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피스] 사랑하는 세계를 표현하는 파랑, 작가 물개미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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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는 볼 수 없었던 세상을,
그들의 시선과 역사를 빌려 완성합니다.
그렇게 그들의 마스터피스를 이해합니다.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제가 사랑하는 세계를 그리고 있는 작가 물개미라고 합니다. 지금은 주로 애니메이션과 일러스트로 저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먼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저는 기억할 수 없는 시점부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고 부모님께 자주 들었어요. 아무 때나 연필과 종이만 주면 항상 끄적이며 혼자 놀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갖고 있는 가장 오래된 그림의 기억은 5살 때 친오빠와의 기억이에요. 4살 터울이라 어릴 적에는 오빠가 그림, 운동 등 모든 면에서 저보다 조금 더 잘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조는 오빠를 따라서 자주 이것저것 했죠.
어느 날은 오빠가 만화책을 보고 그것을 종이에 따라 그리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오빠의 옆으로 가서 ‘나도 해봐야지’ 하고 함께 그렸죠. 그런데 아무래도 5살과 9살의 차이잖아요. 오빠는 굉장히 잘 그리는데, 저는 미숙한 것이 결과물로 눈에 딱 들어오는 거예요. 그 순간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오빠는 저렇게 잘하는데 나는 왜 못하지? 나도 잘하고 싶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제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그림’의 추억이에요.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려왔고,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 이름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어요. ‘물개미’라는 이름을 짓게 된 계기에 대해서 설명해 주신다면.
‘개미’라는 이름은 ‘열 개(開)’에 ‘아름다운 미(美)’를 붙여서,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고자 하는 저의 방향성을 담은 이름이에요.
사실 여기에는 작은 비하인드가 있는데, 하하, 처음에는 ‘흰개미’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싶었어요. 그냥 ‘개미’라고만 저를 지칭하자니 조금 밋밋한 느낌이 들어서 저를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단어를 함께 붙이자고 고민하다가 ‘흰개미’로 결정하게 되었죠. 그런데 어느 날 알고 보니 흰개미가 엄청 한 해충이라고 하더라고요. 하하. 그냥 하얀 개미일 줄 알았는데, 심지어 ‘바퀴벌레의 친척’이라고까지 하더라고요. 그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저는 바퀴벌레의 친척이 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그 사실에 너무 충격을 받아서, ‘흰’ 대신 제가 좋아하는 ‘물’을 넣어 ‘물개미’라는 이름으로 작품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개미의 세계 속 '예술'의 정의를 살펴봅니다.
- 작가님 작품의 큰 특징은 깔끔하지 않은,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선과 강렬한 색감이라고 생각해요. 원래 이런 데포르메 스타일을 추구하셨었나요?
사실 본래의 저의 성향은 지금의 그림 스타일과는 굉장히 달랐어요. 저는 강박적인 면이 있어서, 오히려 딱딱 떨어지는, 깔끔한 선을 추구했었죠. 색상도 지금과는 다르게 파스텔 톤을 많이 사용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고 나니 어느 순간 저의 그림이 밋밋하다고 느껴졌어요. 특히나 질풍노도의 시기잖아요. 그때 저의 그림의 매력에 대하여 굉장히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어요.
저는 표현하고 싶은 것이 참 많은데, 제 그림은 어딘가에 갇혀서 답답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구도도 항상 비슷한 구도만 그리는 것 같았고, 그림의 전체적인 형태가 획일화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죠. 완성된 그림을 보면 불편한 점은 없었지만 특출난 매력이 없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것은 제가 원하는 궁극적인 창작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항상 창작물을 볼 때 그 뒤에 있는 작가님을 함께 생각해요. 그분의 세계가 온전히 담겨있는 작품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작가님이 표현하고 싶으신 바, 혹은 그분만의 철학이 묻어 있는 작품을 보면 정말 행복해져요.
그런데 기존의 제가 그렸던 ‘불편함도, 특출난 매력도 없는 그림’은 단순히 시각적으로 거슬리는 부분이 없게 그려진 그림일 뿐이었지 제가 선호하고 존경해왔던 그림은 전혀 아니었어요. 물론 시각적인 부분도 중요해요. 저는 제가 담은 의도, 더 나아가 저라는 사람 자체가 잘 담겨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고, 그때부터 제 그림에 대해 정말 깊게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의 기존 스타일에서 탈피하고 한층 더 성장하기 위해 제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의도적으로 엉망으로 그리는 것’이었어요. 일부러 잘 안 쓰는 색을 쓰며 파스텔톤이 아닌 강렬한 색으로 덮어버리기도 하고, 오른손잡이임에도 왼손으로 선을 그어서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죠. 일부러 손에 힘을 풀어서 부들부들 떨면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뾰족하지 않은 것을 뾰족하게 그려보기도 했어요. 제가 느꼈던 답답함, 그리고 제가 갇혀 있었던 기존의 형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을 했어요. 그때의 경험들로부터 지금의 데포르메 스타일이 형성되었습니다.
- 기존의 스타일에서 벗어나 의도적으로 엉망으로 그린다는 것이 정말 어려웠을 것 같아요. 특히 작가님은 오랫동안 깔끔한 스타일을 추구하셨으니 더 힘드셨을 텐데요.
맞아요. 정말 어려웠어요. 하하. 기존의 습관을 떨쳐내는 데 꼬박 1년 정도가 걸렸어요.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려왔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정형화된 느낌을 표현하려는 습관이 계속 남아 있더라고요. ‘여기에는 이 색과 이 명암을 써야 가장 예쁠 것 같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참 어려웠죠.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 결국 저의 생각과 저라는 사람 자체를 담기 위해서는 제 생각이 먼저 확실히 정립되어야 그림도 저를 잘 담아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저라는 사람, 그리고 제가 갖고 있는 생각들을 표현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 것 같아요.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글로 옮겨보기도 하고, 소리로 표현해 보기도 하고, 지금의 감정을 사운드로 표현하면 어떤 사운드가 나올 수 있을지 살펴보기도 했죠. 저는 원래 그림만 그리던 사람이었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이 창작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고 나니 꼭 그림 연습이 아니더라도 저를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연습한다면 결국 그림을 그릴 때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어요. 그래서 제 안에 있는 것들을 그림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것은 단순히 그림의 표현법에서 국한되었던 문제가 아니라 저의 삶 전반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부분이었고, 저는 그림과 함께 극복했던 것 같아요. 그림뿐만 아니라 제 삶을 대하는 태도에도 많은 성장이 있었습니다.
- 오랜 시간 그림을 그리며 숙련도를 쌓아온 사람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은 낯설면서도 즐거운 경험일 것 같아요. 그림 외의 예술로 자신을 표현했을 때 작가님은 어떤 감정을 느끼셨나요?
맞아요. 그림은 20년 넘게 그려왔지만, 글과 사운드는 정말 처음 시도해 보는 분야였어요. 그 전까지는 배운 적도, 시도해본 적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처음 시작할 때 정말 설레더라고요. ‘이런 창작도 해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새로운 것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초심자의 마음으로 임하게 되니까 더욱 즐거웠던 것 같아요.
특히나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강박적인 성향이 조금 있는데, 아예 새로운 분야에서 작업을 하게 되니 ‘못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부담을 덜 수 있는 그 사실이 저에게는 참 자유롭게 느껴져 좋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제 창작물은 제가 가장 좋아하게 되더라고요. 하하. 제가 쓴 글은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지만, 그것을 소비하는 유일한 사람이 되어 혼자 읽어도 참 좋았어요. 제가 담고 싶었던 생각이 100% 와닿으니까요. 정말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
- 작가님과 음악의 관계가 밀접하고, 후속 이야기도 음악과 연결될 것 같습니다. 이 인터뷰를 읽으며, 혹은 작가님의 작품을 보며 함께 들었으면 좋겠는 작가님만의 테마곡이 말씀해 주시겠어요?
만약 제가 저의 작품의 테마곡을 자유롭게 말씀드릴 수 있다면 저는 악동뮤지션의 <물 만난 물고기>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 앨범을 너무 좋아해서, 그 앨범과 관련된 이찬혁 아티스트님의 도서 <물 만난 물고기>도 소장하고 있거든요. 그 책과 앨범 모두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 예술관이 제 예술관과 많이 맞아떨어져요. 작품 활동을 하는 창작자가 본인 스스로 예술이 되고, 작품이 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곡과 앨범, 책이기 때문이에요.
저도 창작자로서 자신만의 세계가 확립되어 있고, 내가 추구하는 바가 확실하다면, 어떤 일을 하든 그 모든 것이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글이든 그림이든 예술의 형태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저 모든 행위가 하나의 작품이 되는 삶이 진정한 창작자의 삶이라고 생각해서, 이 음악와 책에 공감하는 바가 참 많아요. 그래서 저도 그런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하나의 꿈이자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확신을 갖고 나아가서, 그 확신의 길이 모두 작품이 되는 창작자가 되고 싶어요.
- 창작자 스스로의 세계가 명확하다면 창작자 본인이 예술이 된다고 생각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예전에는 정형화된 그림을 그렸고 그로 인해 크게 고민을 하던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저는 단순히 그림 스타일로부터 ‘탈피하고 싶다’는 고민만 한 것이 아니었어요. 제 세계 자체가 흔들리고 있었거든요. ‘내가 하고 싶었던 예술은 이게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예술을 해야할까’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저는 힘들 때마다 아쿠아리움에 가서 혼자 수족관 속 물고기를 보고는 해요. 일종의 습관이자 루틴인데, 그때도 아쿠아리움에서 멍하니 물고기를 보며 ‘나는 앞으로 무슨 창작을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물고기 정말 예쁘다’ 감탄하며 지나가더라고요.
그 순간이 저에게는 굉장히 색다르게 다가왔어요. 물고기들은 자신이 어떻게 헤엄쳐야 아름다울지 생각하고 헤엄치지 않을 것 아니에요. 그저 자신이 가고 싶은 대로 유유히 헤엄칠 뿐이었죠. 그런데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상하죠. 가둬서 감상하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요.
그때 ‘그럼 진정한 예술가는 자신이 헤엄치고 싶은 대로 헤엄치면, 사람들은 다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되는지가 어떻게 아름답게 보일까 보다 더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이 답변 모두 앞서 작가님께서 선호한다고 말씀해 주셨던, '창작자의 세계가 온전히 담겨있는 작품'과도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 담아내고자 하는 작가님의 세계는 무엇일까요?
저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하나지만, 각자 다른 세계를 가지고 이 세상을 구성한다고 생각해요. 같은 물건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감상이 다르고, 시선도 다르고, 느끼는 바가 다르니까요. 그런 요소 하나하나가 모여서 한 사람의 세계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직 많이 불완전한 상태지만,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며 저만의 세계를 확장하고 설립해 나가고 있어요.
현재 담아내고 있는 저의 세계는 '파란색'으로 표현이 되는 것 같아요. 제 그림에는 짙은 파란색을 사용한 그림이 굉장히 많아요. 저는 파란색이 진중하고, 깊이 있는 색상임과 동시에 찬란함도 담고 있는 색이라고 생각해요. 정반대의 두 면모를 함께 표현할 수 있는 멋진 색이죠. 제가 파란색을 많이 사용하는 이유 중 하나가 저에게 그런 면모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어둡고 이상하지만, 반짝임이 느껴지는 것이 바로 저의 세계인 것이죠. 그래서 그 느낌을 파란색을 통해 그림 안에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항상 생각해요.
- 다양한 색 중 유독 파란색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있으실까요?
저는 바다를 정말 좋아해요. 바다를 보다 보면 새파란 물결 위로 윤슬이 반짝이는 모습이 찬란하잖아요. 그런데 심해를 들여다보면 그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어둡고, 무서운 일도 많이 일어나죠. 심지어 우리가 모르는 일까지도요. 실제로 인간이 지금까지 탐사한 심해는 10%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해요. 저는 이 바다의 다양성이 파란색이라는 색의 특성 자체와 굉장히 밀접하게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저의 활동명에는 ‘물’자가 들어가는데, 그래서 그런지 저는 바다를 포함에서 물로 된 모든 것들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마시는 물고 좋고, 실생활에 사용되는 물도 좋고, 자연 속의 물도 참 좋아요. 그런데 물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색상이 바로 ‘파란색’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 작품을 이루고 저의 세계를 나타내는 메인 컬러로 자리 잡게 된 것 같습니다.
작품으로 살펴보는 물개미가 사랑하는 세계
- 작가님의 작품 중 하나를 소개해 주신다면, 어떤 작업이 가장 먼저 떠오르실까요?
아무래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올해 여름 작업했던 <달의 바다>라는 음악의 뮤직비디오인 것 같아요. 저의 오랜 꿈 중 하나가 바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것이었는데, 감사하게도 저를 믿고 맡겨주셔서 처음으로 작업했던 뮤직비디오 작품이거든요. 살면서 그렇게 분량이 긴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본 것이 처음이었어서 참 즐겁게 작업했고, 아직까지도 굉장히 인상 깊은 작품으로 남아있어요.
- 뮤직비디오 제작자가 오랜 꿈이었다고 해주셨는데, 그 계기를 여쭤봐도 될까요?
제가 옛날부터 음악 듣는 것을 정말 좋아했어요. 어느 정도였냐면, 입시 생활을 할 때는 수업 시간에 노래를 듣기가 어려우니까 집에 갈 때 들을 노래를 전날 새벽에 미리 정해놓고, 그날 하루는 그 노래만을 떠올리며 힘을 내고 버텼어요. 그리고 하교 때 그 노래를 듣는 것이 그날 저의 유일한 위안이었죠.
그런데 노래를 들으며 집에 갈 때, 머릿속에서 정말 다양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거예요. 노래와 어울리는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고, 어떤 박자에서 어떤 영상이 어떤 타이밍으로 나오면 좋을지에 대한 생각도 들었어요. 이 생각을 제가 공부를 하듯 의식해서 한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꾸준히 하게 되더라고요.
그때 ‘혹시 나는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싶은 걸까?’ 싶었고, 그때부터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요.
- 실제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해 보니 어떠셨나요? 꿈꿔온 부분과 맞닿은 부분도, 조금 다른 부분도 있었을 것 같은데.
제가 꿈꿔왔던 부분과 가장 일치했던 점은, 곡을 받은 후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텔링을 짜고 그에 맞는 영상을 제작하는 과정이었어요. 특히 <달의 바다>는 통통 튀는 느낌이 강한 곡이라 사운드가 강렬한 부분이 많았어요. 그 부분에 맞춰서 캐릭터들의 움직임을 기획하고 타이밍을 맞추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물론 어려웠던 부분도 있어요. 저는 이 곡을 듣고 담아내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았는데, 그것을 3분이라는 분량 안에 담아낸다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가지치기를 하고 가장 중요한 부분을 추려내어 현재의 뮤직비디오를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 작가님의 작품 <달의 바다> 속 캐릭터가 참 독특하고 귀여워요. 이 뮤직비디오의 이야기를 작가님께서 직접 한 번 풀어내 주신다면.
<달의 바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친구는 두 명이에요. 양 갈래머리를 하고 있는 ‘빛물’이라는 친구와 초록색의 머리카락을 갖고 있는 ‘모래’라는 친구죠.
바다가 있는 시골마을에서 모래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하루아침에 동네에 있는 어른들이 다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게 되어요. 그런데 모래라는 친구는 굉장히 겁이 많고 소심한 친구거든요. 부모님께서 집에 안 계시고, 밖에도 어른이 없으니 겁을 먹어 집 안에 박혀서 밖에 나가지 않게 돼요. 그런데 어느 날 빛물이라는 정체 모를 친구가 갑자기 문을 열고 나타나 모래를 강제로 밖으로 끌고 나가요.
모래에게 ‘어른이 없는데 밖에 나가는 것’은 그 아이의 세계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그런데 빛물과 함께 나가보니 생각보다 괜찮다는 걸 느끼게 되고, 결국 빛물과 함께 비어있는 마트에서 장을 보기도 하고, 밤에는 바닷가에서 춤을 추기도 해요. 그렇게 모래는 빛물이 덕분에 점점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마지막에 빛물이는 사라지고 어른들은 다시 돌아오게 되어요. 이전과 똑같은 환경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모래가 이뤄낸 성장은 여전히 그 아이의 내면에 쌓여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스토리를 구상했습니다.
- 말씀해주신 뮤직비디오의 스토리를 들으니 곡의 가사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 같아요. 어떤 점에서 스토리보드를 떠올리게 되었나요?
맞아요. 작곡가님께서 제시해 주신 이 곡의 의도 자체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낭만을 찾아 떠난다’였거든요. 그런데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어린아이 같다’는 것이 일종의 비유가 될 수도 있지만, 정말 어린아이들이 어릴 때만 가질 수 있는 순수한 낭만과 그로 인해 이루어진 성장으로도 표현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곡의 의도와도 굉장히 잘 맞으면서도,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도 함께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뮤직비디오를 작업하며 작가님께서 가장 신경 썼던, 그리고 좋아했던 가사를 꼽아본다면.
도입부 가사 중 ‘없는 계절을 찾아 식어가고’라는 문장이 처음 가사를 받아봤을 때부터 참 좋았어요. 이 문장뿐만 아니라 이 문장이 있는 문단의 가사들이 모두 좋았죠. 전부 ‘내 안에 있는 낭만을 찾아 나아가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모르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거든요. 이 곡의 사운드는 참 경쾌한데, 그 가사에서는 애절하고, 답답한 감정이 느껴져서 뮤직비디오에도 이 괴리에서 오는 이미지를 전반적으로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떨리는 그대 손에 접어둔 울음
어딘가 어색하게 웃어 보이곤 해
손끝으로 별자릴 그려도 길을 헤메이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이 순간들에 우리는 함께 울었건만
지도엔 없는 계절을 찾아 그저 식어가고
- <달의 바다> 외에도 작가님께서 개인적으로 애정하시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최근에 그린 그림 중 <파란색 오렌지>를 그린 굉장히 짧은 애니메이션 영상이 있어요. 오렌지를 까면 파란 속살의 오렌지 알맹이가 나오는, 아주 단순한 영상이죠. 그런데 저는 그 당시의 저의 생각을 짧은 영상 안에 담아낸 작품이라 저 스스로도 인상 깊게 남아있는 작품이에요.
당시 제가 했던 생각은 ‘여러 사람들과 지내다 보면 그 사람들에게 맞춰서 동화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어요. 저의 실제 내면은 그렇지 않아도, 주변 것들에 맞춰서 저의 겉모습을 싸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오렌지 껍질과 굉장히 흡사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주변에는 모두 주황색 오렌지만 있으니까 저도 주섬주섬 주황색 껍질을 주워 입은 거죠. 사실 그 내면은 주황색이 아니 파란색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그 생각과 느낌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던 작품이 이 <파란색 오렌지>였습니다.
- 작가님께서는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작품에 담아내기 위해 참 노력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며 가장 신경쓰는 점이 있다면.
저는 제 추상적인 감정이나 생각을 작품으로 옮기는 것을 굉장히 좋아해요. 그래서 사실, 그림을 그리면서 제 머릿속에 있던 이미지가 100% 그대로 나오지 않아서 불만족스럽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애초에 머릿속에 뚜렷한 이미지가 없는 상태로 시작하기 때문이죠. 하하. 얼마나 작품을 내가 원하는 대로 묘사했는가보다는, 내가 갖고 있던 감정이 그 작품을 보았을 때 얼마나 잘 전달되는가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그림의 매력 중 하나는 바로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비현실성을 많이 담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자 하고 있습니다.
- 저는 화장실에 꽃이 핀 그림 등을 참 좋아해요. 화장실과 식물이라는 두 키워드가 친숙한 듯 낯설어서 묘한 느낌을 자아내는데, 작가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비현실성이란 이러한 부분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맞아요. 특히 언급해 주신 화장실에 꽃이 핀 그림은 제가 꿈에서 본 풍경으로, 예외적으로 머릿속에 이미지가 뚜렷하게 있던 작품 중 하나에요. 저는 이렇게 비현실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꿈에서 보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이와 같이 꿈에서 그림의 영감을 얻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 <해파리에게 심장을>이라는 작품에 대해서도 꼭 언급하고 싶어요. 작가님의 작품 중 (24.11.21 기준) 유일한 실물 작업인데.
저는 평소에도 해파리를 참 좋아해요. 해파리의 종류도 참 다양하고, 그 모양도 다 가지각색이잖아요. 그리고 고정된 모습을 갖고 있지 않고 계속 그 모습의 형태를 바꾸며 헤엄치죠.
그런데 어느 날 해파리에게는 심장을 포함하여 장기가 없다는 정보를 보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호흡을 하는 것일까’, ‘어떤 기준으로 해파리는 생물로 정의가 내려진 것일까’에 대해 더욱 흥미가 생기더라고요.
앞서 저의 세계에 대해서 질문을 해주셨을 때 제가 답변 드린 것처럼 저는 사람마다 그 세계가 제각각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적어도 저의 세계에서는, 제가 바라보는 해파리에게만큼은 심장을 줘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해파리에게 가짜 심장을 심어주게 되었어요.
작품을 보면 심장 가장자리 쪽에 제가 실제로 바느질을 해서 실을 끼워 넣었는데, 제가 심장을 인위적으로 해파리에게 선물해 준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 <해파리에게 심장을>은 바느질 외에도 비즈, 실 등 다양한 재료가 사용되었어요. 기존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이렇게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서 표현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가장 집중하고 싶었던 부분인 ‘이질감’이었어요. 해파리에게 인위적으로 심장을 주며 기존에는 없던 것을 선물해 줬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고 싶었죠. 그런데 아무래도 디지털 작업으로는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질감을 표현하는 데에 한계가 있더라고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하다가 아예 실물 작업을 제작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사실 처음에는 심장도 아예 천으로 만들어서 붙일 생각을 했는데, 물감의 질감을 살려서 심장을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대신 바느질 자국을 함께 표현했습니다.
- 그 외에도 작가님께서 마지막으로 소개해주고 싶으신 작품이 있다면.
저는 저의 작품 중 금붕어, 모니터, 풀이 함께 그려진 작품을 저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제가 사랑하는 것들이 정말 많이 담겨있거든요. 물고기도 있고, 파란색도 있고, 인터넷도 있고… 제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을 꾹꾹 눌러 담은 작품입니다.
- 작가님의 작품에는 대부분 인터넷을 떠올릴 수 있는 노이즈 효과가 적용되어 있어요. 앞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중 하나로 인터넷을 언급해 주셨고 실제로 작가님의 작품에는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요소들이 많이 그려져 있습니다. 작가님께서 느끼시는 인터넷의 아름다움은 뭘까요?
인터넷이라는 것은 결국 기술의 발전으로 생성된 새로운 가상의 공간이잖아요. 저는 그 점이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특히 저는 인터넷이 아니면 제 그림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께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더라고요. 원래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공간과 매체를 통해 제 작품을 세상에 알릴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좋았고, 자연스럽게 인터넷에 대한 애정이 생겼습니다. 노이즈, 상태창, 모니터 등 일반적으로 ‘인터넷’을 생각했을 때 함께 떠오르는 요소들을 사용하고 있어요.
마무리 지으며
-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굉장히 담고자 하는 메시지가 작가님의 작품에 명확히 들어가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가님의 작품을 바라봐주시는 분들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저는 저의 의도를 최대한 잘 언급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래서 보시는 분들께서 마음껏 해석하고 본인의 시선에 맞게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저도 창작을 하는 사람인지라 어쩔 수 없이 저의 작품의 의도에 대해 너무나도 말씀드리고 싶고,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의도뿐만 아니라 보는 이의 의도도 온전히 담겨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저의 목소리를 너무 크게 내면 그 완성을 이뤄낼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제 의도와 완전히 다르더라도 저의 그림을 봐주시는 분들께서 원하고 느끼시는 방향대로 온전히 받아들여주시면 저는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 작가님의 앞으로의 꿈과 목표는 무엇일까요?
아하하, 인터뷰를 받으며 이렇게 답변드리기가 조금 민망하지만 저는 타인을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지금까지 꾸준히 해왔어요. 저는 사람을 굉장히 좋아하고, 누군가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참 즐거워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살면서 아름답다고 느꼈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 사람의 세계를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실 저희 오빠가 저보다 더 음악을 좋아해요. 그래서 언젠가 저희 오빠가 음악을 만들게 된다면, 꼭 같이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제가 앨범 아트를 그릴 수도 있고, 뮤직비디오를 제작해 줄 수도 있고, 작사를 해줄 수도 있잖아요. 어떤 형태로든 괜찮으니 기회가 된다면 꼭 저희 오빠와 함께 작업을 하고 그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꿈이 있습니다.
-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님을 좋아하는 분들께, 그리고 이 인터뷰를 읽어주실 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저는 작품 창작 활동이란 저의 조각을 일부 떼어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의 작품들은 다 저의 일부분이고, 저 그 자체인 거죠. 그런데 그러한 저의 작품을 좋아해 주신다는 것은 곧 저를 지지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항상 표현은 잘 못하지만, 저의 그림을 봐주시는 분들께, 그리고 아껴주시는 분들께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를 알고 계셨던 분들, 저를 새로 접하신 분들 모두 이 인터뷰를 통해 보여드린 저의 세계가 마음에 드신다면, 앞으로도 긍정적인 시선으로 지켜봐 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있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김푸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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