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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처음 나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Conan Gray 영상이 시작이었다. A letter to myself 라는 제목의 영상에는 코난 그레이가 본인에게 보내는 비디오 에세이이자 편지 전문이 담겨있다. 한참 코난 그레이를 유튜버로 접했을 시기에 이 영상 속 그가 말하는 진심이 좋았다.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자라난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영어를 더듬거리면서도 그가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하고 싶었다. 같은 메시지에 공명하지는 못하더라도, 스스로에게 마음을 꾹꾹 눌러담아 주는 이 영상을 자주 틀어보았다. 2018년 겨울 A letter to myself 영상을 한참 돌려볼 무렵 가장 강렬한 계기를 준 영화 월플라워를 보게 됐다. 작중 주인공 찰리는 자신에게 일기를 쓸 때 편지를 쓰듯 Dear Chalie. 하며 시작하는데, 10대의 한가운데에 서있던 시간 속에서 월플라워는 나를 관통하는 영화였다. 명확하게 묘사는 되어있지 않아도 자연히 느껴지는 감정의 골이 깊고 파고들수록 위로가 됐다. 찰리가 서술하는 일상은 명확하지만 삶 전반에 뿌리 내린 트라우마는 고통스러울만치 파고들어야 알 수 있음을 영화를 통해 배웠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등장하는 편지 쓰기 자체가 낭만적이면서도 나도 쓰다보면 괜찮아질 수 있을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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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부터 새해, 생일 같은 굵직한 이벤트에는 편지지를 꺼내 편지를 썼다. 그걸 잘 보관해 두고 다음 해 답장과 함께 또 다음 해에 편지를 쓰는 방식이었다. 어떤 때에는 그 편지를 읽으면서 지난해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 절망하기도 했고, 구구절절 써 내린 글에서 기억나는 일들이 하나도 없어서 내가 쓴 게 맞는지 의심하기도 했다. 처음 나에게 편지를 쓴 기록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두고 쓰기보다 다음 날의 내게 하는 말이었다. 매일의 안부를 묻고 하루하루 잘 살아가고 싶었던 마음에 당시에는 편지를 너무 많이 썼다. 매일 일기장에든 편지지에든 어떤 식으로든 나를 위한 기록을 계속했다. 당시에 작성한 내용들은 지금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추억하고 싶은 것들은 아니다. 쓰는 그 순간 한풀이를 위해, 그 쓰는 행위를 위한 것들이어서 지금 보면 여전히 심란해지기도 하고 마음이 아파진다. 이야기는 내 속에서 자꾸 재가공되고 편집되기에 애써 좋은 가죽으로 포장했던 것들의 진실을 마주하면 조금 무력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흘러 편지가 모인 것을 볼 때마다 내가 편지만큼은 계속 썼다는걸, 나의 안부를 누구보다 가장 궁금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도 늘 힘이 됐다. 편지들을 천천히 보다 보면 우습고 순수한 바람들이 참 많다. 어른이 되면. 으로 시작하는 다양한 꿈들과 조금의 허상들을 보면서 여전히 편지를 쓰고 다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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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한 가지 트라우마가 편지를 떠나지 않았었다.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매년 내가 쓴 편지를 열어볼 때면 줄곧 같은 내용 속에서 배회하고 있는 것이 보여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고 믿었었다. 새롭거나 즐거워야 할 새해, 생일이 또 같은 곳에 갇혀있다는 걸 상기시켜주었다. 그럴수록 자꾸 적었다. 속이 다 비워질 때까지 일기장에, 버릴 쪽지에, 휴대폰 메모장에, 다시 편지지에 계속 똑같은 궤도의 이야기를 썼다. 그리고 또 몇 년이 지나고 나니 더 이상 쓸 말이 없어졌다. 기억이 이제는 희미해진 것인지 오히려 선명해진 건지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속에 이야기는 있었지만 그 기분은 머금었다기보다 소화시켰다는 쪽에 더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기뻤던가? 그냥 다른 이야기를 일기에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름대로 나에게 쓰는 편지 시즌1을 졸업했다. 언젠가 또 토해내고 싶은 말들이 생기겠지만 이제는 어떻게 해야할지 아니까 덜 두려웠다.

 

몇 년 전에 편지들이 내일을 걱정했다면 지금의 편지는 미래의 나에게 쓰는 편지가 되었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지금의 문제가 해결됐는지 그러면서도 미래에 크게 의지하지 않는 마음도 전부 담겨있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시작하는 후회나 넋두리를 매해 받아 들고 편지를 쓰다 보면 정말로 과거, 현재, 미래의 내가 온전히 다른 사람으로 느껴진다. 나를 계속 맴도는 질문들은 바뀌지 않았고, 그것을 인식하고 해석하는데 놀랄만치 달라지거나 하지 않았음에도 시간들이 축적되는 것을 편지에서 느낄 수 있다. 같은 상황도 점차 다르게 생각하게 되고,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을 연민하게 되는 순간. 그 감정의 변화를 낚아채고 싶어서 편지를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쓰는 편지를 한참 쓰고서야 타인에게 쓰는 편지가 좋아졌다.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말을 단정하게 적어가고, 그에게 어울리는 편지지나 엽서를 고르고, 그것을 전달하기까지가 편지가 완성되는 시간이다. 누군가를 기쁘게 놀라게 해 주고 싶을 때 선물도 좋지만, 진심을 담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을 때가 자주 있다. 마음 어딘가 꼬깃꼬깃 접힌 사랑을 편지에 담는 일은 입으로 내는 말보다 더 조심스럽고 오래 간직되길 원할 때 이루어진다. 기억되고 싶은 말들은 우리 사이 애매한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어서, 고민이 필요하고 잘 쓰려면 시간이 걸리지만 그렇기에 더 좋다. 내가 주고 난 후에는 다시 읽을 수 없다는 점도 그 신중하고 따뜻한 고민에 한 몫을 한다.

 

사람들은 각자대로 외롭다. 함께 있어도 해소되지 않는 외로움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열어보는 모든 것들은 개인에게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내는 일종의 편지라는 걸 느낀다. 어릴 적 책을 읽을 때 표지를 넘기자마자 보이는 00에게. 라는 짤막한 문구에서 늘 타인의 편지를 엿본 기분이 들었다. 도톰한 편지를 받는 기분은 어떨지 상상만해도 좋아서 계속 편지를 고집하기도 했다. 편지는 정말 힘이 세다. 아득하게 느껴지는 7년전부터 쓴 편지들이 나의 미래를 조각조각 기워주고 덮어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을 수도 어쩌면 없을 수도 있다. 그 수많은 내가 총총히 서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타인에게 썼던 모든 편지도 그들에게 기억하고 싶은 것이 되길 바래본다. 편지의 대상은 바뀌었지만 편지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 내가 나를 생각했던 시간처럼 우리 사이를 말하고 ,너에게 두터운 종이를 건네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또 편지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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