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공연과 카지노의 특별한 만남 - 이머시브씨어터 '카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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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y more bets? Last Call!
2022년에 초연한 이머시브씨어터 '카지노'(이하 '카지노')는 크리스마스 에디션, 재연, 오픈런을 거쳐 라스트 시즌을 순항 중이다. 마지막 시즌은 2025년 4월 27일까지 대학로 스타시티 카지노 전용관에서 상연되며, 105분 동안 전석 5만 원의 가격으로 공연과 카지노를 함께 체험할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
'카지노'는 트리거 워닝을 통해 설명하듯 총소리, 사이렌, 섬광 등의 음향과 연출은 물론, 폭력, 유혈, 고함 등 자극적인 장면이 공연 전반에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트리거에 민감하지 않았던 필자 역시 공연이 끝난 후 정신이 멍해졌다. 15세가 아니라 19세 이상 관람가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수위가 높은 편이다. 따라서 심약자의 경우 각별히 주의해서 예매하기를 권장한다.
카지노 전용관에는 좌석이 없어서 관객들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게다가 관객들은 공연 시작 전 티켓 뒷면에 있는 숫자 빙고를 작성한 후, 10분 전부터 게임에 참여할 수 있다.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관객들의 경우, 한두 번 온 솜씨가 아니듯 손에 어마어마한 칩이 들려있는 걸 볼 수 있다. 이러한 재관람 관객들에게는 멤버십 카드를 부여하는데, 골드-사파이어-시그니처-프리미어-엘리트-마시모-로얄 등 관람 횟수에 따라 차등적인 혜택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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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붉은 커튼 속, 끝나지 않을 게임
파라다이스 카지노의 MC '빈'이 붉은 커튼으로 둘러싸인 카지노의 문을 화려하게 연다. 이윽고 이곳의 여가수 '보라'(나소미/나나 역)가 공연을 선보이며 분위기를 띄운다. 본격적인 카지노판이 열리고, 총 다섯 테이블에서 게임이 진행된다. 중간중간 '빈'이 흐름을 끊고 이벤트를 진행하거나 스토리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등의 구성으로 이뤄진다. 마지막에는 가장 칩을 많이 딴 '카지노 킹'을 합산하여 상품을 증정한다.
사실 스토리 자체에 큰 줄기는 없다. 캐릭터 위주의 서사가 전개되기에 한 명 한 명 세밀하게 관찰해야 모든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다. 먼저 파라다이스 카지노 안에는 각자의 사정으로 묶여 있는 딜러들이 있다. 자신의 누나를 찾으러 온 '혁', 그와 연인 사이인 '우', '혁'을 짝사랑하는 '수', 그리고 그들과 함께 도박장을 벗어나려는 '민'과 '현'이 있다. 아울러 이처럼 혼란스러운 카지노 속 도박중독자 '이해리'와 그녀의 남편 '김승준'의 말로를 보여준다.
작품의 가장 중심 사건인 '이해리'와 '김승준'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가정을 내팽개칠 정도로 도박에 미쳐있는 '이해리'를 찾으러 온 '김승준'은, 그녀를 데리고 도박장을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나 끝까지 "한 판만 더"를 외치던 '이해리'는 그의 뜻을 거부했고, 결국 '김승준'은 보안 요원들에게 구타당하며 쫓겨난다.
잠시 후 '빈'이 등장해서 '김승준'의 시체를 관 속에 집어넣는다. 그러다 '존 대표'에게 사채업을 통해 이익을 남기던 사실이 발각되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무릎 꿇고 빌면서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다. 뒤이어 '김승준'의 장례식이 진행되고, 차갑게 식어있는 남편을 마주한 '이해리'는 처절하게 절규한다.
그러나 반전은, 그녀가 '해피 대출'에 남편을 팔아넘겨 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아들이 전화하자 백화점에서 쇼핑 중이라고 변명하고, 이를 믿지 않는 아들에게 고함을 지르는 등 완전히 도박에 미쳐버린 모습을 보인다. 결국 그녀는 남편을 팔아 얻은 돈마저도 모두 잃고, '존 대표'가 넘긴 총을 받아 자살한다.
다음으로 딜러들의 사연이다.
모종의 이유로 카지노에 끌려온 5명의 딜러(현, 민, 우, 혁, 수)는 이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달나라 파킹'으로의 도피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를 고발한 누군가에 의해 계획이 들통나며 '존 대표'에게 맥없이 끌려간다.
몰래 총을 가져온 '혁'은 '존 대표'를 쏘지 못하고, 외려 자신이 그 총에 맞으며 허무하게 목숨을 거둔다. 알고 보니 그의 누나였던 '현' 또한 피 칠갑이 되고, '존 대표'에게 살아남기 위해 그녀를 폭행한 다른 딜러들에 의해 죽음에 이른다. 여기에 '수'로 인해 마약 때문에 정신을 잃고, 죽은 '혁'이 어디 갔냐고 찾는 '우'까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그렇게 딜러들의 탈출은 수포가 되고, 남겨진 이들은 또다시 게임을 시작한다.
Welcome to the Paradise Casino!
'카지노'는 입장 시에 나눠주는 칩을 통해 게임을 진행한다. 이때 가면을 쓰고 입장할지 말지는 관객의 선택이다. 여기서 카지노 게임은 총 4가지 종류로, 블랙잭, 하이앤로우, 다이사이, 바카라가 있다. 중간중간 극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관객 이벤트로는 사전에 작성한 입장권으로 진행하는 '빙고 게임', 칩이 없는 사람을 위한 '댄스 배틀', 이긴 사람에게 칩을 주는 '가위바위보'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몇몇 관객은 비밀 미션을 수행한다고 한다.
필자는 비밀 미션을 받은 적은 없지만, 다양한 배우들과 대화하며 이머시브의 매력을 느꼈다. 처음에는 한곳에 머물러 있다가 차차 적응되고 나서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는데, 1) '미연'에게 해피 대출 카드를 받고 컵에 보관해 두었다가 '민'에게 찢겼고, 2) '이해리'가 돈 필요 없냐고 물어봤고, 3) '현'과 '우'가 다른 이들은 어디 갔냐고 물어보는 등 짧게라도 호흡한 덕분에 카지노의 엑스트라가 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도박장 내의 무서운 분위기에 겁먹은 나머지 특정 질문에는 "괜찮아요.", "모르겠어요."와 같은 반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번 관람한 사람들의 경우, 굉장히 적극적으로 호흡하며 더 많은 재미를 누렸던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후반부에는 게임 시작 전 룰 설명을 요청하거나, 칩을 바꿔 달라는 둥 조금이라도 더 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굳이 대화가 아니더라도 배우와 게임을 함께 하며 친밀감을 쌓는 과정 속 이 공간 자체에 깊이 몰입했다. 그들의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가 정말 실감 나서 배우들이 아니라 실제 인물들을 만난 것 같아서 마지막에는 심적으로 힘들었다. 커튼콜 후에도 극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절망적인 감정이 드는 건 처음이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점은 누가 배우고 누가 관객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물론 중간에 배우가 숨어있기도 했지만, 몇몇 관객은 정말 도박장의 손님처럼 행동해서 당황스러웠다. 여기서 필자가 겪은 일을 소개하자면, '우'가 죽은 '혁'이 어디 갔냐고 물었을 때 차마 사실을 말할 수 없어서 모른다고 답변했다.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완전히 극에 몰입한 듯 오랜 시간 대화하면서 눈물을 닦고, 어깨를 토닥이고, 심지어 자신도 눈물을 글썽거리며 '우'를 안타깝게 바라봤다. 마치 둘이 연기를 주고받는 듯해서 순간 필자 빼고 모두가 배우인가 할 정도로 기시감이 들었다. 그래서 어딘가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정말 잘 만든 이머시브 극이라고 생각했다.
게임에서 현실로 복귀하다
물론 카지노의 실체와 인간의 본성을 폭로하는 이야기다 보니 그 잔혹성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빈약한 스토리를 과격한 연출로 덮다 보니 게임에서 극으로 전환될 때마다 흐름이 끊겼다.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흥미가 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박수와 함성이 줄어드는 등 소극적으로 변한 광경이 필자와 같은 관객들의 심정을 대변해 주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잔인하고 무자비한 연출은 현실 복귀에 도움을 주었다. 계속 카지노에 있고 싶다는 욕구를 억제하는 용도로 도박의 폐해를 생생하게 재연한 듯 보였다. 실제로 공연 중 게임 칩이 분실되거나 외부 칩이 반입되는 등의 문제가 생겼고, 관객들 사이에 불쾌한 신체 접촉이나 욕설 사용까지 목격되었다고 한다. 위와 같은 상황은 자칫하면 공연의 질을 낮출뿐더러 관객들을 도박 중독으로 이끌 수 있다. 제작사는 앞으로도 적절한 환기와 제재를 통해 관객들이 게임과 현실을 분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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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카지노'는 극으로서의 완성도는 아쉬웠지만, 이머시브 작품으로서는 만족스러웠다. 어렵지 않은 룰 덕분에 4가지의 게임을 번갈아 플레이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더불어 대부분 배우의 신분이 딜러인 덕분에 부담 없이 소통하고, 여러 인물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카지노' 속 엑스트라 1로 분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장점들이 이머시브씨어터 '카지노'의 매력을 극대화함으로써 지금까지 못 잊을 독특한 기억을 선물해 줬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살아갈 파라다이스 카지노의 사람들이 부디 무사한 나날을 보내길, 그곳을 하루빨리 탈출하길 소망해 본다.
[최수영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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