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소리는 늘 흥미롭다. 내가 아는 첼로의 얼굴이 먼저 떠오르다가도, 막상 활이 현에 닿는 순간에는 그 얼굴이 금세 바뀌어버리지 않던가. 이재리 첼리스트의 첼로가 어떤 색으로 다가올지 몰라, 나는 먼저 아주 작은 질문 하나를 품고 있었다.
처음이 어떨까. 처음이 어떨까.
드뷔시,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L.135
생각보다 부드럽게 가네. 아주 짙은 파랑의 밤하늘 쪽에 있구나.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네. 나긋나긋하네.
마구 장난스럽게 흘러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무게중심이 든든히 받쳐지고 있으니까 이건 이거대로 차분한 매력이 있다. 방금 낮잠에서 막 깨어난 뽀얀 얼굴의 북극곰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해. 그래, 첼로는 이런 소리를 내는 악기였지. 이만큼 시선을 아래쪽에 둘 수 있었지.
같은 시작점에서 태어난 두 개의 갈래가 서서히 첼로와 멀어지는 때의 소리가 생각난다. 하나는 연노란색, 하나는 연둣빛이었다지.
진짜- 흥을 올리는 때에는? 오히려 발끝은 가벼운데 중간은 밀도감이 상당하다. 첼로에 달린 현에서 내보일 수 있는 매력적인 톤이 있나 봐. 눈은 거의 아래로 내리깐 채 제 품에 온순한 바람을 데려다 놓는다.
실바람으로 흐름을 이어 붙일 적에는? 그 유지력에 시선이 가고, 자잘한 흔들림이 없으니 듣는 내 쪽이 편안하다. 특히나 장난감 자동차의 시동이 막 걸린 듯한 제동 소리가 들릴 적의 그 얌전한 매트 브라운이 기억난다.
풀랑크,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FP 143
그래, 풀랑크는 이런 사람이었지. 피아노가 그 점을 미리 상기시켜 줬다. 어떤 사람이냐고? 복잡미묘하다. 외관이 꽤 아름다운데 이상하게 처연하고, 왈가닥인 면도 은근히 있는 것 같고.
그렇다면 오늘의 하얀 곰돌이 첼로에선 어떤 모습일까? 오히려 얌전하게 앉아 있는 이의 자리에서 노래가 시작되니 풀랑크가 뭔가 아주 조금 철들어 보인다.
그가 슬픔을 닮아 있는 길을 따라갈 때에는 어떤가? 오히려 넓고 길게 품을 내어준다. 씩씩한 얼굴일 때에도, 부드러운 흐름을 가져올 때에도 너무나도 유순하다. 막힘이 없어 시원하다고 표현하기보다는, 무표정에 가까운 인자한 미소로 제 갈 곳을 알아서, 제 속도에 맞춰 잘 나아간다.
아마 이 2악장에서 내가 가장 깊게 눈인사를 건넸던 구간이 아닐까 싶다. 첼로를 둘러싸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영역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애초부터 착한 인상을 가지고 있던 아이의 얼굴에 다정함이 얹어지니, 아- 내가 만났던 소리 중에 가장 ‘어른’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희한한 일이었다.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연주자들의 소리를 들으면 나조차 잊고 있던 ‘아이’를 만나게 되는데. 이 젊은 연주가의 두 손 안에는 어찌하여 어른아이가 엿보일까? 나는 그의 소리가 초록빛에 가까울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남은 것은 이상하리만큼 희고 낮은 기운이었다.
어디서 그 힌트를 얻었던가? 공연장 바닥, 나를 향한 빗금이 되어 나갈 곳을 일러주고 있는 표식을 보고 알았다. 저 화살표를 둘러싸고 있는 하얀 것들이 오늘의 첼로구나.
은은하고, 깊고 또 깊게 내려앉아 한들한들 흔들리는 관객석을 진정시켰다. 연약해 보일수록 몸집을 한껏 줄였다. 어떻게든 커다랗게 보이게 만들어진 것에만 시선이 다 뺏길 줄 알았는데... 그것만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첼로가 나지막하게 일러주더라.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그 얇은 속도로.
그렇다고 풀랑크의 물방울을 탐미할 즐거움을 놓쳐서야 되겠는가? 그 투명한 것이 바닥을 치고 위로 튀어 오르는 장면의 정취를 재미나게 감상했다. 재미난 리듬. 모락거리는 위험한 초록. 번뜩이는 번갯빛!
갈고리로 바닥에 깊게 구역을 파는 그때. 애초에 활 하나에 꽤 많은 중력이 불어넣어진 듯하니 그 힘이 더 강대해 보이고, 그 사이에 놓인 외로운 말을 해야 할 적에 내보인 시려움이 애처롭게 보인다.
그러니 이어지는 나름의 행진은 또 어떤가? 온갖 반짝임과 생기를 덧붙여 주는 피아노와 재미난 길의 이정표를 따라 전진 또 전진한다. 때때로 저 첼로가 노래하는 소리가 고래를 떠올리게 했다. 새파란 바닷속에서, 심연 깊은 곳에 급하지 않게 나아가는 그 모습이. 하얗고도 맑은 하늘의 고래만 같다.
프랑크,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A장조, FWV 8 (첼로와 피아노 연주)
신기했던 건 일직선으로 나아갈 줄 알았는데, 그러니까 기다란 리본 하나를 가지고 놀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작은 선이 얇은 작은 리본을 그때마다 나풀나풀 흩날려 주는 것이다. 예상과는 달리 가네 싶어 흥미로웠고, 무슨 대화를 나누게 될까 기대도 되어 이때는 첼로를 품 안에 두고 있는 이를 깊게 바라봤다.
신기했다. 감정이 내려앉을 때도, 활 안에만 힘을 줄 때에도, 꽤 긴 흐름을 이어가야 할 때에도 표정 변화가 거의 없었다. 소리는 파동을 타고 있는데, 그는 때때로 아주 가볍게 웃어줄 뿐이다.
어쩜 저렇게 성숙할까?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어색하지만 나름 예쁜 미소로 관객석을 향해 웃어 보이려는 그 모습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가 영락없는 어른아이라 홀로 착각할 뻔했다. 때마다 찾아오는 이별과 몰아치는 흥미진진함도 너무 크게 아쉽지 않도록, 오히려 별일 아니라는 듯이 다뤄 내어 주니 변치 않는다는 안심이 무대 위에 가득하다.
어느 악장을 지날 적에는 나무가 어떻게 자라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내 눈앞에서 나무 기둥이 자라나고 있던 틈이 아닌가. 온몸에 힘을 주지 않은 것 같은데 희한할 정도로 소리 중간은 단단하다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우직하다.
숲을 떠올리면 까슬한 나무에 내 손 하나를 얹을 수 있을 것이고, 바다 한가운데라면 한눈에 담기지도 않는 고래를 향해 감히 손을 뻗어 내지 못하겠다.
일렁일렁, 울렁울렁. 그가 이리 하는 데에는 무슨 뜻이 담겨 있을까? 무엇을 노래하고 싶을까. 처음 만난 내가 그의 속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악기를 품에 안고 있는 그 모습이 참 안정되어 보였다.
나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의자 뒷부분에 머리를 기대었다. 마음 어딘가가 편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크고 작은 폭풍이 지난다고 한들 걱정거리 하나 없다. 우리의 여정은 고래와 함께 아니겠는가?
이번 독주회를 준비하면서 이재리 첼리스트는 관객들과 어떤 음악적 대화를 나눠야 할까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아직 배울 것이 많은 예술가로서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이 느낄 수 있는 치열한 고민. 그리고 음악을 향한 순수한 열정을 프로그램에 담아보고 싶었다고 한다.
거창하게 자신을 증명하려는 소리가 아니라, 조심스럽게 제 안의 온도를 꺼내 보이는 소리. 연약해 보일수록 더 깊게 내려앉고, 작아 보일수록 더 오래 남는 소리. 그 소리를 따라가며 몇 번이나 마음을 낮은 곳에 두었다.
첼로는 말했다. 음악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전달하는 가장 아름다운 도구다. 나는 답했다. 언어는 음악이 표현해내는 감정을 전달하는 가장 아름다운 도구라고.
그러니 그날의 흰고래 첼로를, 내가 가진 언어로 오래오래 붙잡아두기로 했다. 그 고래가 정말 지나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낮고 흰 물결이 아직 내 안 어딘가를 천천히 지나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