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상에서 가장 넓은 방구석 -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글 입력 2024.11.05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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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부럽다.

 

책을 읽기 전에 제목만 접했는데도 참을 수 없이 부러웠다. 뭐든 해 보는 추진력만으로도 부러운데 뭐든 되었다는 결실까지 맺었다니. 근데 대체 뭘 해 보고 뭐가 되었다는 걸까? …히키코모리 일본인이 루마니아어로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고? 상상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나는 일이라 나의 부러운 감장이 하찮게 여겨졌다. 내가 감히 부러워해도 될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그냥 나랑 다른 세상 사람이다. 겁 많고 게으른 나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저자의 세상이 궁금해졌다. 사이토 뎃초의 에세이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의 독서는 그렇게 순식간에 결정됐다.

 

2024년을 맞이해 ‘일단 해 보는 한 해를 보내자’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어느새 11월이 되었다. 작년까진 더는 연말이 심란하지 않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좀 심란했다. 일단 해 보지 못한 한 해를 보낸 것 같아서 말이다. 분명 이것저것 하긴 했지만,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또 뒷전으로 미루고 도피성으로 만들어낸 일정만 잔뜩 소화했다. 그런 일정이라도 소화한 게 어디냐며 나 자신을 달래보았지만, 연말이라는 심판대 위에 지난 한 해를 올려 세우니 냉정하게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했던 ‘이것저것’은 모두 일상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일이었다. 안락한 일상의 감옥 안에서 무료함을 달래줄 정도의 일만 했…다고 하기엔 나한테 너무 가혹한 것 같다. 열심히 살긴 했다. 다만 연초에 호기롭게 다짐했을 때의 마음가짐은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게 맞다.

 

굳이 열심히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한때 ‘갓생’에 집착했었지만, 솔직히 이렇게 퍽퍽한 인생살이를 하루하루 견디는 게 어딘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 건 지금 삶이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삶의 형태가 있는데 거기에 못 미치는 지금이 싫다. 그러면서도 과감하게 알을 깨지 못한 채 변화를 미루기만 하는 내가 더 싫다.

 

이렇게 답답할 땐 남의 인생 이야기로 도피하면 된다.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사람들을 보고 자극받는 것만으로 대리 만족이 된다. 이런 불순한 의도로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를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니 저자의 인생에 대리 만족을 느끼면서 반성하기도 하고 경탄스럽기도 했다. 그러다 저자가 제시하는 언어와 사회에 대한 고찰에 빠져들기도 했다. 저자는 열심히 산 자신을 전시하려고 이 책을 쓴 게 아니었다. 그는 그저 자신의 결대로 살았고, 이를 보여줄 뿐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그만의 결로 이뤄진 그의 삶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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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자신을 히키코모리라고 소개한다. ‘은둔형 외톨이’라는 뜻의 일본어 신조어로, 이제는 일상적으로 사용될 만큼 널리 알려진 단어다. 저자와 반대로 나는 집에 있지 못하는 성격이다. 일정이 비는 날이 거의 없고, 집에서 해도 되는 일을 굳이 카페에서 해결하고(지금 이 글도 카페에서 쓰고 있다), 하루만 집에 있어도 입에 가시가 돋을 것 같아서 산책이라도 나가야 마음이 편하다. 사람들은 수시로 나가는 나를 신기해하지만, 나는 집에 있어도 답답하지 않은 사람들이 신기하고 부럽다. 이 책에 호기심을 가졌던 이유 중에 저자가 히키코모리라는 점도 한 몫을 차지했다.

 

저자도 처음부터 히키코모리였던 건 아니었다. 평범한 나날을 보내다가 대학 생활이 어긋나고 취업 준비생일 때 커다란 우울증을 얻어 밖을 나가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안 좋은 이유로 집에 틀어박힌 사연이 밝혀지면 동정심과 걱정이 들기 마련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감히 동정하기엔 저자가 너무 자기 인생을 잘 살아내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사는 게 답답했다. 어렸을 때부터 다른 동네, 다른 지역, 다른 나라를 꿈꾸며 저 너머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궁금해하고 동경했다. 이 마음이 지독한 야외형 성격으로 발현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평생 느껴온 답답함이 단순히 야외냐 실내냐에 달린 문제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외출만 안 할 뿐, 방 안에서 혼자 자신만의 루마니아어의 세계를 건설했고 온라인으로 수많은 루마니아 친구를 사귀었다. 아무런 접점이 없어도 ‘루마니아어’라는 접점만 있으면 친구 신청을 하는 저자의 적극적인 태도가 놀라웠다. 늘 낯선 환경과 자극을 찾아 헤매는 나지만, 저자와 같은 용기가 있다면 집 안에서도 얼마든지 새로운 세상과 만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책에 대한 정보를 처음 접했을 땐 제목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에서 뭐든 하는 것도 부러웠고, 뭐가 된 것도 부러웠다. 책을 읽다 보니 뭐가 된 건 정말 부수적으로 따라온 결과일 뿐이었고, 뭐든 하는 저자의 실행력이 진심으로 감탄스러웠다.

 

집에만 있다고 해서 절대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힌 게 아니다. 낯선 문화권의 콘텐츠를 소비하고, 그에 대한 비평문을 쓰고(루마니아어 소설가가 되기 전 저자는 영화 비평가로 활동했다), 외국어를 배우고, 그 외국어로 소설을 쓰며 저자는 세상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자기 자신을 알아갔다. 엉덩이가 가벼운 나는 자기 자리에서 진득하게 할 일을 해내는 사람을 늘 동경하는데 저자가 딱 그러한 인간상이라 읽는 내내 저자를 존경하며 지난날을 반성했다.

 

저자가 서문에 인용한 루마니아의 반철학자 에밀 시오랑의 문장을 본 순간 곧바로 이 책에 마음을 빼앗겼다.

 

 

“고독이 가르쳐주는 것은 당신이 혼자라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이다.”

 

- P.12

   

 

저자가 방에 틀어박혔던 시간은 세상과 고립된 시간이 아닌 유일무이한 존재로 거듭난 고독의 시간이었다. 내가 평생 그토록 갈망했던 새로운 자극은 바깥 어딘가가 아닌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뭐가 되려면 뭐든 해야 한다. 뭐가 되지 못하더라도 뭐든 하는 사람은 그 자체로 위대하다.

 

올 한 해도 내 삶에 커다란 변화는 없었다. 주변 상황이 뒤바뀌지도 않았고, 나 자신도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지 못했다. 형편없는 한 해를 보냈다며 울적했던 나는 이 책을 읽고 생각을 고쳤다. 저자만큼 파격적이진 않지만 소소하게나마 뭐라도 해 보긴 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고 글을 쓰는 등 일상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던 그 모든 일이 아주 미미하게 성장한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저자는 루마니아어 소설가로 거듭나기 위해 자신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본인의 결을 따라 살다 보니 루마니아어로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었을 뿐, 그는 여전히 그였다. 내가 변화를 바라면서도 용기 내지 못한 이유는 나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내년, 나의 새해 목표는 올해와 마찬가지로 ‘일단 해 보는 한 해를 해 보자’이다. 변화를 향한 발걸음은 집 안에서도 얼마든지 내딛을 수 있다. 저자처럼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나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말이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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