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번아웃이 온 것 같아

아직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모르지만
글 입력 2022.05.04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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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을 마치고 1년을 휴학한 나는, 4개월 동안 쉴 틈 없이 바쁘게 살았다.

 

휴학의 목적은 더 많은 것을 이뤄냄으로써 경험과 능력을 쌓고, 이를 통해 취업을 대비하는 것이었다. 기존에 해왔던 것들에 더해 학기 중에 하지 못했던 것들에 도전하며 가짓수를 늘려나갔다. 자격증 공부, 프로젝트, 동아리, 글쓰기, 아르바이트, 전시와 공연 준비 등으로 부지런한 일상을 보냈던 것 같다.

 

일과 휴식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문화생활도 즐기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여행도 떠났지만, 큰 즐거움을 얻지는 못했다. 일상의 낙이었던 음악 감상과 영상 시청마저 지루하게 느껴졌다. 심지어는 그토록 기대하던 공연을 관람하면서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나를 보며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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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일에 지나치게 몰두한 사람들이 겪는다는 번아웃이 온 것 같다. 무언가를 끝내고 나서 느꼈던 성취감과 뿌듯함이 점차 희미해짐을 발견했다. 시작했을 때의 설렘과 흥분감은 어디로 갔는지, 빠르게 마무리하고 다음 과제로 넘어가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언제부턴가 합격이 당연시되는 나날들을 보내니 도전 의식이 사라졌고, 새로운 걸 시도할 의욕 또한 바닥났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기계 같다고 했는데, 그 말에 딱히 부정할 수 없던 것도 사실이다. 스스로 '포트폴리오 쌓는 기계'같다고 생각한 적 있으니 말이다.

 

이는 인간관계에서도 똑같이 작용했다. 주변으로부터 완벽한 사람으로 보이고자 노력했기에 좀처럼 솔직하게 굴 수 없었다. 거짓된 나는 가면을 쓰고 상대와 이야기를 나눴고, 내 진심을 내보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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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공동 작업이나 단체 모임이 많다 보니 사람들을 주도하고 대화를 이끄는 일이 잦았다. 그러다 보니 나보다는 남의 편의에 맞춰 말하고 행동했다.

 

내 이미지에 흠집 나는 게 두려워 내가 힘들어도 다른 이가 편하다면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쌓아온 관계들은 나만 놓으면 흩어질 정도로 가볍고 얕았다. 그동안 해온 노력이 산산이 부서지며 지독한 허탈감을 느꼈다.

 

이제는 괜찮을 거라고 위로하기도 벅찬 상태에 도달했다. 멀쩡히 있다가도 가끔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고, 인생이 부질없게 느껴지고 등 말이다. 그럴 때마다 핸드폰에 집착하고,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급기야는 갑자기 밖으로 나갔다.

 

혼자서 끝도 보이지 않는 장거리 마라톤을 뛰다가 주저앉은 기분이랄까. 다시 나아가야 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힘들어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다. 잠시 쉬면 나아질 것 같아서 쉬고자 했는데,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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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하루를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시간 강박으로 쉬는 방법을 까먹었기 때문이다. 간단한 취미마저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에 질려 일단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누군가와 함께하면 나를 괴롭히는 공허와 불안이 잠재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어렸을 적부터 혼자 모든 걸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남몰래 끙끙 앓는 경우가 많았고, 그렇게 생긴 상처는 제대로 아물지 못했다. 남의 아픔은 내 아픔처럼 여기며 공감하고 위로했지만, 정작 내 아픔은 말하지도 못한 채 쌓아두기만 했다.

 

그런 내가 요즘 사람들과 만나며 나의 상처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나 역시 완벽하지 않은 사람임을 보여주며 여러 조언을 구하는 중이다. 어떻게 보면 좋은 변화가 찾아왔다고도 볼 수 있겠다. 믿고 의지할 대상이 생기니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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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면서 힘든 적이 없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평온한 삶을 보내왔었다. 이번처럼 크게 앓은 건 처음이다. 아직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고, 만약 방법을 안다고 해도 쉽게 좋아질지는 잘 모르겠다. 천천히 쌓여온 것들이 이번에 한 번에 폭발한 듯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무시했던 기시감이 한꺼번에 덮쳐왔음을 느낀다.

 

최근 나에 대해 생각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많은 것들을 깨닫는다. 일상의 소중함, 뜻대로 되지 않는 인간관계, 현실의 무게 등 말이다.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기분이지만, 그래도 안전하게 해제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으리라 믿고 있다.

 

부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힘들지 않길, 고된 하루 끝에서도 웃으며 잠들 수 있길 바라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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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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