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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고약한 무료 [문학]

위수정 단편소설 〈아무도〉의 마지막 문장으로 글을 맺습니다.

by 서나현 에디터
2026.11.0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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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상념을 헤집던 때.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를 알게 됐다. 그가 남긴 이 말은 나의 흩어져 떠다니던 생각을 부연한다. “인생이란 휴전 없는 고통과의 끝없는 전쟁의 연속이며 행복이나 만족을 느끼는 시간은 극히 순식간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는 늘 고통과 맞설 무기를 든 채 끝내는 죽어간다는 결론에 이른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애를 쓴다. 필요를 채워야만 산다. 매일이 투쟁이다. 쇼펜하우어는 에세이 《사랑은 없다》에서 제안한다. “우리가 상대방을 부를 때 아무개 씨라고 부르지 말고 그 대신 ‘고뇌하는 나의 벗’이라고 서로 불러주자.”


      나를 고뇌하는 벗이라 부르는 위수정 작가의 단편소설, 〈아무도〉.

       

      *

       

      희진은 남편 수형에게 할 수 없었던 말을 독자에게 고백한다. “나를 개라고 생각해도 좋아. 그래, 그게 맞을지도 모르지. 이건 그저 개 같은 욕망일 뿐이라고.” 그녀는 수형이 아닌 다른 남성, ‘그 사람’을 원한다. ‘그 사람’에 대한 희진의 생각. “지금껏 이렇게 누군가를 원한 적이 없었어. 아니, 있었겠지. 있었을 거야. 하지만 그런 적이 있었다는 것을 잊을 정도로 원해.” 〈아무도〉에서 ‘그 사람’은 ‘그 사람’으로 명명될 뿐,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희진이 그토록 원하는 ‘그 사람’은 각기 다른 얼굴을 한 채 그녀를 찾아왔던, 찾아온, 찾아올 ‘고약한 무료’다.


      남편과 별거 중인 희진의 감정은 양가적이다. 남편과 꾸렸던 집의 일부가 되고 싶으면서도 안온한 일상의 풍경이 불편하다. 그 불편함은 희진의 오래된 감각으로부터 오는 게 아닌가. 희진이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후 희진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들어오던 안온한 일상의 풍경을 의심한다. 대학을 가고 연애를 하면서 부모님의 삶에 점점 무심해졌지만, 그녀는 오늘까지도 종종 그 장면을 떠올린다. “왜 나는 그때 내가 잘못한 것마냥 숨기 바빴을까. 그러다가도, 아니야, 내가 오해하는 걸 거야 하며.”


      꿈과 현실의 몽롱한 경계에서 희진은 수형의 어깨에 기대어 봤으리라. 온전치 못할지라도. “수형 씨, 나는 지금 꿈을 꾸는 것 같아. 아주 낯선, 처음 꾸는 꿈. 그런데 이게 좋은 꿈인지 나쁜 꿈인지 모르겠다?” 수형이 희진에게 빨리 깨고 싶냐고 묻는다. 희진은 그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깨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희진은 단잠에서 깬다. 희진이 내다보는 여생에 수형이 있다.


      “이번 여름은 너무 더웠는데 이제 곧 가을이고, 금방 연말이 되겠지. 올겨울에는 또 얼마나 추울까.” 고약한 무료는 반복되는 사계에 묻혀 틈틈이 찾아온다. 희진에게도, 나에게도. 사는 게 재미없다고 푸념했던 날을 기억한다. 4년 전, 작법 학원에서. 선생님은 나를 자극하는 게 무엇인지 내가 잘 알 것이고, 그것을 즐기며 살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살아온 터라 별 감흥은 없었다. 헌데 60년 남짓 살아온 그의 재미는 자극으로부터 무디어지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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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료와 권태는 호흡만큼이나 자연스럽다. 무언가를 해내고, 채워도 자꾸만 찾아온 걸 보면 그간의 방법으로 해결될 게 아니라 생각했다. 해결 방법이 있다면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너 또 왔구나' 하고 급히 내쫓기보다 잘 지내보기.


      “그러나 아마 그런 사람은 없겠지. 아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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