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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할머니의 장례를 치렀다.


만 27살, 어찌 보면 남들보다 늦게 첫 가족상을 경험했다. 토요일 아침, 여느 때와 다름없이 스터디 일정에 머리를 말리느라 여념이 없던 시간. 엄마의 전화 한 통이 나의 하루를 뒤바꾸어 놓았다.


우습게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엄마의 말을 듣자마자 내가 던진 질문은 “왜?”였다. 지금 생각해도 우습지만, 그만큼 당황했었다는 방증일 것이다. 물론 할머니가 편찮으시다는 건 몇 달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의 만류에 병문안도 가지 못했고, 할머니는 늘 어딘가 편찮으셨던 분이니 이리도 빨리 부고 소식이 들려올 줄은 몰랐던 탓이다.


정신없이 스터디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제일 빠른 버스를 예매하고, 대충 짐을 챙겨 나왔다. 지하철 안에서 경조 휴가와 관련된 회사 내규를 알아보고, 버스 안에서 팀장님과 인사 담당자분에게 연락을 넣었다.


그뿐이랴, 빈소에 도착하자마자 준비된 상복으로 갈아입고, 관계자분의 설명을 들었다. 상주임을 나타내는 머리핀의 위치, 절할 때의 손의 위치까지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일련의 과정들 속, 문득 깨달았다. 남들보다 늦다면 늦은 경험 덕에, 모르는 게 정말 많았다고. 그리고 그건, 나뿐만 아닌 가족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


그날 저녁, 외국에 계신 아빠가 도착했다.


아빠는 불과 이틀 전에 할머니를 뵙고 외국으로 가셨던 참이었다.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이틀 만에 돌아오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귀국했던 목적도 요양원을 알아보기 위함이었으니, 나처럼 가족 모두가 최소 몇 개월에서 몇 년은 시간이 더 있는 줄 알았더랬다.


저녁 늦게 도착한 아빠는 정신이 없어 보이셨다. 장남으로 유달리 할머니와 애착이 깊었던 아빠는 도착하는 순간부터, 입관과 발인까지 내내 눈물을 보이셨다. 부모님이 우는 모습을 처음 보는 게 조부모님의 장례식이라더니, 나에게도 그 말이 적용될 줄이야. 나의 슬픔과는 비견될 수 없을 슬픔을 간직한 아빠를 위해서, 조용히 손을 잡는 것 외에는 해드릴 것이 없었다.


눈 깜짝할 새 지나간 3일, 우리는 그제야 천천히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애석하게도 남편과 아들들, 손주들 모두 살가운 편은 못 되어서, 그럼에도 할머니는 항상 가족만 생각하는 분이어서, 뒤늦게 떠올려보는 기억이었다.

 

할머니는, 언제나 걱정이 많던 분이었다. -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그렇지 않겠느냐만은, 나의 할머니는 24시간 걱정을 달고 사시는 분이었다. 큰일부터 사소한 일까지, 무뚝뚝한 아들들이 진저리 칠 만큼 걱정이 많아서, 할머니는 늘 왜소하셨다. 우리를 걱정하는 시간에서 조금만 더 당신을 걱정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것은 할 줄 모르는 분이셨다.


할머니는, 과거에 머물렀던 분이었다. - 젊은 시절, 할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못했다던 할머니는 언제나 과거의 일을 입에 올리셨다. 이때 이랬다면, 저때 저랬다면. 당신이 돈만 제대로 벌어왔더라면. 엄마는 그 말이 싫다고 했다. 할머니와 애착이 깊은 아빠마저 싫은 얘기는 그만하시라고 화를 냈던 날, 할머니에 대한 애정이 식어버릴까봐 걱정이라고.


그럼에도 할머니는, 고운 분이었다. - 연세에 비해 피부도 곱고 젋어 보이셨던 할머니. 할머니의 어린 시절은 모르지만, 젊은 시절 형편이 어렵지만 않았어도 공주님 같은 성향을 지니셨을 것이다. 남들을 걱정하지 않고, 스스로를 챙기면서 생을 살아가셨을 것이다.

 

*


발인 날,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관을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고생했다. 고생 많았다, 정말로.” 그리곤 곧바로 혼자 남은 집에 들어가시기 싫다고, 함께 가자고 하셨다. 할아버지의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잘못이 많았던 젊은 시절에 대한 후회, 그럼에도 평생 함께했던 고마움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장례 절차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날. 우리 가족은 이런 말을 했다. 슬픈 와중에도 배는 고프고, 피곤은 하다고. 다음 날, 회사로 복귀해서도 그랬다. 준비 없이 며칠이나 자리를 비운 탓에 쳐낼 업무가 너무 많았다. 항상 그랬듯이.


할머니는 우리의 이러한 평범한 일상을, 아무 탈 없는 하루를 평생 바라셨을 것이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은, 그토록 예뻐했던 첫 손녀-나의 언니-의 임신 소식을 알고 가셨다면 좋았을 텐데. 많이 기뻐하셨을 텐데. 한 생명이 지고, 다른 생명이 피어난다는 게 필연인 걸 알면서도 부고 소식을 듣자마자 동시에 떠오른 사실이었다.


다가오는 추석 연휴, 더 이상 ‘할머니 댁’에 할머니는 안 계실 테지만, 대신 할머니의 묘를 찾아가 할머니를 기릴 테지만, 기억은 평생 남는 법. 그곳에서는 더 이상 걱정 없이 증손주의 탄생을 지켜보시며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계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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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많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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