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엄마 곰은 날씬한가? 아빠 상어는 힘이 세긴 하다. [문화 전반]

'곰 세마리', '아기상어' 동요로부터 가져볼 수 있는 문제의식
글 입력 2021.01.0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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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은 옳고 그름을 논하려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또한, 이 글의 목적은 설득에 있지 결코 강요에 있지 않음을 역시 강조하고 싶다. 어쩌면 이러한 것이 우리의 무의식 혹은 잠재의식 속에 편견을 길러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흥미로운 고민 정도로 생각하고 읽어 준다면 감사하겠다.

 

*

 

아름다운 멜로디와 정겨운 박자가 있는 노래는, 그것이 없는 일상에서 오가는 평상적인 언어보다 훨씬 강력한 학습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노래는 교육에, 특히 유아교육에 많이 활용되곤 한다. 아직 언어 능력이 미숙한 유아에게는 전달력이 높은 매체가 필요하고, 노래는 그것을 위한 탁월한 매체이다.


우리는 언어를 배웠기 때문에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가나다 노래’ ‘ABC 노래’ 등을 통해 언어를 배우곤 한다. 언어 학습이 끝나면, ‘숫자송’, ‘우유송’, ‘100명의 위인들’ 등 다양한 노래들을 통해 사회 규범을 학습하곤 한다. 아동들이 내용은 깊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가삿말은 읊조릴 수 있게 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노래는 강력한 학습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강력한 학습 효과를 가지고 있는 매체인 노래가, 아직 가치 체계가 충분히 정립되지 않은 아동들의 무의식 속에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면?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넘어갈 수도 있을 문제이고,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하곤 하지만, 아동들을 위한 동요의 가삿말을 관찰하며 흥미로운 고민을 하게 되었다.


다만 앞서 밝혔듯 이는 필자의 개인적인 고민이다. 결코 노래를 만든 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며, 가사를 바꿀 것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필자의 고민에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정말 반가운 일일 테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그 사람이 틀렸다고 이야기하려는 것 역시 아니다.


아무쪼록, 아동들의 효율적인 학습을 위해 제작된 ‘동요’ 가사를 뜯어보며, 어쩌면 그것들이 아동의 머릿속에 심을 수 있을 편견에 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상당히 유명한 동요인 ‘곰 세 마리’와 ‘아기 상어’ 노래 가사를 위주로 분석해보도록 하자.

 

 

 

엄마 곰은 날씬한가? 아빠 곰은 뚱뚱하긴 하다.


 

‘곰 세 마리’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의 누구나 알 동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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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유튜브 '주니토니 동요동화 - 키즈캐슬' 채널 '곰 세마리' 화면 캡처)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있어.

아빠 곰, 엄마 곰, 아기 곰.

아빠 곰은 뚱뚱해.

엄마 곰은 날씬해.

아기 곰은 정말 귀여워.

 


이 노래로부터 네 가지의 서술을 추출할 수 있다.


1.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사는데, 그 구성원은 아빠 곰, 엄마 곰, 아기 곰이다.

2. 아빠 곰은 뚱뚱하다.

3. 엄마 곰은 날씬하다.

4. 아기 곰은 귀엽다.

 

우선 첫 번째 서술은 이 노래의 모든 서술에 대한 전제로 작용한다. 또한, 첫 번째 서술은 네 개의 서술 중 유일하게 참 거짓을 가릴 수 있는 서술 즉, 명제이다. 따라서 첫 번째 서술의 참 거짓의 여부에 따라 이후 명제들의 관찰에 대한 의미가 생겨날 수도, 사라질 수도 있다.

 

먼저 사실적으로, 즉 생물학적으로 다가가 보자면,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사는데, 그 구성원은 아빠 곰, 엄마 곰, 아기 곰이다.’라는 전제는 거짓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곰의 종류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보통 곰은 암컷과 수컷이 개별적으로 생활하며 짝짓기 시기에만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새끼곰은 암컷과 수컷이 함께 양육하기보다 암컷이 홀로 키우는 경우가 더 빈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적으로 관찰해 본다고 하여도, 과연 ‘엄마 곰’이 날씬할까? 곰의 특성상 암컷이 수컷보다 무게가 덜 나가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수컷이든지 암컷이든지 ‘날씬해’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날씬하다’는 곰에 어울리는 수식어라고 보기는 힘들다(물론 주관적인 의견이다).


아무쪼록, 따라서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사는데, 그 구성원은 아빠 곰, 엄마 곰, 아기 곰이다.’라는 명제는 생물학적으로 틀린 명제이다. 하지만 이 명제는 ‘동요’라는 형식 속에 있고, 일종의 ‘우화’이므로, 생물학적으로가 아니라 ‘의인화’가 된 것으로, 즉 인간의 모습이 곰에 투영된 것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사실 간단히 생각해 보아도, 우리가 아동에게 이 노래를 들려줄 때, ‘곰의 생활 양식’을 교육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인간 아동은 세상의 모든 현상을 자기중심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대부분 아동은, 전제의 의인화 여부를 따질 것도 없이, 애초에 곰들이 인간으로 의인화된 상태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처럼 ‘의인화’를 전제로 하였을 때,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사는데, 그 구성원은 아빠 곰, 엄마 곰, 아기 곰이다.’라는 명제에서의 초점은, ‘아빠 곰’, ‘엄마 곰’, ‘아기 곰’으로부터 ‘인간 아빠’, ‘인간 엄마’, ‘인간 아기’라는 인간적 지위로 전환된다. 이 경우, 전제인 위의 명제는 참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부터는 전제가 의인화되었음을 가정하였으므로, 이후 이어지는 세 서술, 즉 ‘아빠 곰은 뚱뚱하다.’, ‘엄마 곰은 날씬하다.’, ‘아기 곰은 귀엽다.’ 역시도 의인화된 것으로 여길 필요가 있다. 이 세 서술이 의인화가 된 것이라면, ‘아빠 곰’에는 ‘성인 남성인 인간 아빠’가, 엄마 곰에는 ‘성인 여성인 인간 엄마’가, ‘아기 곰’에는 ‘인간 아동’이 대입된 것이다.


여기에서 ‘아기 곰은 귀엽다’는 서술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관적인 서술이고, 다른 서술들과 독립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문제는 바로, ‘아빠 곰은 뚱뚱하다’와 ‘엄마 곰은 날씬하다’에 잠재하는 편견이다.


의인화를 가정하였을 때 '엄마 곰'에서 초점은 ‘곰’이 아니다. 바로 ‘엄마’ 즉 (자녀를 둔) 성인 여성이다. '아빠 곰'에서 역시 초점은 ‘곰’이 아니다. 초점은 ‘아빠’ 즉 (자녀를 둔) 성인 남성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정겨운 ‘곰 세 마리’ 노래를 통해 아동에게 줄 수 있는 학습 효과는 무엇일까? 물론 음악적/예술적 감수성 발달의 도모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사의 내용으로 인해 아동은 ‘성인 여성은 날씬하다’와 ‘성인 남성은 뚱뚱하다’라는, '여성은 날씬한 것이 바람직하고 남성은 뚱뚱한 모습이 어울린다'라는, 상당히 위험할 수도 있을 일반화를 학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엄마 상어는 어여쁠까? 아빠 상어는 힘이 세긴 하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더 최근의 동요에서도 가져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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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스마트스터디 홈페이지 캡처, ⓒ핑크퐁)

 

 

아기 상어, 귀여운 바닷속 아기 상어.

엄마 상어, 어여쁜 바닷속 엄마상어.

아빠 상어, 힘이 센 바닷속 아빠 상어.

할머니 상어, 자상한 바닷속 할머니 상어.

할아버지 상어, 멋있는 바닷속 할아버지 상어.

 


이에 대하여서 역시, 이들이 의인화된 서술인지 아닌지를 따져볼 수 있다.

 

이는 보통 상어는 단독생활을 하는데(물론 상어 종마다 차이는 있다), 본 노래에서는 아기, 엄마, 아빠뿐만 아니라 이후에는 할머니와 할어버지 상어가 함께 생활함을 보여줌을 통해 의인화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뿐만이 아니더라도, 앞선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노래 역시 아동에게 ‘상어의 습성’과 같은 학문적인 내용을 가르칠 목적에서 불리는 노래가 아니므로, 마땅히 의인화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여기에서 역시 다섯 가지의 서술을 살펴볼 수 있다.

 

1. 아기 상어는 귀엽다.

2. 엄마 상어는 어여쁘다.

3. 아빠 상어는 힘이 세다.

4. 할머니 상어는 자상하다.

5. 할어버지 상어는 멋지다.


첫 번째 서술은 앞서 ‘곰 세 마리’의 경우와 동일하므로 제외할 수 있다. 자세히 살펴볼 서술은 뒤의 네 개다. 이 역시도 ‘엄마 상어’, ‘아빠 상어’, ‘할머니 상어’, ‘할아버지 상어’는 ‘인간 엄마’, ‘인간 아빠’, ‘인간 할머니’, ‘인간 할아버지’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여성 집단'이라고 볼 수 있는 ‘엄마’와 ‘할머니’는 ‘어여쁘’고 ‘자상’하다. ‘남성 집단'이라고 볼 수 있는 ‘아빠’와 ‘할아버지’는 ‘힘이 세’고 ‘멋지’다. 이것을 인간 가부장제에 내재하는 전형적인 성적 고정관념을 '상어'에 투영하여 위화감이 없게끔 만들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편견이 아이들의 무의식이나 잠재의식 속에 스며들지는 않을까?

 

지난 2020년 11월, 유튜브 전체 조회수 1위를 달성한, ‘아기 상어’의 영문 버전인 ‘Baby Shark Dance’에서도 문제의식을 가져볼 수 있다.

 

 


 

한글 버전과는 다르게 영문 버전의 ‘Baby Shark’에는 상어들을 부르는 말을 제외하고는 가사가 없다. 하지만, 필자가 잡아내고자 한 문제는 바로 영상 속 율동에 있다.


물론 이 역시도 ‘아기 상어’의 경우는 제외하도록 한다. 아동들이 율동을 하는데, ‘엄마 상어’와 ‘할머니 상어’의 율동은 작다. 일명 ‘조신’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아빠 상어’와 ‘할아버지 상어’의 율동은 ‘엄마 상어’와 ‘할머니 상어’에서의 율동보다 손동작이 훨씬 크고, 힘차며, 역동적이다.

 

이 율동들은 아동들이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만들어 아동들에게 가르친 것일 것이다. '남성은 역동적이고 힘차게, 여성은 차분하고 조신하게'라는 가부장제적 성 고정관념이 스며들어 있는 율동을 아동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동들의 바람직한 성 관념 정립에 방해되지는 않을까?

 

의인화된 상황을 떠나서 사실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적어도 ‘할아버지 상어’보다는 ‘엄마 상어’가 힘이 세지 않을까? 더군다나 상어의 특성상 암컷 상어의 피부가 수컷 상어의 피부보다 두껍다. 암컷 상어가 더 강인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수컷 상어가 강하긴 하지만 그것은 수컷 상어만의 개별적인 특징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전문적인 해양생물학자가 아니고서야 상어의 외형으로 암수를 판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암수를 떠나서 상어에게 '어여쁨'이라는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고, 암수를 떠나서 상어에게 '힘이 센'이라는 수식어는 어울린다. (물론 이 역시 개인적인 의견이다.)


물론 위의 서술들이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이 명백하게 의인화가 된 것이라는 점에 있다. 아이들이 쉽게 따라 부르는 동요에 엄마, 할머니 즉 '여성 집단'과, 아빠, 할아버지 즉 '남성 집단'에 각각 가부장제에서의 보편적인 관념을 투영함으로써 가부장제에 뿌리를 둔 편견을 대물림하는 데에 이바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지금까지 우리가 일상 속에서 큰 문제의식 없이 마주하곤 하는, ‘동요’가 가져올 수도 있을 아동들의 무의식 및 잠재의식에의 편견 심기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고, 누군가는 필자의 이런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글을 통하여 이러한 문제의식이 있을 수 있다는 점 정도는 인지해준다면 감사할 듯하다.

 

 

[최호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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