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지에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던 이유
지난 8월에 한 달 내내 영국 에든버러에 머물며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이하 프린지)을 구경한 것은 인생에서 다시없을 소중한 경험이었다. 4주간 도시 전체가 공연장으로 변해 저마다 독창적인 매력을 뽐내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무대가 되었으며,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종일 거리를 가득 메워 활기를 불어넣었다.
프린지에 대한 찬사와 개인적인 감상은 지난 글에서 충분히 풀었으니, 이번에는 조금 다른 얘기를 꺼내 보려 한다. 에든버러에서 프린지가 펼쳐지는 시즌에 그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도시 전체에 붙어 있는 공연 포스터들, 각 팀들이 길거리에서 앞다퉈 전단지를 나눠주는 홍보 문화, 온종일 거리 곳곳에서 펼쳐지는 길거리 공연들, 그리고 공연장 주변에 위치한 푸드트럭들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면서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가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전단지가 버려지고, 푸드트럭에서는 대부분 일회용품이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2019년 프린지에서 지속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
©StagingChange
오랜 기간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페스티벌인 만큼 환경을 고려하는 감수성도 지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실망감이 들면서, 프린지에서 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부분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프린지는 2010년부터 ‘크리에이티브 카본 스코틀랜드’와 함께 지속 가능한 행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스코틀랜드 전역의 공연장과 이벤트 기획자들로 이루어진 ‘그린 아트 이니셔티브’가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있고, 공연 산업의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스테이징 체인지'와도 협업한다. 환경에 대한 책임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관련 이슈를 다루는 작품들에게는 ‘에든버러 프린지 지속 가능한 실천 상(Edinburgh Fringe Sustainable Practice Award)’을 수여한다. 제로 웨이스트 공연장인 '더 그린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공연자들이 의상과 소품을 교환하고, 홍보 전단을 재활용하며, 남은 음식을 기부할 수 있는 ‘스왑 샵(Swap Shop)’ 서비스도 진행한다.
프린지의 제로 웨이스트 공연장 '더 그린하우스'.
©The Green House Theatre
2022년에는 프린지가 75주년을 맞아 새로운 발전 비전을 제시했는데, 그중 하나로 기후변화 대응을 포함시켜 2030년까지 탄소 중립 행사가 될 것을 목표로 내세웠으며 이에 따라 분야별 여러 실천 방안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프로그램의 인쇄 부수를 대폭 줄였으며, 건물에서 사용되는 종이를 100% 재활용하고, 전체 에너지의 60%를 재생 에너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공연자들이 공연 제작 전 과정에서 환경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관련 지침을 담은 ‘지속 가능성 도구 키트’가 제공되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프린지는 2015년부터 2022년까지 탄소 발자국을 77% 줄였다고 한다.
프린지에서 공연자들에게 제공하는 지속 가능성 도구 키트.
©Edinburgh Festival Fringe
하지만 자료 조사를 통해 발견할 수 있었던 이러한 여러 목표와 실천 방안에도 불구하고, 축제의 전 기간 동안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그러한 노력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곧 그들의 노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의 방증이 아닌가 싶었다. 한편으로는 주최 측에서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고질적인 문제는 피해갈 수 없어 보였다. 프린지처럼 국제적인 축제의 경우 전 세계에서 관계자들과 화물, 그리고 관광객들의 이동을 필연적으로 수반해 막대한 양의 탄소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주최 측 말고 개별 팀들에서 생산하는 홍보물과 같은 쓰레기들이 매우 많은데, 참가자들에게 지침이 마련되어 있다고 해도 이것이 일일이 강제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듯했다.
“The show must go on?”: 대규모 축제가 지닌 한계
실제로 프린지처럼 국제적 규모의 공연예술 축제는 그 규모와 특성상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크다. 2022~2023년의 유럽 축제 18개의 탄소 배출량을 분석한 AGF(A Greener Future) 보고서*에 의하면, 축제 참가자의 하루 평균 탄소 발자국은 11kg이었다. 전체 탄소 발자국 중 관객의 이동이 41.4%를 차지하고, 아티스트와 스태프 등의 이동까지 포함하면 그 비중은 무려 58%에 달한다. 축제에서 판매되는 식음료는 34.5%로 그 뒤를 이었다.
유럽 축제의 탄소 배출량을 구성하는 항목들.
도표에서 볼 수 있듯 사람과 화물의 이동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AGF
이렇기에 세계적으로 거의 모든 축제와 콘서트가 중단되거나 비대면으로 개최되었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탄소 배출량이 일시적으로나마 대폭 감소했다. 실제로 2021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모든 대면 회의를 비대면 온라인 회의로 전환할 경우 탄소 발자국을 94%까지 줄일 수 있으며, 대면과 비대면을 혼합한 하이브리드 회의로 전환할 경우 67%까지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통계 결과를 보니 단지 전염병 확산 방지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서도 대면 행사를 최소화해야 함을 알 수 있었다.
국제적 규모의 축제나 콘서트로 인한 환경 파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앞장서서 노력한 사례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2019년 세계적 밴드인 콜드플레이는 콘서트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월드 투어를 잠정적으로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2022년 3월 투어를 재개하면서 지속 가능한 공연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보였는데, 대표적으로 공연장에 관객들이 자전거를 타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전기로 전환하는 장치와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공연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했으며, 판매된 티켓 한 장당 나무 한 그루를 심기로 약속했다. 또한 투어에 포함되는 모든 항공편에 지속 가능한 연료를 사용해 탄소 배출량을 크게 줄였으며, 팬들이 저탄소 이동을 실천할 경우 할인 혜택을 제공해 모두의 지속 가능한 행동을 장려했다.
콜드플레이는 지속 가능한 공연을 위한 노력과 성과를 웹사이트에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
©Coldplay
한편 환경 보호를 위해 애쓴다고는 하지만 과연 실질적인 효과가 있었을 지 의문이 드는 사례들도 있었다. 매년 7월 벨기에의 붐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전자 음악 축제인 ‘투모로우랜드’는 환경 보호를 하나의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들은 브뤼셀 항공사와 협력하여 국제 관객들이 벨기에로 이동할 수 있는 ‘파티 전용 항공편’ 특별 패키지를 제공하는데, 모든 패키지 요금에는 지속 가능한 항공 연료 사용과 기후 보호 프로젝트 투자 비용이 포함되어 탄소 배출 저감에 기여한다고 한다. 2024년 기준 40여 개의 공항에서 122개 국적의 관광객 1만 4천여 명이 이 패키지를 이용해 브뤼셀로 이동했으며, 이 중 일부 항공편에서는 라이브 DJ 공연이 펼쳐지는 등 기내에서도 축제 관련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투모로우랜드와 브뤼셀 항공사의 2023년 파티 항공편 홍보 영상.
©Brussels Airlines
투모로우랜드의 파티 항공편 패키지는 축제 방문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동시에 환경 친화적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마케팅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축제가 과연 실제 순수 탄소 배출량 저감의 성과를 냈을까? 기내에서 축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다른 이동 수단 대신 항공편을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으며, 벨기에 외에 유럽의 다른 여러 도시를 탐방하는 ‘디스커버 유럽’ 패키지도 선택지로 제공되었다. 투모로우랜드는 자신들의 재활용 프로그램과 순환 식수 시스템 등을 강조하며 환경 친화적 축제라고 홍보하지만, 관객의 대규모 이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에 비하면 이들의 효과는 미미하다.
프린지나 투모로우랜드뿐 아니라 많은 축제들이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나 공연에 사용되는 자재 재활용처럼 표면적인 문제의 개선을 강조하며 환경 보호에 앞장선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실질적으로 환경 보호의 성과는 내지 못하면서 친환경적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한 ‘그린워싱’ 행위로 비난받을 수 있다.
우리의 즐거움이 지속 가능하려면
앞서 언급했듯, 사실상 국제적 규모의 축제에서는 사람과 화물의 이동 자체가 가장 큰 문제이므로 이를 아예 중단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나 축제 및 공연 산업의 유지를 위해서는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적어도 지금 수준의 노력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의 접근과 노력이 필요하다. 축제 관광의 기후 영향에 관한 책의 저자인 워싱턴 주립대 교수 도간 구르소이(Dogan Gursoy)의 말을 빌리자면, 축제들은 이제 그린워싱에서 벗어나 ‘새로운 계획을 과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짜 실행’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더불어, 축제 주최 측뿐 아니라 모든 예술가와 소비자 개개인도 노력해야 함은 당연하다. 예술가들은 주최 측에서 제시하는 행동 지침을 엄격히 준수해야 하며, 소비자는 가급적 원거리보다는 근거리의 축제에 참가할 것이 권고되고, 모두가 탄소 배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이동 수단을 선택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개개인에게만 책임을 지우기에는 무리가 있기에, 관련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 역시 필요하다.
축제의 명과 암. 즐거움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ChatGPT
물론 지속 가능한 축제를 위한 모든 변화에는 재정적·행정적 측면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세계 각지에서 폭염·홍수·가뭄 등 심각한 이상 기후 소식이 들려오는 오늘날, 그러한 어려움은 ‘변화하기 어려운 이유’로 정당화될 수 없다. 아마 올해 한국의 기록적인 폭염을 겪으며 모두가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으며, 지금 속도대로라면 향후 10년 안에 기후 변화 마지노선을 넘어설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축제는 국적과 인종, 성별, 나이 등에 관계 없이 모두가 하나 되어 즐길 수 있는, 특별하고도 아름다운 행사이다. 그러나 그 즐거움의 이면에는 반드시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모든 개개인의 노력 없이는 기후 변화의 대가가 머지 않은 미래에 고스란히 돌아올 것이기에, 축제 및 공연 관계자들과 참가자 모두의 전면적인 의식 개선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 AGF Festival Carbon Footprint Report 2022/2023.
** Tao, Y., Steckel, D., Klemeš, J.J. et al. Trend towards virtual and hybrid conferences may be an effective climate change mitigation strategy. Nat Commun 12, 7324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