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상처 입은 여린 가지가 단단히 뿌리 내리기까지 – 뮤지컬 '오즈의 의류 수거함' [공연]

혼자 자라는 나무는 없다
글 입력 2022.10.1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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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어 보이지만 늘 생각보다 부드러운 수피(樹皮)는

수백수천 번 겉이 터지고 벗겨지며 오랜 세월 스스로를 이루어 온 흔적입니다.

우리도 어쩌면 그와 같은 방식으로 겨우겨우 이루어 온 지금의 자신일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 누구도, 심지어 당신 자신조차도 결코 스스로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대해서는 안 됩니다. 

 

때에 이르면 나무들도 옷을 벗고 땅에 떨군 모든 것들은 뿌리로 돌아가겠지요.

그렇게 혹독함을 견디고 신록이 피어날 때쯤이면

나도 당신도 결국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거뜬히 나을 것입니다. 

 

- 심규선(Lucia) EP [소로(小路)] 앨범 소개 中

 

 

거칠어 보이는 나무 껍질이 간직한 부드러움은 수백 수천 번 겉이 터지고 벗겨지며 성장하고 생존해온 흔적이다. 하지만 땅 밑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멋지게 우거진 잎을 가진 나무에게도 여린 가지였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여린 가지가 든든한 나무가 되기까지, 또 이들이 모여 숲을 이루기까지 지나왔을 시간들을 생각해 본다.

 

나무들은 각기 다른 환경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라지만, 무엇보다 분명한 건 혼자 자라는 나무는 없다는 것이다. 나무들은 뿌리를 품는 흙과 나무를 비추는 햇빛, 주변의 여러 생물 등 다양한 자연의 요소들과 상호작용하며 영양분을 얻고, 다른 나무들과 숲을 이루며 함께 성장한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도 혼자 자랄 수는 없다. 우리는 각기 다른 상황에서 자라지만 그럼에도 모두 여린 가지 같은 ‘아이’의 시기를 거치며 ‘어른’이 된다. 그리고 다시 어리고 여렸던 과거의 우리와 조금은 닮아 있는 아이들과 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각기 다른 모습의 ‘숲’ 안에서 성장해 온 우리는 우리 곁의 아이들에게 어떤 숲이 되어줄 수 있을까?

 

우리가 함께 이룰 숲은 더 많은 햇빛과 양분을 얻기 위한 경쟁으로 점철되기보다는 바람에 흔들리더라도 새로운 껍질이 돋아나는 성장의 시간을 오롯이 바라봐줄 수 있었으면, 각기 다른 시간을 지나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더 많은 양분을 품을 수 있었으면 한다. 이러한 숲에서 자란 아이들은 더 든든한 나무가 되어, 더 푸르고 멋진 숲을 만들 것이라 믿는다.

 

뮤지컬 <오즈의 의류 수거함>은 이렇게 상처 입은 여린 가지였던 아이들과 변두리의 어른들이 모여 서로에게 숲이 되어주는 이야기다. 서툴지만 따뜻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함께 성장해가는 아이들과 어른들의 연대와, 그럼에도 유효한 ‘어른’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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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여린 가지가 단단히 뿌리 내리기까지


 

뮤지컬 <오즈의 의류 수거함>은 외고 입시에 떨어진 후 방황하던 주인공 ‘도로시’가 호주로 떠나기 위해 구제 옷가게를 하는 ‘마녀’에게 의류수거함에서 훔친 헌 옷을 되팔고, 이 과정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로시는 비록 의류 수거함에서 옷을 훔치지만,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떠돌면서 사는 ‘숙자’에게는 스카프를, 추운 방에 사는 할머니에게는 겉옷을 나누기도 했고, 할머니 방의 보일러를 바꿔주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195’와의 만남도 마찬가지였다. 여느 때처럼 195번 의류 수거함에서 옷을 훔치던 로시는 자살을 암시하는 노트와 일기, 핸드폰, 상장들을 발견한다. 로시는 이 물건들의 주인에게 ‘195’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의 자살을 막기 위해 의류수거함을 통해 메시지를 남긴다. 이를 계기로 로시는 195와 쪽지를 주고받고, 의류 수거함 속 옷을 훔치는 일을 함께 하기로 한다.

 

이렇듯 로시는 의류 수거함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났고, 도로시가 이들과 나눈 온기는 다시 로시에게로 돌아온다.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산꼭대기 옥상에 있는, 마녀의 단골 식당 ‘숲’에 모인 이들은 식당 주인 ‘마마’를 중심으로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 사이 ‘195’는 ‘준호’가 되고 마마와 아이들은 마음 속에 묻어 두었던 상처들을 서로의 앞에 꺼내고 나누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다.

 

특히 준호, 로시, 마마, 이 셋의 상처는 ‘청소년 자살’ 등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청소년 의제와 관련되어 있다. 준호와 로시는 모두 과열된 경쟁 속에서 ‘실패’를 경험한 아이들이다. 준호는 아버지의 과도한 기대 속에서 바랐던 인정을 한 번도 받지 못했고, 유일하게 마음을 나누던 친구마저 잃게 된다. 로시는 외고 입시를 준비하다 떨어진 이후, 주변 사람들의 무시와 자책 속에서 친구들 사이에도 쉽게 섞이지 못한다.

 

비록 극 중에서는 아이들이 마주하는 다양한 위치에서의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그리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아이들이 마주한 ‘실패’가 이들이 어디에 서 있든 너무 큰 좌절로 다가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들이 마주한 문제를 ‘청소년’만의 문제라 할 수는 없지만, 청소년이라는 그들의 위치가 이들이 이 문제를 마주하고 풀어가는 데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실제로 과열되고 분절된 경쟁이 야기하는 문제들은 어른들의 세계를 경유하여 청소년들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한 번의 실패가 ‘패배’가 되고, 이것이 ‘삶 전체에서의 실패’처럼 다가오는 우리 사회의 경쟁구조 속에서 아이들은 실패에 너무 쉽게 취약해질 수 밖에 없다. 특히 이러한 사회에서는 미래를 그리는 다양한 선택지를 충분히 탐색하고 주체적으로 원하는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와 자원이 제한되어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를 통해 계속 강화되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다시 경쟁을 더 과열시키는 기제가 된다. 따라서 아이들이 지니는 실패에 대한 취약함과 실패를 통해 경험하는 좌절의 책임을 오롯이 아이들의 몫으로 놓아둘 수는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동안 우리 사회 안에 자리 잡았던 ‘실패’와 ‘성공’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야 하며, 수많은 어른들이 이뤄왔고 앞으로 또 많은 아이들이 함께 할 우리 사회의 경쟁시스템에 대해 더 이야기해야 한다. 이는 우리 사회 안에 깊게 뿌리 내린 능력주의와 교육 시스템, 우리 안의 다양한 위치를 구분 짓던 질서와 규범을 다시 생각하고 개편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한순간의 모든 변화를 이룰 수는 없어도 나무가 아닌 숲을 보듯, 차근차근 변화를 위한 논의와 준비, 실천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단단한 땅에도 든든히 뿌리 내려 멋지게 우거진 잎을 가진 나무들도 모두 여린 가지에서 시작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고 상처 입더라도 다양한 사람들과의 연대 안에서 충분히 회복하고 다시 나아갈 수 있도록 더 든든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은, 더 많은 아이들 그리고 ‘어른아이’들이 계속해서 더 나은 사회를 꾸릴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그리고 미래 세대와 소통하며 이러한 기반을 만들어 가는 것은, 어떤 사회를 겪어왔든 모든 ‘어른’의 역할이자 책임이다. 극 중에서 식당의 위치만큼이나 사회의 주변부에서 밀려난 이들은 서로 부족한 상황에서도 마음을 나누며 연대한다. 하지만 따뜻하게만 보이는 이들의 연대에서 ‘어른’의 역할과 책임, 이러한 연대를 지시할 수 있는 더 단단하고 섬세한 시스템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현실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로시와 준호, 또 ‘마마’의 ‘숲’에 모였던 모든 아이들과 어른들이, 실제 우리가 마주한 현실 속에서도 멋진 숲을 함께 이루고 지친 이들을 다시 품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마마’가 아이들에게 건넸던 대사를 주문처럼 놓아둔다.


“나무처럼 단단히 뿌리내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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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현실과 가벼운 해피엔딩


 

뮤지컬 <오즈의 의류수거함>은 동명의 청소년 문학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장르의 특성에 맞게 18살인 로시와 준호를 주인공으로 하여, 이들의 입을 통해 ‘청소년’으로서 각자가 마주하는 문제와 현실을 이야기한다. 물론 이들 둘의 이야기가 다양한 층위의 청소년들이 겪는 모든 어려움을 아우르고 있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다.

 

하지만 청소년 의제를 이야기의 중요한 소재로 다루고 있는 만큼, 극 안에서 ‘청소년’과 이들의 어려움을 다루는 태도와 방식을 모두 살펴보는 것은, 극이 직간접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특히 이 극이 넓은 연령층의 관객들이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뮤지컬’을 표방하며 홍보해 왔고, 청소년을 포함한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에게 극 안에서 청소년을 다루는 태도와 방식이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극 안에서 자살을 암시하는 ‘195’의 물건을 발견한 ‘도로시’는 적극적으로 195와 소통하려고 하지만, 정작 주변의 어른들은 이런 로시의 행동을 195에 대한 ‘연애 감정’으로만 읽는다. 물론 ‘숙자씨’는 로시에게 195가 의류수거함에 물건들을 버린 것은 어쩌면 누군가 붙잡아 주길 바란 것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며 격려해주기는 했지만, 극 중의 어른들은 195가 마마의 식당 ‘숲’에 나타나기까지 그와의 소통을 전적으로 로시에게만 맡겨둔다.

 

비록 로시와 195(준호)가 서로 알아가고 서로의 상처를 꺼내놓으며 연대하는 과정을 통해 극이 진행되고 감동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극 중에서처럼 어려운 상황에 처한 청소년과의 협상과 연대를 청소년 개인의 몫으로만 둔다면 많은 경우의 현실에서는 이렇게 따뜻하고 가벼운 마무리가 가능하기는 어렵고, 심지어 위험할 수도 있다. 

 

이는 청소년들을 마냥 수동적인 존재로 보는 것도 아니고, 독립적인 주체로서 청소년들의 문제 해결 능력을 의심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사회 안에서 ‘청소년’이라는 위치 혹은 정체성이 갖고 있는 취약함과 청소년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주체성이나 역량을 혼동해서는 안되며, ‘청소년과 어른’이라는 구도가 내포하는 힘의 차이를 인지하는 것은 필요하다.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않은 채로 다양한 청소년 의제를 다루는 것은, 청소년이 마주하는 어려움을 축소하거나 이를 청소년 개개인의 탓으로만 돌리게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 안의 청소년이 마주하는 어려움을 제대로 인지하고 이를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면에서 청소년의 위치와 정체성을 살펴보고 청소년의 주체성과 역량을 제대로 존중할 수 있는 논의와 제도가 필요하다. 특히 청소년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든든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과, 다양한 영역에서 청소년의 권리와, 여러 고정관념 등으로 인해 비가시화된 청소년 의제를 제대로 마주하고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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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논의의 과정에서 미디어와 문화예술에서 그리는 청소년의 모습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근 다양한 미디어의 출현으로 문화예술과 미디어의 소비자와 생산자로서의 청소년도 이야기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청소년은 다양한 미디어와 문화예술 속에서 ‘청소년’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해 당사자로서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개입하기는 어려운 현실에 있다. 따라서 아직도 많은 미디어와 문화 예술 작품 안에서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시선으로 재현되며, 그럼에도 이러한 재현이 수용되고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이것이 실제 청소년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미디어와 문화예술 작품 안에서 청소년을 재현하는 것은 굉장히 신중히 이루어지고 또 소비되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극 중에서 준호와 로시가 당면한 어려움을 그리고 이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맺는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와 연대를 표현할 때, 실제 청소년들이 현실 속에서 체감하는 위치와 이를 통해 갖는 정체성을 좀 더 다방면으로 고려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또한 준호가 마약을 하는 연출도, 준호에 대한 로시의 감정을 연애 감정으로만 이해하고 희화화하는 등장인물들의 표현도, 좀 더 다양한 관객들에게 미칠 영향을 섬세하게 고려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는 어쩌면 무거운 현실을 반영한 사건들을 장르에 맞게 다소 가벼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생략된 부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극 중에서처럼 개개인의 역량이나 선의로 완벽한 해피엔딩을 만드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가벼운 해피엔딩이 주는 따뜻함과 감동은 충분히 느끼되 그 뒤의 무거운 현실을 잊으면 안 된다. 따뜻하고 마법 같은 이야기에 힘을 얻고 쉬어가면서도, 우리가 마주한 다양한 위치에서의 현실을 함께 이야기하고 바꾸어 나갈 수 있기를 바라 본다. 

 

 

 

김효중 컬쳐리스트 태그.jpg

 

 

[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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