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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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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몬 모리오=도미노'라는 함수


 

연극 <함수 도미노>의 '도미노'는 자신의 강렬한 소망을 무의식중에 현실로 바꾸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전능한 신과 같지만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며, 그 힘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타인에게 무작위로 전이된다. 세상은 도미노의 소망에 따라 움직이기에 주변 인물들은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기이한 사건에 휘말리거나 불행을 겪게 된다.

 

이야기는 어느 지방 도시의 교차로에서 발생한 불가사의한 교통사고로 시작된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행인 '나오이'를 향해 자동차가 돌진하지만, 차는 마치 '투명한 벽'에 부딪힌 듯 행인 바로 앞에서 완파된다. 나오이는 머리카락 한 올 다치지 않았으나, 운전자는 경상을 입고 조수석에 탔던 아내는 중태에 빠진다.

 

보험 조사원 '요코미치'는 이 사고를 조사하기 위해 목격자들을 모은다. 이때 목격자 중 한 명인 '마카베 카오루'가 황당한 주장을 펼친다. 이 사고가 기적인 이유는 사고 당사자의 형인 '사몬 모리오'가 특별한 힘을 가진 존재인 '도미노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카베는 변변치 않은 직장을 전전하고 있는 40세 남성으로, 도미노들이 자신의 삶을 '조연'으로 만든 것을 증명하여 그들을 원망함으로써 자신이 이뤄내지 못한 것들을 애도하고자 한다.

 

이처럼 마카베는 '사몬 = 도미노'를 함수 완성하는 것이기에, 모리오가 진짜 도미노인지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계획한다. 마카베는 에이즈(HIV) 환자인 '토로'를 모리오에게 접근시킨다. 만약 모리오가 진심으로 친구가 된 토로의 쾌유를 빌어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가 도미노임이 증명되는 것이다.

 

실제로 극이 진행됨에 따라 실제로 토로의 병세가 호전되는 등 기묘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사람들은 점차 마카베의 황당한 가설을 믿기 시작한다. 연극에서는 마카베가 사몬 모리오에게 심은 도청장치를 통해 그의 모든 행동에서 '모리오'라는 결론을 도출하려고 노력하고, 그곳을 둘러싸 앉은 외의 인물들과 관객들 역시 '사몬 모리오'가 도미노인간인가에 대해 끝없이 질문하며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하지만 정작 '도미노'가 실존하는가, 누가 '도미노'인가에 대해서 명확히 밝혀지지 않는다. 작품은 도미노가 있다는 뉘앙스로 묘사되지만, 이 모든 것은 관찰된 결과일 뿐이고, 그 과정을 정확히 밝힐 수 없다.

 

예를들어 마카베는 오늘날 등장하는 저급한 베스트샐러 책들을 쓴 사람이 도미노이며, 그로 인해 출판되어야할 많은 책들이 손해를 봤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책을 쓴 사람들이 정말 도미노인지, 도미노의 도움을 받은 사람인지 알 수 없을 뿐만아니라, 도미노 본인과 주변 사람들은 그것을 도미노의 힘이 아닌 개인의 의지나 환경적 요소로 해석하려고 할 것이다. 게다가 그 힘은 그 스스로도 모를 때 옮겨간다.

 

하지만 이 '증명 불가능함'이 <함수 도미노>의 핵심이다. 마카베의 '망상증세'를 진단한 정신과 의사이자 오랜 친구인 오노는 인간의 마음을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도미노는 자신이 도미노인줄 모르고, 자기 자신도 현실적인 제약에 의해 조정된 소원을 '강렬하게 믿는다'라는 알 수 없는 마음의 힘에 의해 결과가 도출되니, 어디까지가 도미노의 영향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도미노가 실제로 존재하건, 존재하지 않건, 그것을 증명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함수를 차지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는 알 수 없는 블랙 박스이기 때문이다. 그는 마카베의 도미노 망상에 대해 진단하고, 토로의 기적을 인정하지만, 마카베가 후련하지 않은 것과 같이 삶은 변하지 않는다.

 

 

 

2. 불가해한 삶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


 

'인과'의 해석에 익숙한 보험 조사원 요코미치가 마카베를 도미노로 지목했을 때, 마카베는 무너지기에 이른다. 그는 자신의 삶이 아깝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마카베가 설령 자신이 도미노임을 알았더라도 그가 말했던 '히틀러 같은 독재자'처럼 행동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믿지 않았고, 인생에서 단 한 번도 무언가를 강렬하게 원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에너지는 자신의 의지나 능력이 아닌 '도미노'라는 신비로운 함수에 기댄 타인의 성공을 시기하는 데 소진되었다. 결국 그가 도미노의 힘을 통해 선택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 즉 존재론적 자살에 가까운 도피였다.

 

마카베의 파멸은 현대적 주체가 마주한 존재론적 비극을 상징한다. 그는 '마음의 인과'를 탐구하는 대신 '도미노 함수'라는 외부적 질서에 집착한다. 그에게 이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자신의 초라한 현실을 정당화하기 위한 거대한 논리적 알리바이다. 그가 함수에 집착한 이유는 그것이 입증될 때 비로소 자신의 실패가 '능력 부족'이 아닌 '불가항력적인 외부 변수'의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이 도미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직면했을 때 보여준 자기 부정은, 책임으로부터 도망치려는 비겁한 주체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지 않는 것'을 바란다. 그가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도미노의 힘을 이러한 자기부정에 사용한 것은 그의 입장에서 타당하다. 도미노가 아니라면 지금까지의 모든 불행의 책임이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니게 되고, 도미노가 맞다면 고통이 끝나는 것이니까. 그는 결정론의 그늘 뒤로 숨어버린 관찰자일 뿐이다.

 

간호사 사와무라 미키는 마카베의 패배주의에 대응하는 대척점으로 설정된다. 그녀는 도미노의 존재를 긍정적인 '희망의 함수'로 치환하며 삶의 태도를 견지한다. 그러나 미키의 긍정이 과연 마카베의 허무주의보다 우월한가에 대해서는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

 

결국 미키 역시 '나를 넘어서는 외부의 힘'에 기댄다는 점에서는 마카베와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마카베가 함수를 통해 자기 파괴를 정당화한다면, 미키는 함수를 통해 자기 위안을 획득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주체적인 의지로 삶을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기적'이라는 외부 변수에 자신을 투사하는 또 다른 형태의 정신적 종속이다. 이는 연극에서 '기도'나 하는 종교라고 묘사되기도 한다.

 

작가는 미키를 통해 희망을 제시하는 듯 보이면서도, 동시에 인간이 얼마나 쉽게 외부적 프레임에 자신을 의탁하는지를 묻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키가 '마카베'와 같은 인물인 것은 아니다. 그녀가 '언제든 자신이 도미노가 될지도 모르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라고 말한 배경에는, 그녀가 도미노건 아니건 상관없는 삶의 태도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마카베와 달리 미키에게 도미노는 결과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갈 동력을 정당화하는 주체적 장치로 기능한다. 그래서 미키는 도미노건, 도미노가 아니라하더라도 세상과 불화하지 않을 것이다.

 

사몬 모리오는 통제 불능한 무의식과 '기적'의 허구성을 체현한다. 그는 도미노라는 전능성을 소유했음에도 정작 자신의 삶을 통제하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의 고백은 관객이 마카베의 프레임(도미노라는 결론)에 갇혀 간과했던 '인간 내면의 오작동'을 환기한다.

 

모리오가 토로의 기적을 믿지 않았다는 사실, 동생의 안정적인 삶을 바랐음에도 마음을 접었다는 사실은,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이 결코 정교한 함수처럼 맞물려 돌아가지 않음을 시사한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통제할 수도,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만 움직이지 않는다. 여기서 도미노 이론은 그 강력한 힘에도 불구하고 무의미한 소음으로 전락한다.

 

작품에 '기적' 혹은 '기적을 믿는 따뜻한 마음' 뒤에 "인간은 결코 자기 자신(무의식)을 온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차가운 결정론적 공포를 매설해 둠에도, 묘한 온기를 남기는 것이 사와무라 미키와 사몬 모리오의 태도에 있다. 이 작품에서 확실하게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이 변덕스러운 삶이라는 진실뿐이지만, 그런 변덕스러운 삶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이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힘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3. 무대 연출: 시선의 위계와 관찰자의 비극


 

연출은 '도청'과 '관찰'이라는 테마를 무대 공간에 영리하게 배치한다. 사몬 모리오를 중심으로 동심원 구조로 배치된 인물들은 피관찰자를 향한 집단적 시선이 어떻게 '신(도미노)'을 창조하는지 시각화한다.

 

특히 마카베의 위치 설정이 탁월하다. 그는 줄곧 조연의 위치에서 사몬 모리오를 관찰하지만, 이는 스스로 주인공이 되기를 거부하는 그의 방어기제를 대변한다. 커튼콜에서 사몬과 마카베를 중심으로 항성과 위성처럼 움직이는 앙상블의 동선은, '관찰자(마카베)가 피관찰자(모리오)를 규정함으로써 존재를 창조한다'는 관계의 역설을 완성한다. 결국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신(사몬)보다, 그 신을 증명하려다 자기 부정의 심연에 빠진 인간(마카베)의 비극이 이 연극의 진정한 도미노 효과임을 보여주는 연출적 압권이다.

 

연극은 묻는다. 마카베가 마지막에 무너진 게 정말 '도미노라서'일까, 아니면 '자신이 세운 완벽한 논리 체계(함수)가 자신을 공격하는 역설'을 견디지 못한 정신적 파산일까? 그렇다면 마카베의 파멸에서 우리는 결정론적 비극을 읽어내야 하는가, 아니면 삶의 무의미함 속에서 나름대로의 태도를 정의할 것인가?

 

작가는 여러 군상을 통해 다양한 방향을 제시하지만,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는다. 세상에 불가해한 삶을 어떤 태도로 살 것인가는 그 누구도 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마카베처럼 살건, 오노처럼 살건, 미키나 사몬처럼 허무하게 삶을 낭비하지 않도록 한 가지 태도를 선택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나는 '함수 도미노'는 삶이라는 이해 불가능한, 이해 불가능해서 함수를 발명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다루는 방식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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