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깨어진 것을 이어붙이면 [미술/전시]

이수경, [이상한 나라의 아홉 용] 전 관람 후기
글 입력 2023.03.05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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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설거지하는 엄마를 보며 ‘그릇을 닦는 행위’가 재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하라고 해도 그닥 하고 싶진 않은데. 어릴 땐 어른이 하면 다 재미있어 보이기 때문일까? 기어이 손에 맞지도 않는 고무장갑을 빼앗아 들고 그릇에 비누칠을 시작했었다.

 

혹여나 그릇을 깨뜨려 다치진 않을까, 세제 거품을 먹진 않을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옆에서 나를 지켜보던 엄마의 시선이 생각나는데, 그 때의 나는 뭐가 그리 재미있었는지 신나게 설거지를 했더랬다.

 

아니나 다를까, 일곱 살의 작고 여린 손은 무거운 자기 그릇의 무게를 다 감당하지 못해 바닥에 떨어뜨리고야 만다. ‘쨍그랑!’ 귀를 때리는 소리와 함께 깨진 그릇의 파편이 여기저기 튀었을 때는 왜인지 모를 불안함을 느꼈던 것 같다. 놀란 엄마가 잰 몸놀림으로 다가와 날카로운 파편들로부터 나를 피신시키고 현장을 수습하기 시작했을 즈음, 엉엉 울음을 터뜨렸었다.

 

그릇을 깨끗하게 만들어 보고 싶었을 뿐인데 영영 못 쓰게 만들어 버린 게 억울했던 건지, 설거지를 잘한다는 칭찬을 받아보고 싶었는데 칭찬은커녕 혼날 위기에 처해버린 게 당혹스러웠던 건지 이제 와서 판단할 순 없다.

 

그럼에도 조심스레 짐작하자면, 혼날 게 무서웠던 심정이 눈물의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깨진 것은 다시 원상태로 되돌릴 수 없으니까. 제 쓰임을 못하도록 만들어버렸으니, 그 손실에 대한 질책이 당연히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최근 성수의 더페이지갤러리에서 진행된 이수경 작가의 전시, ‘이상한 나라의 아홉용’을 흥미롭게 관람하고 왔는데, 이상하게도 이 기억이 바로 떠올랐다. ‘깨진 도자기’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렬한 기억인 탓이겠지? 웃음이 나면서도 의문이 들었던 것 같다. 대체 무엇이 그리 서러워서, 깨진 자기 그릇 사이에 서 울고만 있었는지. 단지 혼날 게 무서워서였을까?

 

*


2022년 12월부터 서울숲의 더페이지 갤러리에서는 이수경 작가의 ‘이상한 나라의 아홉 용’전을 개최했다. 해당 전시에서는 그녀의 대표작인 ‘번역된 도자기’ 연작을 포함하여,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되었던 기념비적 의미를 지닌 메인 작품, ‘이상한 나라의 아홉 용’을 선보였다.

 

또한, ‘장미’에 ‘빛’과 ‘생명력’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회화 연작, ‘오 장미여!’와 그 후속작품으로 특별 제작된 미디어 아트 ‘장미 한송이’, ‘꽃밭에서’를 함께 전시했다.

 

그 작품세계 속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 살펴보자.



[포맷변환][크기변환]이수경아홉용포스터.jpg

 

 

 

1. 이상한 나라의 아홉 용


 

중국에는 ‘용생구자’라고 하는 설화가 있다. 고대 용의 아홉 아들이 각기 다른 짐승의 모습으로 세상 속에 섞여 드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그 아들들이 뒤집어쓴 육체는 형태가 제각각이라 용으로서 그 위용을 떨칠 수는 없었지만, 짐승의 모습을 했기에 그 형태와 성질에 맞춰 오히려 용 그 자체보다 수월히 인세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전설은, 존재의 형태가 본질과 다른 모습을 하더라도 무조건 한 가지 이상의 쓰임을 가지고 있어 세상에 섞일 수 있다는 격려를 전달하기도 한다.

 

이 설화가 전달하는, 어찌 보면 따뜻한 격려는 이수경 작가의 ‘번역된 도자기’ 연작, 나아가 ‘이상한 나라의 아홉 용’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평행한다고 볼 수 있다. ‘번역된 도자기’는 도공들이 내다버린 깨진 도자기들을 ‘금’으로 이어 붙여 만들어내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금’은, 도자기가 깨지기 전에 나는 ‘틈’의 의미까지 담는다. 즉, ‘깨어짐’이라는 숙명적 연약함을 지닌 도자기의 ‘금’들을 ‘금’으로 메워 파손 뒤에 드러나는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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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을 넘어 숨겨진 아름다움의 발견으로 이어지는, 이수경 작가의 ‘번역된 도자기’ 연작의 대미, ‘이상한 나라의 아홉 용’은 전시장 가운데 우뚝 서 관람객을 압도한다.

 

작품의 크기가 큰 것도 있지만, 각기 다른 형태의 도자기들이 한 데 모여 만들어내는 형태가 정말 말 그대로 ‘용’을 표현하고 있는 듯해 중압감이 느껴진다. 이미 깨어진, 연약하고 무용한 도자기들의 ‘금’이 메워져 이만치 거대하고 위압적인 용이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아름다움을 넘어 강력하기까지 한 이 작품은, 마치 ‘연약하여 깨어지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일어서고야 마는’ 인생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작고 큰, 저마다의 형태들이 이어져 하나가 된 모습은 혼종 외계인을 보는 듯해 이질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자세히 보다 보면 제자리에서 빛나는 각각의 연약함들이 아래와 같은 위로를 건네고 있는 것 같다는 감상이 찾아온다.

 

 
“깨어져도 괜찮아. 사라지지 않은 존재는 이렇듯 늘 자기 자리를 찾아가니까.”
 

 

  

2. 장미라는 존재는



이수경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오, 장미여!’ 회화 연작과 미디어 아트 ‘꽃밭에서’, ‘장미 한송이’ 또한 그렇다. 다양한 가치와 아름다움, 존재들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세상 속, 화려한 듯 소담스럽게 피어나는 장미들을 표현한 작품들은 장미만이 지니는 빛과도 같은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크기변환]오장미여.jpg

 

 

회화에서 추상 속 드러나는 장미의 존재감을 담아냈다면, 미디어 아트에서는 이수경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장미의 생명력이 도드라진다.

 

‘꽃밭에서’는 끊임없이 피고 지며 바람에 흔들리는 수많은 장미들을 보여주며, 연약하지만 끊어지지 않는 그들의 생명력을 드러낸다. 또한 영상과 함께 흘러나오는 여인의 유려한 노랫소리는, 관람객이 서있는 자리를 천천히 울리며 접하는 이로 하여금 작품 속으로 끌려가게 만든다.

 

작중의 장미들이 단지 한 계절 피고 질 꽃이 아닌, 작가의 생명력을 담은 매개임을 깨닫는 순간 작품의 진짜 가치를 알아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또 다른 작품인 ‘장미 한 송이’는 온통 어두운 가운데 피어나 있는 장미 한 송이를 보여준다. 계속되는 어둠 속에서 꿋꿋이 고개를 들고 있는 단 하나의 장미는, 개화와 만개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낙화하지는 않는다. 그림자 속에 존재하면서도 그에 잠식되지 않는 '빛'으로, 곧게 서서 자기 자리를 지키는 장미는 언뜻 보면 고집스럽기까지 하다.

 

본연의 가치를 고수하고 주변에 굴복하지 않는 모습이 아름답고 강인함을, 이수경 작가에게 장미는 이런 존재임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3. 깨어진 것을 이어붙이면


 

이미 엎질러진 물을 아쉬워하는가?

깨어진 것을 그리워하는가?

떠나버린 누군가를 기다리는가?


왜?

당신은 왜 당신에게 있어 쓰임을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찾고 싶어하는가?


이수경 작가의 ‘이상한 나라의 아홉 용’은 위 물음을 던지는 듯하다. 작가가 전시 내내 전달하는 강인한 아름다움과 유려한 생명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떠나간 것들에 대한 진정한 안녕을 고하게 만든다. 그들이 쓰일 곳, 그들이 갈 곳은 그들의 형태와 성격이 바뀜에 따라 정해지며, 떠나가 정착할 그 곳에서야말로 그들의 진정한 쓸모가 드러날 것임을 말해준다.

 

동시에, 갖고 있던 모양이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쓸모를 잃은 것이 아님을, 장미와 같은 마음으로 기다리면 더욱 빛나고 강인할 당신의 진정한 형태를 새로이 얻게 될 것임을 일러주는 듯하다.

 

깨어진 그릇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던 일곱살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는 잘못한 게 없고, 그저 그릇이 그릇으로서 명을 다한 것뿐이야. 그릇이었던 것은 이제 어디로든 사라져서 또 다른 모습으로 제자리를 찾을 거야. 껍데기보다 중요한 건 그것이 지닌 가치야. 우리에겐 이제 가치가 없는, 그릇이었던 저 친구는 이대로 더 나은 자리로 보내주고, 우리는 더 단단하고 예쁜 그릇을 찾아보자. 오래오래 쓸 수 있는, 우리 같은 그릇.

 

 

[유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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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박정선
    • 어린시절 처음으로 퍼즐을 접하고 첫번째  퍼즐을 맟추었을 때 무척이나 뿌듯해 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첫 글을 쓰신 시작점에서 앞으로의 기고가 기대되는 마음이 듭니다 다음 퍼즐도 기다리겠습니다~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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