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갓 나온 신간을 읽는 경험은 흔치 않다. 세간에 인정을 받은 고전들도 아직 읽지 못한게 산더미인데다 분기별로 서점 매대를 장식하는 베스트셀러가 바뀌기 때문에, 첫 독자로 나를 선택한 책을 만나는 것은 특별하다. 특히 이번 책은 어디선가 마주한다면 홀린 듯 집어들었을테지만 높을 확률로 스치지도 못했을 것 같아 더 귀히 여겨졌다.

 

오랫동안 ‘미술관의 효용’을 찾는 일은 내 관심사였다. 인류가 예술해온 장구한 역사는 그 쓸모를 반증한다. 하지만 21세기 한국에서 예술은 교육, 여가, 업무에서 배제되었고 이틀뿐인 주말에 미술관을 찾는 것이 특별한 수확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끊임없이 어필해야만 했다.

 

그런 점에서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왜 미술관에 갈까?" 라는 제목은 확실한 후킹 포인트다. 성공한 사람들이 입는 옷, 타고 다니는 차, 식습관에 관심을 보이는 야망있는 자들이라면 그들이 여가 시간을 들여 찾는 미술관에 어떤 비밀이 있는지 궁금해 하지 않을까? '인류 문화예술의 보고인 미술관과 박물관은 세계 최고의 경영대학원(MBA)이다.'라는 소개 문구 또한 장단을 맞추고 있다.


 

131 (1).jpg 

 

 

["변화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과거의 유산으로 남는 시대에, 창의력과 통섭력은 최고의 인재들에게 필수적인 능력이 되었다. 그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 미술관을 찾아 사색하고 통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예술가들의 이야기와 미술관을 만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영감을 얻는 것이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개념은 프롤로그에서 언급된 '괴슬러 이론', 즉 '이연연상능력'이었다. 이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가지 사고 패턴에서 요소를 가져와 새로운 패턴을 창조하는 능력으로, ‘바이소시에이션(Bisociation)’이라는 용어로도 불린다. 창의성이란 단어가 남용되면서 점점 힘을 잃어갈 때, 이 개념은 예술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음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책의 목차 구성도 신선했다.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무엇으로 일할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누구와, 어떻게, 어디에서,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를 차례로 탐구한다. '언제'를 제외하고 6하원칙을 모두 다룬 것이다. '언제 일할까?' 에 대한 답은 자명하다고 볼 수 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쭉, 세계의 인재들은 미술관을 찾았을 것이다.


그런데 제목이나 추천글, 목차를 보고 내가 기대했던 것과 실제내용은 조금 동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처음엔 특정 경영인의 사례나 특정 예술 작품이 혁신적인 제품 개발로 이어진 구체적인 사례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애플과 바우하우스의 관계처럼 말이다. 반면 책은 보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미술관의 운영 방식이나 설립 배경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소개하고 있었다.

 

평소 전시를 보러가면 작품보다 미술관에 주목하는 나로서는 오히려 만족한 부분이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읽고 있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가 작품을 조목조목 묘사하며 서정성을 극대화한 것과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었다.


오늘 내가 미술관을 찾는 이유는 세계 최고의 인재가 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을 방법을 고민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미술관에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건 경영인뿐만이 아니다. 괴슬러 이론으로 돌아가서, 과학기술자가 자기의 분야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도 있고, 음악가가 새로운 창작의 방향성을 찾을 수도 있다. 혹은 전문적인 분야가 아니라도, 삶에서 고민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힌트를 얻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미술관들 중 나는 아직 한 곳도 가보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모두 방문하게 될 것 같은 근거 없는 예감이 든다.

 

 

 

임지영 (1).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