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밖을 옆으로 만드는 일 [도서/문학]

내가 김애란의 글을 읽는 이유
글 입력 2022.04.0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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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의 작품이 독자에게 닿는 방식을 감각적으로 표현해본다면, 마치 환기를 위해 열어둔 창문에서 각자가 사는 공간의 친근한 냄새가 시간이라는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느낌과도 같다. 처음 맡을 수도 있는 그 냄새가 어딘가 익숙한 향이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현재 처해있는 불확실성의 시공간 속에서 ‘그래도 다들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구나’라며 각자의 삶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일 테다.

 

지금의 시대는 여지껏 그 어느 때보다 모든 형태의 삶이 가장 함께 할 수 있는 동시에 가장 극단적으로 나뉠 수 있는 세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 작가는 세세하고 사려 깊은 관찰을 통해 먼저 걸어보았을, 혹은 걸어보지 않았을 여러 갈래의 길들을 상상으로 실현하고 이를 서사라는 형태로써 글에 담아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이해라는 경험과 생존 가능성으로써의 시간이 존재한다.

 

김애란은 2005년에 갓 등단한 작가로서는 이례적으로 빠르게 묶은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를, 그로부터 2년 뒤에는 『침이 고인다』를 출간하며 단 두 권의 소설집으로 2000년대라는 문학사적 시간대의 상징적 이름으로 거듭났다. 그런데, 데뷔 이후로부터 꾸준히 ‘말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다’, ‘읽은 이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라고 평가되어왔던 그가 2013년에 장편 「눈물의 과학」의 연재를 돌연 중단한 적이 있었다.

 

 

「눈물의 과학」 연재를 중단하며

 

올해 봄부터 『문학동네』에 선보인 「눈물의 과학」 연재를 중단하려 합니다. 

제가 하려는 이야기의 방향과 속도를 위해 호흡을 고르려 합니다. 

 

쓰다보면 알게 되겠지 싶어 비워둔 자리가 많은데, 

쓰는 동안 저도 모르게 훼손한 게 있는 듯해, 

이야기의 맨 처음 자리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러곤 스스로의 기대나 큰 욕심 때문이 아니라 

소설 안에 있어야 할 어떤 작은 기준 때문에라도 

이 이야기는 다시 쓰는 게 맞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두 계절이나마 미지와 미완의 길에 동행해주신 

독자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길에서 휘청거릴 때마다 옆에서 제 팔을 꽉 잡아준 편집부에게도요. 

 

연재를 중단하긴 했지만 소설을 포기한 건 아니니 

더 나은 원고로 인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그사이 계속 부서진 달 앞에 혼자 있어보겠습니다. 

제 팔에 남은 누군가의 악력과 질문, 우정을 떠올리면서요. 

 

곧 다시 뵙겠습니다.

 

(『문학동네』, 2013년 가을호)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이는 그가 사람을 소설 속 인물의 언어로 담는 일에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태도로 임했던 까닭이라 생각된다. 각자가 타자로 존재하던 거리를, 나아가 세대의 간극까지도 서서히 줄여나가며 독자에게 조금씩 다가가는 힘. 아마 이것이야말로 그의 글이 세대를 막론하고 많은 독자들에게 각별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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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외,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2014.

 

 

이후 2014년, 세월호 사건으로 작성한 산문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에서 그는 “우리가 본 것이 이제 우리의 시각을 대신할 것”이라 했다. 같은 글에 실렸던 “조금씩 ‘바깥의 폭’을 좁혀가며 ‘밖’을 ‘옆’으로 만드는 일”이라는 그의 남겨진 삶에 대한 선언은 지금에 와서도 그의 작품 안에서 여러 모습으로 존재함으로써 여전히 유효했다.

 

2017년 상실과 애도를 주제로 엮은 단편 소설집 『바깥은 여름』에는 그가 그 이후의 시간을 계속해서 살아갔음이 고스란히 배어있었다. 내가 김애란의 글을 본격적으로 마주하게 된 것도, 학부 시절 국어국문학과 수업에서 들었던 『바깥은 여름』에 수록된 「입동」과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읽으면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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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바깥은 여름』, 문학동네, 2017.


 

내가 이름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

 

(『바깥은 여름』, p.269)

 

 

『바깥은 여름』 중 작가의 말에서 그는 그가 이름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을 궁금해한다. 김애란이 이름 붙인 이들은 과연 우리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을까. 김애란 소설의 열린 결말에서, 그들은 섣부른 낙관도 절망도 하지 않고 가혹한 시대 현실의 한복판을 통과하고자 한다. 열린 결말이 주어지는 방식과 받아들여지는 방식은 모두 시대에 따라 변화를 보인다. 그렇기에 어쩌면 그들은, 우리가 아직 닿지 못한 곳에 먼저 가 있을 수도 있겠다.

 

또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변은 언제나 작품과 인물에게 있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 주변이 사람이든, 사람이 아니든, 세밀한 관찰로 재현된 단편들은 언제나 대화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었다. 대화라는 환기, ‘밖’을 ‘옆’으로 만드는 것. 느지막이 다시 습득한 감각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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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하는 자들은 저마다 다른 것을 본다. 이때 주마등처럼 스치는 기억의 단편에서 우리는 소중하지만 잊게 되었던 장면도, 마냥 반갑지 못했던 장면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소박한, 때로는 초라한 모습으로 그의 글이 보인 고백은 기억을 마주하는 용기를 위한 곁이 되어준다.

 

어떤 세대든 간에 드러나는 공통점은 결국 ‘어디로든 가고 있다는 것’이다. 작품에 삶을 녹여내고, 삶에 작품을 녹여내는 순환 구조를 통해 김애란은 낙하를 도약의 지점으로 자연스럽게 전환시킨다. 이렇게 김애란의 작품 세계는 지금 우리 세대와의 연결고리를 갖는다. 그렇기에 그가 우리와 함께 꾸준히 현재를 살아가는 작가라는 사실은 독자에게 더욱더 중요한 시사점이 된다.

 

김애란은 ‘소설이 중요한 까닭’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충분치 않음’이라고 했다. 모두가 충분하지 않아도 조심스러운 옆에 존재하기에, 우리는 서로를 마주할 수 있으리라 나는 짐작한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그의 언어를 기다리게 되는 이유이다. 그는 소설과 산문, 에세이를 오가며 작품과 독자 사이의 관계성에 계속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나갈 것이다. 질문에 대한 답을 질문으로 던지는 그의 작품에 대해, 그리고 내가 겪는 ‘밖’과 그가 이야기하는 ‘옆’에 대해, 나는 앞으로도 계속 궁금해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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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김지혜, 「죽음 성찰과 애도를 위한 소설교육 – 김애란 소설을 중심으로」, 국어교육학회, p.53, 2018.

신샛별, 「작가 인터뷰: 불충분한 이야기를 쓰는 충분한 열정」, 작가세계(25), p.57, 2013.

한기욱, 「우리 시대의 『객지』들」, 창작과 비평(41), 2013, p.239, 2013.

 

 

[민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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