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밀책방 페잇퍼의 이래봬도 워크숍 ① [공간]

글 입력 2023.06.15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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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봬도 워크숍입니다


  

 
“아는 사람만 알고 오는 비밀스럽고 안전한 공간을 지향합니다.”
 


연희동에는 비밀스러운 책방이 있다. 바로 아는 사람만 알고 온다는 그림책방 ‘페잇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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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1시까지 아주 특별한 워크숍이 열린다. 워크숍의 이름은 ‘이래봬도 워크숍’. 과제를 해결한다거나, 미래지향적인 토론을 하지 않는다. 각자의 “딴짓”을 공유하고, 서로의 “딴짓”을 응원하는, 말 그대로 ‘이래봬도’ 워크숍이다. 뭐, 이름이 대수인가. 여럿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 그게 바로 워크숍이지.


이래봬도 워크숍에 참여한 계기는 순전히 친구의 제안 때문이었다. 나를 생각해준 제안을 받는 건 늘 기분 좋은 일이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설레고, 그 장소가 무려 비밀책방이라는 것도 좋은데 걸리는 건 딱 한 가지, 바로 시간. 


시간이 언급되면 자연스럽게 파워 J의 본능이 발동된다. 오전 10시까지 연희동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최소 9시에 출발한다고 하자.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한다면 8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만약 배고파서 아침을 먹어야겠다면-그래봐야 시리얼이지만, 아무튼-7시 반에는 기상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그동안의 일요일을 돌아보기 마련이다. 토요일 오전은 주로 평일에 가지 못한 요가 수업에 참석하며 알차게 보내도, 일요일만큼은 늘어지게 늦잠을 자곤 했다. 평일 내내 죽어라 일하며 사람들에 시달리는데, 주말 정도는 그래도 되는 것 아닌가.


주말의 휴식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게으르게 눕는 것 또한 훌륭한 주말이 되는 법이니. 다만 내게 필요한 건 일상의 환기였다. 집-회사-운동이 반복되며 서서히 권태가 찾아올 무렵, 도전해보지 않은 일과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을 접하는 것이 제법 간절했던 것 같다.


에잇, 그래 어디 한 번 도전해보자! 까짓거 평일에는 6시 반에 일어나는데, 8시에 일어나는 게 무에 힘들까. 세종시에 사는 친구의 도전에 자극이라도 받은 건지, 구구절절 쓴 것에 반해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6월 워크숍 총 4회, 5만 원이라는 참가비를 망설임 없이 입금했다. 저지르고 후회하자, 오랜만에 인생의 모토를 실현한 순간이었다.

 

 

 

“딴짓”을 시작하겠습니다



대망의 첫째 날, 오전 7시 반 알람 소리에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오후에 일정이 있어 제대로 된 외출 준비가 필요했고, 초행길이니 길을 헤맬 가능성도 염두에 둔 이른 기상이랄까. 눈을 뜨자마자 든 생각은 아니나 다를까, 아, 내가 왜 신청했지. 격렬하게 더 자고 싶다, 알람 소리가 없던 예전의 일요일처럼.......


예전 즐겨보던 일상 웹툰의 장면이 떠올랐다. 늦잠 자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 조조 영화를 예매한 회차였을 거다. 안타까운 점은 예매 취소라는 좋은 기능이 있었다는 것. 하지만 워크숍은 이미 환불 기한이 지났으니, 하품을 가득 싣고 연희동으로 향했다.


파워 J의 성향 덕분일까. 책방이 오픈하는 9시 50분보다도 일찍 도착해 근처에서 5분 정도 서성였음에도 1등을 거머쥐었다. 아, 떨리는데 하필이면 1등이야? 일부러 늦게 들어가는 것도 우스우니, 그날의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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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번호는 매번 바뀐다. 그것이 비밀책방이니까.

 

 

‘페잇퍼’는 만화 공간과 그림 공간 총 2개로 나누어져 있다. 만화책과 그림책 애호가들에게는 이곳이 천국이 아닐까! 애석하게도 만화란 웹툰밖에 안 보는 사람으로서 만화책에 큰 관심을 느끼진 못해도, 가득 쌓인 책들에 둘러싸인 기분만큼은 짜릿하고 늘 새롭다.


곧이어 도착한 친구와 함께 그림 공간 2층에 자리를 잡았다. 사장님의 기분 좋은 재촉(?)에 음료도 주문 완료. 물론 “딴짓”을 시작하겠다는 보고도 빠질 수 없다. 바리바리 싸 온 노트북과 소설책을 앞에 두고 인증샷 촬영. 커피도 받았겠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딴짓의 시간. 다른 말로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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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카운터에 과자 사러 갔다가 

대길이의 치명적인 뒤태를 영접하는 영광도 누렸지.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지라, 나 같은 사람은 딴짓마저 계획대로 해치운다. 이날의 딴짓은 밀린 블로그 끝내기. 약 1시간 만에 발행을 마칠 수 있었다. 음, 뿌듯해. 일요일 오전에 잠을 자거나 누워 있기 대신 블로그를 썼다니. 돈 한 푼 안 되는 일이지만 어떠랴. 누워 있기보다는 생산적인 활동이 아닌가.


쏜살같은 2시간이 지난 후, 본격적인 워크숍이 시작된다. 몇 달째 참석 중인 분도 계시지만 대부분이 초면이니, 어색한 인사는 첫째 주에 거쳐야 하는 필수 관문. 통성명 후에는 조심스럽게 수다의 포문을 연다. 주제는 당연히 “오늘은 무슨 딴짓을 하였는가.”


모두가 딴짓이라고 생각하는 범위는 다양했다. 공통점은 다른 사람의 딴짓을 누구도 폄하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존중하고 감탄하기 바빴다. 아니, 그런데 일러스트를 그리고 소설 아이디어를 짜며, 귀찮기 그지없는 은행 업무를 처리하는 건 존경할만한 일 아닌가? 무려 일요일 오전에!


놀라운 점은 내게는 오랜 취미라 별다른 생각 없이 운영하는 내 블로그에도 찬사를 보내주신다는 거다. 요즘은 바쁘다는 핑계로 한 달에 몇 편 쓰지도 못하는데. 그래도 5년째 운영 중인 건 대단한 거란다. 그런가. 지인들이나 가끔 봐주는 정도인데. 처음 들어보는 칭찬에 괜히 쑥스러워져 그저 웃고 말았다. 


첫 워크숍이 끝난 후, 왠지 개운했다. 일요일 오전에 부지런히 움직였다는 뿌듯함일까. 기분 좋은 공간에서 선한 사람들과 함께한 덕에 받은 에너지일까.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4주간의 워크숍 일정을 빠짐없이 참석하리라는 것이다. 어쩌면 다음 달에도 계속해서 참석할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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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ㅣ@paperr.bookshop

 

 

- 2편에서 계속됩니다.

 

 

[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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