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불화하는 세상에 빅엿을 날리다 [미술/전시]

글 입력 2022.05.09 14:0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957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난 아이웨이웨이는 1990년대부터 표현의 자유와 난민들의 삶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하지만 발표하는 작품마다 당국과 갈등을 빚었고 체포와 가택연금, 구속은 그의 일상이 되었다.

 

 

KakaoTalk_20220508_013016614.jpg

 

 

미술가이자 건축가, 영화감독인 아이웨이웨이가 세상을 향해 날리고 있는 수많은 엿들이 전시장 한쪽 벽을 가득 채웠다. 1995년부터 2017년까지 지속된 시리즈 《원근법 연구》는 전 세계 역사적 기념물 앞에서 내민 작가의 가운뎃손가락이 사진으로 담겨 전시되어있다.

 

평소 욕을 하지 않는 데다 욕할 일도 별로 없어 괜히 뻘쭘하게 작품을 바라보다가 나도 그 앞에서 가운뎃손가락을 번쩍 들어 포즈를 취해 봤다. 이제는 하다하다 엿을 날리는 제스쳐도 예술이 되는 지금 시대가 어쩐지 생경하게 느껴졌다.

 

《아이웨이웨이: 인간미래》는 회화와 사진에서부터 설치, 건축, 공공미술, 전시기획, 출판 등 전 방위적으로 활동하는 아이웨이웨이의 예술세계를 망라한다. 특히 그는 디지털 시대에 블로그,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관객과 소통하는 예술가라는 점에서 선구적이다. 전시 제목인 《인간미래》는 ‘인간’과 ‘(현재보다 더 나은)미래’를 결합한 것으로 그의 예술세계를 함축하는 화두다.

 

공감과 연대의 공동체를 통해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분노하는 것이 작가가 성취하고자 한 삶의 의미이자 예술이다. 해당 전시는 사진 연작, 무라노 유리작품, 대형 설치작품과 11편의 영상을 포함해 총 126점의 작품을 보여준다. 그 중 인상적인 작품 몇 가지를 소개한다.

 

 

KakaoTalk_20220508_012937180_01.jpg

 

KakaoTalk_20220508_013324506.jpg

《옥의》 2015 / 대나무, 238x1,217x521cm


 

《옥의》는 대나무로 만들어진 거대한 인체 형상으로 크기가 12m에 달한다. 2000년 전 한나라 시대 황제의 무덤에는 옥으로 만들어진 갑옷인 ‘금루옥의’를 넣었는데 작가의 인체 형상이 이를 닮았다.

 

옥으로 만들어진 수의는 2400여 개의 옥조각들을 금실로 하나하나 이어 붙여 만들었다. 옥 수의가 시신을 썩지 않게 보존한다는 믿음 아래 수백명의 장인이 수년간 한 벌을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시신은 결국 썩어 없어졌고, 속이 빈 옥수의만 우리 앞에 유산으로 남아 현대 작품의 주제가 되었다.

 

작품을 만드는 기법은 대나무로 연을 만드는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커다란 대나무 뼈대 사이 사이로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작품은 인간 육체의 유한성과 욕망의 허망함을 보여준다. 또한 지하에 설치되긴 했지만 바닥이 아닌 천장에 작품이 매달린 모습을 통해 과거의 삶과 믿음 등이 지금의 우리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이 작품에는 비판적인 요소보다 중국 전통 문화의 순수성이 강조되어 있다.

 


KakaoTalk_20220508_013722154.jpg

 

KakaoTalk_20220508_012937180_02.jpg

《색을 입힌 화병들》, 2015 / 도자기와 페인트


 

《옥의》가 역사의 순수한 미학을 보여준 작품이라면, 《색을 입힌 화병들》은 전통 위에 현대를 덧칠함으로써 발상의 전환을 유도한다. 작가는 신석기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를 현대의 공업용 페인트에 담궜다가 꺼냈다. 이는 수천 년 전 유물을 현대의 물질로 덮어버려 그 가치를 훼손시킨다는 점에서 도발적이다.

 

문화혁명은 오히려 문화유산을 파괴했고, 문화예술의 명맥은 끊어져버렸다. 장인정신 역시 등한시되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를 미술관은 “20세기 이후 도시 개발과 현대 도시건축을 위해 역사적 건물을 허물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관행”에 대한 환기로 해석한다.

 

그러나 페인트칠이 더해졌다고 해서 도자기 본래의 가치가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페인트를 벗겨내면 원래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비록 전통과 현대의 경계는 흐려졌지만 그대로 존재하는 두 요소는 작가를 통해 원래의 작품이 새로운 담론을 생성할 수 있게 만드는 현대 예술 작품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KakaoTalk_20220508_012937180_04.jpg

 

KakaoTalk_20220508_012937180_03.jpg

《구명조끼 뱀》, 2019 / 구명조끼 140벌, 65x2,2550x85cm


 

유럽으로 망명하려던 난민들의 주요 경유지인 레스보스 섬에서 난민들이 벗고 간 구명조끼를 연결해 제작한 길고 커다란 뱀이다. 비록 구명조끼의 주인은 없지만 작가는 그들의 흔적에 주목했다. 이름도, 얼굴도, 생사도 모르는 그들의 존재를 기억하고 잊지 않을 수 있게 생각의 계기를 마련한다.

 

작품의 캡션에는 중국의 한 고사를 언급한다. 화가는 용을 잘 그리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어느 날 실제 용을 보고 자신이 그동안 그렸던 그림들은 뱀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는 이야기다. 관람객 또한 눈 앞에 거대한 뱀을 보고 있지만, 그 비극의 실체까지는 체감하지 못한다. 구명조끼의 주인들, 그들이 겪은 고통, 그 고통의 이유, 우리는 이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이러한 고통이 재발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아이웨이웨이는 현재 진행형인 문제를 시각적으로 재현했다.


그의 작품은 모두 정치·사회적 이슈를 예민하게 건듦으로써 과거의 사건을 현대로 가져와 해석하고 소통하며 공감하는 공통점이 있다. 앞서 설명한 세 작품 또한 과거와 동시대의 연결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작품이다. 이와 함께 그의 예술세계를 상징하는 키워드 몇 가지로 이번 전시를 정리한다. 우선 무경계(無經界). 전시에서 만난 아이웨이웨이는 동서고금을 종횡무진하는 이단아를 연상하게 한다. 경계가 없다. 시공 뿐만 아니라 회화와 사진, 영상, 설치, 도기, 출판 등의 장르를 거침없이 넘나든다.

 

다음은 난민과 인권. 지금 포르투갈에 거주하고 있는 아이웨이웨이는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적 있다. “예술은 문제와 모순으로부터 나오고 이것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예술이다. 정치 환경이 엄혹하다고 해서 작품을 만들지 못한다면 예술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마지막으로 문화혁명. 그의 아버지 아이칭은 유명한 반체제 시인이었다. 1966년부터 시작된 문화혁명 때 아버지는 읽기와 쓰기가 금지됐었다. 책을 소유하는 일이 반혁명, 반공산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시집과 소설책을 모두 태워야 했다. 이 사건은 아이웨이웨이에게 종이에 인쇄된 단어와 그 사이에 있는 이미지가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지를 각인시킨 계기가 됐다.

 

중국의 문화유산, 그리고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을 동시대 미술로 소환한 아이웨이웨이는 우리에게 남아있는 선조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강요한다. 우리 모두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다. 인류 문명은 아주 먼 곳에서부터 흘러 오늘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이웨이웨이는 이 강이 어떤 질곡의 세월을 건너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힘이 있다.

 

 

 

신유빈 (1).jpg

 

 

[신유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