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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이름조차 모르는 저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 패트리샤 피치니니: 킨쉽 [미술/전시]

수원시립미술관 "패트리샤 피치니니: 킨쉽" 전시 관람 후기

by 정충연 에디터
2026.09.16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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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일어난 네팔 바그마티주 라슈와에서의 홍수·산사태는 전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많은 사상자가 속출하고 현재까지 피해가 지속되는 가운데 해당 천재지변의 원인으로 지목된 건 다름 아닌 기후변화였다.

       

      사실 네팔 홍수 이전에도 유럽을 비롯한 전지구적 폭염과 대형 산불 등 이상적인 기후로 인한 사건들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미래의 일로만 여겨졌던 지구온난화와 이상 기후의 문제가 지금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 땅의 다른 존재들을 자원으로 여기며 소유하고 이용하기에 거리낌없던 그간의 태도가 결국 우리 스스로를 위협하는 길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새로운 삶의 방식이 그 어느때보다 요구되는 시기, 다양한 생명들과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그들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패트리샤 피치니니: 킨쉽》은 이 질문에 대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전시는 네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깨어나다」는 피치니니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생명체들을 소개한다. 2부 「조우하다」는 그러한 생명체와 인간이 만나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순간이 그려지며, 3부 「유대하다」에 이르러 관계의 의미가 피상적인 접촉에서 돌봄과 책임으로 깊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4부 「흔적들」은 아카이브 자료와 함께 작가의 이야기, 나아가 우리가 느끼고 생각한 바를 나누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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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치니니의 생명체들은 SF영화에 나올법한 혹은 어린아이가 장난으로 그려낸 것처럼 생겼다.

       

      〈어린나무〉(2020)에서 남성이 목마를 태우고 있는 생명은 동물의 살갗에 식물의 줄기와 뿌리를 합쳐놓은 모습이고, 〈슈폼〉시리즈(2019-20)는 신발과 식물, 동물들이 융합된 형상을 띠고 있다.

       

      작가는 그저 환상의 세계를 눈 앞에 펼쳐 놓은 게 아니다. 우리가 학술적으로 혹은 산업적으로 분류했던 종 간의 경계와 체계가 무너지며 생명체라는 거시적 차원에서 대상을 바라보게 만든다. 이 대상들은 작가가 탄생시킨 새로운 생명의 형태임과 동시에 그 자체로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존재들이 화합하여 공존하는 양상이기도 하다.

       

      더욱이 작가는 동물과 식물뿐 아니라 신발과 같은 인공물을 작품에 들여온다. 신발을 이루는 플라스틱은 실제 자연계에서 존재하지 않는, 대표적인 인공물이다. 동시에 신발은 지금의 인간이 걸을 때 필수적인 물건으로 사실상 연장된 발로서 우리의 신체와 다름없다.

       

      곧 작가는 인간 기술의 산물이자 새로운 신체로서 신발이 융합된 생명체를 그리며 우리와 동떨어진 자연이 아닌 기술과 공존하는 새로운 생태를 제시한다.

       

      이는 〈좁은 틈〉(2008)이나 〈조여오는 압박〉(2012)과 같이 알루미늄과 자동차용 페인트를 사용한 회화 작업에서도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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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는 인간 기술의 위험성 또한 간과하지 않는다. 예컨대 〈유령먹이에 대한 사유〉(2025)는 장수거북의 입을 빌려 플라스틱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들려주며, 〈신생가족〉(2002)은 인간과 돼지의 특징이 돋보이는 생명체를 통해 장기 이식과 같이 의학적 목적으로 소비될 생명에 대한 윤리 의식을 일깨운다.

       

      이런 측면에서 피치니니의 작업은 인간 이외의 존재를 대상화하는 태도와 기술 발전의 부작용에 관해 일종의 충격 요법으로 경각심을 주려는 듯이 보인다. 소위 불쾌한 골짜기의 감각을 이용하여 말이다.

       

      하지만 전시에서 드러나듯이 그의 작업은 불쾌감을 주는 채찍이나 음성 피드백에서 끝나지 않는다. 깊숙한 골짜기로부터 우리와 다른 존재들을 끌어내어 주는 건 유대와 사랑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인 사랑으로서 가족애는 많은 피치니니의 작업이 간직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낯선 생명체를 향해 처음엔 〈의심하는 토마스〉(2008)와 같이 호기심으로 다가갔다면, 어느덧 우리는 그들에게서 〈안식처〉(2018/2024)와 같이 가족애의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결국 “킨쉽(kinship)”은 인간만의 감각이 아니었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생명들 혹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같은 지구에서 살아 숨쉬는 생명체들 간의 유대인 것이다.

       

      생의 감각을 공유하는 존재로서 다른 생명체를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면, 더 나은 공존에 한발짝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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