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언제나 '보리'를 그리워한다 [영화]

일곱살의 보리가 바라보는 세상
글 입력 2021.03.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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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단편영화 콩나물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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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더웠던 유년 시절의 여름을 기억한다.

 

고층 아파트의 높이는 5층이 최대였고, 뒷집과 옆집이 앞집에서 모여 함께 이야기를 나눌 적이었다. 에어컨을 잘 사용하지 않아 선풍기로 한여름을 보내던 어린 날, 아이스크림 하나면 세상을 가진 것 같았고 선풍기 앞에서는 괜히 목소리를 내며 소리의 떨림을 즐겨듣고는 했다. 세상의 가장 큰 고난은 술래 자리를 두고 했던 친구와의 싸움이었으며, 분에 안 풀려 서로의 살결을 깨물다 서러움에 못 이겨 목놓아 울기도 했다. 아직 세상에 대한 무지로 빛났던 일곱 살의 나날들이었다.

 

그 속에서 어른들은 모두 투박했고 동시에 다정했다. 어린아이를 섬세하게 봐주기엔 세상이 너무 거칠었고, 어린아이를 내치기엔 그들의 성품에 정이 너무 많았다. 그 속에서 각자의 상냥함과 애정을 안고 어린아이들을 바라봐주던 어른들. 일곱의 해를 지낸 나는 그런 온기 있는 세상에서 나날들을 보냈다.


단편 영화 <콩나물> 속 보리가 바라보던 세상은 내가 바라봤던 세상과 닮았다. 비단 보리와 나뿐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어느 시절 바라봤던 세상이었을 것이다. 뜨거운 열기와 아스팔트가 아지랑이에 일렁였던, 항상 그리워하고 가슴에 품던 그때의 여름, 나는 그 여름이 그리울 때마다 보리를 본다.


할아버지의 제사를 지내야 하는 어느 여름, 바쁘게 오가는 어른들의 대화 속에서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해도 그 속의 일원이 되고 싶었던 일곱 살의 보리가 있다. 어른들의 일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고 자신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자라날 일곱 살이다. 제사상에 올릴 콩나물을 깜빡하고 안 사 왔다는 어른들의 말에 본인이 콩나물 심부름을 하겠다 이야기하며, 안된다는 어른의 말을 뒤로하고 '보리의 보물상자' 속에서 분홍색 가방과 용돈을 꺼내 들고 혼자 자신 있게 길을 나선다.

 

그렇게 보리의 콩나물을 향한 여정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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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을 향한 일곱 살 보리의 여정은 절대 순탄하지 않았다. 평소 낯이 익었던 여성을 마주쳐 간식을 받아들고 기분 좋게 길을 가려니 보리가 가려던 길이 공사로 인해 막혀있었다. 그렇게 돌아간 다른 길은 자신의 몸보다 더 큰 대형견이 가로막고 있었고, 대형견을 간신히 피해 길을 걷다 보니 옆집에서 떨어트린 옷들을 주워서 위층에 던져주다가 빨래 주머니 속 옷을 무더기로 맞아버리기도 했다. 눈에 띈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동시에 친구와 싸워 울며 그 자리에서 도망치기도 했고, 어른들이 마시던 술을 잘못 마셔 술에 취한 채 한바탕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참 다사다난한 하루였다.

 

그러나 이런 보리의 하루를 바라보며 반가운 감정이 들었다. 간식을 주는 여성 앞에서, 바로 받지 못하고 눈치만 보며 우물쭈물하다가 두어 번 어른이 더 말하고 나서야 웃으며 기쁜 마음으로 간식을 받아들던 보리의 모습이 낯이 익다. 공사하던 아저씨의 말을 안 듣고 굳이 그들의 눈을 피해 몰래 가려다 들켜 도망치기도 하고, 겁이 나는 길은 모르는 사람 등 뒤에 몰래 붙어 따라 지나갔다.

 

잠깐 기다리라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기다리다가 본인을 잊어버려 한참을 오지 않는 어른들이 있기도 했고, 술을 잘못 마셔 취기가 오르는 속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주변의 어른들과 함께 신나게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바로 당장까지 신나게 놀던 친구와 사소한 일로 싸우다 서럽게 울기도 했다. 너무도 낯이 익는 모습이었다. 보리의 다사다난한 하루가 다사다난했던 우리의 유년 시절과 닮아있다. 보리의 하루는 너무나도 생생하게 그리워했던 나의, 그리고 우리의 여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어린 나날들 속에서 유독 가슴에 와닿아 오롯이 남아있는 것은 어린 것을 바라보던 노인들의 다정한 눈빛과 대가 없는 호의였다. 일곱의 나이에 어른이란 어려운 존재였고 세상이란 어지러운 곳이었으나, 그럼에도 뺨을 쓰다듬어주던 다정한 손의 온기나 바라보며 웃음 지어줄 때 움푹 팼던 눈가의 주름만은 선명하다. 보리의 콩나물 여행 속에서도 그러한 다정함은 여과 없이 묻어났다.

 

비록 보리의 말은 들을 수 없었으나 보리의 무릎에 난 상처를 치료해주기 위해 기꺼이 집안으로 들였던 할머니, 아픈 약을 발라주고는 보리 손에 투박한 손길로 무작정 쥐여주는 사탕 하나. 그런 할머니가 어째서 자신의 말에 대답을 안 해주는지는 영문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앞에서 고추를 펴는 것을 보고 어느새 도와주는 보리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햇살에 익은 노르스름한 온기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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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을 사기 위해 길을 가던 길, 아빠의 밀짚모자와 같은 것을 쓰고 걸어가는 할아버지를 발견하고 무작정 따라간 보리는 어느새 녹음이 짙게 깔린 집에 들어서게 된다. 그곳에서 저녁노을과 해바라기 속에서 할아버지의 모자를 확인하고, 어느새 아빠의 것과는 조금 달라져 있는 밀짚모자를 손에 든 채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가득 웃음을 담고 보리를 바라보는, 아빠의 밀짚모자를 쓰고 있던 다정한 할아버지와 해바라기. 보리는 그곳에서 해바라기를 하나 얻고, 무엇을 사기 위해 시장에 가야 했는지 잊어버린 채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아까 봤던 할아버지와 똑같이 생긴 할아버지의 제사 위에 해바라기 한 송이를 올리며 그렇게 어느 여름날 보리의 하루는 끝이 난다.

 

보리를 바라보던 세상과 세상을 바라보던 보리의 모습을 지긋이 지켜보고 있다 보면 큰 여운이 온다. 비록 무엇 하나 특별할 것 없는, 그저 햇빛과 모험이 가득한 일곱 살 소녀의 평범한 하루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면 본인도 모르게 가슴 한 켠이 몽글거리며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만다.

 

나는 이 영화를 바라보며 단순히 보리의 하루를 보지 못했다. 보리가 지나왔던 길과 다정함 속에서 내가 지나왔던, 그리고는 다시는 지나가지 못할 것들에 대해 떠올렸다. 골목길 사이사이를 누비며 바라보았던 이름 모를 풀꽃, 찌르르 울리는 매미 울음소리와 아스팔트를 일렁이던 아지랑이, 땀 흘리며 먹었던 아이스크림의 단맛,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바라보았던 어리고 순수했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던 나의 시선. 이러한 것들을 떠올리다 결국 어느새 그 어린 나날들을 그리워하며 먹먹해진 것이다.

 

결국 영화 속 보리는 어린 날들의 나, 우리인 것이다. 바쁜 일상이 지속하며 잠시 잊고 있었을 뿐, 결국 우리는 언제나 보리를 그리워하며, 저마다의 보리를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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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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