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적인 폭력] 13. 마법에 걸린 그날의 우리①

생리를 생리라 부르지 못하고….
글 입력 2020.01.1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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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마법에 걸린 그날의 우리①


 

그날이 오면 한 달이라는 기간이 얼마나 짧은지 실감한다. 한 번쯤 빼먹어도 되건만 그 녀석은 참 부지런하게 잊지 않고 내게 찾아온다. 한 달에 한 번, 세상의 모든 짜증과 불쾌함을 안겨주는 그 녀석. 그렇다고 제때 찾아오지 않으면 그것대로 걱정하게 하는 그 녀석. 그 녀석은 바로 ‘생리’다.

 

친구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축복받은 몸’인 나는 너무나 감사하게도 생리통이 없다. (고통이 최대치에 달한다는 생리 두 번째 날에 아무렇지 않게 등산까지 할 정도다) 하지만 통증이 없다고 해서 불쾌함까지 없는 건 아니다. 나에게도 생리는 평온한 일상을 방해하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생리가 시작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떻게 나는 이 불편한 생리를 십 년이나 넘게 매달 해온 걸까. 아무 통증이 없는 나도 이런 생각이 드는데 다른 여성들은 얼마나 괴로울까.

 

최근, 학교에서 생리공결제 (생리통으로 인해 결석할 경우 출석으로 인정해주는 제도)를 시범 운영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그 변화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지만, 진통제 없이는 생리 기간을 버틸 수 없는 학우들에겐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새로 도입된 정책이 으레 그러하듯 생리공결제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선이 존재했다. 가장 지배적인 의견은 악용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객관적인 진단서가 아닌 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제도이기 때문에 이는 필자 역시 동의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고작 생리 가지고 유난이라는 의견만큼은 납득하기 어렵다.

 

아픈 사람이 제 할 일을 못 하는 건 당연하다. 그 원인이 무엇이 됐든 말이다. 그런데 감기, 두통, 장염 등의 이유를 내세울 땐 쉽게 납득하던 이들도 생리 때문에 학교나 직장에 못 가겠다고 하면 곧바로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짓는다. 한 번이라도 그런 표정을 본 사람은 곧바로 ‘생리통은 참아야 하는 것’이라는 명제를 가슴 속에 품게 된다.

 

그 명제에 나는 해당 사항이 없다고 생각했다. 생리가 내 일상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극히 미미하므로 굳이 ‘참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나는 통증만 없었을 뿐, 생리 그 자체를 참아내왔었다. 과거의 내게 이렇게 공개적으로 생리에 관한 글을 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시절, 생리가 대화 주제로 떠오르면 나와 친구들은 남학생들이 듣지 못하도록 최대한 작게 속삭여야 했다. 속삭이는 것도 모자라 단어까지 바꿔야 했다.

 

“나 오늘 그날이야.”

“짜증 나. 마법 걸렸어.”

 

해석하면 그냥 생리한다는 뜻이다.

 

초경이 시작됐을 때, 거대한 변화를 겪은 내 몸이 몹시 낯설었다. 당시 읽었던 책들은 그 변화가 곧 내가 ‘여자가 되었다’는 증거라고 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여자였는데, 피가 나오는 것 말고는 뭐가 달라진 건지 모르겠는데 일단 여자가 되었다니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른 친구들은 생리하는 자신을 낯설어하는 것을 넘어 부끄러워했다. 생리대는 책가방 가장 깊숙한 곳에 파우치에 담아 보관했고 다급히 생리대를 빌려야 할 땐 귓속말로 ‘혹시 그거…’라는 말로 운을 뗐으며, 친구에게 생리통을 호소할 때는 ‘마법에 걸렸다’라거나 ‘그날’이라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해야 했다. 중요한 건 이것마저 남학생들이 알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그러한 풍경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게 생리는 대상이 여자로 국한될 뿐, 치아가 새로 나고 키가 커지고 목소리가 달라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성장의 증거였다. 하지만 모두가 부끄러워하니 응당 똑같이 행동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급하게 생리대가 필요했던 나는 한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친구는 군말 없이 생리대가 담긴 파우치를 건네주었다. 친구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 나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파우치를 돌려주었다. 그때 나는 지퍼가 잘 잠겼는지 꼼꼼히 확인하고 돌려줬어야 했다.

 

그날, 장난기 가득한(당시 잘못을 너무 순화하는 말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남학생들에 의해 친구의 가방이 이리저리 치이게 됐는데 그러다 지퍼가 덜 잠긴 파우치에 들어있던 생리대가 바닥에 쏟아졌다. 친구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서둘러 쏟아진 생리대를 주웠고, 몸을 일으킨 뒤 나를 원망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내가 죄책감에 아무 말도 못 하는 동안 문제를 일으킨 남학생들은 친구를 놀리며 웃기만 했다.

 

혼란스러웠다. 나도 잘한 건 없지만, 놀려댄 남학생들보다 더 잘못한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필요에 의해 생리대를 갖고 다닌 게 왜 놀림거리인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합리적인 의문이 중학생들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책가방에 생리대를 담고 등교한 나는 화장실에 들고 가기엔 책가방은 부적절하다는 사실을 교실에 도착한 뒤에야 깨달았다. 서둘러 작은 파우치에 옮겨 담았는데 불행히도 그 모습을 같은 반 남자애들이 목격했다.

 

본인들끼리 쑥덕거리는 게 보였지만, 순진했던 나는 ‘설마’라고 생각했다. 설마 그렇게 짓궂을까. 설마 그렇게 악독할까. 그러나 몰래 뒤를 밟아 내가 화장실로 향하는 것을 확인하고 ‘거봐, 쟤 생리하는 거 맞지?’라며 비웃는 그들을 본 순간, 그 ‘설마’는 산산이 조각났다.

 

그때 나는 수치스러움을 넘어 경악스러웠다. 아무리 철이 없다고 해도 명백히 도가 지나친 행동이었다. 평소에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음담패설을 교실에서 큰 소리로 떠들어댔던 그들이기에 더욱더 화가 났다. 저들에게 있어 자신의 음담패설은 자랑거리지만, 나의 생리는 수치였다. 더 화가 나는 건 생리라는 소재가 안겨준 창피함 때문에 그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를 요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 나의 분노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나는 그 일을 어린 시절 흔히 겪는 짓궂은 장난쯤으로 치부한 채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그랬던 내게 다시 그때의 수치심을 불러일으킨 건 한 외국 광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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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기업 Bodyform의 생리용품 광고.

피 흘린 채 운동하는 여러 여성과 함께

"피는 우리를 멈출 수 없다."라는

광고 문구가 떠오른다.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생리대를 들켰다는 이유만으로 비웃음거리가 되었던 과거와 정체 모를 파란 액체만 나오던, 고통과 불쾌함은 지운 채 산뜻함만 내세우던, 감히 하얀 하의(!)를 입었던 한국의 생리대 광고가 얼마나 기이한지 처음으로 인식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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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피 한결의 광고.

생리하는 여성에게 남성 화자가

"그날에도 넌 빛날 수 있어."라고 말한다.

 


우리의 피는 빨간 색이다. 생리는 아무렇지 않게 하얀 하의를 입고 웃을 수 있을 만큼 가벼운 녀석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생리하지 않는 척해야 하는 이유도 없다.

 

고등학교 시절, 어느 쉬는 시간에 갑자기 생리가 터져서 교복 치마가 빨갛게 물든 적이 있었다. 다른 친구가 거의 경악하며 그 사실을 내게 알려주었다. 너무 놀라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 하는 동안 한 아이가 치마를 가리도록 담요를 빌려주었고 다른 아이는 생리대를 내주었다. 당시 교실에 여학생 몇 명만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아무것도 모르는 남학생이 교실에 발을 디디자 모두가 재빠르게 나를 가려주었고 어설픈 변명으로 남학생을 교실에서 나가게 했다. 덕분에 나는 (남학생은) 모르게 기숙사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무사히 다음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여러 명이 일사불란하게 나 한 사람을 도와주는 건 몹시 감동적인 일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필사적이었던 그들을 향한 고마움이 인다. 그렇지만 꼭 그렇게까지 생리를 여자들만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냐는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폐쇄적인 사회의 맥락 속에서 사람들은 생리와 관련된 여성들의 고통을 묵살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생리공결제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으로 이어졌다. 한 대학은 해당 제도를 사용한 여학생들의 통계를 발표해 뭇매를 맞았고 한 대학은 전산망에 생리 주기를 입력하라고 요구해 거센 반발을 샀다. 공결제가 시행되는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교수 재량으로 출석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는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직장인 중에서는 근로기준법 제73조에 해당하는 ‘생리휴가’를 제때 사용하기는커녕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많은 회사가 생리휴가를 사용하는 직원에게 눈치를 주거나 아예 그런 제도는 없다고 못을 박는다. 생리를 입증하라며 승무원들의 생리휴가 신청을 모두 거부해 1심에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은 아시아나항공의 사례가 이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앞서 언급했듯이 생리공결제나 생리휴가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모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객관적인 입증이 어려운 제도이기에 남용이 우려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둘러싼 논쟁이 생리 자체에 대한 조롱으로 이어져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재 상태까지 용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생리는 모든 여성에게 일어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여성이 생리가 시작되면 습관처럼 진통제를 찾는다. 그날에 우리가 걸리는 건 마법이 아니라 저주일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그 저주의 이름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생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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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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