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배가 오다 - 칼릴 지브란, '예언자' 1 [문학]

출사出師 혹은 출항出港
글 입력 2020.05.11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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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 13: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고전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장 1절-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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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말을 함에도, 그 안 사랑 없이는 다만 아무것도 아니이다."


어젯밤, 친구가 건넨 성서의 한 구절이다.


이 아무런 새로울 것 없는 것이 괜히 울리오는, 그런 밤이었던가 보다, 어제는. 그래서 그가 곧 가고 난 시간, 나는 그의 한 말을 그리 떠올려보고, 이렇게 찾아본 일이 있었던 것이렸다. 고린도전서란다. 아주 처음 들어본 서(書)이다.

 

그것이 진정 진정으로 천사의 말이라 할지라도 사랑 없음에 다만 아무것도 아니이다. 그런즉 만사 제일은 사랑이라. 나는 이 하등 새로울 것 없는 말에 왜 이리도, 하냥 가슴 당기우는지를 모르겠다. 호호 浩浩 한 바다 위를 둔중히 울리 퍼지는 어느 고요한 목소리를 듣는 양 하는지를, 나도 도통 모르겠다.

 

예언하는 자, 모든 비밀과 지식과 그에 대한 믿음마저 가질지라도 사랑 없이 다만 아무것도 아니고, 마침내 제 육신 전부를 불살라 바침에도 사랑 없이는 도저히, 아무것도 아니게 됨이다. 아무것도 아니이다. 그때 모든 행위는, 아무것도 아니이다.

 

이 구절이 계속 귓전을 맴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 말이. 아무것도 하잖은 것과 꼭 같다. 꼭 같다. 그렇다면 그 충만한 사랑, 가장 충실하여 맹목에 가깝도록 내가 여길 그 사랑을 어디서 무엇으로 나는 얻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 무심한 마음 저 구석 편에 지루히 솟아 궁금증으로 어린다. 너무, 도저 到底한 것으로 내겐 여겨지는 까닭이다.

 

예언하는 자, 아무런 득 될 것을 말로써 베풀고 또한 베풀 수가 있을지라도 사랑 없이 그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다. 곧, 내 아는 어느 예언자의 얼굴이 이 안 바다 위로 풀리어났다. 그는 어떠하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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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남겨 두고 가는 것은 사상이 아니다. 내 마음이니라.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감미로워진 내 마음인 것이다. 그러나 이젠 시간이 없구나."

 

이제 수확의 달 이엘룰(Ielool) 초이레, 오르펠레즈를 막 떠나야만 하는 예언자 알 무스타파의 말이다. 저 각각의 문장이 얽어지며, 별것 아닌 사소한 생각이 내 안에 차오른다.

 

그것은 나의 말, 그러니까 내가 나중 하고픈 말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 `그래서 나는 그 먼 미래, 만인의 앞에 서서 어떤 한마디 말을 할 수 있을까`의 질문을 넘어, `그래서 그때에, 나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하고, 또 할 수가 있을 것인가`하는 생각.

 

그러니 이제, 또한 내가 귀히 여기는 어떤 이에게로 내가 흘리어 보냈던 말들이 떠오른다. 즉, 지나온 길을 돌아봄이다. 나는 한 마리의 예언자가 되고 싶어하는, 철없고 낯부끄러운 한 마리 동물일 때, 저기 낯설게 길 잃은 이를 만났던 일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모든 것에 거부와 의심과 회의를 품고 품게 된 어떤 낯선 이에게 용기를 서리우기 위하여, 우리네의 직물인 논리를 넘어 어떤 환상향인 예언을, 즉 희망인 미래를 지긋이 읊어보았다. 자격이 없는 말이랴, 사실 그러하다마는, 그의 열리는 눈빛을 나는 곧 받았다.

 

활짝 피어나는 눈빛을 나는 가졌다.

나는 무엇을 주어 그 눈빛을 받는가.

다만 그 모든 자격 없고, 명백치 못하고, 모호하며, 우스울지도 모르는 그 말, 아니 그 말에 잔뜩 서리인 내 마음이었으리라.

 

이렇듯, 그 모든 말에 잔뜩 서리어야 하는 것은, 사상 아닌 사랑이었음을. 그것이 말로 짜고 추진해 나아가는 삶에 있어서의 귀결될 예언 같은 종말을, 피해갈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자 법칙임을. 이러한 별것 아닌 사소한 생각, 그리 귀치 않아 너무도 당연한 생각 하나를 나는 새삼으로 머금고 입안에 궁글어 보는 일이 갑자기 있었다. 요사스런 밤이다.

 

그는 내게서 전혀 없던 것, 까무러치는 놀라움을 받았다. 그때 내가 다시 받는 것은 저 얼굴이다. 그는 내가 그 무언가를, 저 얼굴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알 수 없었다. 그는 그러므로 내게 미안함을, 송구함을 또한 동시에 눈동자로 비추고 있었다. 받는 이는 동시에 주는 이임을, 그가 아직 알 수가 없고, 받아들일 수는 더 없는 때문이다.

 

나는 하는 수가 없어, 영원히 자격을 획득할 수가 없는 말 한마디를 보태었다. 이제 그가 다시 한 마리 예언자가 되어 인간의 숲으로 나아갈 때, 그 어느 때 어느 밤에 불현듯 추억하는 나를 알 것이니. 그리하여 그는 어느샌가, 받는 이인 지금엔 아주 몰랐던 그 삶, 제 앞에 지금 자리 잡고 있는 주는 이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니. 그것은 내가 알 무스타파에게, 그러니까 예언자에게 받은 선물이었다.

 

나의 닿고자는 삶은 이렇듯 예언자의 나무로 화함이니, 이 모든 예언자의 씨앗들에 물 뿌리는 자가 되고자 할지니. 씨앗은 나무로, 양들은 목자로, 불신자는 예언자로. 그리하여 일어난 저 숱한 예언자들이 또한 예언자를 일으키고 무궁하게 뻗어 나가 숲을 이루어낸다면, 그때가 나의 보상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 씨앗 된 나는 무엇으로 피고, 피어날 것인가...

 

나는 이런 밤, 이런 질문을 가져보는 것이다. 즉, 어떻게 저 도저한 사랑을 품어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이럴 제, 다시 저 아무것도 새로울 것 없는 말을 본다. 보게 되는 것이다. 건방진가. 하는 수 없다. 그것이 하필 나의 꿈이 되었음을 탓하랴.

 

 

알무스타파, 선택받은 자이며 가장 사랑받는 자, 또한 시대의 여명이었던 그는, 오르펠레즈 시에서 열두 해 동안이나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태워 고향으로 돌아갈 배를.

 

이윽고 열두 해째 되던 해, 수확의 달 이엘룰(Ielool) 초이렛날에 그는 성벽 밖 한 언덕에 올라가 멀리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보다. 안개에 싸인 채로 오고 있는 그의 배를.

 

그러자 그의 안 마음의 문은 활짝 열리고 기쁨은 바다 멀리 날아갔다. 두 눈을 감고 고요한 영혼으로 그는 기도한다.

 

그러나 언덕을 내려오자 그는 문득 슬퍼져 마음속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 어찌 평화로이 아무런 슬픔도 없이 떠나갈 수 있을까? 영혼에 상처 하나 없이는 내 결코 이 도시를 떠날 수 없으리라.

 

내 여기 성벽 안에서 보낸 고통의 낮들은 너무나 길었고, 또 고독의 밤들도 너무나 길었으니, 누가 있어 이 고통과 고독에 한 점 후회 없이 작별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거리에 내 이미 뿌려 버린 무수한 영혼의 조각들, 벌거벗은 채 이 언덕들의 사이를 헤매이는 무수한 내 갈망의 자식들, 내 정녕 근심과 고통 하나 없이도 이들을 떠나갈 순 없으리다.

 

내 오늘 벗어 버리는 이것, 이것은 한갓 옷이 아니라 내 두 손으로 찢어 낸 살. 또한 내 뒤에 남기고 가는 이것, 이것은 한갓 사상이 아니라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더욱 부드러워진 하나의 심장인 것을.


- 칼릴 지브란, <예언자> 제 1장, 배가 오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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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배가 오고, 나는 이제 출항을 준비한다.

불신자의 순례를 시작한다.

   

 

작별의 날은 곧 만남의 날이 되는 것인가? 나의 저녁이 실은 나의 새벽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저 밭고랑에 쟁기를 버려 둔 이에게, 포도주를 짜내는 수레바퀴를 멈춘 이들에게 나는 무엇을 주어야 할 것인가?

 

내 가슴이 무거운 열매로 채워진 나무가 되어, 그 열매를 나누어 줄 것인가? 그러면 나의 욕망은 샘처럼 흘러넘쳐 그들의 잔을 채울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신의 손길이 켜는 하프, 혹은 내 안으로 그분의 숨결이 스치는 그 피리인 것인가?

 

나는 침묵의 탐구자, 허나 침묵 속에서 나는 무슨 보물을 찾아내고선 당당하게 나누어 줄 수 있을 것인가? 만일 오늘이 내 수확의 날이라면 어느 들에, 어느 잊어버린 계절 위로 나는 씨를 뿌려야 할 것인가?

 

지금이 실로 내 등잔을 켜, 손에 들 시간이라 하더라도, 거기 타오르는 불꽃은 나의 불꽃이 아닌 것을. 나는 다만 텅 빈 채 암흑으로써만 나의 등잔을 켜리라. 그러면 밤의 파수꾼이 기름을 채우고 또 그가 비로소 불 밝혀 줄 것을.

 

- 칼릴 지브란, <예언자> 제 1장, 배가 오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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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릴 지브란, 예언자

 

 

(고전 14:37)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고전 14:38)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어떤 사본에, 알지 못하는 대로 두라

 

(고전 14: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고전 14: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고린도전서 14장 37절-40절

 

 

[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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