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을 앓던 수연이 결국 내림굿을 받는다. 그런데, 찾아온 신이 베트남어를 하네?
수연은 한국-베트남 혼혈아다.
도대체 기준이 뭔데?
내림굿 봐주던 무당조차 손을 놓았다. 다른 나라 신이 들린 이상 자기는 해줄 게 없다면서. 베트남으로 가서 베트남 신을 모셔야 한댄다. 하지만 갑자기 베트남으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야, 수연은 국어, 한국사 1등급과 동시에 제2외국어 베트남어 9등급이니까. 한국에서 태어나 쭉 한국에서 자랐으니까. 고수도 못 먹는다. 신병 걸린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이제는 핏줄 때문에 베트남 신을 받게 생겼으니 어안이 벙벙하다.
이대로면 정말 베트남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 더 지체하다간 소중한 가족과 친구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 당장 다음 날 비행기 타고 베트남으로 떠나 평생 거기서 정착하게 생긴 수연은 신내림이고 뭐고 일단 눈 앞엔 수능특강만 보이는 좁은 독서실에서 친구들과 작전 회의를 한다. 차라리 베트남 신이 진짜 들리기 전에 셀프 내림굿을 하자는 것. 절대 안 된다는 챗지피티의 조언은 가볍게 무시하고 하나씩 굿판을 준비한다.
제사 음식은 마트에서 비슷한 과자와 젤리로, 장구와 태평소 반주는 블루투스 스피커로 연결해서 무한재생. MZ 무당의 굿판이 시작된다. 신력을 시험하기 위한 '무구 찾기'에서 쓸 굿판용 부채는 현대식 부채, 손풍기로 대체한다. 그렇게 무구를 찾던 중 장군 신이 드디어 납신다. 장군 신을 모시겠다는 수연의 말에 일이 잘 풀리는가 싶더니 얼마 전 만난 베트남 신이 또 등장한다. 서로 수연의 진짜 뿌리는 자신의 나라이며, 수연이 자신을 모실 거라며 언성을 높이던 중, 수연은 폭발한다. 그만 좀 싸워! 수연의 선택은...
시간이 흘러 점집을 차린 수연은 이제 양쪽에서 들려오는 신의 속삭임을 듣고 한층 신빨이 강한 무당으로 거듭난다. 끝!
이제 알겠지? '디아스포라'
디아스포라. 과거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도, 자신의 문화를 지켜온 유대인의 삶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제는 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이주민 집단 혹은 그 현상 자체를 일컫는다. 디아스포라는 두 개 이상의 국가의 경계에서 늘 자신을 설명해야 한다. 그들이 어디에서 나고 자랐는지, 그 정서적 친밀도를 묻기 보다는 외양만 보고 혈통의 출처를 가늠하려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미국에서 나고 자란 동양계 미국인을 보고 끝없이 네 '진짜'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보며 답답해하는 이들처럼. 이들의 2세, 3세 자녀들은 점차 선대의 본토를 경험하지조차 못하지만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받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는 수연의 엄마가 베트남인 결혼이주여성으로서 디아스포라에 해당한다. 한국에서 자식을 키우며 귀화하여 정착했지만 집에는 베트남식 불단이 있고, 기도를 올린다. 수연의 셀프 내림굿이 잘 진행되어 이제 장군 신을 받기만 하면 되는 타이밍에 베트남 신이 난입한 것도 그 이유다. 수연을 잘 보살펴 달라며 엄마가 열심히 기도를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자기도 모르게 탄식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수연이 한국인 신을 받으면 다 끝나는 일인데 갑자기 끼어들다니. 그게 마냥 잘못된 일인가 한다면, 결코 아니다.
수연은 두 신 모두 내쫓지 않는다. 초반에는 한국인인 자신에게 베트남 신이 들려 당황하고 억울했지만 막상 두 신을 동시에 보니 한 명을 내칠 수 없다. 이 대목에서 꼭 하나만 골라야 한다고, 그리고 그 하나가 한국인 신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영화를 보던 이들에게 제3의 선택지가 보인다. 그래서 수연이 두 신을 모두 모시기로 다짐한 것이다. 자신이 처음 놀랐던 것은 베트남어도 못하는 자신에게 베트남 신이 찾아왔던 것일 뿐이지 베트남 자체를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 아님을 보여주듯이 말이다.
수연을 찾아온 두 신이 사실은 수연의 부모님의 모습을 한 것도 그렇다. 무속신앙이나 가족애나 이성의 산물인 과학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하고, 헤아릴 수 없다. 수연의 엄마는 한국에서 수연을 키우며 서툰 한국어로 수연을 위로하고 힘이 되어 주려 하며, 기도까지 올린다. 수연의 아빠는 베트남 이민까지 알아보며 수연의 신병을 해결하고자 한다. 누가 더 수연을 사랑하는지 우열을 가릴 때가 아니다. 중요한 건 어느 한쪽도 빠짐없이 수연의 정체성의 근간이 되는 가족이라는 거다.
두 문화를 모두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우열을 가리지 않고 나의 일부로 녹여내는 것은 현대 다문화 사회에서의 방향점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국적, 뿌리, 혈통, 인종, 이민, 이주 등 그 수많은 요소들만으로 삶을 규정하지 않고 내가 선택하여 인생을 구성하는 것.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가지지 않은 이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망고도, 참외도 둘 다 노랗고, 달다. 그렇지만 다르다. 그래서 하나만 고를 이유가 전혀 없다. 아무 문제 없다.
내 마음이다!