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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원작 소설과 뮤지컬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2018년에 본 지 어언 6년이 지난 2024년 여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 작품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번에는 공연을 보기 전까지 여유가 있어서, 원작 소설을 먼저 전부 읽고 공연을 보러 가게 되었다. 원작을 읽고 나서 관람하니, 원작의 내용이 어떻게 각색되고 변형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이번 관람에 있어서 큰 재미였다. 결론적으로, 원작 소설과 뮤지컬 사이에는 큰 흐름은 벗어나지 않되 세부적으로 가해진 연출 및 내용적 변형이 존재했다. 극을 보고 나서 든 명료한 생각은 역시나 원작이 탄탄하면 재구성된 2차 작품도 훌륭한 법이라는 것이다.
원작 소설에서는 괴물이 자신이 사람들과는 섞여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처절하게 알게 되자, 자신을 만든 프랑켄슈타인에게 자신과 닮은 여자 괴물을 만들어 달라고 간곡하게 협박한다. 그런데 뮤지컬에서는, 당시에 만연했던 마녀사냥으로 인해 억욱하레 죽은 누이를 프랑켄슈타인이 살리려고 하는 내용으로 변형된다. 그러나 원작에서 괴물이 요구했던 처절한 바람은 뮤지컬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괴물이 만들어져 눈을 뜬 이후 살인하고 도망친 곳은 한 격투장이다. 괴물은 그 격투장에서 '까트린느'라는, 인간이지만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지 않은 하인 여성을 마주한다. 그녀는 유일하게 괴물을 수용해주고 아무도 없는 북극에 같이 가자고 설득한다. 그러나 그녀 역시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강렬했던 나머지, 하루 뒤에 있을 격투에서 괴물이 지게 만들라는 유혹에 굴복해버리고 만다. 그렇게 하루 뒤, 격투장에서 괴물은 패했지만, 격투장 주인은 꾐을 눈치채고 괴물이 지도록 사주한 남자와 까트린느를 무참히 죽여버린다. 그녀에게 배신당했을 때 그리고 그녀가 죽었을 때, 괴물은 자신을 수용해주는 인간이 있었다는 희망에서 인간은 역시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극한의 절망을 느껴갔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원작과 뮤지컬에서 수렴되는 공통점은 괴물이 희망을 품었다가 처절한 절망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원작에서는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여자 괴물을 만들지만, 그들이 인간에게 가할 불행을 상상한 순간 그는 그 여자 괴물을 산산히 부숴버린다. 그 장면을 밖에서 지켜보고 있던 괴물은 절망한다. 원작 소설에서는 프랑켄슈타인의 친척이 괴물에 의해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그로 인해 열린 법정에서 그의 또 다른 친척이 사형을 판결받게 된다. 이때프랑켄슈타인은 친척의 죽음이 괴물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자신이 사실상 살인자라며 자책감을 느낀다. 한편 뮤지컬에서는 다음과 같이 변형된다. 실험에 필요한 사람 머리를 장의사를 통해 구하려다 장의사가 자신의 친척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프랑켄슈타인은 장의사를 죽여버린다. 이때 살인자가 누구이지 색출하는 과정에서 친구 앙리가 대신 자백함으로써, 그는 자신이 사실상 앙리를 죽이게 했다며 자책한다. 이때 흥미로웠던 점은 이전 버전과 달리, 이번 버전에서는 '내가 살인자'라는 가사가 분명히 곡에 실렸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지난 번보다 원작의 내용이 조금 더 반영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철학적으로 이 작품을 들여다본다면, 다음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즉, 흥미롭게도 소설 원작의 부제가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라는 점이다. 프로메테우스는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에서 몰래 불을 훔쳐 인간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절대자에게 대항하는 존재이고, 이로 인해 그는 제우스에게 형벌을 받게 된다. 이때 그 신화와 작품 속 인물들 간에는 일종의 유비 관계가 형성된다.
제우스 : 프로메테우스 = 프랑켄슈타인 : 괴물 → 절대자 : 프랑켄슈타인
완전히 동일한 유비 관계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괴물이 자신이 존재하게 된 이유를 창조자 프랑켄슈타인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되물으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절대자(신)에 대해 절규하는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로부터 독자는 괴물을 통해,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으로부터, 유한한 존재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지 못해 절규하는, 인류의 원형적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때 인류의 원형적 감정이란 굉장히 관계적 속성을 가진 용어인데, 그것은 바로 '근원적 고독'이라는 것이다. 괴물은 자신이 그 누구에게도 이해되거나 수용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점을 알게 되면서 근원적 고독감을 느낀다. '세상에 누구 하나 의지할 존재 없이 오롯이 혼자라는 것'. 심지어 자신을 만든 창조자조차도 자신을 부정하고 죽이고자 한다는 크나큰 배신감으로 인해, 괴물은 창조자가 그러한 근원적 고독감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힘을 기울인다. 나에게 가장 시각적으로 분명하고 인상적으로 남았던 장면은, 밤에 별빛이 가득한 풍경 그리고 괴물과 프랑켄슈타인이 마지막에 조우하는 북극에서의 설경 장면이다. 근원적 고독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절규하는 프랑켄슈타인의 모습, 그리고 지평선 너머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광활한 북극에 남아 절규하는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이 나에게는 뇌리에 강하게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