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이야기로 쓰기에 정말 흥미로운 소재이다. 쉽게 변화할 수 있고, 휘발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목부터 '메모리'인 이 영화 역시 기억을 소재로 실비아와 사울의 이야기를 다룬다.
아픈 기억을 가진 실비아와 자꾸만 기억이 사라지는 사울. 실비아는 어린 나이에 성적 학대를 받았고, 그때의 괴로운 기억이 어른이 되어 중학생 자녀를 키우고 있는 지금까지 그녀를 괴롭힌다. 사울은 치매 환자로 최근 들어서는 그 증세가 더 심해져 본인의 집도 제대로 찾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우연한 만남"
사울과 실비아는 정말 우연히 파티에서 만나게 되었고, 파티가 끝나고 난 다음날 사울은 실비아 집 앞에서 노숙하는 채로 발견된다. 집 가는 길을 잊은 것인지, 실비아를 뒤쫓아 왔는지 그에게 아무리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모른다." 뿐이다. 사울은 정말 모른다. 자기 자신도 왜 그곳에 갔는지.
이때까지 실비아는 자신에게 나쁜 기억을 안겨준 유년 시절의 가해자를 사울로 오해한다.
시간이 점차 지나고 주변 사람들에 의해 오해가 풀리며, 실비아는 사울을 돌보아 주는 일을 하게 된다. 가족들이 부재한 시간 동안 사울을 돌보고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며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주위 대부분의 사람은 둘의 만남을 걱정한다. 실비아의 부모님은 실비아가 마치 리플리 증후군을 가진 듯이 이야기하고 사울의 가족은 그가 정상적인 사랑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진실한 응원을 건네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계속 기억을 잃는 사울과 아픈 기억을 가진 실비아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서로의 아픈 점 그 자체 때문 아니었을까. 한치의 아픈 기억 혹은 기억에 관한 하자가 전혀 없는 사람이 진정으로 이 둘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들은 서로를 보며 마치 자신의 일부를 맞이한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 부분이 서로를 더 감싸주었고, 그들에게 서로의 아픔은 그렇게 큰 하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의 사랑에 비한다면.
실비아가 사울의 집에서 그에게 기대어 자는 모습은 실비아가 사울의 보호자라는 생각을 잠시 잊게 만든다. 나무처럼 든든하게 누워있는 사울과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기대어 있는 듯한 실비아. 이 두 인물의 관계가 일방적으로 챙겨주는 관계가 아님을 시사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이 장면을 보고 왜 갑자기 상황이 역전된 연출을 보여주는지 의아했지만, 이내 영화를 보고 나서 사울이 실비아에게 얼마나 큰 사람인지 알게 된 후 이 장면은 영화 속 최고의 장면으로 필자의 기억에 남았다.
젊은 거장 미쉘 프랑코 감독의 첫 사랑영화 [메모리]는 지금도 만나볼 수 있다.
새해를 따뜻하게 반겨줄 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꼭 만나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