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이 되면 해마다 새 노트를 꺼내 첫 페이지 한편에 그해의 버킷리스트를 정리했다. 어디에 가고 싶은지, 무엇을 보고 싶은지, 아직 해보지 못한 경험들—프리다이빙, 낯선 도시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기, 못 가본 해외 페스티벌 가기 같은 것들. 그 목록을 적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는 일종의 다짐이자, 앞으로의 시간을 조금 더 기대하게 만드는 장치였다. 버킷리스트는 늘 '앞으로의 나'를 상상하게 했고, 지금의 나를 견디게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는 좀 달랐다.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인생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해야 하는 시점에 서자 버킷리스트를 적는 손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예전처럼 목록을 적으려고 하면 자꾸만 멈칫하게 됐다. 이게 정말 내가 지금 원하는 걸까, 혹은 그냥 그동안 해오던 거라 관성처럼 적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이라는 정의 자체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했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이라면, 굳이 죽음에 임박해야만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정말 중요한 것이라면 평소에도 그것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진심으로 간절한 것이 있다면, 목록에 적지 않아도 이미 실천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내가 써왔던 버킷리스트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죽기 전에 꼭 이루겠다'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저걸 하면 행복할 거야'라고 믿으면서, 지금의 불행을 참아내는 도구로 버킷리스트를 사용했던 거다. 그렇다면 그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현재로부터 도망치는 수단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작년에 겪었던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을 톺아보니 의문들은 점점 더 또렷해졌다. 지금 사는 집의 보증금 문제, 전 직장의 이슈, 예상하지 못했던 크고 작은 사건들. 삶이 흔들릴 때마다 깨닫게 되는 건 결국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가는 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 특별한 성취가 없어도, 큰 사건이 없어도, 오늘 하루가 평온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었다. 하루가 무사히 흘러가는 것.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일을 하고, 해가 질 때쯤 하루를 돌아보며 "오늘도 잘 보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하루. 그래서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보내는 것 자체가, 어쩌면 가장 근본적인 버킷리스트가 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예전의 나는 그런 하루를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것 같다. 평범한 일상은 그저 배경일 뿐이고, 진짜 삶은 어딘가 먼 곳에서, 특별한 순간에 펼쳐질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지금 사는 곳보다 더 멀리 가고 싶었고, 더 많은 걸 보고 싶었고, 더 특별한 경험을 해야만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상의 안정은 단조로움의 다른 이름이었고, 평온함은 권태와 동의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물론 지금도 새로운 경험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여전히 있고, 호주에서의 삶을 상상하기도 한다. 아직 본 적 없는 가수의 공연을 더 많이 보고 싶고, 여행지에서 낯선 풍경을 마주하는 순간이 주는 설렘도 여전히 사랑한다. 다만 그 모든 것보다 앞에, '이 하루를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놓이기 시작했다.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먼저 느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특별한 순간이 왔을 때 그 의미를 더 깊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닐까. 반대로 일상을 견디기 위한 도구로만 특별한 경험을 바란다면, 그 경험이 끝난 뒤 다시 공허함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이뤄가는 것도 좋지만, 버킷리스트가 없어도 충만한 하루를 살 수 있는 힘이 우선순위였던 거다.
이런 변화를 마주하면서 혹시 내가 너무 변화 앞에 보수적으로 변한 건 아닌지 괜히 스스로를 검열하는 순간도 있었다. 예전보다 덜 욕심내고, 덜 바라고, 덜 움직이려는 태도가 혹시 '꼰대'에 가까운 건 아닐까. 지금이라도 무모하게라도 꿈꿔야 하는 거 아닐까. 안정만 추구하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건 포기가 아니라 선택에 가까웠다. 더 놀고 싶다는 욕심, 더 많은 공연을 보고 싶다는 욕심, 죽기 전에 반드시 해봐야 할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던 마음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는 그 욕심들을 완전히 내려놓은 건 아니지만, 꼭 쥐고 있어야만 나다운 삶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시점에 이른 거 같다.
물론 평온함만을 좇는 삶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발전이 없는 평온은 또 다른 정체가 될 수 있고, 아무 변화도 없는 안정은 어느 순간 나를 무디게 만들 수도 있다. 적당한 긴장과 도전이 없다면 삶은 금세 권태로워질 것이고, 새로운 자극이 없다면 감각은 점점 둔해질 것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평온함과 발전 사이의 밸런스'를 자주 생각한다. 무리하지 않되, 완전히 멈추지도 않는 상태. 욕심을 부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방치하지도 않는 태도. 안전지대에만 머물지 않으면서도, 무모한 도전으로 스스로를 소진하지 않는 균형. 이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는 아직도 진행 중인 질문이다.
이 질문 자체가 부모님이 늘 말하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의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이전의 나는 균형 따위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원하는 것을 향해 달려가고, 부딪히고, 상처받고, 다시 일어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점점 삶을 쌓아가며, 그리고 몇 번의 크고 작은 실패를 겪으면서, '속도'보다 '방향'이, '강도'보다 '지속성'이 중요하다는 걸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그래서 올해는 버킷리스트를 적지 않았다. 대신 오늘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를 더 자주 쓴다. 어떤 리듬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들과 시간을 나누고 싶은지,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 어떤 일에 에너지를 쓰고 싶은지, 어떤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지, 어떤 가치를 우선순위에 둘 것인지. 어쩌면 다른 말로는 버킷리스트를 매일 쓴다고 말할 수도 있다.
버킷리스트를 적지 않는 해가 처음이라서, 아직은 조금 어색하다. 연말이 되면 습관처럼 새 노트를 펼치고 내년의 계획을 세우던 나였는데, 올해는 그 자리에 빈 페이지만 남겨두었다. 하지만, 이 어색함 속에서 나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느낀다. 미리 정해진 목표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나에게 필요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스스로에게 준 기분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여전히 확신은 없다. 내년쯤이면 다시 버킷리스트를 적고 싶어질 수도 있고, 아니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목표 설정 방식을 찾게 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여행과 도전이 가장 중요한 버킷리스트일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지금처럼 평온한 하루가 가장 간절한 소망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더 옳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삶의 시기마다, 처한 상황마다, 필요한 것은 다를 테니까. 다만 지금 이 시점의 나는, 버킷리스트를 '해야 할 일의 목록'이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를 비추는 거울'처럼 바라보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버킷리스트를 적지 않는 이 해가,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버킷리스트를 완성하는 해가 될지도 모른겠다. '무엇을 이루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배우는 해. '어디에 가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있느냐'를 느끼는 해. 그런 해로 기억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