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나의 강, 너의 낭만

글 입력 2023.05.30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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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을 기다리며. 나는 강의 집에 처음 갔을 때를 떠올린다.

 

 
“여기 창문 바로 옆이 거리가 아니라 괜찮아. 저기 높은 담 있어서 밖에서 집 안은 보이지도 않고. 아침마다 담 위에 있는 고양이랑 눈도 마주친다? 나름 낭만 있는 반지하야, 여기.”
 

 

실제로 창밖을 내다보니 집주인이 주차장으로 쓰려고 했는지 한 평의 공간이 있었다. 물론 실제 주차장으로 쓰지는 않는지, 입구는 셔터가 내려와 있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사람이나 차가 들락날락 할 일 없으니 더 좋아 보였다. 창문에는 방범창도 있었고, 그 옆에는 담도 높게 쌓여 있었다. 여자 혼자 사는 집이 반지하라니 걱정했는데, 나는 내심 안심했었다.

 

 

“오, 이 의자가 네 소원에 함께할 그 ‘인생 의자’?”

“그래. 아직 완성 안 되긴 했는데, 틈틈이 만들고 있어. 그래도 집에 작업공간 생기니까 내 의자도 만들 짬도 나고, 좋아.”

 

 

빙긋 웃는 강이를 보며 내가 뭐라고 답했더라. 그래, 네 소원 꼭 이루길 바란다고 했었던가.

 

*

 

강이와 나는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우리 동네는 인구가 만 명이 채 겨우 넘는 ‘군’이었다. 차도 거의 없어서 신호등이 3개밖에 없는 그런 곳이었다. 강이와 나는 고등학교 야자가 끝나면 매일 별을 보며 집을 걸어왔다. 무수한 별들을 보며 강이는 늘 자신이 읽고 감명받았던 시 구절이나 서정적인 가사를 이야기했다. 문학적 감수성이 부족했던 나는 늘 듣는 것밖에 할 수 없었지만, 별빛에 비친 강이의 눈은 늘 반짝 빛났기에 난 늘 그 이야기에 빨려들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반짝이는 별들 속에서 강이의 말을 듣고 오던 날, 문득 강이가 말을 멈추고 “어! 별똥별이다!”하고 외쳤다. “어디?”하고 뒤늦게 물었지만 이미 별똥별은 한 번 떨어지고 그친 후였다. 강이는 자기가 봤으니 됐다며, 얼른 소원 빌라고 나를 재촉했다. 나는 어차피 보지도 못한 거 대충 빌고 강이를 슬쩍 봤는데, 강이는 두 손을 마주 잡고 눈을 꼭 감은 채 열성적으로 소원을 빌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웃겼지만, 강이가 이토록 바라는 게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윽고 눈을 뜬 강이에게 난 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물었는데, 강이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낭만적인 삶을 살게 해달라고 빌었어.”

“엥? 뜬금없이 낭만?”

“응. 나는 낭만 있게 살다가 죽을 때도 낭만 있게 죽을 거야. 우리 아빠 목수 인생 평생 꿈이 인생 의자 하나 만드는 거라고 말했지? 나도 내 마음에 쏙 드는 인생 의자 하나를 만들고, 노을이 지는 강가에 그 의자에 앉아서 노을을 볼 거야. 그리고 서서히 눈을 감는 거지.”

“야, 그게 네 마음대로 되겠냐.”

“아 왜. 소원이잖아. ‘낭만’ 한자가, 물결 랑에 흐를 만이래. 내 이름 강이잖아. 딱인 것 같지 않아? 완전 낭만적이지!”

 

 

신나서 조잘조잘 떠드는 강의 옆모습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별빛에 비쳐 찬란했다. 문득 강이는 정말 그 자체로 낭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네가 좋다는데 뭐. 내가 아무 말 없이 듣고 있자 강이는 약간 민망해졌는지 나에게 넌 무슨 소원 빌었냐고 물었다. “그냥, 우리 둘이 서울 무사히 올라가서 잘 사는 거.” 대수롭지 않게 말했더니 강이가 넌 낭만이 없다고 말했다. 난 어차피 별똥별을 못 봐서 대충 빈 건데 어떠냐고 대답했었고. 그때 내가 대강 소원을 빌지 않았다면 어쩌면 내 소원도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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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는 서울에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던 날, 자기가 말한 그 의자 위에서 죽었다. 진짜 그 의자 위에서 죽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창 쪽에 의자가 놓여 있었고, 방범창을 안에서 부순 흔적이 있었다는 점을 미루어 보아 집 안으로 물이 들어오자 창문으로 탈출을 시도한 것 같다고 경찰이 말했다. 그러나 이미 안타깝게도 창 쪽도 이미 홍수 상태였다고. 주차장의 입구와 높은 담으로 막힌 그곳도 이미 물에 가득 차 있었고, 창을 여는 순간 그 물들이 폭포처럼 밀려 들어와 집안은 더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강이는 그 의자 위에서 끝까지 창문으로 나가려고 시도했겠지.


장례를 치르고 나서, 나는 기력이 없으신 강이의 부모님을 도와 강이의 집을 같이 정리했다. 재해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잔인했다. 강이의 흔적이 남은 뭐 하나라도 제대로 건질 수 없었다. 강이가 만든 그 인생 의자도 온갖 오물에 더럽혀져 한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강이의 부모님은 이 의자도 버리기를 원하셨고, 그래서 그냥 이 의자는 내가 가지기로 했다. 어쨌거나 네가 마지막으로 있었을 의자, 네가 네 인생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어 했던 의자. 어쩌면 나만 들었을 네 소원, 내가 완성해줘야지.

 

이제 노을이 올라오는가 보다. 최대한 닦는다고 닦았지만 이미 제 빛을 잃은 의자. 그럼에도 나는 그 의자에서 너의 낭만을 지킨다. 내가 한 줌 가져왔던 너의 유해를 강물에 흘려보낸다. 물결 따라 네가 흐른다.

 

나의 강이 흐른다.

강의 낭만이 흐른다.

나의 낭만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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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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