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임윤찬 공연이 만 사천 원이라고? [공연]

모두를 위한 클래식, 진입 장벽을 낮추다
글 입력 2024.08.05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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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Proms 2024의 임윤찬 홍보 사진

©Richard Rodriguez

 

 

지난 7월 29일,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런던 로열 앨버트홀(Royal Albert Hall) 데뷔 무대를 바로 코앞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이날 임윤찬은 세계적인 명장 파보 예르비(Paavo Järvi)의 지휘로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를 선보였다. 공연장을 꽉 채운 6천여 명의 관객은 그의 연주에 열광했으며, 임윤찬이 앙코르 곡 바흐의 시칠리아노(빌헬름 켐프 편곡)로 화답하자 객석에는 감동의 열기가 더해졌다. 한국에서도 보지 못했던 임윤찬의 연주를 이국의 연주장 포디움 바로 앞에서 보았다는 감동과 함께, 임윤찬 개인은 물론 우리 음악사에 기록될 의미 있는 순간에 함께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2022년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 최연소 우승 이후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임윤찬의 공연을 바로 앞에서 관람했다니, 아마 표값이 매우 비쌌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날 필자가 공연에 지불한 돈이 단돈 8파운드, 한화 약 만 4천 원이었다면 믿겠는가? 6파운드짜리 프로그램북보다 겨우 2파운드밖에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예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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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Proms 2024 무대에서 임윤찬과 지휘자 파보 예르비가 관객에게 인사하는 모습

©최민서 에디터

 

 

이날 임윤찬의 공연을 놀랍도록 저렴한 금액에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공연이 매년 7월부터 9월까지 영국에서 열리는 BBC 프롬스(Proms)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클래식 음악 축제인 BBC 프롬스는 1895년 시작되어 올해 제130회를 맞았다. 캐주얼하고 저렴한 콘서트를 표방하는 프롬스는 ‘프롬나드(Promenade, 산책로) 콘서트’의 줄임말로, 관객들('Promenaders', 일명 ‘Prommers')이 콘서트 홀 가운데에서 입석으로 관람할 수 있는 형태의 공연이다. 매년 70~90회가량의 공연에 약 30만 명에 달하는 관객이 프롬스를 위해 로열 앨버트 홀을 찾고 있다.

 

프롬스가 타 음악 축제들과 구분되는 가장 특별한 점은 바로 프로밍(Promming) 티켓에 있다. 이는 프롬스의 모든 공연을 8파운드에 예매할 수 있는 제도다. 프로밍 티켓은 공연 당일 오전 10시 반에 온라인 웹사이트나 현장 매표소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총 1천여 명의 관객을 수용한다. 1층의 아레나(Arena) 또는 꼭대기 층의 갤러리(Gallery) 구역 중에 선택할 수 있고, 자리는 선착순으로 배정된다. 공연 내내 서서 관람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공연장에 일찍 도착하거나 공연 당일 아침 9시부터 배부되는 번호표를 받아 앞쪽 자리를 선점한다면 일반 좌석보다 훨씬 좋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평소 비싼 티켓 금액을 지불하기에는 부담되었던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이자, 특히나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출연한다면 결코 놓칠 수 없는 축제인 것이다.

 

 

BBC Proms 2024의 홍보영상

 

 

BBC Proms는 런던 퀸즈 홀의 매니저 로버트 뉴먼(Robert Newman)과 지휘자 헨리 우드(Henry Wood)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 이 페스티벌의 기획 의도는 고품질의 클래식 음악을 가능한 한 많은 청중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함으로써 누구나 클래식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1985년 8월 10일 ‘프롬나드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첫 공연이 열렸으며, BBC가 페스티벌의 주관을 맡게 된 1927년부터 ‘BBC Proms’라는 이름이 붙고 BBC 방송을 통해 영국 전역에 페스티벌이 중계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클래식 외에도 재즈, 월드 뮤직, 영화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포함하는 등 일부 변화가 있었으나, 페스티벌의 시작 이래로 현재까지 무려 백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누구나 클래식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초기 정신만큼은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임윤찬이 협연자로 나선 공연을 비롯해 올해 BBC 프롬스의 여러 공연을 직접 관람하면서 느낀 것은, 확실히 타 클래식 공연에 비해 관객층의 폭이 넓고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그간 영국이나 독일 등 유럽에서 클래식 공연을 관람하면서 대부분 관객의 연령대가 높음을 느꼈는데, 프롬스 공연에는 비교적 젊은 관객들이 많고 클래식 마니아층이 아닌 듯한 - 이를테면 악장과 악장 사이 박수를 치는 - 관객들도 꽤 있었다. 이 축제가 클래식의 저변 확대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 체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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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Proms가 열리고 있는 로열 앨버트 홀

©최민서 에디터


 

한편 클래식의 저변 확대를 위한 또 다른 형태의 노력으로 베를린 필하모니는 매년 무료 공개 행사(Tag der offenen Tür, The Berlin Philharmonie's Open Day)를 연다. 종일 공연장 곳곳에서 오케스트라와 실내악 콘서트, 공연장 및 스튜디오 가이드 투어, 마스터 클래스, 워크숍, 플래시 몹, 어린이 대상 체험 부스 등이 무료로 진행된다. 올해도 5월 26일에 이 행사가 열려 만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운집했으며, 현장에서 함께 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온라인 생중계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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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필하모니 2024년 공개 행사의 포문을 연 오프닝 공연 현장.

행사의 모토는 팸플릿에 적힌 '#Sharing Music'처럼 '음악을 모두와 나누는 것'이었다.

©최민서 에디터

 

 

특히 이 행사의 경우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아, 메인 홀에서 열리는 오프닝 콘서트와 클로징 콘서트에서는 연주 중 어린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나 우는 소리가 빈번하게 나기도 했다. 일반 공연이었다면 아무리 아이들이더라도 공연 중 소란을 피우는 것이 용납될 수 없겠지만, 이날 공연에서만큼은 모든 것이 허용되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또한 직접 자신만의 간이 악기를 만들어보고 베를린 필 단원들에게 원하는 악기를 배워보는 등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부스가 많아, 어린이들의 클래식에 대한 관심도를 제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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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필하모니의 로비에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체험 부스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에 보이듯 이날 행사에는 가족 단위 방문객이 특히 많았다.

©최민서 에디터

 

베를린 필하모니의 2012년 공개 행사 스케치 영상

 

 

오페라계에서는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모두를 위한 오페라’(Oper für alle, Opera for all)라는 행사를 여는 사례가 많다. 독일의 베를린과 뮌헨, 함부르크, 스위스의 취리히와 바젤, 오스트리아 그라츠 등 여러 지역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모두 비슷한 형태로 개최되는데, 일반적으로 야외 광장이나 공원과 같은 공공장소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같은 시간 공연장 내에서 진행되는 오페라를 생중계하고 이것이 TV로 실시간 송출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돗자리를 깔고 앉아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유롭게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본 공연이 시작되기 전 오케스트라나 합창 등 사전 공연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으며, 공연이 끝난 후에는 출연진들이 스크린 앞에 나와서 광장의 관객들에게 직접 인사하기도 한다.

 

오페라는 종합 예술 장르라는 특성상 그 규모와 제작비가 굉장한 만큼 티켓 가격도 매우 비싸서 진입 장벽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유럽 대부분의 오페라 극장에서 학생 혹은 30세 이하 청년, 그리고 장애인에게는 큰 폭의 할인이 제공되지만, 이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애호가라 하더라도 표값을 선뜻 지불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상영회는 평소 오페라 관람에 대한 갈증이 있었거나 비싼 표값이 부담스러웠던 이들에게 절호의 기회다. 비록 공연의 현장감을 다 느낄 수는 없지만 오페라의 향유층을 조금이나마 넓힐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특히 이 행사는 야외에서 사전 예약 없이 공개적으로 진행되기에 우연히 근처를 지나가던 행인이나 관광객까지 불특정 다수를 관객으로 유입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홍보 방식이라 하겠다.

 

 

베를린 슈타츠 오퍼의 2024년 무료 공개 행사 스케치 영상

 

 

지금까지는 해외의 사례만을 살펴보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클래식 음악과 관련해 여러 무료 행사가 열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2022년 시작된 예술의전당의 ‘애(愛)술인 축제’에는 예술의전당에 상주하는 6개 예술단체가 참여하며, 공연 영상 상영, 야외무대 공연, 클래식 버스킹, 아트마켓, 미디어아트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또 ‘SAC FESTA 밤도깨비 상영회’에서는 예술의전당의 영상화 사업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을 통해 제작된 고품격 공연 영상을 음악광장에서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예술의전당의 2022 애(愛)술인축제 홍보 영상

 

 

예술의전당이 영상을 통해 더 많은 관객과 만날 기회를 도모하고 있다면, 세종문화회관은 2007년부터 시민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풍요로운 예술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지속해 오고 있다. 양질의 공연을 단돈 천 원에 관람할 수 있는 ‘천 원의 행복’을 17년간 운영했으며, 올해부터는 ‘누구나 클래식’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이는 다채로운 클래식 음악에 해설을 더해 누구든 클래식을 쉽게 즐길 수 있는 공연으로, 관객이 티켓 금액을 최소 천 원부터 최대 만 원까지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관람료 선택제’를 처음으로 도입하였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역시 수년 전부터 ‘우리동네 음악회’와 ‘뮤지엄 콘서트’로 서울 곳곳에서 시민에게 다가가고 있다. 우리동네 음악회는 서울 시민들의 문화 향유 기회 증대를 위해 각 지역을 순회하며 진행되는 클래식 음악회이며, 뮤지엄 콘서트는 여러 박물관 및 미술관 내 열린 공간에서 실내악을 즐길 수 있도록 기획된 무료 시민 공연이다.

 

 

서울시향의 2023 뮤지엄 콘서트 스케치 영상

  

 

또한 올해 12월 2~8일에는 앞서 언급한 런던의 BBC 프롬스가 우리나라에 상륙해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개최될 예정이라 국내 클래식 팬들의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아시아에서 BBC 프롬스가 열리는 것은 2019년 일본 이후 처음이다. 현재 공연 라인업이 순차적으로 공개되고 있으며, 8월 22일에 티켓이 오픈될 예정이다. 아직 구체적인 진행 방식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본 축제의 기획 의도에 걸맞게 대중 친화적인 프로그램으로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임윤찬과 같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인재를 수없이 많이 배출하고 있지만, 그에 비해 국내 클래식 시장은 턱없이 작은 실정이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모두’를 위한 무료 행사가 다양한 형태로 기획되기를, 이를 통해 클래식 음악의 저변이 확대되고 관객층이 늘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최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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