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피가 보내온 초대장
미피가 70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관람객을 미피의 세상으로 초대했다.
인사 센트럴 뮤지엄에서 열린 참여형 인터랙티브 전시를 몇 번 경험했던 터라 이번 미피 전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안녕 인사동 건물 곳곳에 걸린 미피 전시 안내를 봤을 때도, 전시장 입구 커다란 미피 포토존도 별 감흥이 없었는데 전시장에 들어서니 모든 공간이 미피의 세상이었다.
전시장 공간 구분도 미피의 스토리에 따랐다.
미피의 가족들과 친구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각 섹션마다 배경이 된 그림책을 전시해두었다. 지금까지 본 체험형 전시 중 이렇게 원작의 세계관에 대한 존중을 표현한 곳이 있었던가, 단순히 귀여운 포토존이 아니라 '너도 미피 세상에 들어와 봐'라고 자리를 만들어준 것 같았다.
미피의 세상에 집중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곳곳에 있었다.
현실은 아주 잠깐씩만 다녀왔다.
미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어색하지 않게 곳곳에 미피에 대한 설명을 간단하지만 꼼꼼하게 적어두었다.
미피의 탄생부터 이름이나 작화의 변화까지 무엇 하나 빠뜨린 것이 없었다. 초기에는 미피의 등장인물이 모두 하얀 토끼였다가 나중에는 갈색의 토끼를 비롯하여 여러 동물이 등장했다고 하는데 시대의 흐름에 따른 다인종 다문화 반영을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미피라는 캐릭터, 동화 그리고 TV 애니메이션을 넘어서 미피 산업에 대한 정보까지 전달하였다.
저스트 더치 시리즈 인형은 네덜란드의 장애인 여성 근로자들의 수작업 제품으로 수익금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여성들을 돕는다고 했다.
1982년에 만들어진 프라이팬 모양 미피 시계가 전혀 촌스럽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옆에 전시된 것과 비슷한, 지금 판매되고 있는 미피 세라믹 미니 찜기도 오래오래 귀엽지 않을까. 시간이 흘러도 지나간 것이 되지 않는다는 게 미피의 매력이란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 관객이 제일 많았지만 어른도 충분히 즐거운 전시였다.
아기자기한 공간 곳곳에 체험 공간을 만들어두었는데 나이와 성별을 초월하여 미피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많았다. 문제라면 나 역시 너무 즐겁게 즐긴 탓에 리뷰에 쓸 사진이 없다는 것.
리뷰를 위한 관람이라 의식적으로 사진을 남기는데 놀라울 정도로 전시 전경 사진은 없고 내 사진만 있었다.
여기에는 다른 전시와 달리 적극적인 전시 스태프들의 역할도 컸는데, 관람객에게 먼저 다가가서 사진을 제안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둘이 전시를 보러 오는 경우에는 서로의 사진만 찍어주는 경우가 많은데 그 모습을 보더니 두 분 같이 계시면 사진 찍어드리겠다며 추억을 남길 기회를 마련해 주는 모습에서 미피와 어울리는 따스함이 느껴졌다.
제일 인상 깊었던 공간은 미피가 꿈에서 친구를 만나 구름 위에서 별을 던지며 놀았다는 그림책을 옮겨둔 인조 잔디가 깔린 언덕, 그리고 벽면 가득 채운 스크린을 편하게 기대어 볼 수 있는 빈백이 있는 구역이었다.
아이들의 발소리와 웃음소리가 언덕을 넘어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순간, 미피의 꿈처럼 천진한 아이들의 동심이 느낄 수 있었다. 어른에게는 다음 공간으로 넘어갈 통로가 아이들에게는 놀이 장소가 된 것이다.
빈백에 자리 잡은 건 대부분 쉬어가려는 어른들이었다. 스크린을 잘 볼 수 있도록 네모난 공간의 가운데를 비워두는 과감함이 있었는데 어떤 것도 눈앞을 가리지 않는 넓은 공간이라니, 다른 데서 보기 힘든 공간 구성이었다.
의외로 신났던 건 숲속 공간으로 유령 옷을 쓴 미피와 친구들을 터치하면 그 유령이 누군지 밝힐 수 있는 인터랙티브 아트.
미피가 나왔다가 바바라가 나왔다가. 바바라 말고 보리스는 없을까, 다른 친구가 있는 건 아닐까, 스크린을 쳐다보며 뛰어다니게 되었다.
급한 일이 있거나 운동할 때가 아니면 뛰는 일이 없는 낡고 지친 어른을 자기도 모르게 움직이게 만들다니. 팀랩에서도 이 정도로 움직이지 않았는데 이게 바로 귀여움의 힘인 걸까.
나는 미피보다 보리스를 좋아하는데 리틀 스퀘어에서 보리스를 비롯한 미피의 친구와 이웃이 등장한다. 미피가 도와준 적 있는 뽀삐 아줌마의 레스토랑, 바바라의 케이크 가게, 친구들이 있는 학교까지. 숲을 지나면 보리스의 집에도 찾아가게 된다.
미피의 세상에 초대되었다고 말한 게 바로 이런 부분이다.
전시 초반에는 헷갈렸던 미피의 친인척과 친구, 이웃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외우게 될 정도로 미피의 주변까지 꼼꼼하게 담았다.
이렇게만 보면 그래서 결국 이 전시도 예측 가능한 인터랙티브 아트 컨텐츠라고 오해할 수 있겠는데 마지막 섹션인 '그리운 친구, 딕 브루너'에서 미피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미피의 다섯 가지 색과 언뜻 표정이 하나밖에 없는 것 같은데 원근감과 구도를 통한 의도를 보면 미피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미피의 제작 과정까지 직접 볼 수 있다.
제작에 사용된 도구까지 진열되어 있어서 딕 브루너의 팬이라면 이 전시가 아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딕 브루너의 다른 아트워크를 전시해두었다. 딕 브루너의 부친이 출판사 대표라서 가업을 이어받을 수도 있었는데 어떻게 사업가가 아닌 작가가 되었는지, 히스토리와 함께 출판사에서 작업한 표지 이미지까지 볼 수 있었다.
미피나 동화가 주는 스토리나 동심 체험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작가에 대한 존중까지 느낄 수 있었다.
안녕, 만나서 즐거웠어. 초대해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