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아빠도 엄마도 없는 마이홈 - 뮤지컬 '스페셜 딜리버리: HOME'

글 입력 2022.08.03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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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홈’과 ‘스윗홈’의 간극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이 날 때부터 주어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가족이 발목을 잡아 자라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가족조차 없어서 평생을 갈망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든 ‘마이홈’과 ‘스윗홈’의 간극은 언제나 존재한다.

 

뮤지컬 <스페셜 딜리버리: HOME>는 비가 들이치는 마이홈과 달리 따뜻한 스윗홈을 꿈꾸는 세 사람의 노래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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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하리, 사랑, 라라는 모두 ‘보통’이라고 생각되는 가족관계에서 이탈되고, 가족을 갈망하는 사람들이다. 한때 아이돌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지금은 과거의 상처를 간직한 채 혼자 살아가는 사랑, 동성애자이기에 한국에서 사는 한 결혼해 가정을 꾸릴 수 없는 라라, 그리고 가정폭력을 피해 집을 나온 하리. 엄마, 아빠, 아이로 이루어진 흔해 빠진 가족이 이들에게는 성냥팔이 소녀가 보는 환상만큼이나 귀하다.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인물인 만큼 각 넘버는 인물들의 성격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예를 들어 하리는 반항적이고 털털한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 힙합 풍의 노래를 부르며, 가사도 직설적이다. 사랑은 아이돌이었던 경력을 살려 자작곡 콘셉트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라라랜드라는 바를 운영하는 라라는 자연스레 바에서 노래를 부르며 등장한다.

 

스윗홈을 꿈꾼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세 사람이 과연 함께할 수 있을까.

 

 

 

무거운 소재를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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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의 이름을 봐서는 시트콤 같은 일들을 겪은 뒤 가족이 되는 이야기일 것만 같지만, 생각보다 작품이 다루는 소재는 가볍지 않다. <스페셜 딜리버리: HOME>은 우리 사회에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문제를 미화하거나 돌려 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되, 당사자의 목소리로 말하고자 한다.

 

팸의 강요 때문에 조건만남을 하고, 임신까지 한 하리를 세상은 쉽게 ‘비행청소년’이라 낙인찍는다. 하지만 이 작품은 세상의 시선을 반영하는 대신 어떻게 하리가 지금에 이르렀는지 보여준다. 하리를 보며 법의 보호도 가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여성 청소년이 한번 삐끗하면 얼마나 쉽게 심각한 위험에 빠질 수 있는지 관객은 절감한다.


사랑과 라라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엄마를 비롯한 다른 어른들의 뜻에 따라 너무 어린 나이에 대중 앞에 서야 했다. 당시 사귀던 연인과 헤어지고 그 연인의 아이를 지운 기억은 여전히 상처로 남아 있다. 하리와 사랑에 비해 라라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은 편인데, 성소수자에게 보수적인 한국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네덜란드로 이민 가고 싶다는 그가 지금껏 어떤 세월을 보내왔을지 짐작할 수 있다.


뮤지컬은 사회가 규정한 ‘정상’에서 벗어나 살아가는 사람들, 어둡고 불편한 소재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이를 심각하게만 그려내지 않는다. 원하는 대로만 삶이 풀리지는 않고, 그러니 이런 삶도 있다고 긍정하며 이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라디오 공개방송, 과거의 임신 루머로 비아냥대는 관객 앞에서 말을 잃은 사랑에게 하리는 “쫄지 마”라고 응원한다.

 

사랑과 라라는 하리가 임신중절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 ‘네가 더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해’라는 가사의 넘버를 부른다. 중간중간 혁세가 하리에게 저지른 폭력을 재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특정 성별을 일컫는 욕설을 의도적으로 뺀 것도 섬세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다.

 

 

 

‘정상 가족’이라는 허상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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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악연에 가까웠던 하리와 사랑, 그리고 라라까지. 세 사람은 중간에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결국 함께하기로 한다. 가족 없는 이들이 만나 새로운 가족이 된 것이다. 하리는 사랑과 라라의 도움으로 팸과 혁세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가족 없는 이들이 만나 새로운 가족이 되었다. 여기서 눈여겨볼 지점은 사랑과 라라가 하리, 그리고 그 동생들까지 데려오기로 결심했어도 두 사람이 그들의 아빠와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있어.

아빠 곰은 없어, 엄마 곰도 없어,

아기곰은 음...

 

 

뮤지컬 속에 나오는 노래의 한 구절은 익숙한 동요 ‘곰 세 마리’를 비튼 가사다. 이는 피 안 섞인 이들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에서 더 나아가 엄마와 아빠라는 호칭, 그리고 그 역할이 꼭 필요한가 묻는다.


라라와 사랑은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는 이상적인 부모와는 거리가 있다. 일단 두 사람은 성인 남녀이지만 서로 성애적으로 사랑하지 않는다. 때론 감정에 휩쓸리기도 하고 철없게 굴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보다 하리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들이다. 하리 역시 말 잘 듣고 효도하는 자식상과는 거리가 멀다. 이 가정에는 엄마 곰과 아빠 곰 없이 상처를 지니고 조금씩 부족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아기곰만 가득하다. 하지만, 그런 가족이면 어떤가.


돌이켜보면 하리가 아빠라고 불렀던 이들은 가족의 기능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날 때부터 있던 가족은 가정폭력으로 하리를 집 밖으로 내몰았고, 거리에서 만난 ‘팸’은 패밀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하리를 착취하고 협박했다. 세 번째 만난 가족, 아빠 엄마라고 부르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속에서 비로소 하리는 안전하게 숨 쉴 공간을 얻는다.


극이 시작될 때 사랑과 하리는 도달할 수 없는 ‘정상 가족’을 꿈꾸었다. 사랑은 식구를 위해 저녁식사를 차리고 하교한 아이에게 간식을 만들어주는 엄마의 모습을, 하리는 “학교 다녀왔습니다” 외치고 엄마와 대화하는 딸의 일상을. 그러나 이미 수많은 ‘정상 가족’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불화를 알고 있는 우리는 그러한 정상 가족으로 이루어진 ‘스윗홈’ 또한 도달할 수 없는 허상임을 알고 있다.

 

사랑과 하리, 라라, 하리의 동생들과 앞으로 태어날 아이까지 함께하는 이 가족은 '완벽한 스윗홈'이 되려 할 필요가 없다. 아기곰들이 모여 있는 이 가족은 그저 '괜찮은 마이홈'이 되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잘 살아갈 것이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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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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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기원
    • 정상가족에 대힌 질문과 고민.. 소년심판을 보면서 아이의 문제는 가족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공감가득한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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