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지난 오피니언 말미에 798예술구를 '정처없음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곳'으로 설명했지만 기왕지사 이곳에 시간을 할애한다면 '꼭 한번 들릴만한' 갤러리 다섯 곳과 현재 진행중인 전시를 소개한다.

 

 


HUNDAI MOTORSTUDIO BEIJ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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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 “798 艺术区"를 입력하고 도착한 곳 초입에 위치한 현대 모터스튜디오 베이징. 좋은 위치에 주변과 어우러지는 건축물이 들어서니 금상첨화라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글로벌 뮤지엄과의 파트너십, 국내외 아티스트와의 콜라보, 신진 큐레이터 양성 프로그램인 현대 블루 프라이즈 등을 통해 다양한 아트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흔치 않게 한국 작가의 작품을,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로 들을 수 있는 곳이라 한국인이라면 반갑지 않을 리 없다. 방문 당시 역시나 문경원, 전준호 작가의 전시가 진행 중이었고 전시장 한 벽면을 장식한 스크린에서는 류준열 배우의 연기를 볼 수 있었다. 국내에서 볼 수 없는 미공개 단편 영화를 본 것 같은 특별한 기분을 선사한 곳이다.


한국에서도 매우 애호했던 공간인 현대카드의 라이브러리를 비롯해 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 현대 모터스튜디오 베이징 까지, 국가나 상품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예술의 자리를 남겨둔 현대 자동차 그룹의 일관된 브랜딩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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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ATHER STATION 气象站

2024.05.31-2025.02.09

문경원 전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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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부터 문경원과 전준호는 인간의 도전과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예술의 역할을 총체적으로 탐구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인공 지능 시대에 인간, 비인간, 자연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작가들은 공존의 개념을 수용하며 기후 변화에 대한 대안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관람객들이 기후 변화와 이에 맞서는 도전에 관한 인식을 갖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돌의 관점에서 지구의 수백만 년 전, 그리고 기후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하면 네 발 달린 로봇의 안내를 받으며 관람객들은 미지의 것과 미스터리로 가득 찬 세계를 횡단토록 요청받는다. 인간과 비인간의 모호한 경계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하게 된다.


앞서 언급된 류준열 배우가 등장한 작품 이클립스(2022-24)는 외딴 바다에서 구조선을 타고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고독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단순한 생존 서사를 넘어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워 세상의 근본적인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준다.


 


UCCA (Center for Contenporary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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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8 예술구 내에서 가장 규모 있는 미술관이다. 중국 최고의 현대미술 기관으로 자부하는 곳으로, '예술이 삶을 더 깊게 하고 경계를 초월할 수 있다'는 믿음에 전념해 매년 3곳에서 100만 명이 넘는 방문객에게 광범위한 전시, 공공 프로그램, 연구 이니셔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UCCA Beijing 외에 베이다이허의 UCCA Dune, 상하이의 UCCA Edge 가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정도의 포지션으로 추측해서인지 거대한 창고 한 칸에 맞먹는 전시공간이 전부여서 당혹감을 느꼈다. 동선이 단순해 관람 소요시간은 20분이면 충분했던 것 같다. 그래도 아트,디자인 북을 콜렉팅해 둔 서점과 옷가게, 노상 카페가 함께 자리하고 있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곳이다. 곡면의 유리로 통창을 낸 건물 자체도 눈여겨 볼만 하다.


또 하나의 특징을 꼽자면, 개인전을 주로 개최하는 작은 단위의 갤러리들 보다 확실히 연구와 큐레이팅에 성의를 다하는 것이 느껴졌고 그 방증으로 현대모터스튜디오를 제외하고 '정식 팜플렛'이 있는 유일한 갤러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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追求幸福 越快越好 A PURSUIT OF HAPPINESS ASAP

2024.07.20-2024.10.20

Lawrence Weiner

입장료 - 성인 100위안 / 학생 60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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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후반, 로렌스 와이너(1942-2021)는 예술이 단순히 언어로 실현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개척한다. 그리고 번역이라는 행위를 "한 대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소재와 마찬가지로 어떤 언어는 국경을 넘어 더 쉽게 이동하지만 다른 언어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에 번역은 의미의 다양하고도 타협할 수 없는 특성으로 말미암아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즐거움을 불러일으킨다.


와이너는 수년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작품을 설계하고 설치했으며, 세 가지 기본 글꼴과 제한된 색상 팔레트를 사용하여 자신의 작품세계를 다듬어 나갔다. 이번 전시에서는 유사한 중국어 글꼴과 그래픽 접근 방식을 사용하여 번역과 디자인에 공을 들였다. 대게의 작품들이 중국어와 영어를 병치, 또는 혼합한 식으로 전시되어있다.


그러나 영어와 중국어 모두 외국어인 입장에서 전시만으론 어떤 언어가 쉽게 이동하고, 어떤 언어가 장벽에 가로막힐 수 밖에 없는지 파악하는 즐거움을 누리지는 못했다. 허나 각국의 친구들과 서너 개의 언어로 소통하곤 하는 생활 속에서, 평소 생각지 못했던 '번역'의 절묘함을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였다.


 


inner flow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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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한 날이 마침 새로운 전시의 오픈 일이라 사람이 북적였던 곳이다. 역시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전시관 중간에 경사진 선반을 이용해 많은 작품을 전시해 두었다. 한 벽면은 그래피티 위에 작품이 걸려 있고 브라운관을 통해 이미지를 송출하는 등 다채롭게 꾸며져 있어, 이것이 분명 많은 젊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끌었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전시의 주제도 타이틀도 이곳만이 소화할 수 있는 도전적이고 깨어있는 것이었다. AI 디지털 회화와 이를 함축적으로 묘사한 '전지자의 농담', '전지자의 실능' 으로 풀이되는 제목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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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知失能 THE JOKE OF OMNISCIENCE

2024.09.13-2024.10.20

李一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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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마주해보는 AI 디지털 회화전이었다. 물론 작품을 감상하는 그 당시에는 유추해 내지 못했던 사실이다. 작가는 전시 창작 과정 전체가 끝날 때까지 AI의 이미지 생성 메커니즘을 속속들이 파악하거나, 그것을 완벽히 제어할 수도 없음에도 자신의 감각이 재현된 것에서 새로운 미학적 도전을 느꼈다고 한다.


작가는 오늘날 상당수의 예술가들이 AI 그래픽 생성 도구를 사용하고, 그다음에는 그 낯선 그래픽을 수제품으로 덮어 AI가 가져온 미학적 단절을 회피한다고 말한다. 한편 그는 2차원 평면 표현의 수작업성을 포기하고, 심지어 앤디 워홀처럼 실크스크린으로 복제하는 것도 포기 한 채 작품을 구상했다. 그는 "AI가 만들어내는 예술이 확실히 일종의 소외감과 단절감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것이 단지 기술이 가져다주는 도전일 뿐만 아니라, 관습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표현과 새로운 관람 방식을 발견하고, 기술이 주도하는 세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재조명하며, 기술의 부조리함, 그리고 이러한 부조리함이 가져다주는 삶의 처지를 태연하게 마주하고, 자기 주체성과 존재를 재발견하고 정의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도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도구의 발명은 인간의 감각과 기능의 확장과 개인과 사회의 단절을 동시에 가져오곤 한다. 하지만 AI는 인간의 상상력과 상상력을 표현하는 수단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단절은 결국 인간의 해방을 가져올지, 아니면 더 큰 울타리를 가져올지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인공지능의 도래는 현대성의 도래와 마찬가지로 당신이 그것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왔으며, 또 어디에나 있을 것이다. 예기치않게 불과 한 학기 전 대학교 교양수업에서 'AI의 창작물도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 에 대해 열띤 찬반토론을 나눴던 것을 불식시키는 답변을 얻게 되었다.


 


HdM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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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달여의 전시의 시작을 알린 곳이 한 곳 더 있다. 이너 플로우 갤러리는 자료를 정리하며 시작일인 것을 뒤늦게 알았다면, 이곳은 발을 들여놓을 때부터 감추지 못한 설렘이 가득 느껴졌다. 한켠에는 위스키가 버킷에 담겨 있고 데스크의 직원들은 모두 환한 미소를 고 있었으며, 전문 촬영장비로 영상을 찍는 것도 같았다. 우연히 전시의 시작을 목격하고 축복할 수 있어서 운이 좋다고 여겼다.


HdM 갤러리는 회화, 조각, 비디어, 설치 등 현대미술의 모든 분야를 전문으로 하며 특히 중국 작가에 중점을 두고 있다. 2021년 파리에 프로젝트 공간을 열고 국제적 아트페어에 참여하며 중국의 신인 작가들을 해외에 홍보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무엇보다, 798예술구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이었다. 오후 4시경의 채광이 작품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이 들만큼 공간의 무결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알고보니 천장에 일정한 간격으로 작은 직사각형의 창문이 내어져 있었는데 그곳에서 햇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다수의 갤러리가 동일한 형태의 창을 가지고 있는 걸 보아 공장을 개조한 덕인 듯하다. 완벽한 장소성의 생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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闷热的白天 IN THE POOL OF DAY 

2024.09.13-.2024.10.19

云永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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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고전적 사실주의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며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탐구한다. '삶과 죽음' 시리즈의 탄생은 2년 전, 작가가 인간 두개골 모형에 매료된 자신을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두개골 모형과 하인리히 하이네의 '죽음'이라는 시 한 편이 작품의 내러티브를 제공해 준다.


"우리의 죽음은 밤의 서늘함 속에 있고, 우리의 삶은 낮의 웅덩이 속에 있습니다."

 

"어둠이 빛나고, 나는 익사하고, 하루는 빛으로 나를 지쳤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은 영원한 망각"이라고 굳게 믿는다. 삶은 덧없으면서도 소중한 것이고 감정은 사라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진과 그림을 통해 소중한 기억을 보존하고자 한다.


꽃 화환으로 둘러싸인 의식적인 죽음, 잔디밭에서 예기치 않게 두 마리의 토끼에 의해 목격된 죽음. 죽음은 우리의 시야를 흐리게 하여 본질을 가릴 수 있다. 그만큼 삶과 죽음은 심오하고 복잡하다. 작가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그것을 정의하기보다는 단순히 순간을 포착하고 포용해야 함을 알게된다.



 

常青画廊 GALLERIACOMTIN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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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칭화랑은 1990 년에 이탈리아의 산 지미나노에서 설립되었으며 2005년 베이징 798 예술구에 두 번째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 프랑스 무린, 쿠바 하바나, 이탈리아 로마, 브라질 상파울루, 프랑스 파리,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새로운 공간을 열었다. 이로써 '믿고 보는' 을 어느 정도 증명하였으며 역시 기대에 엇나감 없이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생태실험실' 전시에서는 이번 단독전을 개최한 중앙미술대학 교수 주지걸, 중국 과학원 고에너지 물리학 연구소장인 왕이방과 함께 대담을 열고 예술과 과학의 만남에 대한 오프라인 대담을 나누었다. 이처럼 매 전시마다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전시연계 프로그램도 잘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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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态实验室 Eco-Lab

2024.05.23

邱志杰 Qiu Zhij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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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술가 자연이 창조한 방식으로 작품을 창조하는 작업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생명이 생명, 무기물은 무기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삶은 매일 무기물을 생산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이 자명한 사실과 함께 4가지 주요 주제를 논한다.


첫 번째는 ‘건조’이다. 작가는 이곳에서 소금, 모래, 옷, 햄, 해조류, 차잎 등을 말린다. 둘째는 ‘변화’이다. 돌이 풍화하고 세포가 노화하고 과일이 성숙하고 탈수와 침지가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세 번째 주제는 '방사능'이다. 우주선이 통과하고 엑스레이가 우리를 뚫고 태양의 자외선은 우리를 태우고, 방사선을 통해 서로를 다듬는다. 우리는 대부분 언어에 너무 의존하기에 보이지 않는 힘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힘이 부족한 것을 역설하는 과정이다.

 

네 번째 키워드는 ‘형태학’이다. 소라의 질감이나 얼룩말의 질감에는 고유한 매커니즘이 존재한다. 작가는 이러한 조형의 과정을 탐구하고 석회암 농축액을 떨어뜨려 종유석을 만드는 등 천연 3D 프린팅 기법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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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에서 엿듣던 사상통제나 한한령, 공동부유 정책 속의 문화탄압 등에 비추어 나도 모르게 중국과 예술은 공존이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예술은 불가침한 것이었다. 금단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이번에 소개한 전시에서 다뤄진 기후변화, 언어, AI, 죽음, 생태 등 핵심적인 담론에 동참하는 것에는 어떠한 구속도 없었다.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비평을 할 수는 없지만 이곳 798예술구는 계속하여 중국 예술가들의 세계를 간증해주는 공간으로 자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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