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동양화와 친해지기 첫걸음, 책 '동양화 도슨트'

글 입력 2022.02.2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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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받아들곤 살짝 코웃음이 나왔다. '청소년을 위한 동양 미술 수업'이라는 표제가 눈길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청소년을 위한 책이었다니! 너무 교과서적인 책이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들었다. 미술을 사랑하는 나이지만, 미술 교과서는 그리 사랑하지 않았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랐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동양화는 뭔가 별로였다. 고리타분한 유교 이념이 듬뿍 담긴, 시대에 걸맞지 않은 뒤처진 그림인 것 같아 마음을 주기가 쉽지 않았다. 서양화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부족한 다이내믹도 아쉬움에 숟가락을 얹었다. 살아있는 색감과 생생한 묘사에 익숙한 나의 눈에 동양화는 그저 재미없는 그림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같은 생각 저편에는 '동양화에 우리의 그림도 포함되는데, 덮어두고 싫어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일까?'하는 근본적인 물음표가 존재했다. 왠지 내가 모르는 무엇이 있을 것 같았다. 동양의 학문적 수준이 서양보다 훨씬 뛰어났다는 점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풍류를 즐겼던 선조들을 떠올려보았을 때, 그 의심은 확신에 가깝게 두터워졌다.

 

책 <동양화 도슨트>를 향해 나는 동양화에는 문외한이었던 내가 동양화를 더 잘 이해하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간절히 실어 보냈다. 그런데, 첫 장을 넘기기도 전 '청소년'이라는 단어에 멈칫하게 된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작품을 감상하며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책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아쉬웠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어쩌면 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이참에 동양화를 속속들이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동양화에도 굉장히 많은 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책 <동양화 도슨트>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관심이 없어서 몰랐던 것에 가까웠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그림들이 이렇게 각기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는 점이 신선했다. 시작부터 느낌이 좋았다. 꽤 흥미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알고 보니 내가 '동양화'라는 단어에 떠올렸던 이미지는 <문인화>라는 이름의 그림이었다. 산천이 그려진 한구석에 시구가 적혀있는 모습이 '동양화'하면 떠오르던 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은 문인화가 동양화의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인화는 몽골인이 지배하던 원나라 시절, 그림을 그리던 화가들이 왕실 소속으로 활동하던 화원이 없어지게 되자 글을 쓰던 문인들이 취미 삼아 그리게 된 그림이 주류가 된 것이 바로 문인화라고 한다. 그렇기에 문인화에서는 그림보다 글이 더 중요하다. 좋은 글을 쓰는 것이 먼저인 것이다.

 

그림 역시 서예의 획이 살아있는 것이 중요해서 선이 살아 있는 그림을 그렸다고 하니, 다시 보아도 문인화의 꽃은 글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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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김정희, 1844년)

 

 

대표적인 문인화로 손꼽히는 김정희의 <세한도>. 김정희가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자신과의 연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이상적을 위해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소 거칠고 황량해 보이는 이 그림이 문인화의 절정이라는 평을 받는 이유는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 그림에 담고자 한 의미 때문이다. 자신의 고마운 인연 이상적을 생각하며 <논어>의 한 구절: "한 해가 저물어 추울 때가 되어야 소나무와 잣나무는 잎을 떨구지 않았음을 안다."을 떠올렸다는 김정희는 그 구절의 내용을 그대로 화폭에 담아내었다.

 

화려한 기교로 장식된 그림이 아닌, 그 자체로 하나의 글이 될 수 있는 그림을 더 가치 있다고 느꼈던 당시 문인들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세한도>를 향해 보내는 찬사는 결코 과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얽힌 사연을 듣고 의미를 알고 다시금 그림을 보니, 분명 느껴지는 것이 다르다. '이런 맛이 있구나', 동양화와 한 걸음 가까워진 것 같다.


책 <동양화 도슨트>는 동양화의 전반을 두루 살피는, 동양화를 처음 접하는 이들을 위한 친절한 가이드북이다. 실제 도슨트처럼, 동양화라는 큰 개념 안에 속해 있는 작은 단위 단위의 그림들을 세세하게 안내해 주고 있다. 동양화가 낯선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발걸음을 뗄 수 있도록, 동아시아사의 흐름에 따라 설명이 전개되는 방식이 특히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면 당장 미술관에 가고 싶어질 것'이라는 말에 깊은 공감을 보낸다. 동양화를 감상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오랜만에, 참 감사한 마음이 드는 책을 읽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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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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