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는 폭탄 테러를 막지 못한다. 하지만 진실이 지워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포스터 뒷면에 적힌 ‘카우타르 벤 하니야’ 감독의 말을 유심히 보았다. 포스터 앞면에는 ‘힌드’로 추정되는 어린아이의 웃는 사진이 있었고 그 아이의 얼굴 위로 울고 있는 사람들과 무언가 박살 난 현장의 사진, 어떤 차 앞에 기대어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사진이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사진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 수 있다. ‘울고 있는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적신월사의 직원들이다. 전화로 구조 요청이 들어오면, 그들은 가자지구에 있는 구조대를 포함한 여러 기구와 연락해 허가받고 구조 요청을 진행하는 사람들이다. ‘무언가 박살 난 현장’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폭파된 구급 차량이고 ‘어떤 차 앞에 기대어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이들’은 가자지구의 구급차량을 운전하는 구조대원들이다.
웃고 있는 아이는 ‘힌드 라잡’이다.
사실 영화를 보지 않고 포스터만 보더라도 <힌드의 목소리>가 어떤 이야기와 어떤 진실을 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힌드를 구조하려 했지만 무언가 잘 진행되지 않아 구조되지 못했거나 구조되기 힘든 상황에 부닥쳤을 것.’ 영화의 전개도 비슷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우리가 이 영화를 꼭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이 영화가 기록하는 진실의 무게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잔혹하고 무겁다는 것에 있다.

2024년 1월 29일, 팔레스타인 적신월사에 구조 요청이 들어온다.
독일에 사는 팔레스타인 친척이 가자지구에 있는 가족들에 대해 구조 요청을 건 것이다. 오마르는 넘겨받은 전화번호로 곧장 전화를 걸고 대화를 시도하지만 전화는 얼마 안 가 끊긴다. 전화기 너머에서 총성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전화기에서 들려왔던 목소리는 젊은 여성의 것으로, 오마르는 전화가 끊긴 후에도 계속해 전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두 번 다시 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진 않는다.
바로 그때, 그 친척으로부터 차 안에 여자아이가 홀로 있다는 메시지가 건너오고 오마르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인해 차 안 모든 인원이 사망한 것으로 추측되는 상황. 그 차 안에 홀로 남은 힌드가 있다.
오마르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적신월사의 직원들은 모두 힌드를 구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가자지구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구조대원들이 힌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으로 가기까지는 단 8분이 걸린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폭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구조대원들은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구조를 하기까지 조정이 필수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이 조정에 관한 정보를 정확히 제공해 주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절망스럽기만 하다. 기억나는 것을 적어 보자면 이렇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로 구조 요청이 들어오면 적신월사는 곧장 가자지구 구급대원을 부를 수 없다. 구조 요청이 들어온 곳까지 가기 위해선 기구의 허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폭격이 진행되는 상황이기에 이스라엘군이 구급 차량에 폭격하지 않도록 확인받은 후 다시 기구를 거쳐 승인을 확인받으면 그제야 구급대원이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다. 이때 구급대원은 적신월사가 정한(승인받은) 루트로만 이동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힌드의 구조는 기약 없이 미뤄지기만 한다.
적신월사의 직원들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힌드를 달래가며 힌드와 전화를 이어간다. 힌드의 상황이 직접적으로 스크린에 등장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관객은 힌드와 적신월사 직원의 실제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제발 데리러 와달라고, 왜 오지 않는 거냐고 말하는 아이에게 어른들은 어떤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영화는 가자지구의 현장이 아닌 가자지구와 조금 떨어진 팔레스타인 적신월사의 모습을 담고 있다. 구조를 요청받고 죄책감을 짊어지고 고통에 빠지는 사람들은 그 현장에 있는 사람들뿐만이 아님을 영화를 통해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직원들의 책상 옆에 붙여놓은 얼굴 없는 사진은 그들이 구하지 못한 아이들을 뜻한다. 회사에는 힌드를 포함한 수많은 아이와 사람들의 얼굴 사진이 붙여져 있다. 그것을 통해 기억하고자 하는 것이다.
4시간이 넘어갈 무렵 아직 승인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오마르는 그들의 상황을 녹음해 올리자는 팀장의 의견에 화를 내며 소리친다. 이미 SNS에는 여러 아이들의 참혹한 사진이 올라가 있고 그것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말이다. 아무리 더한 상황이 오더라도 사람들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듯해 그 말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희망의 끈이 점점 없어지는 시점에서 그들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스라엘 국방부와 기구의 승인을 받아낸다. 이제 남은 시간은 단 8분. 힌드가 있는 곳으로 가 구조대원들이 힌드를 무사히 구조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 모두 환호한다. 구조대원이 출발함과 동시에 지도 위 구급차량도 움직인다.
그들은 힌드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한다. 정해진 루트대로 구급차량이 움직이고 오마르는 구조대원과 전화하며 그곳까지 갈 수 있는 길을 알려준다. 힌드가 있는 구조 차량까지 단 몇 미터 차이. 그들의 눈앞에 희망이 보인다.
그리고 그 순간, 오마르의 전화기 너머로 이스라엘군의 폭격음이 생생히 들려온다.
영화가 끝난 후 영화관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그 누구도 나가지 않고 엔딩 크레딧을 지켜보았다. 관객들은 영화가 담고 있는 진실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것이 ‘오직 영화만이 할 수 있는 목도’가 아닐까. 그러니 더더욱 많은 사람이 진실을 알게 되고 기억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