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라 칼만(Maira Kalman)의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을 통해 그녀의 작품을 한번 만났었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가진 슬프고 아름다운 것들’을 통해 두 번째로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디자이너이다. 작가는 뉴욕 아트 디렉터스 클럽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뉴욕이 사랑하는 예술가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은 우리가 가진(hold)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했다면 이번 책 ‘우리가 가진 슬프고 아름다운 것들’은 인생의 후회와 회환, 뉘우침(remorse)에 대해 이야기 한다. 살아온 날들을 복기하며, 당장의 일을 되짚으며, 찰나를 되돌아보며 경험했던 다양한 remorse를 묘사하고 있다.
각각 형태는 달라도 인간이기에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후회와 가책의 경험을 꺼내놓는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우리는 애써 숨기고 싶었던 기억들을 함께 터놓게 된다.
정적이지 않은 정물들
수치심을 수반하는. 죄책감을 수반하는. 슬픔을 수반하는. 정물화와 실내화 속에는, 과일이 담긴 그릇과 꽃병, 그리고 방 안 여기저기 흩어진 사물들 사이에 어느 정도 회한이 숨어 있어야 한다.
- p.1
책을 펴면 만나게 되는 첫 문장이다. 정물화는 물체의 단순한 묘사가 아니다. 그 구도와 장면을 담은 이유가 있다. 인간이 담은 캔버스 속 정물에는 반드시 감정과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 페사흐에 대한 가족사를 담은 이야기가 나온다. 가족보다는 일로 바쁜 아버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나라를 위한 임무로 무심했던 아버지. 그의 남동생에겐 어떤 일이 벌어졌고, 그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버지는 이 소식을 듣고 거실을 미친 듯이 왔다 갔다 하며 흐느꼈지만 가족들 누구도 위로를 건네지 않았다.
이때 옆에 붙어있는 빈 소파와 어두운 거실의 배경. 아버지가 이 소파를 뜨기 전에도 거실은 어둡고 적막만이 가득했을 것 같다. 가족들의 이야기 소리, 웃음, 인기척이라곤 없는 적막한 거실의 분위기가 그려진다. 온기가 있어야 할 핑크빛 소파는 오히려 더 차갑고 공허해 보인다. 그림 속에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은 없지만 가구들에 저마다의 사연과 이야기가 느껴진다.
슬픔과 아름다움
모든 이가 삶을 이어간다. 모든 이가 절망을 재고한다. 모든 이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다. 모든 이가 삶을 즐기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p.123
인생을 돌이켜봤을 때 누구나 모두 후회의 순간이 있다. 그때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런 일을 벌이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 후회로 자책하거나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당시엔 최선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위로하지 않은 것도, 병든 이를 돌보지 않은 것도, 불필요한 전쟁을 벌인 것도. 당시엔 어쩔 수 없는 방도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삶을 이어간다. 지나간 것은 바꿀 수 없다. 후회가 되는 것을 고쳐 잡을 수 없다. 세상은 멈추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낸다. 무심한 듯 보이지만 그것이 세상의 이치인 듯 하다. 그렇기에 삶은 또 제자리를 찾아간다. 슬픔과 아름다움은 공존하는 것.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인 것 같다.
원망스러운 것들에 “왜”라는 질문을 달기보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삶인 듯하다. 우리가 가진 슬프고 아름다운 것들이 뒤섞여 나타나는 것. 정해진 수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후회와 후회를 통한 개선, 그 안에 담긴 감정들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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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내용이 길지 않아 생각보다 금방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소요하게 했다. 책에 담긴 알록달록한 그림들이 눈길을 사로잡았고, 짧고 굵직한 단락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무심코 지나쳐왔던 감정과 생각들, 애써 회피해 왔던 나의 회한들, 그럼에도 살아가고 있는 나의 하루들을 돌이켜보게 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뒷표지에 이런 문장을 만날 수 있다. “회한으로 가득 찬 광활한 하늘, 후회의 바다, 하지만 이제 충분하다.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기쁜 소식. 음식이 가득 차려진 식탁. 만약 회한이 있다면 거기에도 끝이 있기를. 그 무거운 짐을 떨쳐낼 방법이 있기를. 어떻게 하면 될까?”
나의 답은 “그저 살아가는 것” 이라고 답을 내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