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피스] 패턴과 인물의 이야기를 엮는 일러스트레이터 해피밀의 세계

디저트와 같은 한 입을 선사하는 일러스트, 해피밀의 세계를 들여다봅니다
글 입력 2025.01.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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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4.png

 

혼자서는 볼 수 없었던 세상을,

그들의 시선과 역사를 빌려 완성합니다.

그렇게 그들의 마스터피스를 이해합니다.

 

 

 

패턴과 인물을 엮어 그림에 담아냅니다, 해피밀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패턴과 인물 사이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가 해피밀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크기변환]해피밀.jpg

 

 

-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여쭙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그림에 대해 생각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저는 그림과는 정말 먼 사람이었거든요. 하하.


그런데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면서 문득 현재 거주하는 곳으로부터 멀리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죠. 그 과정에서 타 지역에 있는 고등학교를 찾다가 발견한 것이 바로 기존에 살던 집에서 한 시간 반 정도의 거리에 있는 예술 고등학교였어요. 사실상 중학교 학생이 다른 곳으로 떠나기 위해서는 타 지역에 있는 고등학교를 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오직 지금 지내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미술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1년 정도 준비했는데 정말 운이 좋게 예술 고등학교에 합격했고, 그렇게 애니메이션과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 하하, 미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정말 색다른 것 같아요. 거주하는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예체능 고등학교를 목표로 했던 것이라면, 체육이나 음악도 함께 고려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저는 태권도를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아무래도 제가 여성의 몸으로 체육을 전공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셨어요. 그래서 저에게 남은 선택지는 음악과 미술이 되었죠. 음악과 미술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지 굉장히 고민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제가 원래 음악보다는 미술을 더 좋아했어요. 얇은 미술 교과서를 살펴보며 미술의 역사를 훑어보는 것도 무척이나 재미있었고, 지금은 구시대적이라고 느껴지는 미술이 당시에는 트렌드를 선도하는 일부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굉장히 흥미롭더라고요. 또 제가 지방에 거주했어서 상대적으로 전시를 접할 기회가 잘 없었는데, 그래서 더욱 미술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아요.

 

 

- 그렇다면, 그렇게 갑작스럽게 시작하게 된 미술은 어땠나요? 갑작스럽게 입시 미술을 시작하게 된다는 것은 정말 낯선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

 

입학하고 일주일도 안 되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하하하.

 

예술 고등학교, 그중에서도 미술 학과는 학생들의 그림을 벽에 전부 걸어놓고 평가하는 시스템이잖아요. 저는 손이 느린 편인데, 다른 친구들이 그림을 어느 정도 완성이 되었을 때 저의 그림은 스케치만 되어서 걸려있었어요. 또 저는 1년 준비하고 급하게 예술 고등학교에 입학한 것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친구들에 비해 기초적인 실력도 많이 부족한 상태였죠. 그런 상황에서 주눅이 많이 들었던 것이 기억이 나요.

 

그런데 계속 예술 고등학교에서 다른 친구들과 그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실력을 쌓아가며 점차 그림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던 것 같아요. 서로 응원해 주며 동일한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는 것이 무척이나 소중한 경험이더라고요.

 

 

- 애니메이션과를 전공하셨다는 것도 놀라워요. 작가님의 작품은 애니메이션보다는 회회의 느낌이 강하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맞아요. 사실 예술 고등학교에서 미술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저의 진로 선택의 폭은 굉장히 좁아진 것이잖아요. 갑작스럽게 미술을 시작하게 된 후, 그 안에서 저의 적성을 찾아 나가며 이것저것 시도해 보니, 애니메이션보다는 회화가 저의 성격과 조금 더 잘 맞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선생님께서도 저에게 애니메이션보다는 회화를 추천해 주시기도 했고, 저 또한 정말 재미있게 회화 수업을 들었어요. 자연스럽게 그림도 애니메이션보다는 회화의 성격을 띠게 되었습니다.

 

 

 

동화의 순간을 포착하여 담습니다, 해피밀과 동화 일러스트



- 처음 그림을 그리며 정체성을 확립했을 때, 작가님께서 그리고자 하셨던 그림의 방향성에 대해 궁금해요.

 

저의 예전 그림은 따뜻한 분위기가 특징이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최근 그림의 주류는 깔끔하고 화려한, 게임 일러스트에 가까운 그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의 그림은 그런 느낌과는 거리가 굉장히 멀었죠. 일부러 그런 그림 스타일을 시도를 해보아도 저의 그림의 특색이 다 묻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이어나가기 어렵더라고요. 아쉬움이 컸어요.

 

그렇다면 저의 그림의 특징을 잘 살릴 수 있는 방향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발견한 것이 바로 동화 삽화였어요. 선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고, 색도 저만의 특색을 살려 잘 표현할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저의 초창기 그림은 ‘동화’를 주제로 해서 그렸던 그림이 많아요. 하나의 특정한 동화를 정해놓고, 그 안의 이야기를 저의 방식대로 재해석하거나 비틀어보는 작업을 많이 했죠. 예를 들어 인어공주의 그림을 그린다면, 인어의 하반신이 물고기의 형상이 아닌 뱀의 형상처럼 그려져도 흥미로울 것 같다고 생각하며 저만의 인어의 그렸어요.

 

그런 식으로 동화의 전체적인 이야기 중 한 장면을 그려서 사람들에게 그림 속의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무척이나 즐거웠습니다.

 

 

- 그렇다면 동화적인 그림을 추구하셨을 때의 그림을 소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래의 두 그림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첫 번째 그림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프시케를 생각하며 그렸던 작품이에요. 중세 복장을 섞고, 어둠 속에서 밝히는 빛 아래에서 촛불을 들며 다짐했던 결심을 표현했던 작품입니다.

 

 

[크기변환]한여름.jpg

 

 

두 번째 그림은 구름 사이로 흐르는 빛무리를 저의 일러스트 안에 녹여 표현하고 싶었던 작품이에요.

 

조금 뜬금없을 수 있지만, 영화 [해피투게더]가 홍콩 제목으로는 [춘광사설(春光乍洩)]이에요. 직역하면 ‘구름 사이로 잠깐 비추는 햇살’을, 의역하면 ‘은밀한 비밀을 드러내다’를 뜻하죠. 이 ‘춘광사설’이라는 단어에서 착안하여 인물과 동물 떼 위로 흘러들어오는 햇빛을 저의 방식대로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렸던 그림입니다.

 

 

[크기변환]2021 (4).jpg

 

 

둘 다 당시 제가 추구했던, 섬세하고 따뜻한 그림의 방향을 잘 나타낸다고 생각해요.



- 당시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복장보다는, 다양한 나라의 전통 복장들을 확인할 수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의 당시 작품은 [좋은 날 여행을]인데, 해당 작품에서도 몽골의 전통 의복을 입은 인물을 확인할 수 있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하하.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 보다는, 당시 제가 다른 나라의 전통 복장에도 빠져있었어요. 그때 그렸던 전통 의복 중 러시아의 의복이 많은데, 그것은 당시 제가 찾아봤던 의복 자료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러시아의 복장이었기 때문이에요. 그 당시에 그렸더 그림들은 정말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 그렸던 그림이들이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의상 속에 특별한 의미를 담으며 그림을 그렸다기 보다는 그저 그 당시 제가 사랑했던 것들, 관심을 가졌던 것들에 이야기를 꾹 꾹 눌러 담아 그렸던 것이 대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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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님의 작품 중 [피카부]도 한 번 언급하고 싶어요. 작품 안에 담긴 이야기가 유독 궁금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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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부’가 우리나라 말로 한다면 ‘까꿍’이잖아요. 숨어있다가 누군가를 놀래며 하는 말이죠. 이 그림을 그릴 당시 아이돌 그룹 레드벨벳의 [피카부]를 들었는데, 아시겠지만 해당 음악이 단순히 밝고 활기차기만 하지는 않아요.

 

그러한 분위기에서 착안하여 짐승의 탈을 쓴 아이들이 뒤에 숨은 짐승으로부터 도망치듯, 술래잡기한다는 이야기를 담아 그렸던 그림입니다. 탈을 쓰지 않은 친구들이 탈을 쓴 아이들에게 홀려서 함께 뛰어다니는데, 사실 탈을 쓴 아이들이 뒤에 숨은 짐승에게 탈을 쓰지 않은 아이들을 인도하는 것이었다는 숨은 이야기가 있는 그림이에요.

 

 

- 지금까지 작가님의 '동화스러운' 작품을 살펴봤어요. 그런데 아래의 그림은 같은 '동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임에도 작가님의 갤러리에서 굉장히 눈길을 사로잡아요. 기존의 그림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고, 무척 그 채도가 높으니까요.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작품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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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그림은 기존까지의 저의 그림에서 선택의 폭을 넓히고 싶은 마음에 변화를 주었던 그림이에요. 앞서 저의 그림을 함께 살펴봐 주셨기 때문에 느끼셨겠지만, 항상 저는 아련하고 몽글몽글한 느낌으로 색을 칠한다는 피드백을 많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저의 그림이 특정한 프레임 안에서 갇혀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열망을 항상 갖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그렇다면 정반대로, 완전히 쨍한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어요. 구도적으로도, 프레임 적으로도 기존의 그림과는 조금 다른 변화를 주고자 했죠. 빨간망토가 선택의 갈림길에 서서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는데, 저 또한 지금 봐도 흥미롭게 그려진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화려한 패턴에 스며든 인물의 이야기, 해피밀과 패턴 일러스트


 

- 최근의 그림 스타일은 앞서 소개해 주신 '동화 삽화'와는 조금 결이 달라진 것 같아요. 최근 작가님의 작품을 보다 보면 마치 패션 화보와도 같다는 생각도 들죠. 이러한 그림으로 스타일이 변하게 된 계기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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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만화를 굉장히 좋아하고, 학과도 만화와 관련된 전공을 했지만, 사실 그보다 더 큰 관심을 가졌던 것은 영화였어요. 중학생 시절부터 영화 감상이 취미였고, 다양한 영화들을 접하면서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죠.


그 중에서도 특히 영화 속 벽지와 옷에 표현되는 패턴, 즉 미장센에 매료되었어요. 평소에는 우리가 쉽게 신경 쓰지 않는 벽지의 패턴이나 옷의 디자인이 사실 그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것이 굉장히 흥미로롭게 느껴지더라고요.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프레임을 가득 채우는 패턴이 한 인물을 대변한다는 것이 저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죠.


이러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무대 미술과 아트 디렉팅으로 이어졌어요. 하지만 제가 다니는 학교에는 그와 관련된 수업이 많지 않아 전문적으로 배우기는 어려웠고, 대신 무대 미술과 아트 디렉팅이라는 저의 관심사를 일러스트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니, 복잡하고 반복되는 패턴을 활용한 일러스트가 많지 않더라고요. 특히 현대의 일러스트에서 유독 찾아보기 어려웠죠. 오히려 과거의 그림들이 제가 선호하는 분위기를 많이 담고 있었어요. 과거에는 포토샵이나 클립 스튜디오와 같은 디지털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 처럼 화려한 효과나 디지털 표현은 볼 수 없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턴을 활용하여 시선을 끄는 포스터 일러스트들이 저에게는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결합하여, 과거의 빈티지한 패턴들과 제가 좋아하는 영화적인 스타일을 일러스트에 담아내면 저의 그림이 훨씬 풍성하고 아름다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관련된 책을 많이 구입하고 몰두해서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패션, 패턴, 그리고 인물의 동작에 담긴 역동성을 연구하며 그것들을 한 장의 그림에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처음 패턴을 접목시켜 그리신 작품이 바로 [Heart on Wave] 시리즈였고, 중간에 잠시 여름의 느낌이 가득한 [여름의 연인] 시리즈를 그리셨다가 다시 [SCENE] 시리즈로 패턴에 집중하기 시작하셨던 것 같아요. 여기에서 느껴지는 작가님의 또다른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시리즈로 항상 전혀 다른 스타일의 그림을 선보여 주신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작가님께서 그림에 대한 고민이 굉장히 많았던 것이 느껴져요.

 

맞아요. 특히 2021년도에서 2022년도 사이에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과 많이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나요. 그때는 '내 그림의 완성도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것일까' 등의 고민을 서로 나누며 조언을 주고받았죠. 그 당시 친구들이 저에게 해줬던 조언은 '섬세하게 선을 쓰는 걸 잘하고, 색감도 포근하고 따뜻하니 그 선과 색감을 살리면서 네가 좋아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그 말을 듣고 나서, 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연구하고 시도하며 조금씩 갈피를 잡아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저는 일러스트레이션 페어 같은 자리에 제 작품을 소개할 때는 기존의 작품만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해서 항상 새로운 스타일을 도전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특정한 주제를 잡고 과거 친구들과 나눴던 고민들을 바탕으로 그 주제 안에서 그림을 통해 새로운 것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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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항상 새롭게 보여드리고 싶다고 생각하고 작업에 들어가는, 특정한 주제를 정하는 기준이 있을까요?

 

아니요, 이것은 어쩌면 '새로운 작품을 보여주고 싶다'는 저의 강박에서 자연스럽게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그냥 제 성격이 그런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항상 갑자기 불현듯 '이런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아이디어가 머릿속에서 떠오르거든요. 어떤 때는 스카프를 그려보고 싶고, 어떤 때는 바다를 그리고 싶고... 그러면 그것을 바로 다음 작업으로 이어나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제 그림을 점점 확장해 나아가는 중입니다.

 

 

- 작가님의 패턴 시리즈 [SCENE] 중 [파도]는 유독 영화 [헤어질 결심]이 떠오르는 작품이에요. 앞서 작가님께서 본인을 소개해 주실 때 '패턴가 인물 사이의 이야기를 그린다'고 해주셨는데, 해당 작품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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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그림은 말씀해 주신 것처럼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착안하여 그린 그림입니다.

 

제가 [헤어질 결심]의 대사 중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 거야.’라는 대사를 무척 좋아하거든요. 그 문장을 보고 ‘파도처럼 슬픔이 밀려온다는 것을 패턴이 담긴 일러스트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생각하며 그렸던 그림이에요. 슬픔이 파도처럼 몰아친다면 그 인물의 내면은 자연스럽게 복잡할 수밖에 없잖아요. 치마의 패턴도 그런 마음을 표현하며 굉장히 복잡하고 휘몰아치는 듯한 모양으로 그렸어요.

 

그런데 만약 제가 그저 부정적인 내면만을 완전하게 표현하고자 했다면 반짝임을 상징하는 금색으로 치마를 칠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퍼석퍼석한, 회색과도 같은 무채색의 계열을 사용했을 것 같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치마의 메인 컬러로 골드를 칠했더니 이유는 그런 파도처럼 몰아치는 슬픔 속에서도 분명히 어딘가에는 반짝임이 존재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 안에서 반짝거리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고요.

 

치마와 스카프 등에서 묘사를 정말 공들이기도 했고, 그만큼 작업 시간도 오래 걸렸기 때문에 제가 가장 애정하는 그림이자 지금의 저를 대표하는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 요즘은 자동으로 복잡한 패턴이나 액세서리가 묘사되는 소재가 많이 사용되고 있죠. 그런 점에서 치마의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공들여 그리는 작가님의 수작업은 무척이나 섬세하고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앞으로 작가님이 그려주실, 패턴과 인물의 일러스트가 너무 기대 되네요.


저도 소재를 사용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사실 패턴을 그리려면 많은 레퍼런스가 필요하고, 그 작업은 시간도 굉장히 많이 들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사랑하는 것은 수많은 레퍼런스를 참고하고,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한 땀 한 땀 공들여 그려낸 저의 노력이 담긴 그 느낌이에요. 그런 과정이 결국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도 저는 계속 영화 미술, 공간 미술, 그리고 패턴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요. 단순히 특정한 공간을 묘사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공간 안에 인물의 내면이 담겨 있다는 점이 정말 매력적이거든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물을 배제하고 그림을 그릴 생각은 없어요. 아무리 공간이 사람의 내면을 표현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결국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니까요. 시각 예술을 볼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인물의 얼굴과 몸짓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하나에 집중해서 파고들기보다는, 이 두 가지가 가장 잘 어우러질 수 있는 방향을 연구하고 싶어요. 

 

 

 

마무리 지으며


 

- 앞서서 작가님께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스타일을 도전하고 그림을 확장하고 싶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새로운 스타일'에 대한 발전 방향성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노력하고 계신 것 같은데, 기존의 스타일을 고수하기 보다는 새로움을 계속 추구하는 이유는 작가님의 그림에 대한 열정 덕분일까요?

 

냉정하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금전적인 문제가 커요. 말씀드렸던 것처럼 기존의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 위주의 그림을 그렸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저의 위주로 그림을 그리다 보니 대중의 취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동시에 제가, 제가 좋아하는 것만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다양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함께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제 그림의 변화와 성장 과정을 꾸준히 지켜보신다면 제가 어떤 것들을 할 수 있는지 자세하게 아실 수 있지만, 아무래도 그런 분들은 소수잖아요. 대부분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일러스트레이션 페어 같은 곳에서 발견하는 몇 장의 그림으로 저의 그림을 받아들이시게 되죠. 그래서 그림 한 장을 그리면서도 자연스럽게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넣어 보여드리게 되었고, 그림의 확장에 대해서도 염두에 두게 되었습니다.

 

 

- 그렇다면 지금 작가님의 꿈이 있다면.

 

지금은 그림을 즐겁게 그리던 과거에 비해서는 욕심이 굉장히 커진 것 같아요. ‘나는 여기에서 더 잘할 수 있다’는 마음에 즐기며 그림을 그리기 보다는 과하게 노력하며 그리게 되거든요. 물론 저의 그림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에 놓여 있다고도 생각하지만, 그래도 다시 그림을 즐겁게 그리고 싶은 것 같아요. 자료를 참고하고, 그림에 최선을 다할수록 즐거움보다는 부담감이 커지다보니 지금은 숨 틀 틈도 없이 빽빽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지금의 제가 그리는 그림은 마치 뷔페에 처음 온 사람처럼, 흘러넘치듯 접시에 이것저것 꽉 꽉 눌러 담은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이것도 맛 보세요, 이것도 맛있어요, 이것도 함께 드셔보세요'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훌륭한 음식은 아주 작게만 맛을 보여줘도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잖아요. 제가 닉네임을 ‘해피밀’이라고 지었던 이유도, 굉장히 깔끔하고 아름답게 플레이팅 된 접시에 담긴 음식을 행복하게 맛보는 것처럼 저의 그림을 맛보고, 기쁨을 느끼셨으면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림에도,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저에게도 여유를 불어넣어 그러한 저의 목표를 이뤄내고 싶어요.

 

 

- 그림을 음식에 비유해 주신 것이 무척이나 인상 깊어요. 음식에는 애피타이저, 디저트, 패스트푸드, 한정식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잖아요. 깔끔하게 플레이팅 된 음식이라고 해주셨는데, 특정 종류로 비유를 해주신다면 작가님의 그림은 어떤 종류의 음식일까요?

 

하하,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의 그림을 하나의 음식에 비유한다면, 저는 디저트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사실 디저트는 굉장히 작잖아요. 코스 요리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나오고요. 그 말은 즉 이미 배가 부른 상태에서 나오는 음식이기 때문에 굳이 먹지 않아도 되는 음식이라는 뜻이잖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꼭 먹어야만 하고, 그 작은 양으로 그 모든 식사를 행복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돕는 완벽한 한 입이 되고 싶어요.

 

 

- 디저트와 같은 그림이라니 무척 즐거운 비유입니다. 작가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그림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어요. 작가님께서 되고 싶으신 일종의 목표가 된다는 '좋은 그림'은 어떤 그림일까요?

 

타인이 보았을 때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림이 되었으면 해요. 

 

실제로 저도 다른 분의 그림을 보며 그 그림에 크게 감탄하고,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마음이 울렸던 경험이 있어요. 지인과 함께 전시에 갔을 때 마주했던 그림인데, 저는 그 그림을 보았을 때는 계속 입꼬리가 올라가고, 계속 다시 살펴보고 싶었죠. 그런데 옆에 있는 친구는 그 그림을 보면서 굉장히 무덤덤한 거예요. 그때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은 정말 개인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저는 그림을 이미 그려왔던 사람에게도, 혹은 아예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는, 다수의 개인, 다양한 분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 인터뷰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인사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저에게 관심을 주신 분들 모두 항상 행복하시고, 앞으로도 제 그림을 계속 지켜봐 주셨으면 합니다. 저를 지켜보시는 그 시간이 후회는 없으실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계속 발전할 거고, 제가 저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끊임없이 그림을 그릴 거예요. 그 과정에서 항상 새로운 것을 보여드릴 테니 믿고 지켜봐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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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푸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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