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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사람을 기획한다’는 말은 어딘가 불편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사람을 어떤 틀에 넣어 계획하고 도식화하는 행위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람 기획이란, 누군가를 틀에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고유의 가능성과 방향성을 발견하고 설계하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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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는 것을 좋아한다. 날씨의 변화와 새로운 곳의 공기가 맨살에 닿는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도 좋지만, 마음이 쉴 틈 없이 움직여 여유가 없는 날엔 무조건 지하철을 선택하게 된다. 어떤 날엔 갈아타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내하면서까지 지하철을 고집하게 된 건, 그 속에 삶의 현장 수백 개가 공존한다는 걸 어느 순간 느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의 얼굴들. 대부분 한 방향을 바라보고 앉아야 하는 버스의 좌석과는 다르게, 지하철에서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얽혀서 다양한 방향을 보고 서 있지 않은가. 그렇게 전혀 모르는 타인과 부딪히고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비의도적인 순간이 만들어 낸 마주침이 좋았다고 말한다면, 조금 괴짜 같을까? 고개를 푹 숙이고 휴대전화 속 의미 없는 스크롤을 계속할 바엔,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이 반복 재생 되는 이어폰을 꽂고 멍하니 사람들을 본다. ‘사람’을 보는 것이다. 어디에서 왔을까? 어디로 가는지? 왜 저렇게 짐이 많을까. 더 지쳐서 이 열차 한 칸 속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얻고 싶은 날이면 아무것도 듣지 않은 채 허공을 바라보는-실은 사람들을 몰래몰래 관찰하는-, 요즘 시대엔 조금 보기 드문 인간을 연출해 내기도 한다.


모두가 이러한 취미를 가진다면 이 이야기로 글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허공을 보는 에디터를 힐끔힐끔 보는 사람들이 있다. 자의식 과잉일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이런 종류의 시선이다. ‘무슨 문제가 있어서 저기를 보고 있지?’ 하는 부류의 시선들. 쉽게 모든 것을 접할 수 있는 네모난 휴대전화 밖에 있는 건, 아무래도 알 수 있는 게 한정적인 세상일 뿐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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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서 예능 PD로 활약하고 있는 편은지 PD의 신간 <사람을 기획하는 일> 속 기획자로서 저자의 활약도, 이러한 ‘휴대전화 밖에 있는’ 세상 속 사람을 관찰하는 일로부터 시작됐다. 사람을 주제로 한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먼저 관찰하고, 있는 그대로와 그 이면의 것을 바라보며,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을 오래 보는 일을” 한다고 말한다. 꾸며지고 연출되는 것이 아닌, 그 사람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기획자의 일이다.


<사람을 기획하는 일>에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싶은 콘텐츠 마케터, 브랜딩 실무자 등 실무로 콘텐츠를 기획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사람’을 마주하고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가야 할 이에게 건넬 수 있는 조언과 경험이 담겨있다. 대화가 오가는 자그마한 테이블 위에서도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상대방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사람을 읽고 그 속의 진정한 타인을 마주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생에 주어진 과업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화려하고 꾸며진 것들이 결코 전부가 아닌 세상에서, 수많은 팬을 만들어내는 콘텐츠는 ‘사람’을 기획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으로 콘텐츠를 만들자고 결정했다면, 기획자가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은 그를 관찰하는 일이다. 그것을 위해 그가 생활하는 공간을 찾거나, 대화를 나눌 때 그 사람이 편해하는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등이 중요하다고. 핵심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진짜 000’을 발견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빠르게 정보가 유통되고 화려하고 멋진 것들이 쏟아지는 21세기의 세상에서, ‘사람’을 자세히 보고 그 속을 진득하게 파고드는 것은 자칫 생각하면 ‘손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저자는 그렇게 진심으로 다가가고 마주해 만드는 것들이 결국 “오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잘 세팅된 공간에서 멋져 보이는 일상을 만들어내는 것을 제지하고, ‘진짜 날 것’의 모습을 보여줬기에, 진심으로 시청자와 통할 수 있었던 <살림남(살림하는 남자들)> 시리즈. 역할과 직업 뒤에 가려진 ‘그 사람이 무엇을 바라고 살고 있는가’를 물었기에 기획할 수 있었던, 다양한 인물들의 서사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


그 모든 것이 사람들의 호응을 받아낼 수 있었던 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불안함과 걱정을 건드리며 공감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불완전하다는 것과 불안하다는 것은 우리에게 다소 약점처럼 느껴진다. 알지 못하는 것은 숨겨야만 할 것 같고, 그걸 들켰을 때 얼굴이 빨개지며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미래가 불안한 것은 인간의 특권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모든 불편함이 우리를 바라보게 만들고, 공감하게 만들며 움직이도록 한다. 그 공식을 마땅히 수행할 수 있을 때 ‘사람을 기획’할 수 있는 것이다.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아직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늘 궁금해하며, 우리 속 무언가를 건드려 줄 콘텐츠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만약 내 앞의 사람과 공명하기로 마음먹었다면, 혹은 누군가를 그렇게 만드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면, 이 책을 집어 드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에디터에게 동참하여 ‘지하철에서 사람 보기’부터 시작해 보는 것도 좋겠다.


*이강 각본, 박보영 주연의 드라마 <미지의 서울(2025)> 속 대사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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