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가장조
시작부터 대단히 예사롭지 않더니. 아니, 첼리스트 여윤수는 활을 낮게 쓰면서도 명랑하게 소리를 놓아주는데, 정작 첼로에는 숨을 한가득 불어넣더라.
눈을 감고 들으면 아주 편하게 연주하고 있을 거라 예상하게 되는데, 막상 얼굴을 보면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러니까 변주가 나타나기 전, 맨 처음 주제 선율을 들려주는 게 이렇게 중요한 일이구나.
눈을 감고 들으면 아무리 들어도 너무 듣기 좋은데, 첼로 한 대가 만들어내는 집중감이 그야말로 정기 공연 수준이니 순간 당황했다.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은 무대가 뭐 있겠냐만은, 그래도 ‘우리동네 관현악’이니까 조금은 더 즐기면서 연주할 줄 알았지. 나는 마냥 노니려던 마음을 어느샌가 접고, 이 음악을 정중하게 귀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깨가 막 의자 위로 올라가기 전에….
홋따따 뛰어다니는 모습이 귀여워 보여야 하는데, 뒤에 펼쳐진 소리는 세련되고 첼로 한 대는 매우 진중하니 나도 모르게 여윤수가 뛰어오를 때나 미끄럼을 탈 때나 뚫어져라 보게 됐다.
첼로가 주는 안정감이 있지 않은가? 나도 목소리가 꽤 낮은 편이지만, 첼로가 그보다 훨씬 낮은 소리를 내줄 때면 숨도 거의 쉬지 못한다. 활 하나를 들고 첼로를 품에 안은 채 노래하는 연주자를 보고 있으면, 이미 음악에 깊이 들어가 있는 그의 눈가에 자꾸 시선이 간다.
당신은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첼리스트를 본 적 있는가? 거의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로 감정을 제 입가로 끌어온 다음, 목 아래로 내려보내고 손안에 가득 담았다가 첼로 안에서 겨우 숨을 내쉰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를 보면 굉장히 많은 말을 쏟아낼 것 같은데, 정작 첼로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는 그 많은 감정이 절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그가 데려다 놓은 것은 어떤 심취나 자랑이 아니라, 이렇게 노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음악가의 가장 큰 진심이었다.
음악가들은 보통 저렇게 말을 하곤 하더라. 무대가 끝난 뒤나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눠본 건 아니다. 그러니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지레짐작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악기가 있으면 그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데 스스럼이 없더라.
원래 사람의 마음이란 게 한쪽이 먼저 손을 내밀면 다른 쪽도 자연스레 그 사람의 마음에 꼬옥 닿고 싶어지는 것 아닌가. 그날 여윤수가 보여준 건 음악가가 가질 수 있는 음악적 진심이었다. 그걸 내가 세 번째 변주에서 느꼈으니, 이 토요일에 핸드폰을 토닥이고 있는 게 아닌가?
첼로는 무엇일까? 마음의 안정이기도 하지만, 심장 가장 끝에 붙어 나를 기리기리 기다려주는 담요만 같기도 하고, 책 한 권은 다 뜯어낼 기세로 지층을 뚫어버리기도 하지.
여윤수는 정말 활을 깔끔하게 쓰는구나. 군더더기랄 게 없다. 고개를 들었다 내릴 때마다 이목구비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가 코 아래에서 옆얼굴로 자리를 옮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소리의 끝이 닿은 그곳은 숨의 가장 끝에서도 머물 수 있는 집이 되어준다.
마지막 변주에 다다르면? 아무리 생각해도 문화회관이라는 공간에만 가둘 수 없는 연주가 펼쳐진다. 기교의 단순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니, 기분 좋은 긴장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들은 어디서든 이만큼 진심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