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노래 가사란 무엇일까? 하루에도 수많은 음악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서, 어떤 노랫말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을까? 중독적인 멜로디가 빠르게 유행하며 많은 이들의 귀를 사로잡지만, 음악의 진정성을 전달하는 데 있어 ‘가사’의 힘은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좋은’ 가사로 평가받는 노랫말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할 수 있는 마법과도 같은 힘을 지닌다. 인류 역사 속에서 노래가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아 온 이유 역시 그 안에 담긴 따뜻한 공감과 치유의 메시지 때문이 아닐까. 더욱이 진심 어린 위로를 쉽게 얻기 어려운 현대 사회에서, 좋은 가사를 담은 음악은 그 가치가 더욱 높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좋은 가사를 담은 노래 1위를 꼽자면 가수 아이유의 '겨울잠'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이 곡은 2022년 10월부터 지금까지, 나의 곁을 조용히 지키며 위로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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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 초반의 너무나도 젊은 나이이지만, 나에게 2022년은 아마 남은 인생 중에서도 최악의 해가 아닐까 하고 자부할 수 있을 만큼 힘든 해였다. 보기 좋게 입시에 실패하고 좋은 대학에 간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을 꾹꾹 삼켜가며 공부했다. 그렇게 시간은 느리게도 빠르게도 흘러 10월이 되었고, 10월 7일 아침, 여느 날과 다름없이 어슴푸레한 달빛이 비치는 새벽에 일어나 학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방에서 전화를 받고 쓰러질 듯 소리를 지르시던 엄마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은 그날 아침.
소리 소문 없이 다가온 시린 겨울바람에 아빠의 심장이 멈추었던 그날 아침. 내 치기 어린 스무 살 인생에서 가장 바라던 일은 수능을 잘 보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랑하는 가족과 영원한 이별을 맞닥뜨리던 순간, 그보다 쓸모없는 소원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커다란 헤어짐을 맞아본 적이 처음이라 몸도 많이 아팠고 정신적으로 방황도 많이 했다. 일상 속에서 웃음을 가져다주었던 아주 사소한 순간들조차 아빠와의 이별 후에는 오히려 날카로운 칼날로 바뀌어 나를 더 그리움에 베이게 만들었다. 특히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는 아빠의 시간만이 멈추었다는 것이 선명하게 다가와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그 시기에 주위 사람들의 어떤 말보다 나를 위로해 주었던 곡이 바로 ‘겨울잠’이란 곡이다.
이 곡의 소개말을 보면 사랑하는 가족, 친구, 혹은 반려동물을 먼저 떠나보내고 맞이하는 첫 1년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쓰여 있다. 실제로 이 곡의 작사가이자 가수인 아이유는 한 생명이 세상을 떠나가는 일과 그런 세상에 남겨지는 일에 대해 여러 생각이 많았던 본인의 경험을 담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겨울잠의 가사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죽음을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이별이 아니라 잠시 긴 겨울잠을 자고 있는 것으로 묘사한 것이 내게 정말 많은 위로가 되었다.
내 세상에는 큰 상실이 찾아왔음에도 바깥에는 봄꽃이 피고, 해가 뜨고, 별이 지고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흘러간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인정할 수 없을 만큼 얄미웠었다. 아빠 없이 처음 맞는 계절들이 어색하기도 했고 그저 막막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곡은 그런 내 모습을 보듬어 주듯이 계절들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고이 간직해 두었다가 사랑하는 이가 긴긴 겨울잠에서 깨면 언제나의 아침처럼 전해주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겨울잠을 자고 있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봄에는 그가 좋아하던 봄꽃 몇 송이를 방문 앞에다 살며시 놓아두고, 여름엔 별 띄운 시원한 물 한 잔을, 가을에는 사랑한다는 말을 빼곡히 담은 편지 한 장을 그리고 겨울에는 뽀얗게 나오는 입김 속에 보고 싶다는 말을 담아 보낸다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이상은 삼켜지지도 않는 그리움이 조금은 해소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요즈음은 이 곡의 가사 중 ‘줄곧 잘 참아내다가도 가끔은 철없이 보고 싶어’라는 구절에 특히나 많이 위로받는다. 몇 년 동안 많이 무뎌지고 익숙해졌다고도 생각했는데 무작정 눈물이 나는 날이면이 노래에 남몰래 어리광을 부리기도 한다. 죽음이 영원히 닿지 못하는 이별이 아니라는 것임을 따스히 알려주는 가사를 수없이 되뇌이곤 했다. 무수히 반복되는 계절들 사이에 ‘겨울잠’이 있고, 그 속에서 숨쉬는 사랑하는 이와 언젠가 반드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커다란 슬픔에서 나를 지켜주는 듯하다.
아빠가 떠난 가을 이후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번은 꼭 이 곡을 듣는 것이 어느새 습관이 되었다. 여전히 아빠를 그리워하지만, 언젠가 아름다운 봄꽃을 전해 드릴 날을 기다리며 그렇게 씩씩하게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전달해 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게 내가 겨울잠을 통해 아빠에게 전해드리고 싶은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