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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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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자극하는 일상의 순간들. 사진 직접 촬영

 

 

여러분에게 내보일 한가지 퀴즈가 있다. 나의 일상 속 높은 빈도를 자랑하는 네 가지 장면이다. 다음 중 가장 ‘감정’과 잘 연결되는 장면을 꼽아보자면 어떤 것을 고를 것인가?


1. 집에 돌아오는 퇴근길, 버스에서 하차한 후 육교에 오른 순간 보이는 은은한 노을. 점심때만 해도 쨍쨍하기만 했던 하늘에 여러 빛깔이 섞이면서 한동안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2. 최근 급작스레 늘어난 사건사고 소식들. 뒤따라올 후폭풍을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그 배경에놓인 비극적인 이야기를 접하고 혼자 노여움와 속상함에 뒤섞여 눈물을 찔끔찔끔 흘려대는 일.

 

3. 무척 좋아하는 영화에 삽입된 음악을 들으면서 이것저것 상상하는 것. 상상 속에서 나는 맛있는 요리를 먹으며 행복해하기도 하고, 속 시원한 고음을 직접 질러보며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4. 여느 때처럼 오감의 바깥을 흘려보내며 멍하니 있다가, 불현듯 알 수 없는 감정을 마주하는 일. 이때 찾아오는 감정은 무궁무진하다. 때로는 마음이 눅눅해지고, 또 어느 때는 에너지가 차오르는 느낌도 들기 마련이다.


정답이 있는 퀴즈는 아니다. 사람마다 마주하는 일상의 형태가 다르고, 또 유사한 장면을 마주하더라도 경험에 따라 천차만별의 감정을 느끼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의 감정을 자극한 위 네 가지 장면들 중에서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향유할 때 적용해 볼 수 있는 ‘문법’이 한가지 들어가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나의 답은 4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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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 'No.14'.

 

 

한없이 몰입하고, 그로부터 촉발된 감정에 동요한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순간에 뚜렷한 대상이 있었는지 기억하는가?


<마크 로스코, 내면으로부터>는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보면서 관객이 감정적인 동요를 느끼는 과정에 주목한다.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를 본 관객의 반응은 극명히 나뉘는 경우가 많다. 비교적 간단해 보이는 형식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 갸우뚱부터 작품을 곱씹다 터져 나온 눈물까지, 같은 작품임에도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저자는 작품을 회피하고 그로부터 거리를 두고자 하는 전자의 반응마저, 이미 감정이 자극을 받은 상태라고 설명한다.

 

 

아버지는 관객 개인의 배경이나 관객이 살고 있는 시대에 상관없이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예술 작품을 통해 강하게 연결될 수 있길 바랐다.

 

- p.93

 

 

마크 로스코의 아들이자 심리학자인 저자, 크리스토퍼 로스코는 무의식의 개념을 통해 마크 로스코 작품의 매커니즘을 설명하고자 했다. 우선 노을, 빈 화면 등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보고 느끼는 숭고함 등의 감정을 일상의 어느 것으로 치환하려는 시도를 경계했다. 저자도 언급한 바 있는 정신분석학적 표현을 빌리자면 실재계의 비유를 경계하고, 무의식을 통해 관객과 직접 교감하는 과정에 방점을 둔 것이다.


이는 쉽게 말하면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접근을 통해서 공명을 이끌어냈다고 풀어 쓸 수 있다. 일명 작품을 온전히 느끼고, 그로부터 촉발되는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작품이 철저히 개인에게 울림을 주는 형태로 다가가면서도, 결론적으로는 모두가 느낄 수 있는 공통의 무언가를 이끌어낸다는 점이다. 저자는 그 무언가를 근원적 인간성 / 인간성의 본질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일상의 앞선 모든 장면들이 경험이 되고, 곧 감정의 토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의 소통에 있어 작품과 공명하는 것은 개인의 내면 그 자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로스코 그림의 핵심은 감정적 복잡성이라고 보는 내 접근 방식은 로스코의 경우에만 국한된 관점은 아니다. 위대한 예술은 먼저 우리 자신의 개인적인 영역에 가차 없이 개입하며, 자신의 반응을 받아들일 때까지는 작품이 창작자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묻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 p.21

 

 

어떻게 보면 책은 작품을 보는 근원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고도 볼 수 있다. 비단 마크 로스코의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유수한 작품들을 볼 때도 작품을 마주하는 나의 온연한 감정, 즉 작품과 공명하는 소통의 과정은 필요하다. 작품 너머 예술가를 말하는 전기적 접근이 작품에 대한 해석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지만, 그 자체로 틀을 만들고 작품 자체로의 몰입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비평 개념의 범주에서 봤을 때 인상주의(↔맥락주의 : 창작 배경에 집중)와 유사하면서도 작품과의 완연한 교감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더욱 자기주장이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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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 - '바닷가의 느린 소용돌이 - 황홀한 멜'.

 

 

책은 이와 동시에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애정이 담긴 글이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허들에 될 수 있는 전기적인 배경 설명을 거부하면서도, 아버지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어머니(아내)멜에 관한 이야기와 아버지가 어릴 적 뿌리를 뒀던 유대교에 관한 언급을 제하지 않았다. 오히려 멜에 대한 설명은 반드시 넣고자 하는 의지까지 느껴졌다.


이로써 로스코의 문법과 언어, 그리고 이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바라보고 연구한 아들의 마음을 이해했다면 이제 그의 작품을 맞이할 준비가 됐다. 남은 것은 여타 도구 없이 온전히 로스코의 작품을 내면으로부터 감상하기 위해 미술관으로 향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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