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태양이 뜨거워서 사람을 죽인 남자 [2] [도서/문학]

전대미문의 태양 살해범, <이인> 뫼르소
글 입력 2022.04.0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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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은 알베르 카뮈 <이인>의 2부에 관한 글입니다.

1부 글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알베르카뮈_이인2.jpg

알베르 카뮈 <이인>

 

 

 

혐오의 눈빛을 받다



아랍인을 죽인 뫼르소는 체포되어 심문받는다. 처음 경찰서에 잡혀갔을 때, 사람들은 뫼르소의 사건에 관심 없었다. 수사 검사와 뫼르소, 모두 이 사건을 아주 간단한 것이라 생각했다.

 

뫼르소 담당 변호사가 그를 찾아갔을 때, 그날 힘들었느냐는 변호사의 물음에 뫼르소는 이렇게 답한다.

 

 

이 질문에 나는 몹시 놀랐다. 내가 그런 질문을 해야만 할 처지였더라면, 난 아주 난감할 것 같았다. 그렇긴 했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물어보는 습관을 약간 잃어버려서 뭐라고 말하기가 곤란하다고 대답했다. 아마도 난 어머니를 정말 사랑했지만,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다소간 원했었다.

 

P.73

 


난 지난 1편에서 뫼르소가 이나 저나 아무런 상관없는, 무심한 인간이라고 말했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자신이 살인자가 되었을 때도, 심지어 어머니의 죽음을 두고도 나타난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다소간 원했었다’는 어떤 의미일까.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난 비정상 범주에 속한단 말인가.

 

뫼르소의 대답을 들은 변호사는 그를 혐오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뫼르소는 수사검사실에 출두한다. 검사는 그를 앉히더니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서” 변호사가 올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다. 자세한 사정은 나오지 않지만, 이유는 알만 하다.

 

검사의 심문이 시작되었다. 검사는 뫼르소를 돕고 싶다며 머리 위로 십자가를 흔들어댄다. 그러면서 자신은 신을 믿으며, 어떤 인간도 신께서 용서하지 않을 만큼 죄인은 아니라는 게 신념이며, 그러기 위해선 인간이 뉘우침을 통해 모든 걸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는 영혼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뫼르소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답한다.

 

 

검사는 분기탱천해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는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모든 인간이 신을 믿으며, 심지어 신의 얼굴을 외면하는 이들조차도 신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게 그의 신념이었고, 만일 그걸 추호라도 의심해야 한다면, 그의 삶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P.77

 


검사는 크게 흥분했고, 예수를 의지하지 않는다는 뫼르소에게 무언의 애절함과 혐오감을 동시에 느끼는 듯했다. 심문 이후 뫼르소를 돕고 싶다던 검사는 그에게 관심을 끊는다. 정확히는 뫼르소의 사건을 이미 종결된 것으로 취급한다.




재판의 날이 오다


  

꽉 찬 법정, 뫼르소는 피고석으로 들여 보내진다. 재판장은 그의 사건과 무관하지만, 어쩌면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문제들을 짚고 넘어가려 한다며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언급한다. 증인으로 나선 양로원 원장과 관리인은 뫼르소가 엄마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았으며, 담배를 피웠고, 잠을 잤고, 카페오레를 마셨다고 말한다.

 

난 여기서 꼬리 질문으로 머리가 팽팽해졌다. 뫼르소가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은 것이 그의 형량을 좌우할 근거가 되는가? 물론 나 역시 냉혈한 같던 그를 비인간적이라 표현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사건과 다른 차원의 문제 아닌가.

 

아니다, 재판장의 말대로 무관하지만 어쩌면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일일 수도 있겠다.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지나치게 무심한 그의 성정을 극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사례 아닌가.

 

난 어느 쪽이 맞는지 모르는 채였다. 그러나 증인으로 나선 관리인에게 확실한 혐오감이 들었다. 뫼르소에게 카페오레를 먼저 권한 것은 관리인 아니었던가. 스스로의 호의를 순식간에 벼랑으로 몰 단서로 둔갑시킨 그의 이중성에 혐오를 느꼈다.


또 다른 증인, 뫼르소의 단골 가게 사장은 이번 사건을 ‘불행’이라 말하며 뫼르소를 두둔한다. 그의 여자친구 마리 역시 뫼르소를 도우려 하지만, 검사와 재판장의 집요한 심문 끝에 실수를 한다.

 

검사와 재판장은 이미 뫼르소를 파렴치한 죄인으로 결론지은 듯했다. 뫼르소를 착한 사람이라고 증언한 이웃과 희생자가 증오하던 장본인은 바로 자신이라며 증언한 레이몽의 말이 공중분해 되었으니 말이다. 검사는 “저 인간이 범죄자의 마음가짐으로 어머니의 장례를 치렀기 때문에 기소하는 바입니다.”라고 말해 파장을 일으킨다. 청중은 검사의 말의 동요한다.

 

변호사는 뫼르소가 자신의 사건에 대해 발언하고 싶어 할 때마다, 잠자코 있는 게 유리하다며 말린다. 뫼르소는 모든 게 자신이 개입할 여지도 없이 진행되고 있다며 자조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할 말이 아무것도 없다며 다시금 ‘무의미 인간’의 영역으로 접어든다. 재판은 검사의 뜻대로 흘러간다. 검사는 뫼르소가 사전에 범죄를 계획했다는 것으로 결론 내린 뒤, 피고 뫼르소를 벌하자며 호소하기 이른다.


 

justitia-gbbc3c7317_1920.jpg

 

  

기묘함을 느꼈다.

 

변호사는 검사에게 어머니의 장례를 치렀기 때문에 기소된 것인지, 한 사람을 살해했기 때문에 기소된 것인지를 묻는다. 하지만 검사는 ‘범죄자의 마음가짐으로 장례를 치렀다’고 답한다. 이 대목에서 난 다시 의문이 일었다. 살해 전 그의 행동을 현 죄목에 끌어와도 되는 것인가. 처음 검사는 뫼르소를 돕고 싶어 했으며, 신을 믿는다고 말해주길 바랐다. 만일 뫼르소가 신을 믿는다고 답했다면, 독실한 신자인 검사는 기꺼이 그를 도왔을 것이다. 하지만, 뫼르소는 그러지 않았다(어머니의 장례 당시, 어머니가 보고 싶지 않냐는 말에 예라고 답한 모습이 겹쳐 보인다). 검사가 뫼르소를 ‘죽어야 마땅한’ 인간으로 몰고 간 건, 결국 그가 신을 믿지 않는다는 사적인 영역이 합쳐졌기 때문이라는 거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한 사람의 생사를 결정하는 검사가 무심코 사람을 죽인 뫼르소와 다를 게 뭐란 말인가.

 

내가 '신을 믿는' 검사라면, 뫼르소의 신앙심과는 관계없이, ‘나’의 신앙심으로 말미암아 그를 이해하려고 했을 테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에 따라, 신의 정의에 따라, 뫼르소에게 단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었을 것이다. 신을 믿는 인간으로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인간을 괘씸히 여겨, ‘인간’의 방식을 이용해 ‘신’의 정의를 실현한 검사. 그는 神의 정의가 아닌, 지극히 인간의 정의를 따랐을 뿐이다. 신앙이 고작 인간을 이분하는 데에 쓰이다니, 기묘한 일이다. 신을 믿는 인간과 믿지 않는 인간. 인간의 생사를 결정하는 사람에게 탑재될 가치관은 아니지 않나.


 

검사는 내 영혼을 들여다보았는데, 배심원 여러분,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실은 내게 영혼이라는 게 전혀 없고, 인간적인 면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으며, 인간의 심성을 지켜주는 윤리 규범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P.109


 

“본 검사는 여러분께 저 인간의 목을 요구합니다. 그것도 가벼운 마음으로 요구하는 바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오랫동안 검사 생활을 해 오면서 이미 여러 차례 사형을 구형한 적이 있지만, 오늘처럼, 성스럽고 절대적인 명령에 대한 책임감 덕분에, 그리고 오로지 흉악한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얼굴 앞에서 느끼는 혐오감 때문에, 이 힘든 의무가 보상 받고, 상쇄되고, 조명 받는다고 느낀 적은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P.111

 


위와 같은 검사의 말과 뫼르소를 두둔하는 변호사의 최후 변론을 마지막으로 재판은 속개된다.

 

그리곤 이내 법정은 고요해진다. 재판장이 공공 광장에서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 참수형에 처할 것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뫼르소는 시한부를 맞이했다.

 

 


이성의 인간


 

뫼르소는 놀라울 정도로 날카롭게 이성적인 모습을 보인다. 순간의 감정과 유희에 움직이곤 했던, ‘육신의 인간’ 1부의 뫼르소와는 완벽히 달라진 모습이다. 그의 내면과 세계에 대해 자세히 서술될수록 나는 그에게 몰입하게 되었다.

 

독방으로 옮겨진 그의 최대 관심사는 기계 장치를 피하는 것, 즉 탈출구를 찾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탈출 가능성, 눈물도 피도 없는 의식으로부터의 일탈, 희망의 모든 가능성들을 열어주는 광적인 질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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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든 걸 곰곰이 따져 보니, 그 무엇도 내게 이런 사치를 허용하지 않았고, 모든 게 이런 사치를 금지해버렸고, 기계가 다시 나를 옥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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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감한 것은 사형수의 입장에선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기만을 바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 말은 이게 단두대의 결점이라는 것이다. 사형수에겐 모든 것이 차질 없이 작동하는 게 이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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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참수형 때 신문에 게재되었던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사실은 기계가 땅바닥에 그대로, 그지없이 소박하게 놓여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좁았다. (…) 기계는 그 기계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과 같은 높이에 있었다. 사람을 만나러 걸어가듯이 기계와 합류하는 것이었다. 이것 또한 난감했다. 단두대를 향해 올라가는 것이라면야,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라면야, 상상력이 끼어들 여지라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기계가 모든 걸 짓뭉개버리는 것이었다. 조금은 수치스럽게, 하지만 아주 정교하게, 슬며시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다.

 

P.117,11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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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는 독방에서 치열하게 생각한다. 정교하게, 완전무결하게 제작된 기계장치를 피하고 싶어 하면서도, 단 한 번의 기회를 주길 바라면서도, 기계가 단 한 차례의 오차도 없이 작동하길 바라는 모순에 놓인 자신의 상황을 명철하게 파악한다. 그는 사형을 집행할 ‘그 사람들’이 오는 시간, 새벽을 두려워한다. 뫼르소는 밤마다 새벽을 기다리며 뜬눈으로 지새우고, 작은 소음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밤이 시작되려는 어느 날, 고동 소리가 울린다. 영원히 무관해져 버린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는, 고동 소리가 울렸다. 뫼르소는 오랜간만에 어머니를 떠올린다. 그는 어머니가 다시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느꼈을 것이며, 자신 역시 모든 걸 다시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느낀다.

 

 

별들이 가득하고 징조들로 가득 찬 이 밤과 마주하자, 난 처음으로 세계의 다정한 무관심에 마음의 문을 열었다. 세계가 그토록 나와 비슷하고, 마침내 그토록 형제같이 느껴지자, 난 행복했었고, 여전히 행복하다는 걸 느꼈다. 모든 게 완성되기 위해서는, 내가 외로움을 덜 느끼기 위해서는, 내게 남은 소원이 있었다.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이해주기를.

 

P.131

 



이인異人 뫼르소


 

<이인>, 그리고 이인 뫼르소는 이렇게 끝이 났다.

 

우리는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다. 그가 바랐던 것처럼, 완전무결한 기계장치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동됐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뫼르소가 말했듯, 그는 다시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음을 느꼈고, 이는 다른 차원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방아쇠일 것이다.

 

뫼르소는 재탄생했다. 그는 ‘마음의 문’을 열었고,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세계가 실은 자신과 비슷했음을 깨닫는다. 독방에 갇혀 하는 생각이라곤, 단두대를 피하는 방법 뿐이었던 그는 결국 죽음을 받아들였고, 마침내 세계의 다정한 무관심을 이해하게 되었다. 뫼르소는 다른 인간, 異人으로 거듭난 것이다.

 

카뮈는 뫼르소를 “태양을 사랑하는 가난하고 숨길 것 없는 인간”으로 규정했다. 롤랑 바르트는 “육신이 태양에 예속된 인간”이라고 말했다. 1부에서 살펴보았듯, 뫼르소는 늘 태양에 이끌리며, 태양을 기민하게 느끼는 감각을 타고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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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랍인을 죽일 의도가 없었다며,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쐈다고 답했다. 군중은 뫼르소에 말에 한바탕 웃었지만, 뫼르소는 정말로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죽였다. 아랍인을 죽일 당시 뫼르소는 “하늘 전체가 온통 열려서 불비”를 퍼붓는다며 괴로워했다. 책의 옮긴이는 “그의 적은 태양이지 아랍인이 아니었다. 태양에 예속된 육신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반항한 것이었다. 몸의 반항이었다. 자신의 살(肉)인 태양을,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태양을 살해하려 한 것이었다”라고 말한다.

 

뫼르소는 눈 부신 정오의 태양을 향해 쏘았고, 이러한 맥락에서 ‘정상적인 사람들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다소간 원했었다.’는 문장이 나온 것이다. 그는 태양을 사랑했고, 그랬기 때문에 태양을 살해하려고 했다. 사건 당일, 뫼르소는 여느 때처럼, 어느 때보다도 더 세밀하게 태양의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뫼르소가 아랍인을 쏜 바로 그때, 땀과 태양은 흔들렸다. 낮의 균형이 깨지고 해변의 이례적인 침묵은 흩어졌다. 다시 말해, 뫼르소는 태양을 살해하려고 했고, 살해했다. 그는 전대미문의 태양 살해범이었다!


뫼르소의 천진한 대답, “태양 때문에”는 <이인>을 관통하고 있는 문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모든 것은 태양 때문에, 태양으로 말미암아, 태양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끝을 맞았다. 롤랑 바르트가 “태양신은 뫼르소의 몸이 겪는 너무나 심오한 경험 그 자체여서 몸의 숙명이 되어버린다”고 말한 것처럼, 이인 뫼르소가 겪는 모든 일은 태양에 예속된 존재로서의 신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인 二人 뫼르소


  

옮긴이는 이 책의 1부와 2부가 평행선상에 놓여있다고 말한다. 책의 1부가 85쪽, 2부가 86쪽으로 정량적 대칭을 이루고 있음을 제외하고서라도 말이다. 1부 속 뫼르소는 육체적, 일상적 인간이었다면 2부의 뫼르소는 이성적, 영혼적 인간이다. 이 명확한 차이는 책 속 문장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1부와 2부 중 어느 한 쪽만 읽은 사람은 뫼르소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법조인들이 그에게 왜곡된 해석을 내릴 수밖에 없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들은 (1부를 읽지 못했으므로) ’육신의 인간’이었던 뫼르소를 모른 채로 그의 영혼을 해석했기 때문이다.

 

역시 1부만을 읽은 사람들은 뫼르소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골몰하던 세계를, 그가 새로운 뫼르소로 거듭난 사실을, 그가 죽음을 앞에서 놀라울 정도로 논리적이었음을, 그 이성은 바로 두려움이라는 감정의 원형으로부터 피어났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뫼르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양면을 모두 읽어야만 한다.

 

카뮈가 말한 평행관계가 상징하는 ‘이인’은 1부의 뫼르소와 2부의 뫼르소가 서로 다르며, 그 스스로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데서 기인한다. 말하자면, 두 명의 뫼르소가 있는 셈이다.

 

 

그는 “남들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 “이상한” 인간이다. 그는 다른 인간, 즉 이인 異人이다. 그리고 작품 <이인>에는 여러 차원에서 두 뫼르소, 즉 이인二人의 뫼르소가 있다.  뫼르소는 이인이다.

 

- 옮긴이 이기언

 


마리가 뫼르소를 향해 이상한 사람이라고,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지만 언젠가 똑같은 이유로 역겨워질 거라고 중얼거렸던 것처럼, 나 역시 뫼르소가 이상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흥미로웠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책의 2부와 옮긴이의 해설을 읽고 나면 이러한 생각은 차분히 접히고, 그의 세계에 빠져 함께 골몰하게 된다.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던 그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그리고 마침내 이해한 ‘나’를 발견하는 기묘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바닷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멀지 않았다. 하지만 바다를 굽어보며 해변으로 내리막진 야트막한 언덕을 지나야만 했다. 언덕은 이미 짙은 파란 빛을 띤 하늘 아래 새하얀 수선화와 노란 돌로 덮여 있었다. 마리는 가방을 힘껏 휘둘러서 꽃잎을 흩뜨리는 장난에 빠져 있었다.

 

P.57

 

 

하늘이 붉게 물들면서 새날의 빛이 내 독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올 때였다. 왜냐하면 얼마든지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고, 내 심장이 터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아주 작은 미끄러짐 소리에도 문으로 달려가곤 했지만, 나무 문짝에다 귀를 처박은 채 처절하게 기다리다 보면, 이내 나 자신의 숨소리가 들리고, 내 숨소리가 거칠게 헉헉거리고 있어서 개가 헐떡거리는 것과 너무 비슷한 나머지 놀라곤 했지만, 결국 내 심장은 터지지 않았고, 난 다시 스물네 시간을 번 것이었다.

 

P.121

 

 

마지막으로, 알베르 카뮈의 필력은 실로 엄청나다. 인간의 이중성과 냉소, 골몰의 세계를 잘 그려내는 것은 위에서 이미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카뮈의 진가는 상황 묘사라고 할 수 있겠다. 특유의 섬세한 표현과 인물들의 행동 설명은 활자가 아닌 하나의 영상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바로 이점이 흡입력을 높였다고 단언할 수 있다.

 

문장 하나하나가 모여 거대한 섬을 이루는 <이인>. 당신은 이인 뫼르소를 이해할 수 있는가. 이인에게서 또 어떤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는가. <이인> 곳곳에 카뮈가 남겨둔 여백을 당신의 언어로 채워보길 바란다.

 

 

 

에디터 태그_권수현.jpg

 

 

[권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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