들은 실제로 제가 지브리의 스토리텔링 중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게 여기는 부분들이기도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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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클라이맥스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지브리 이야기만의 특별한 점을 하나 이야기 하자면 바로 영화에 클라이맥스가 두 번 존재한다는 거예요.

 

제가 편집자님과 첫 미팅을 할 때, 전 시리즈인 [창작자를 위한 픽사 스토리텔링]의 목차를 보고 감명 받았던 부분도 바로 더블 클라이맥스에 관한 것이었어요. 픽사의 수뇌부가 지브리의 열정적인 팬이었기에 픽사에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아 더블 클라이맥스가 존재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픽사의 스토리텔링을 소개하는 책에 언급되어 있어서 굉장히 인상깊었거든요.

 

그런데 여기에서 저는 재미있는 점을 하나 짚어드리고 싶어요. 지브리와 픽사 모두 더블 클라이맥스를 갖고 있어요. 그런데 큰 차이점이 있죠. 바로 클라이맥스의 순서가 정반대라는 점이에요.

 

지브리는 내적인 클라이맥스를 먼저 보여주고, 그다음 외적인 클라이맥스로 주인공의 성장을 증명해요. 예를 들어,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는 케이크를 받은 후 슬럼프를 극복하고 이를 활약을 통해 증명해요. 반면 픽사는 외적인 클라이맥스 다음에 내적으로 진정 성장하는 클라이맥스가 나타납니다. [코코]에서는 가짜 아버지와의 전투와 진짜 아버지의 정체를 알게 된 후, 할머니와의 감정적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처럼요.

 

저는 이 정반대의 클라이맥스 구성이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졌어요.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맥락에서 드러나는 좌정서와 우정서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하하하. 그래서 카드뉴스에 대해 언급할 기회가 있다면, 이 부분을 꼭 다시 짚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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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공간 배경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정말 인상 깊게 느꼈는데, 책에서는 짧게 언급된 부분이에요.

 

[모노노케 히메]의 시작 부분에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아시타카 마을 급습 장면을 자세히 보면 위화감이 느껴질 거예요. 마을의 경사가 굉장히 가파르고, 어떤 할아버지가 건물 위에서 보초를 서다가 재앙신이 왔다는 사실을 소리치며 이야기가 시작되죠. 우리는 여기서 ‘왜 이 사람이 건물 위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재앙신이 들어오기 전에도 아시타카가 마을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옵니다. 이 장면은 마을 안에서 이미 무언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거죠.

 

그리고 마을이 위치한 산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산의 풍경이 아닙니다. 자세히 보면 나무가 하나도 없어요. 즉, 농사를 짓기 위해 산에 불을 질렀던, 화전이 이루어진 땅인 거예요. 물론 영화를 보며 한 번에 이 배경을 세밀하게 살펴보고, ‘아, 여기는 나무가 없으니 화전의 땅에서 숨어사는 소수 민족의 이야기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일반적인 마을은 아니라는 그 위화감은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위대한 창작자인 이유라고 생각해요. 공간의 세밀한 설정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뉘앙스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사실 공간에 대한 부분은 개인적인 연출이 강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라 작법서에서 다루기엔 굉장히 위험할 수 있지만, 독자들께서 훌륭한 모범 사례로 살펴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 부분을 적었습니다.

 

 

-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책에 담지 못해 아쉬웠던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이번 기회에 그 아쉬움을 조금 풀어, 독자님들께 함께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책에서는 이야기하지 못한 부분을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이번 도서는 ‘스토리텔링 작법’에 집중하다 보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개인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담지 못했어요. 다만 [이웃집 토토로]를 성장에 집중하는 영화라고 언급하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왜 독특한 스토리텔러인지에 대해 짧고 우회적으로 설명했죠.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풀어 설명해드릴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이고 아주 사적인 의견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든 작품이 ‘현실 도피의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자세히 보면 모든 이야기들이 초반에 제시되는 메인 갈등을 회피하기 위해 일어나거든요.

 

예를 들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이사를 가며 환경이 바뀐다는 사실에 대한 불만과, 그로 인한 부모님과의 갈등이 형성돼요. 그런데 터널을 지나고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면서 그 갈등은 사소한 설정으로 남게 되죠.

 

이러한 현실 도피적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은 바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예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도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굉장히 싫어한다고 유명하죠. 저는 그것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 애니메이션이 속된 말로 '부끄러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가 애니메이션 업계로 들어간 이유가 현실의 문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라고 추측하며, 그것이 그의 작품에 반영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화를 자세히 보면, 주인공들은 각자 메인 갈등을 가지고 있지만, 그 갈등은 영화 속에서 제대로 부딪히지 않아요.

 

예를 들어, [붉은 돼지]에서는 주인공이 저주로 돼지가 되지만, 그 갈등을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 그냥 살아가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붉은 돼지] 모두 기존 갈등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주된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현실 도피적 면모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혼란스러운 면모와 현실 도피적 특성도 책에서 언급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물론 이 책은 ‘분석서’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내용을 넣으면 분석적 성격이 강해져서 뺀 것이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지만요.



- 이 책을 읽어주실 분들께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으신 말이 있으시다면.

 

저는 이 책을 읽으시면서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도 함께 읽으면 정말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든 작품에서 미야자와 겐지의 흔적을 조금씩 발견할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나온 기차 장면도 [은하철도의 밤]에 대한 오마주고, 신발이 떠내려가서 그것을 주우려다 강에 떨어진 장면도 [은하철도의 밤]에서 멋지게 모티프를 얻은 거예요.

 

이외에는 [모노노케 히메]와 [나메토코 산의 곰]을 비교해 감상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균형과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한 사냥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독특한 동화에요. 인간과 자연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던 이 균형이 깨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 나름대로의 대답이 바로 [모노노케 히메]가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좋아하는 모든 감독님들과 뮤지션들도 미야자와 겐지를 오마주할 때가 많아요. 마치 이상의 '날개'에서 날개 모티프가 자유와 속박의 상징으로 수많은 작품에 차용되는 것처럼, 일본에서는 콘텐츠마다 미야자와 겐지가 계속해서 소환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도 예외는 아니기에, 함께 살펴보시면 매우 즐겁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마무리 지으며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개인에 대한 이야기에도 큰 관심과 애정이 있으신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워낙 명성이 자자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당혹스러운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잖아요. 이에 대한 작가님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워낙 유명하고 정말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시기 때문에 그분에 대해 잘 알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중에는 여전히 그분에 대한 이상한 오해가 많아요. 그래서 작품이 온전히 관객들에게 와닿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도 항상 아쉬움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지브리 애니메이션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감독에 대한 오해와 소문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한 번쯤 사실에 대해 찾아보시고, 그에 대한 생각을 직접 확립시키길 추천드려요. 설령 그 생각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개인의 창작 과정에서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 영광이겠습니다.

 

 

- 인터뷰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무리 인사 부탁드립니다.

 

이야기 산업 자체가 현재는 굉장히 침체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에 대한 수요는 계속해서 있을 것이고, 이 이야기 산업은 다시 한 번 좋은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이 책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 이야기를 놓지 않고, 다시 이야기 산업이 부흥하는 그날까지 우리 함께 잘 견뎌봅시다.

 

그리고 이 인터뷰와 책을 읽고 저에 대해 관심이 생기신 분들은 언제든 편하게 연락 주세요. 저는 언제든 제가 일할 수 있는 곳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은 인연을 맺고 앞으로도 함께 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인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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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푸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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