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바이올린을 선택했나요?”
트리오 서울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쓴 책에서 만난 단순한 질문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문득 단어 하나를 바꿔 내게 되물었다.
“왜 트리오 서울의 공연을 택했나요?”
그러게, 왜일까?
트리오 서울 Piano Trio
1월 22일, 금호아트홀에 트리오 서울의 소리가 도착한다.
피아노·바이올린·첼로로 이루어진 이 삼중주 팀은 하이든의 ‘집시 삼중주’, 리스트의 바이올린,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트리스티아’, 라벨의 피아노 삼중주 a단조, 그리고 작곡가 서주리의 ‘7월의 산’을 연주한다.
이들은 2026년 1월 현재 미국 헬리팩스, 클래블랜드, 보스턴 등지에서 투어를 이어가고 있고, 한국 공연에서도 그 여정을 그대로 가져온다. 특히 서주리의 ‘7월의 산’은 2025년에 작곡된 작품으로, 이번 무대에서 한국 초연으로 연주된다.
흰 눈 안에서
1월이 찾아왔고, 생각보다 많은 날짜가 빠르게 지나갔다. 작년 크리스마스가 엊그제 같았는데, 아직 가로수에는 노란 전구들이 달려 있는데 우리는 이미 1월의 중반을 달려가고 있다.
흰 눈 안에서 생각했다. 클래식을 좋아한다는 건 참 여러 가지 운이 맞물려야 가능한 일 같다고. 가정환경, 우연히 배운 악기, 일찍 만난 인상적인 연주, 혹은 이 취향을 끝까지 지켜낼 고집까지.
그래서일까. 이 장르 안에서 우리는 늘 조금 작아진다. 음악 앞에 서면 자연스럽게 몸을 낮추고, 소리 하나에도 조심스러워진다.
하지만 그런 작아짐이 꼭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각자 맡은 몫을 다해야 하는 사회의 나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어서다. 책임질 것이 많지 않았던 시절만큼만, 연약해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는 순간, 소리는 풍경이 되고, 음악은 잠시 머물 수 있는 장소가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소리 끝에 사람이 서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얼굴이 붉어지고, 땀이 흐를 만큼 나무 악기 하나에 매달리는 생동감을 보고 나면, 같은 언어를 쓰는 이방인이 거리낌 없이 궁금해진다.
당신은 어떻게 이런 소리를 내는 걸까.
어떻게 이렇게 열심히 살 수 있을까.
트리오 서울 역시 그런 질문을 품게 만드는 팀이다.
사진=금호문화재단
2022년, 같은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창단 연주회 당시의 인터뷰에서 그들은 서양 음악을 기반으로 공부해 온 세 명의 한국 연주자로서, 한국적인 색채와 서양 음악을 어떻게 조화롭게 섞어낼지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고 말한다.
더 나은 학교와 직장, 삶을 찾아 모여든 사람들이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를 묻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서울.
피아니스트 김규연,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첼리스트 브래넌 조. 세 사람 모두 한국의 뿌리를 지닌 채 오랜 시간 해외에서 활동해 온 연주자들이다. 그래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라는 질문은 늘 따라다니는 화두였다.
서울이 가진 잠재력과 창의성처럼, 트리오 서울 역시 멈추지 않고 변화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번엔 이렇게, 다음엔 또 다르게. 아직은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래서 나는 이들의 ‘서울’이 어떤 소리로 들릴지, 어떤 풍경으로 그려질지 더 궁금해진다.
하이든·리스트·라벨·서주리
1월 22일, 트리오 서울은 네 개의 서로 다른 풍경을 무대 위에 펼쳐 보인다. 그 레퍼토리를 우리만의 장면으로 상상해 보면 어떨까.
다시, 눈이 내리는 1월 12일 밤으로 돌아가보자.
그때의 나는 길을 거닐며 하이든의 ‘집시 삼중주’ 1악장을 재생했다. 아, 길게 듣지 않아도 이 곡의 도입부는 입자가 얇은 하얀 눈송이가 땅으로 내려앉는 광경을 닮았다.
잠시 지켜보면, 밤빛으로 저물어 있는 하늘 위 눈발이 정해진 갈래 없이 사방으로 흩날리고 있다. 가만, 음미하자.
2악장은 그 장면 전체를 조망하는 다정한 설경만 같고, 3악장은 밖에 오래 서 있었는지 발그레해진 홍조 어린 얼굴로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속도감과 들뜬 기운이 가득하다.
리스트의 바이올린,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트리스티아’는 조용히 슬픈 얼굴을 하고 있다. 시작에 가까운 곳에서 첼로가 홀로 노래할 때, 한강 작가의 단편 『작별』 속 눈사람의 옆모습이 떠올랐다. 놀라지도, 동요하지도 않던 그 사람의 얼굴이 곡에 스며들어 있다. 22일이 오기 전, 그 책을 다시금 읽어봐도 좋겠다.
라벨의 피아노 삼중주 a단조는 1악장에서 간질거리는 춤을 추고, 2악장에서 생글거리는 긴장을 만들고, 3악장에서 차분히 가라앉았다가, 4악장에서 다시 별빛처럼 환해진다.
그리고, 서주리의 ‘7월의 산’. 7월이 청록의 계절이고, 산이 안겨 들고 싶은 품이라면, 그는 어떤 풍경을 그려냈을까. 초연으로 이 곡을 만나보게 될 테니, 마냥 들뜨면서도 미리 들을 수 없어 더 궁금증이 인다.
과연 그들의 손끝에서 펼쳐질 초록은 지나온 7월일까, 다가올 여름일까.
1월 22일, 금호아트홀에서 만날 하이든과 리스트, 라벨, 그리고 서주리의 품 안에서 우리는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까. 다시, 우리는 처음의 질문을 떠올린다.
“왜 트리오 서울의 공연을 택했나요?”
그 질문의 답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은 1월 22일(목) 19:30, 금호아트홀 연세. 티켓은 금호아트홀 홈페이지, NOL 티켓, 티켓링크에서 만날 수 있다.
■ PROGRAM ■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Franz Joseph Haydn
건반 삼중주 G장조, ‘집시 삼중주’, H.15/25
Andante
Poco Adagio. Cantabile
Rondo all’Ongarese. Presto
서주리 Juri Seo
7월의 산 (2025, 한국 초연)
Metasequoia
Golden Bells
Sonamu
프란츠 리스트 Franz Liszt
바이올린,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트리스티아, S.723c
I N T E R M I S S I O N
모리스 라벨 Maurice Ravel
피아노 삼중주 a단조, M.67
Modéré
Pantoum. Assez vif
Passacaille. Très large
Finale. Anim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