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태양이 뜨거워서 사람을 죽인 남자 <1> [도서/문학]

전대미문의 태양 살해범, <이인> 뫼르소
글 입력 2022.03.2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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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jpg

알베르 카뮈 <이인>, 문학동네, 2011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도 모른다.

 

가히 최강의 임팩트를 가진 문장이다. 그도 그럴것이 위 문장은 소설 속 인상 깊은 첫문장으로 이미 자주 언급되곤 한다. 이인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이 문장은 들어봄 직하다.

 

어쩌면 이인이 아니라, <이방인>이라는 제목이 더욱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현재 <이인>으로 변경돼 번역 출판 되었다. 나 역시 책을 집어들고 첫 장을 펼칠 때까지 동일 책임을 인지하지 못 했다.


 

‘이미 고유명사처럼 굳어진 제목을 바꾼 것은

이 작품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옮긴이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독자들에게 뫼르소의 진정한 정체성과

작품이 품고 있는 문학적 가치와 풍부한 의미를 

최대한 전하려는 것 이외에 그 어떤 사사로운 의도도 없음을 

부디 헤아려주시길 바란다.’


- 옮긴이 이기언

 

  

이인을 완독한 뒤, 옮긴이의 선택이 작품의 완결성을 더욱 높였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주인공 뫼르소와 그가 골몰하는 세계를 완벽히 그려내는 단어는 이방인이 아니라 이인 쪽이 더 가깝다고 느꼈으니 말이다. (이에 관해선 후에 재서술 하겠다.)


<이인>은 1부와 2부, 나뉘어 진행된다. 1부와 2부는 평행관계로 설정되어 있는데, 작품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더 나아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뫼르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부와 2부를 세밀히 다뤄야 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나 역시 해당 작품의 1부와 2부를 각각 담은 2편의 비평으로 나누어 작성하고자 한다.


전대 미문의 태양 살인범, 이인 뫼르소를 톺아보자.

 

 

알베르카뮈_이인2.jpg

 

 

 

비인간적인 인간


 

뫼르소의 어머니가 죽었다. 오늘, 어쩌면 어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건 뫼르소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는 알제에서 팔십 킬로미터 떨어진 마랭고의 한 양로원에 어머니를 모셔둔 채 홀로 지낸다. 인물들의 대화를 가늠해보면 당시 양로원에 부모님을 모셔둔다는 것은 먼지 자욱한 창고 한 구석탱이에 인형을 처박는 것쯤으로 인식되는데, 팔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어머니를 ‘맡긴’ 뫼르소가 천하의 몹쓸 놈으로 치부되는 것은 놀라울 일도 아니다.

 

뫼르소는 어머니의 관을 보고 싶지 않냐는 관리인의 물음에 “예”라고 답한다. 이유는 없다. 그도 이유를 모른다. 그저 보고 싶지 않았을 뿐이고, 그러니 보고 싶지 않다고 대답한다. 그의 방식이다. 뫼르소는 단지 빨리 집에 가 녹진한 몸을 뉘여 쉬고 싶을 뿐이다.

 

어머니를 찾아뵌 지 오 년이나 지났고, 몇 해 만에 들려온 소식이 부고였음에도 그는 별다른 감정의 변화가 없다. 태연히 관리인이 따라준 커피를 마셨고, 엄마가 아니었더라면 들판을 쏘다니며 만끽할 즐거움에 대해 떠올렸으며, 운구행렬을 끝낸 다음 날엔 태양이 따사롭고 윤슬이 아름다운 해수욕장으로 가 수영을 즐겼다. 해수욕을 즐긴 뒤엔 집으로 돌아와 여자친구 마리와 함께 몸을 포개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뫼르소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인 일요일이라면서, 장례를 치렀으니 다시 직장에 나가야 하며 요컨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는 짧은 감상을 남긴다.

 

난 도저히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족으로부터 이렇다 할 추억과 애정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을 수도 있다.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늉이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사람이라면, 몇 번이나 의아한 기색을 내비추는 양로원 직원들의 눈치가 보여서라도 응당 슬퍼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겠는가. 지나치게 솔직한 그가 참 신기했다.

 

차라리 어머니를 싫어했다면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을 테다. 그는 어머니를 싫어하지 않는다. 사실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나이는 당연히 모른다. 엄마는 나와의 대화를 지루해하는 것 같다.’ 그가 가지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정보는 고작 이정도다. 뫼르소에겐 어머니의 죽음이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 뿐이다. 그는 지금 이루어지는 모든 절차에 피곤함을 느낀다.

 

처음 몇 장을 읽었을 때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속 화자가 생각났으나, <이인>의 뫼르소는 그와는 다른 결이었다. 뫼르소는 정말로, 모든 것에 의미를 찾지 못 하는 사람이며, 만물을 관찰하는 성정이지만 그다지 관심은 없다. 그래야 할 때 그런 척을 하는 사회성은 일절 찾아볼 수가 없다. 운구 행렬의 와중에도 자고 싶다, 쉬고 싶다… 본능만을 앞세운 그가 천진해 보일 지경이다.

 

감정이 지나치게 제거된, 그저 육욕과 순간의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뫼르소의 모습은 줄곧 이어진다.


 

 

무신경해서 도리어 다정한



뫼르소와 같은 층에 사는 이웃 레이몽은 뫼르소에게 묻는다. 포도주와 순대가 있는데 같이 한 조각 하지 않겠느냐고. 뫼르소는 구태여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그의 제안을 승낙한다. 그다운 이유다.


함께 레이몽의 집으로 들어온 이들은 이야기를 나눈다. 일방적으로 레이몽이 쏟아붓는 식이었지만, 말이 없는 뫼르소에게 제격인 대화 방식이었다. 대충 끄덕이거나 듣고 있다는 반응을 하면 레이몽은 알아서 자신의 이야기를 일장 연설한다. 소위 ‘귀차니스트’에 해당하는 뫼르소에게 괄괄한 성격의 레이몽은 별다른 노력 없이 유지될 수 있는 관계라 무척 편이하다.

 

레이몽은 뫼르소에게 재차 자기 친구가 되고 싶은지를  묻고, 그는 이나 저나 마찬가지라 답한다. 레이몽은 흡족해한다.


자신을 이용해먹고 있다며 정부(情婦)와 크게 다툰 레이몽. 결국 여자에게 손찌검을 한 어느 날, 경찰은 레이몽 집으로 들이닥친다. 궁지에 몰린 레이몽은 ‘그 여자가 나를 우습게 봤다’고 말만 해주면 된다며 뫼르소에게 증인을 해줄 것을 부탁한다. 뫼르소는 흔쾌히 승낙한다. 그에겐 이나 저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뫼르소는 경찰서에 가 그 여자가 레이몽을 “우습게 봤다”고 증언했고, 레이몽은 경고 조치로 풀려난다.

  

레이몽과 뫼르소는 더욱 친밀해진다. 뫼르소 성격에 친밀한 감정을 자각할 리 만무하지만, 어쨌거나 독자 입장에선 이들의 관계가 의외로 견고해지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뫼르소는 ‘이러나  저러나’ 상관 없는 지독히 무심한 사람이기에 레이몽의 제안과 부탁을 곧잘 승낙하는 편이었고, 그런 그의 모습은 레이몽으로 하여금 퍽 다정한 행동이 되었다.

 

기묘한 관계의 시작, 총탄이 울렸다.

 

 


태양, 백사장, 바다 그리고



뫼르소는 마리와 함께 바닷가로 놀러 간다. 레이몽이 자신의 친구, 마송의 별장에 놀러 가자며 그를 초대했기 때문이다. 레이몽과 뫼르소, 마리는 마송의 별장으로 향하는 길에 아랍인들과 마주친다. 그중엔 레이몽 옛 정부의 오빠가 있었다.


결국 뫼르소와 레이몽은 아랍인 두 명과 싸움에 휘말린다. 정부의 오빠는 자신이 상대하겠다며 큰소리 친 레이몽. 격렬한 몸싸움 끝에 레이몽은 입술과 팔에 상처를 입는다. 이에 아랍인들은 서둘러 도망치지만 뫼르소와 레이몽은 그들을 찾기 위해 백사장을 헤맨다. 이때 뫼르소는 태양으로부터 짓눌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햇빛은 모래와 바다 위에서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고 있었다.


뫼르소와 레이몽은 아랍인들을 발견하지만, 아랍인들은 이번에도 바위 뒤로 도망쳐 사라진다. 겁 먹은 그들의 모습에 흡족한 레이몽은 별장으로 되돌아오지만, 뫼르소는 별장 앞에서 다시 백사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나는 별장까지 레이몽과 동행했다. 

레이몽이 나무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나는 첫 번째 발판 앞에 멈춰 서서, 

힘들게 나무계단을 올라가 또다시 여자들과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에 낙담한 채, 

머리 위로 작열하는 태양을 맞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열기가 너무 뜨거워서,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부신 작달비를 맞으며 

꼼짝 않고 서 있는 것 역시 고통스러웠다. 

여기에 있든지, 아니면 떠나든지,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 난 백사장으로 발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P. 65

 

 

뫼르소는 붉게 파열하는 태양에 숨이 가빠지는 걸 느끼며 백사장을 걷는다. 그는 단지 작열하는 태양을 벗어나 차가운 샘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금 아랍인을 만난다.

 

 

난 바위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고, 

태양 아래에서 이마가 부풀어 오르는 걸 느꼈다. 

태양의 열기가 온통 나를 짓누르며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걸 막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의 거대한 숨결이 얼굴에서 느껴질 때마다, 

난 바지 주머니 속의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태양을 이기고자, 

그리고 태양이 내게 쏟아붓는 아른한 취기를 물리치고자, 

전신이 팽팽하게 긴장했다.


P. 65

 

 

 

땀과 태양을 흔들다



아랍인과 뫼르소는 대치한다.

 

뫼르소는 발길을 돌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면 끝날 것이지만, 태양이 진동하는 바닷가 전체가 등 뒤에서 그를 떠밀고 있다고 느낀다. 견딜 수 없는 태양의 불길 때문에, 뫼르소는 한 발자국 더 다가간다. 아랍인은 칼을 꺼내 태양 아래 서 있는 뫼르소에게 내민다. 태양의 불길은 그의 두 뺨을 엄습하고, 그의 땀방울은 눈썹 위에 고이기 시작한다. 뫼르소는 햇빛에 반사되어 번쩍이는 아랍인의 칼에 괴로워한다.


뫼르소는 결국 일전에 레이몽이 건넨 권총을 꽉 쥐고 있다가 이내 아랍인을 향해 노리쇠를 당긴다. 뫼르소는 한 발을 쏜 뒤, 마침내 움직이지 않는 몸에 네 발을 더 쏜다.


 

더 이상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태양의 불길 때문에, 난 앞쪽으로 움직였다. 

나는 그게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한 발짝을 움직인다고 해서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난 한 발짝, 단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


난 내 이마 위에서 태양의 심벌즈가 울리는 것밖에 느끼지 못했고, 

어렴풋이나마, 여전히 내 눈앞에 있는 칼에서 뿜어져 나오는 눈부신 양날 검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 불타는 검이 속눈썹을 쏠아내며 고통스러운 내 두 눈을 후벼대고 있었다. 

바로 그때, 모든 게 흔들렸다.


/


난 권총을 꽉 쥐었다. 노리쇠가 당겨졌고, 

난 손잡이의 매끈한 볼록 부분을 어루만졌다. 

바로 그때, 귀를 찢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모든 게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흔들었다.


P. 67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짤막한 노크 소리와도 같은 총성을 마지막으로 <이인>의 1부는 이렇게 끝이 난다. 사실 그가 아랍인을 죽인 데엔 이렇다 할 이유가 없다. 아니, 없는 것처럼 보인다.

 

뫼르소의 내면과 그가 골몰하는 세계는 2부에서 드러나는데, <이인>의 진가는 비로소 2부에서 발휘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난 아까 뫼르소를 ‘천진’하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2부에서의 뫼르소는 너무나도 명철하게 이성적인 모습을 보이며,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날카롭게 파악한다. 옮긴이는 2부의 뫼르소를 ‘정신의 인간’이라고 표현했다.

 

뫼르소는 ‘왜’ 아랍인 남자를 죽였을까. 살인을 저지른 뫼르소는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순간의 쾌락과 단순 육욕에 순응하던 ‘육신’의 인간, 뫼르소. 그의 ‘영혼’에 대한 문장은 다음 2부에서 살펴보겠다.

 

 

 

에디터 태그_권수현.jpg

 

 

[권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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