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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색을 입은 영화의 아름다움 [영화]

에릭 로메르 감독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

by 김서현 에디터
2024.07.04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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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을 인물의 말과 표정, 행동 외 영역에 내어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세가지 요소가 인물이 스스로 내면을 표현하는 과정의 일선에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 에릭 로메르의 영화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는 사랑에 빠진 여인의 감정선을 '연출'에 오롯이 담았다. 사소한 대화 하나만으로도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내기로 알려진 이 감독이, 어떤 방식을 통해 대화 외적인 요소들로도 관객의 오감을 건드려나갔는지 살펴봤다.

 

 

 

감정의 신호등


 

영화는 100여 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통째로 옷에 헌납했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감독이 옷의 색에 꾸준히 의미를 부여했는데, 그 방식이 흥미롭다.


인물의 옷을 매개로 서로 대비되는 색을 반복해서 보여주는데, 인물이 각 장면을 맞닥뜨리면서 쌓아가는 감정과 상황을 적절하게 보여준다. 영화를 보다보면 오히려 옷의 색깔이 인물의 감정을 이끌어가는 느낌이 들 정도다.

 

블랑쉬라는 이름이 프랑스어로 하얀색을 뜻한다는 재밌는 사실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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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붉은 색 옷을 사랑하는 블랑쉬(주인공)는 레아의 남자친구 파비앙과 호감을 쌓아가면서 레아(친구)처럼 파란 색감의 옷을 입기 시작한다.


그러다 레아가 여행에서 돌아오고 감정이 소용돌이 치면서는, 다시 자신의 붉은 옷을 섞어 입는다. 마치 친구 레아의 자리를 탐하던 자신을 꾸짖는 것처럼.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블랑쉬의 감정을 무척 감각적으로 그려냈다.


하지만 정작 블랑쉬가 걱정해 마지 않던 레아 역시 블랑쉬가 가장 처음 눈길을 뒀던 알렉산드르와 호감을 키우던 중이었다. 심지어는 블랑쉬와 유사한 형태의 자책감과 함께.


하지만 레아의 색은 그대로 파란색이라는 사실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유독 순수한 감정을 가득 간직해온, 우정과 사랑의 경계선에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에 한발짝 더 나아간 블랑쉬의 모습을 또 한번 보여준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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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종국에 블랑쉬의 옷이 초록빛 옷으로 마무리되는 연출이 더 인상적이다. 파란 옷의 레아와 커플 간의 색깔이 교차되는데, 마침내 스스로 널뛰기하던 감정과 관계의 답을 찾아낸 듯한 인상을 준다.

 

 

 

신도시의 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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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에펠탑이 저멀리 보이는 도시를 배경으로 삼는다. 확실히 건물이 낮고 복작복작한 파리와는 결이 많이 다른 모습이다. 상당히 여백이 많으면서 인공적인 배경이 오히려 영화에 특색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재미있는 점은 인물의 감정선이 공간에 따라서도 상이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많은 대화가 오가기 마련인 도시 내 카페에서는 종종 주인공들의 진심과 사뭇 다른 담화가 오가고, 오히려 외곽 풀숲이 감정을 교류하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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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의 먼지 한톨 없을 듯 깔끔한 거리에 로마풍 건물이 커다랗게 올라 있는데, 주인공인 블랑쉬가 그곳에 살고 있다. 레아는 이 곳을 두고 자못 '애매한' 곳이라는 평가를 여러 차례 언급한다.


블랑쉬의 집뿐만 아니라 주인공들이 거니는 이 소도시의 거리는 어딘가 정돈된 느낌을 풍긴다. 공원과의 대비감을 키우기 위해 이 지역을 선택했나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공간에 인위적인 여백이 많다.


실제로 영화의 배경은 파리 북동부에 위치한 신도시, '세르지 퐁투아즈'다. 잘 정돈된 계획도시로, 프랑스는 파리에서 약 30km 떨어진 이 지역을 유럽의 실리콘밸리로 키우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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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명확히 상반되는, 풀숲이 잔뜩 우거진 공원 일대가 주인공 일행이 가장 솔직해지는 공간이다. 그들은 함께 종종 이곳으로 윈드서핑을 하러간다.


이곳에서 블랑쉬는 파비앙과 마음을 나누고, 그를 향한 호감에 혼란스러운 스스로의 감정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또 블랑쉬와 레아가 서로의 진정한 연인을 목도하게 된 마지막 장면 역시 이 공원을 배경으로 삼았다.

 

 

 

감정의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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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블랑쉬의 옷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그녀의 감정선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감정을 내보이기 꺼려하는 블랑쉬의 심리로 인해 표정/말만으로는 내면을 알아보기 어려운 순간,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이끌어주는 이정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 풀숲은 블랑쉬와 파비앙이 서로의 감정을 섬세히 들여다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으로 자리했다. 카페에서의 잔뜩 정제된 대화와 명확히 대비되는 모습이 풀숲이라는 공간을 두사람 사이 오가는 감정의 온상으로 만들어줬다.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고 감상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인물 간 대화에 눈과 귀를 기울여야겠지만, 가끔은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처럼 훌륭히 짜여진 연출에 관심을 기울여보면 어떨까.

 

인물 사이 오가는 대화를 훨씬 더 생동감 있게,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방향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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